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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여름날

시끌벅적 하굣길

by 강지은

오늘 등교하는데

여름이가 영 시무룩하고 멍해서 걱정이었다.

일반애들 생각하면 그냥 차분한 건데 워낙 각성이 높았던 시절이 있었고, 오늘은 조절돼서 차분한 것보다는 좀 멍해 보여서 좋아하는 분수도 보고, 그네도 타면서 천천히 학교로 향했다.

보통 학교에 가까워질수록 표정이 좋아지는데, 오늘은 표정도 시무룩하고, 인사도 성의 없이 하고 들어갔다. 오늘따라 등굣길에 마주치는 친구도 없고, 우르르 나와있는 반친구도 없어서 돌아서는 엄마의 발걸음도 무겁다.

집으로 와서 엄마도 안정차원에서 커피도 한잔 내리고 필사도 한장하며 무탈한 귀가를 기원했다.


쏜살같이 다가온 12시 반 하교시간

먼저 나온 나의 메신저 친구(중요 사건은 나오자마자 우다다 알려주는 귀여운 ♡♡이)가 별말 없는 거 보니, 별일 없었나 보다.

여름이 반 친구가 블루베리도 하나 따다 먹으라고 주고, 따스운 어린이들ㅎㅎ 보통은 시던데 오늘은 다행히 맛있네.

현관 앞에서 기다리는데, 여름이랑 친구들이 삼총사처럼 손잡고 웃으며 지나가고, 그 장면을 신나게 사진 찍는 선생님이 보였다. 그 모습에 안심하며 웃고 있자니, 띠링~ 하이톡에서 사진이 도착한다. 다정한 선생님♡

곧이어 친구들이랑 우르르 나오는 여름이

오늘도 기다리면서 친구들이랑 초코라테, 딸기라테 신나게 하고, 선생님이 친구들 보고 이제 이건 완전 마스터니 다른 거 이제 연마해 보자고 하신다.

조금 유치하지만, 선생님 보고 양팔 가득 "이~~~ 만큼 좋아"를 시연하고 돌아서는데, 친구가 "나는 나는~", 친구 보고도 "이만큼 좋아"를 외쳐주고야 드디어 하교하나 했는데, 포옹도 해양고 손도 흔들어야 하고 할 일이 많다.

예전 같으면 이 긴 시간 짜증내거나 먼저 가버리거나 했을 법한데, 다 기다리고 본인에게 기대되는 것들을 해낸다. 아직 여전히 말보다는 행동이 앞서고, 다발적으로 정보가 들어가면 혼란스럽지만, 친구들이 내미는 다정함을 밀어내지 않고 받아주는 여름이가 참 대견하다.

여름이를 동생 챙기듯 챙기며, 또 친구처럼 어울리는 아이들을 보면 언젠가 그 모습이 변한다 해도 이 순간은 여름이도 나도 만끽하고자 한다.

친구들 고마워



중증자폐스펙트럼 아이의 육아와 학교생활을 나눕니다. 느리지만 성장하는 아이처럼 엄마의 특별한 육아도 보통의 육아로 나아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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