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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작권이라는 두 개의 공을 바라보며.

"아가야! 엄마 여기 있다."

by 이대영

첫째 여동생을 엄마가 집에서 낳았습니다. 엄마는 어두운 방에서 얼굴에 땀방울이 송골송골 맺힌 채로 동네 산파(産婆)의 도움을 받아서 여동생을 낳았습니다. 방 안은 엄마 고통 소리와 신음소리로 가득했습니다. "조금 더"하며 산파가 다그치는 소리에 엄마는 가냘픈 손으로 문고리에 묶인 줄을 힘을 다해 잡아당겼습니다. 엄마 얼굴은 고통에 일그러졌고, 팔은 부들부들 떨었습니다. 엄마가 누운 얇은 요는 엄마가 흘린 땀으로 흠뻑 젖었습니다. 엄마 몸은 너무도 가냘프고 약했습니다.


그리고 그렇게 용을 쓰기를 몇십 분. "응애! 하는 아기 울음소리가 온 방안을 울렸습니다. 엄마는 그제야 한숨을 내쉬면서 잡고 있던 줄을 천천히, 조금씩 손에서 놓았습니다. 팔이 힘없이 방바닥에 툭! 하고 떨어졌습니다. 여동생은 그렇게 태어났습니다. 저는 그때 핏덩이에 쌓인 아기를 처음 보았습니다. 엄마는 아기를 보고 활짝 웃었습니다.


작가에게 작품은 엄마가 낳은 아기입니다. 오랜 시간 심혈을 기울여서 만든 작품입니다. 깊이 생각하였고, 때로는 고통하기도 했습니다. 봄에 시작한 작품은 겨울이 되어서야 겨우 끝이 났고, 봄에 피었던 하얀 벚꽃은 흰 눈이 되어 처마 밑에 소복이 쌓였습니다.


'저작권'문제가 마음을 아프게 합니다. 가장 최근에 저작권으로 문제가 된 것은 백희나 작가가 그린 그림책 《구름빵》과, 고(故) 이우영 작가가 그린 《검정 고무신》입니다. 두 작품 모두 저작권 분쟁에 휘말렸습니다. 저작권은 저작물을 만든 작가가 가지는 권리를 말합니다. 작가의 허락 없이는 저작권에 포함된 '저작재산권'이라 불리는 복제, 배포, 공연, 전시, 공중송신, 2차 저작물 제작, 대여를 할 수 없습니다. 안타깝게도 백희나 작가는 저작권 전체를 출판사 측에 넘기는 '매절 계약'을 하였고, 그로 인하여 출판사가 만든 2차 저작물에 대한 수익을 얻을 수 없었습니다. 이우영 작가는 ‘작품과 관련한 일체의 사업권, 계약권을 출판사 측에 양도한다’는 내용으로 출판사와 계약했습니다. 이 역시 매절 계약입니다.


작품을 매절하는 이유 중 하나는 작가들이 겪는 경제적인 어려움 때문입니다. 작가는 출판사 측에서 매절 이야기를 꺼내면 쉽게 결정을 내리지 못합니다. 매절을 하는 게 나을지? 아니면 출판 계약을 하는 게 나을지? 고민합니다. 문제는 매절을 하지 않아도 2차 저작물에 대해 명확하게 설명해 주는 일이 거의 없다는 것입니다. 신인 작가인 경우에는 출판이 '기회'라 선뜻 말하기가 어렵습니다. 혹시라도 출판에 문제가 생기면 어떻게 하나? 하는 염려 때문입니다.


작품을 매절하는 또 하나 이유는, 불확실성 때문입니다. 작가는 자신의 작품이 앞으로 어떻게 될지 모릅니다. 1쇄 인쇄로 끝날지, 아니면 2쇄까지 갈지 알 수 없습니다. 1쇄 부수만큼 인세만 받고 마는 출판 계약보다는 매절을 함으로써 얻는 경제적 이익이 크다고 판단되면 매절을 택합니다. 출판권과 2차 저작물 생산에 대한 모든 권리는 출판사가 갖게 되는 것입니다.


출판권 계약만 하면 그래도 영화나 애니메이션, 캐릭터 상품 제작 등 2차 저작물에 대한 권리가 작가에게 있지만, 출판권 계약인 줄 알고 계약을 했는데, 저작재산권 내용까지 포함되어 있으면 어떻게 할 방법이 없습니다. 그런 경우를 '포괄계약'이라고 합니다. '포괄계약'이라는 말은 계약서에는 없습니다. 그러나 계약서를 자세히 살펴보면 '출판계약'과 '2차 저작물 사용'에 대한 내용이 따로 구분되어 있습니다. 이것을 모르는 작가는 단순히 '출판 계약'으로만 알고 계약하는 것입니다.

작품을 매절한 것도 아닌데, 알지 못하는 포괄계약으로 저작권을 송두리째 잃으면 마음이 어떻겠습니까? 모르는 게 죄라고 하지만 그런 내용이 있는 줄 작가는 모릅니다. 계약서 내용을 자세히 살피지 못한 게 화근입니다. 실제로 저작권 분쟁이 있었던 한 작가의 가족은 계약에 대한 이해가 부족했다고 말합니다. 고(故) 이우영 작가는 생전에 "검정고무신은 제 인생 전부이자 생명이다"라고 말하며, "어리석은 창작자들의 권리를 찾을 수 있도록 도와달라"라고 호소했습니다.


급기야 정부에서는 총 10종의 '표준계약서'를 만들어 확정 고시했습니다. 가장 눈여겨볼 내용은 '부차권(부차적 이용허락)'으로, "법적권리는 아니지만, 현장에서 원저작물의 부가적 이용을 허락하는 권리로 통용되며, 저작물에 대한 재 이용 및 축약본이나 요약본을 만들거나 라디오에서 저작물을 읽을 권리, 저작물에 기반한 상품을 만들 권리에 대한 것"으로 되어 있습니다. 번역, 각색, 편곡, 변형 등의 '2차적 저작물 작성권'과 구분하였고, 2차 저작물에 대한 권리는 저작권자에게 두는 것으로 되어있습니다.


그러나 '표준계약서'도 권장사항이지 강제 사항이 아닙니다. 정부 법제처에 있는 '표준 계약서의 체결' 본문에 보면 "표준계약서는 권고사항으로 당사자간의 계약이 우선이나, 계약에 해당 내용이 없을 경우 표준계약서를 참조할 수 있으며, 구속력이 없는" 것으로 설명하고 있습니다.


작가가 만든 창의적인 작품은 보호되고 존중되어야 합니다. 저작권에 대한 올바른 인식과 정직한 계약으로 저작권은 지켜질 수 있습니다. 작가에게는 저작권이 지켜짐으로 인하여 작가로서의 인격이 존중될 수 있습니다. 저작재산권과 더불어 저작물에 대해 저작자가 갖는 인격적인 권리, 즉 자신의 저작물을 공표할 것인가에 대한 '공표권'과, 저작물에 대하여 자신이 저작자임을 주장하고 표시할 수 있는 '성명표시권'과, 저작물이 창작한 본래의 모습대로 활용되도록 하는 '동일성유지권'이 '저작인격권'입니다.


작가는 저작권에 대한 걱정이나 의구심 없이 자유롭게 창작활동할 수 있기를 바라고 있습니다. 작가는 좋은 작품을 만들고, 출판사는 좋은 책을 만들어 독자들의 성원에 보답하는 것이 창작 문화가 나아가야 할 지향점입니다. 좋은 문화는 같이 만들어 가야 합니다. 공존(共存)은 공생(共生)을 통해서 존재 가치를 찾을 수 있습니다.

《구름빵》과 《검정 고무신》 두 개의 공이 '저작권'이라는 이름으로 하늘로 쏘아 올려졌습니다. 이전에도 많은 공이 이런저런 이름으로 쏘아 올려졌습니다. 어떤 것은 보이지도 않고, 어떤 것은 무거운 무게로 다시 떨어졌습니다. 작가는 다시 엄마 이야기에 귀를 기울입니다.


"입이라도 하나 들어야 될 것 아녀?" 아기 낳았다는 소식을 듣고 동네 아주머니가 와서 엄마에게 한 말입니다. 가난한 형편에 입 하나 줄이라고 말합니다. "잘 키워 줄 거야, 염려하지 말어." 그 말에 엄마는 자고 있는 아기 얼굴을 한번 더 쳐다봅니다. "그래도 내 새낀데, 내가 배 아파 나은 자식인데 어떻게 그럴 수 있소?" 엄마는 눈시울을 붉히며 울음을 삼켰습니다. "괜찮아, 이름은 안 고친다고 하니께 나중에 다시 찾아올 수 있을 거야."


가난한 형편에 아이를 다른 집으로 입양시키는 일이 많았습니다. 절대 찾아오지 말라고 엄포를 놓는 집도 있었습니다. 찾지 못하도록 성(姓)도 바꾸고 이름도 바꾸었습니다. 멀리 이사 가버리면 영영 찾을 길이 없었습니다. 다행히도 여동생은 입양 보내지 않았습니다. 엄마는 아기를 보며 말했습니다. "아가야! 엄마 여기 있다."


아기에게 엄마가 다를 수 없듯이 작품을 만든 작가 또한 다를 수 없습니다. 작가는 저작권을 통해서 작품에 대한 소유를 주장할 수 있습니다. 작가에게 저작권은 아기만큼 소중합니다. 이번 기회를 통해서 저작권에 대한 인식이 새로워지기를 기대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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