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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Gold)과 피(Blood)-32

by 윤금현

32 장.



호텔 중식당에 들어선 진태와 정화는 점심 시간인데도 불구하고, 그리 손님이 많지 않은 것에 약간 놀랐다.

“요새 경기가 안 좋다, 안 좋다 하더니…….”

“그러게 말이에요. 정권이 바뀌어도 살림살이는 아직인가봐요.”

진태는 정화의 팔을 잡고 테이블로 이끌었다.

“정권이 바뀐다고 금방 무슨 변화가 있겠어? 아, 애를 낳을래도 열 달이 걸리는데…….”

“그건 그래요. 어쩌면 이렇게 당신은 척척 잘 알까?”

“흠, 흠.”

정화의 칭찬에 진태의 기분이 좋아졌다. 하나 있는 딸 손혜정이 이런 제 엄마 성격을 반만이라도 닮았으면 얼마나 좋았을까 하는 생각이 드는 진태였다. 그러나 오히려 병승이 엄마를 닮았고, 혜정은 자기를 닮았다. 바뀌어도 한참 바뀌었다.

테이블에 착석을 하자, 웨이터가 얼른 달려와 메뉴판을 건넸다.

“뭐로 할까?”

“애들 올 때까지 기다리는 게 어때요?”

진태는 메뉴판에서 눈도 떼지 않은 채 말했다.

“나는 오늘 소희라는 아가씨를 테스트해보고 싶어.”

진태는 웨이터를 보면서 주문을 했다.

“요거, 코스요리로 4 인분.”

“네, 알겠습니다.”

“그리고 자그마한 죽엽청 한 병.”

웨이트는 메뉴판을 들고 사라졌다.

“여보, 낮부터 무슨 술을 먹으려고 해요?”

“나? 아니야. 난 술을 먹지 않아. 그냥 마시려고 해.”

정화는 킥킥거리면서, “또 시작이군요.” 라고 했다.

둘의 대화가 진행되는 동안, 중식당 문이 열리며 병승과 소희가 나란히 들어왔다.

“안녕하세요?”

소희는 진태와 정화에게 인사를 건넸고, 정화는 반가운 미소를 지었다.

“아빠, 주문은?”

“그냥 주는 대로 먹어.”

웨이터가 죽엽청 한 병을 먼저 가져오자, 병승과 소희의 눈이 깜짝 놀랐다.

“자, 한 잔씩 하자.”

소희의 눈이 반짝이더니, 이내 술잔을 받쳐들었다.

“아버님, 저를 시험하려 하시는군요.”

‘어, 요 당돌한 아가씨가…….’

진태는 얼굴을 붉히지 않으려 했다.

“좋아, 일차는 통과.”

음식이 나오자, 네 명은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면서 식사를 했다.

“그래, 언제 결혼하려고?”

진태가 병승을 보면서 질문을 하자, 소희의 얼굴이 발그레해졌다.

“아빠, 아직 그런 얘기는…….”

병승의 얼굴이 난처해졌다.

“올해 안에 하자.”

병승의 표정은 완전히 멍해져 버렸고, 소희는 아무 말도 안했다. 그러자 진태가 소희를 보면서 말을 건넸다.

“부모님은 뭐 하시고?”

“두 분 다 제가 어릴 때 돌아가셨습니다. 저는 혼자입니다.”

“저런, 쯧쯧.”

정화의 눈이 금새 붉게 물들어갔다.

“그럼 우리랑 같이 살아도 될까?”

진태는 은근히 소희를 떠봤다.

“예. 저는 좋아요.”

“핫! 핫! 핫! 마지막 시험도 통과!”

정화는 진태를 살짝 꼬집었다.

“아야!”

“여보, 무슨 시험이 그래요?”

“걱정도 팔자네. 아래층 빌라 하나, 내가 봐 둔 게 있걸랑. 거기가 좀 있으면 빌 거야.”

진태의 말에 병승의 얼굴이 환해졌다.

“아빠, 거기 해주시게요?”

“이놈의 자식이! 아니다. 내가 사면, 너는 월세를 내야 한다.”

“예?”

병승의 입에서 놀랐다는 비명이 튀어나왔고, 그걸 본 소희는 입을 가리고 큭큭 웃어댔다.


* * *


진영은 아직도 속이 안 좋은지 소파에 누워 있고, 그 앞에 준영이 앉아 있다.

“혜정 씨는 내가 책임을 진다.”

“맘대로.”

“너, 무슨 말이 그래?”

준영은 화를 냈다.

“형, 형은 하고 싶은 대로 됐는지 모르겠지만, 나는 전혀 아니거든. 이제 어떡할 거야?”

진영은 누운 채 준영에게 투덜대기 시작했다.

“선경이하고 그렇게 되었으니, 이제 어떻게 얼굴을 보냔 말이야?”

진영은 손목에 차고 있던 시계를 풀어, 준영에게 던졌다.

“이제 이거 가져가.”

“너, 이거 어디서 났냐? 이거 안 버렸구나.”

그제야 준영은 선경이 자신과 진영을 혼동한 것이 이해가 되었다. 이 시계는 준영에게는 신분증이나 다름없었기 때문이다.

“생각을 해 보자. 진영아, 여자를 그런 식으로 하려고 하다니, 이건 전적으로 네 잘못이야.”

“누가 내 잘못 아니래?”

진영은 이제 신경질이 났다. 세상만사가 귀찮아지기 시작했다. 왜 여자 하나 제대로 되는 일이 없을까?

“당분간 선경이는 잊어라.”

준영의 말에 진영의 얼굴이 굳어졌다.

“시간이 약이다. 여자는 말이야…….”

“그만!”

진영은 소파에서 벌떡 일어났다.

“형! 그런 식으로 가르치려 들지 마. 난 딱 질색이니까.”

“여자는 말이야……. 자기를 알아주는 남자를 위하여 화장을 한다고 했다.”

“…….”

“내 생각으로는, 진영이 네가 얼마나 선경이를 생각하느냐에 달렸다고 본다.”

진영은 다시 소파에 앉았다. 준영이 보니, 서서히 진영의 감정이 가라앉고 있었다.

“시간을 가지자. 진영아, 너, 예전에 예술가를 존중한다고 했지?”

“그래.”

“마찬가지야. 여자를 존중해 봐. 선경이를 존중해 봐. 선경이 탓을 하지 말고, 자신 탓을 해 봐. 아마 그러면 해답이 보일지도 몰라.”

진영의 눈에 준영이 다르게 보이기 시작했다. 형은, 이 사람은 길거리에서 현실과 부딪치며 살아온 사람인 것이다. 진영은 어릴 때, 그렇게 못살았던 때를 자신이 잊어버렸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그때는 모든 게 부족했기 때문에, 원하는 것이 있으면, 참고 기다려야만 했었는데……. 지금은 지갑을 열어 돈만 꺼내면, 모든 게 내 손에 들어온다.

“형 말이 맞아. 내가 성급했어.”

준영은 진영의 이런 점이 좋았다. 본시 착한 녀석이다. 내가 조금만 도와주면 될 것이다.

“그런데, 네가 선경이한테 마음이 식으면 어쩌지?”

진영의 눈이 번쩍이더니, 입술을 꽉 다물었다가 다시 열었다.

“그런 걱정은 하지 마. 난 선경이를 사랑해.”

“부디 그 마음 변하지 마라.”

“그럼 형은 혜정 씨를 언제 만날 거야?”

준영은 천장을 바라보면서, 생각에 잠겼다.

“글쎄, 시간이 필요하겠지. 두어 주 정도 그냥 보낼 생각이야. 거기 성격 알잖아? 나도 감당하기 힘들 거야. 아마도.”

준영은 혜정의 그 차디찬 미소를 떠올렸다. 갑자기 몸 주위에 한기가 돌았다.

‘무서운 여자다. 강한 여자다.’


* * *


“어, 진태? 오랜만이야.”

이현석은 손진태의 전화를 받자, 그렇잖아도 돈 문제로 전화를 할까 했었는데 하는 생각이 들면서, 이 친구가 왠일로 연락을 했을까 하는 생각도 들었다.

“어, 그래 별 일 없지?”

“아니. 나 요새 돈 문제로 좀 힘들어.”

현석은 진태에게 솔직히 말했다.

“그래? 그런 나중에 얘기하기로 하고, 내 오늘 전화 건 이유는 말이야.”

“뭔 일이지?”

“혜정이하고 진영이 때문이야.”

현석은 양미간을 찌푸리며 옆에 있는 미현을 보았다.

“혜정이가 진영이하고 결혼할 마음이 없나 봐.”

현석은 진태의 말에 아무런 대꾸도 할 수가 없었다.

“그래서 말인데, 일단 이 문제는 덮어두는 게 어떨까?”

“나는 괜찮네. 둘이 그렇게 안 맞으면 어쩔 수가 없지.”

“그래서 나는 말이야. 차라리 진영이 말고, 준영이가 어떨까 하는 생각도 해 보았어.”

“뭐? 준영이를? 그게 무슨 말이야? 이봐, 진태. 아무리 그래도 그렇지, 형과 동생이 한 여자하고 만난단 말인가? 말도 안 돼.”

“내 생각은 그래. 우리는 아이들을 결혼시키기로 약속을 했잖아. 나는 그 약속이 불변이라는 생각은 아니지만, 이왕이면 다홍치마라고 애초에 약속했던 대로 하면 좋잖아. 나는 준영이를 한 번 보았어.”

“자네가 준영이를?”

“그래. 나는 준영이가 괜찮아 보이던데……. 실은 혜정이가 말이야. 이게 감당이 안 되는 성격이라서……. 보통 남자들은 얘가 그냥 깔아 뭉개버리거든. 차라리 산전수전 다 겪은 준영이가 더 낫지 않나 싶기도 해.”

“이봐, 진태. 일단 진영이 결혼 문제는 보류하기로 하고. 준영이 문제는 내가 찬성이 안 돼.”

“허허, 이 사람아. 그럼 다음에 통화하세.”

“진태, 잠깐만. 자금 좀 융통해 줄 수 있나? 내가 내 소유 주식을 담보로 제공할께.”

“담보까지? 그러다 내가 자네 회사를 먹어버리면 어떡하려고?”

“그거야 어쩔 수 없지. 한 번 도와줘.”

현석은 이제 진태에게 한 수 접고 들어갔다.

“알겠네. 내 도와주지.”

현석은 전화를 끊었고, 미현은 현석의 얼굴을 보았다.

“뭐래요? 진태 씨가.”

“어, 진영이하고 혜정이 결혼 문제를 보류하재.”

“네? 대체 무슨 일이 있었길래?”

미현의 마음이 급해졌다.

“여보, 현석 씨. 전화 좀 해 봐.”

미현은 현석에게 독촉을 했고, 현석은 폰을 꺼내 전화를 걸었다. 신호가 가자, 이내 이진영이 전화를 받았다.

“예, 아빠. 잘 지내시죠?”

“진영아, 요새 별 일 없지? 형도 잘 있냐?”

“예. 준영이 형도 잘 있어요. 바꿔줄까요?”

현석은 준영이도 함께 있다는 말에, 진태의 전화 내용을 말하지 않기로 마음먹었다. 지금 전화로 해봐야 좋을 일이 아니었다는 판단이었다. 나중에 따로 조용히 얘기를 해야 한다는 생각이었다.

“그래라.”

현석이 미현에게, “준영이 바꾼데.” 라고 말하자, 미현의 숨이 가빠지기 시작했다.

“여보! 나, 나한테…….”

미현은 현석에게서 폰을 넘겨 받았다.

“준영아!”

“예. 접니다.”

“잘 지내냐? 어째 통 안 오고 그러냐? 내가 너무 서운하구나.”

“예. 조만간 가겠습니다.”

“아니다. 오늘 저녁에 보자. 난 널 보낸 그날 생각만 하면……흑흑.”

미현은 진영에게 혜정 문제를 물어본다는 것조차 잊어버리고, 끝내 스마트폰을 손에 든 채 눈물을 보이고 말았다.

현석은 미현에게서 폰을 다시 받아, 준영에게 말했다.

“준영아, 오늘 저녁에 진영이와 함께 와라. 다같이 저녁 먹자. 내가 너희들한테 할 얘기도 있다.”

“예. 그렇게 하겠습니다.”

현석은 전화를 끊고, 미현의 어깨를 안았다.

“그만 울어. 저녁에 온대.”

“정말?”

미현의 눈이 금세 환해졌다. 미현은 주방을 보면서 소리를 쳤다.

“김 실장, 오늘 저녁에 애들 온데.”

“네, 사모님.”

“아니야. 김 실장. 지금 당장 나하고 마트에 가야겠어. 얼른 준비해.”

주방에서 일을 하고 있던 김 실장이 수건에 손을 닦으며 거실로 나왔다.

“사모님이 직접 가시게요?”

“허 실장도 준비하라고 해. 다같이 가서…….”

미현의 허둥대는 모습을 보고 있던 현석이 자리에서 일어났다.

“내가 운전할까?”

“그래요, 여보. 우리 다같이 가요.”


* * *


시간은 밤 열 시를 향해 가고 있었고, 카페의 한 룸에 송영구와 손혜정이 마주보고 앉아 있었다. 문이 굳게 닫혀 있다.

“본부장님, 이 늦은 시간에 어쩐 일이세요? 오늘은 더 아름다우십니다.”

영구는 눈에 흐뭇한 미소를 지으면 혜정을 바라보았다.

“칵테일 어떨까요?”

영구는 혜정에게 메뉴판을 내밀었고, 혜정은 그걸 집어들더니, 이리저리 넘겨보았다.

“저는 오렌지 주스로 하겠어요.”

‘음, 술을 거절한다? 약간 달라진 것 같은 분위기에……. 무슨 일이 있구나.’

영구는 칵테일 한 잔과 오렌지 주스 한 잔을 시킨 다음, 다시 혜정을 바라보았다.

“오늘 만나자고 한 것은 다름이 아니라, 이진영 문제입니다.”

혜정은 그렇게 영구에게 말을 시작했다.

영구는 혜정의 말을 듣기만 하고, 중간에 어떤 질문도 하지 않았다.

이윽고 혜정의 말이 끝나자, 영구는 잠시 천장을 쳐다보았다.

“본부장님, 그럼 잠깐 정리를 하겠습니다. 그러니까 지금 저에게 저희 회사를 배신하라 이 말씀이시군요? 맞습니까?”

혜정은 주스를 한 모금 꿀꺽 마셨다.

“네. 아리랑을 완전히 망하게 하고 싶어요.”

영구는 크게 숨을 내쉬었다.

“꼭 그렇게 해야겠습니까? 단지 이진영 상무가 손혜정 본부장님의 마음을 아프게 했다는 이유만으로요?”

혜정은 고개만 끄덕했다.

“좋습니다. 그럼 저한테는 뭘 주시겠습니까?”

혜정의 손이 유리잔을 꽉 잡았다.

이걸 본 영구는 술을 한 모금 마시면서, 혜정의 얼굴을 똑바로 보았다.

“원하는 걸 말해 보세요.”

“제가 원하는 어떤 거라도 됩니까?”

“네. 실장님. 뭐든지 말만 하세요.”

영구는 남아 있던 칵테일을 벌컥 마셔버린 다음, 테이블의 벨을 눌렀다. 마담이 문을 열고 고개를 살짝 들이밀었다.

“칵테일 한 잔 더.”

마담은 조용히 문을 닫고 나갔고, 영구는 잠시 생각에 잠기는 척 하면서, 혜정의 얼굴을 관찰했다.

‘이것이 기회인가? 여기서 뭘 원해야 하나? 정말 그걸 얘기할까?’

칵테일이 테이블에 놓여지고, 마담은 두 사람을 보더니, 아무 말도 안 하고 그냥 룸에서 나갔다. 심각한 분위기를 짐작한 것이었다. 영구는 다시 술을 한 모금 마셨다. 알콜이 들어가면서, 슬슬 배짱이 생겼다.

‘그래, 저지르고 보는 거야. 여기까지 어떻게 왔는데…….’

“저는 본부장님, 아니 손혜정 씨, 당신과 결혼하고 싶습니다.”

송영구는 마침내 자신의 야망과 욕망을 드러냈고, 이 말을 들은 혜정의 온 몸은 일순간 굳어버렸다.

‘나를 원한다? 임산부를? 말해야 하나, 말아야 하나? 믿을 수 있는 사람이라면 말을 해야 한다. 내 말을 듣고 달라지면, 그건 처음부터 믿을 수 없는 사람인 거야.’

“저도 하나 얘기할 것이 있습니다.”

영구는 소파 등받이에 느긋이 기댔다. 오른 다리를 왼 다리에 올렸다. 원하는 것을 쟁취한 남자의 모습이었다.

“저는 임신을 했습니다. 지금 한 달 됐어요.”

혜정의 말은 영구를 정통으로 때렸다. 영구는 마치 25 톤 트럭이 와서 자기를 친 것 같은 충격을 받았다. 한 순간 영구는 말이 나오지 않았다.

‘임신? 대체 누구의?’

영구는 목이 타는 듯 칵테일을 들어 그대로 전부 마셔 버렸다.

“누구의 아이인지 물어봐도 될까요?”

“이진영은 아니에요.”

영구는 혜정이 더 이상 말하지 않을 것임을 알았다.

“그래도 저하고 결혼하겠습니까?”

“그 아이는 어떻게 할 생각이신지…….”

“낳을 거에요. 이유까지 말씀드리면, 이 아이는 아무 죄도 없으니까요.”

이제 공은 다시 영구에게 넘어왔다. 영구는 꼬았던 다리를 풀고, 처음처럼 긴장된 모습을 취했다.

‘아이는 낳겠다? 그러면 나는 남의 아이를 데리고 살아야 하나?’

혜정은 영구의 그런 모습을 보면서, ‘남자들은 다 똑같애. 너도 별 수 없구나.’ 하는 생각을 했다. 이제 여기에서 미끼를 던져야 한다.

“실장님, 아이는 낳을 거지만, 아빠에게 보낼 겁니다. 우리가 결혼하면 우리 애를 낳아야지요. 안 그래요?”

혜정은 방긋 웃으며, 영구에게 말했고, 그 미소에 영구는 결심을 굳혔다.

“네. 저는 손혜정 씨와 결혼하고 싶습니다.”

혜정은 손을 내밀었고, 영구는 그 손을 잡았다.

“이걸로 약속이 되었어요. 그럼 어떻게 아리랑을 무너뜨릴지 얘기해 줄 수 있나요?”

영구는 혜정의 보드라운 손을 놓고, 다시 소파 등받이에 기댔다. 아까보다 한결 편안해진 모습이다.

“지금 아리랑은 자금 문제로 힘듭니다. 그 내용까지는 말할 필요가 없고……. 자금 융통을 제가 책임지고 있으니까, 중간에서 이걸 막으면, 아마…….”

“아마…….”

“주식은 폭락하게 되고, 부도가 날지도 모릅니다.”

혜정의 얼굴에 차가운 미소가 지나갔다.


* * *


영구와 혜정이 손을 잡은 바로 그 시간에, 현석과 미현은 준영과 진영 그리고 윤영까지 자신들의 아이들 전부와 함께 즐거운 저녁 시간을 보내고 있었다.

다들 마음 속에 문제를 한 가지씩은 가지고 있었지만, 그런 내색은 아무도 하지 않았다. 미현은 그저 좋기만 했다. 준영을 보는 미현의 눈은 사랑으로 가득차 있었고, 정말로 인생에서 처음으로, 준영은 친부모라는 것이 어떤 존재인지 생생히 느꼈다. 물론 윤영은 준영에게 아직도 그 택배 문제로 시비를 걸고 넘어지기는 했지만.

온 가족이 모여서 행복한 시간을 보냈고, 밤이 으슥해지자, 준영과 진영은 빌라로 돌아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