브런치북 일본 졸업 03화

10. 일본군, 자위대 그리고 전쟁 1편

by 지식공장장

한국과 일본의 전쟁가능성은?
일본은 군국주의의 부활을 꿈꾸는가?



일본의 사회 운동

GHQ가 점령한 후 일본에서는 노동조합, 농민운동 등 수 많은 사회 운동이 일어났다. 전후 일본의 개혁은 이들이 이끌었고 일본이 주권을 되찾는 과정에서 연합하면서 계열화되었다. 1960년 사회운동의 주축을 이룬 것은 노동운동, 학생운동이었다. 여기서도 일본인 특유의 계열화가 등장 지도부가 지시를 내리면 뜻을 같이 하는 대중은 이에 따르는 형식의 시민운동이 진행되었다. 시민이 성숙하지 않은 상황의 시민운동은 정당, 노조의 과격파의 흐름에 따라 정치 투쟁의 흐름으로 가기 마련, 일본은 이 과정을 밟은 국가 중 하나이다.


일본의 시민운동이 한국의 그것과 차이를 보이는 점은 ‘지역기반’이라는 점이다. 한국은 독재타도라는 민주화 운동이 중심이 되어 이 민주화를 완성시키는 투쟁에 대중이 공감하는 성향이 있다. 다만 일본은 지역이 중심이 되어 본인들의 목표를 관철하는 운동이었다. 따라서 본인의 이익과 벗어나면 이상할 정도로 무관심해지는 성향이 강하다. 이런 성향은 오늘날까지 이어져서 정부의 방침에 불만을 가져도 서로 모이지 못하는 계기가 되었다.

게다가 다른 리더의 방침은 다른 리더의 책임이라는 인식이 생겨 과격한 행동을 해도 참견을 안 하는 현상을 만들었다.


이런 성향이 일부 과격파의 행동을 통제하지 못했다. 일본의 학생운동은 성격을 하나로 정의하기 힘들다. 하지만 민주주의 국가를 위한 올바른 투쟁의 뒷면에는 과격한 학생운동도 있었다. 경제발전으로 인한 부로 인해 국민들이 사회 운동으로부터 멀어지자 일부 과격 단체는 이념을 달리 하는 학생을 살해하는가 하면 비행기를 납치해서 북한으로 가는 등의 행동을 벌이고, 이런 과격한 행동에 일본 국민들은 눈을 돌린다.


여기서 한국과 일본의 차이가 생긴다. 한국의 경우 폭력의 형태의 행동이 줄어들고 권리 주장의 민주화운동이 성장, 비폭력 촛불시위라는 긍정적인 형태로 자라난 반면, 일본에서는 일련의 과격파의 행위로 인해 시위 자체가 불건전하다는 인식이 퍼져버렸다. 이것이 지역주의 사회에 종속된 시위의 형태와 더불어 좀처럼 민의가 모이지 못하는 형식이 되어버렸다.


정치가들은 이 틈을 놓치지 않았다. 민주화 운동 전체를 부정하는 교육을 진행하는 한편, 고교생 정치활동 금지령(1969) 등 민주주의를 침해하는 정책까지 진행했다. 이렇게 일본은 민의가 모이기도 성장하기도 힘든 나라가 되었다.


하지만 무엇보다 가장 강력한 통제시스템이라면 자위대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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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위대의 탄생

한국사람 한정으로 이상한 뉘앙스를 풍기는 이름의 자위대는 일본의 준군사조직이다. 다만 다른 나라의 준군사조직과는 성격이 약간 다른데 다른 국가의 준군사조직이 군사조직을 보완하는 형식이라면 일본의 자위대는 순전히 법적문제로 준군사조직이 된 사례다.


1946년 시데하라 기주로가 만든 신헌법을 GHQ가 용인함에 따라 일본의 군대가 법적으로 해산되었다. 외적이 쳐들어와도 방어할 무력이 없는 국가가 된 것이다. 하지만 군대 없는 일본은 현실적으로 불가능한 문제였다. 앞에서 말했듯 당시 일본은 사회주의 열풍이 거세게 불고 있었다. 그리고 이는 일본정부에게도 문제였지만 일본을 자본주의 국가로 만들어 동아시아에서 영향력을 유지하려는 미국에게도 문제였다.


자연히 일본의 무력을 만드는데 미국의 이해가 일치하게 되고, 일본도 이를 로비를 통해 부추겼다. 이 결과 1950년, 총리 요시다 시게루는 헌법 9조의 해석을 바꾸어 일본을 재무장시켰다. 경찰예비대가 만들어진 것이다.


이렇게 만들어진 경찰예비대, 초창기에는 전범 공직추방령에 따라 일본군 장교 출신은 배제했다. 다만 종전 당시 사관생도는 민간인이므로 간주했는데 이유인 즉 전쟁 때 팔다리가 붙어있으면 다 잡아서 전장으로 끌고 갔기 때문에 일본군 출신의 입대를 아예 막으면 사실상 일본에서 대부분의 남성은 경찰예비대에 들어가는 게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런 미봉책은 곧 한계를 보인다. 경찰 출신들은 사실상 군대형태의 조직을 지위하는데 한계를 보였고, 한국전쟁이 터지자 이런 조직으로는 홋카이도로 내려오는 소련군을 막을 방법이 없었다. 결국 미국은 방침을 바꿔, 종전 당시 위관급과 영관급, 즉 종전당시 중령까지 입대를 허용했다. 이렇게 빗장이 한 번 풀어지자 1952년에는 대령급이 특별입대를 하게 됐고 나중에는 일본군 장교 출신이 절반을 넘어가게 되었다.


한국전쟁은 일본의 경제부활 뿐만이 아니라 무력부활의 길이기도 했다.
이렇게 전범의 무기 일본군은 부활하게 되었다.


일본의 군사조직 부활은 1948년부터 차근차근 진행되었다. 그리고 미국도 이를 막을 생각은 없었다. 한국전쟁에서 군경력자가 뛰어난 성과를 보이자 맥아더의 후임인 리지웨이는 6차에 걸쳐 63,805명의 추방령을 해제한다. 한국전쟁 도중에는 해상경비대(훗날의 해상자위대)이 아예 한국에 파병되기까지 했다.


한국전쟁이라는 긴박한 상황, 사회주의자를 제압할 무력이라는 상황 때문에 맥아더의 꿈은 물거품이 되었다. 그나마 경찰예비대(육군)는 여러 차례 단계적으로 풀어주기라도 했지 해상경비대는 대놓고 당시 일본 해군이 그대로 부활했다. 그들은 미해군에 소속, 미해군의 함정을 빌어 미해군의 지휘를 받아가며 대한민국 영해에서 뻔뻔하게 활동하기 시작했다.


이미 자위대는 태어날 때부터 군대의 역할을 수행할 수 있는 무력이었다.

그리고 샌프란시스코 조약이후 공식적으로 주권을 찾자 경제단체인 게이단렌(경단련)과 구 일본군 장성들은 힘을 합쳐 재군비계획안을 마련한다. 1952년에 경찰예비대가 보안대로 바뀌고 1954년에는 보안대는 육상자위대로, 경비대는 해상자위대로 바뀌었다. 이렇게 자위대가 탄생했다.



자위대의 본질과 한계

한 나라의 주인은 누구일까? 군주제 국가의 군주? 민주주의 국가의 유권자? 자본주의 사회의 자본가?


나는 군이라는 무력의 실질적 통수권자라고 본다.


군대는 국민의 주권, 국익, 안보를 위해 공인된 무력 사용이 허가된 조직이다. 즉 국가안보를 위해 합법적으로 힘을 구사할 수 있는 자격을 부여받은 조직이라 할 수 있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이 힘의 범위가 넓다는 것이다. 군대는 국가의 안보를 지키기 위해 단순히 물리력만 구사하는 것이 아니다. 이 물리력을 구사하기 위해 군대는 물론 이를 지원하는 조직과 자원을 관리할 수 있는 권한도 가진다는 것이다. 즉 군수통수권자는 무력과 돈을 다 휘어잡게 된다.


이렇게 만들어진 힘은 여러가지 형태로 활용된다. 우선 국가의 폭동, 범죄, 내란을 억제하거나 진압할 수 있는 힘이다. 꼭 진압할 필요가 없다. 인적 재난이 아닌 천재지변에서도 마찬가지다. 각종 자연재해 복구, 대민지원 등에서도 마찬가지다.


이게 국제사회로 눈을 돌려보면 더 커진다. 단적인 예가 한반도에서 일어난 두 사건이다. 하나는 청일전쟁이다. 청나라와 일본은 텐진조약을 통해 장래 조선에 출병할 경우 상호 통지(行文知照)할 것을 약속한다. 이 조약이 맺어진 이유는 양국의 힘이 비슷해서 충돌하면 곱게 끝나지 않기 때문이다. 하지만 동학농민운동을 진압하지 못한 고종은 외세인 청나라 군대를 끌어들여 이를 진압하고, 이렇게 빌미를 잡은 일본은 텐진조약에 의거 조선에 출병한다. 상호균형유지채서 침략을 막아도 시원찮을 판에 통치자인 고종 스스로 균형을 깼고, 이것이 청일전쟁을 거쳐 일본의 영향력이 강해지는 계기가 된다.


또 하나는 한국전쟁이다. 미군이 한반도에서 철수하자, 남한의 군사력은 러시아의 지원을 그대로 받는 북한에 비해 미미한 수준이 되어버린다. 이렇게 억지력이 사라진 상황은 북한이 남침을 하는 배경이 되었다. 이 두 사례는 군대가 가진 힘인 ‘억지력’의 중요성을 말한다.


즉 강한 군대는 아무것도 안 해도 그 자체가 강력한 힘이 된다.

현재 자위대는 미국, 중국 다음에 있는 강력한 무장집단이다. 문제는 이런 강력한 힘과는 여러모로 인연이 없다는 것이다. 우선 한국사람들이 가장 오해하는 것이 자위대는 극우집단이라는 것이다. 일본의 자위대 통수권자인 아베가 극우조직인 일본의회의 일원이고, 행보가 극우니 그렇게 생각할 만도 하다. 하지만 의외로 자위대는 극우적 성향을 전혀 보이지 않고 있다. 거리마저 두고 있다.


이유인 즉, 살기 위해서다. 극우의 주장 중 하나는 ‘미국의 지배를 받던 시절을 지우자’는 것이다. 정치가라면 모를까 군대가 이를 따라한다면 세계 최강 미국은 이를 위협으로 받아들이고 바로 행동에 나설 것이다.


또한 자체적인 제약도 강하다. 현재 자위대는 군대의 힘을 가졌으면서도 본질과는 벗어난 조직이다. 우선 군이 아니라 경찰조직이다. 게다가 설립하게 된 근거가 경찰조직이 감당할 수 없는 상황에 투입하기 위한 무력이다. 즉 강력상황을 진압하기 위한 경찰이라 보는게 적합하다. 이런 상황 때문에 다른 나라 군대가 할 수 있는 일을 못한다. 한 예로 1976년 소련 파일럿 빅토르 벨렌코가 일본에 망명한 사건이 있었다. 보통 군대를 가진 나라라면 당연히 군이 이 상황을 통제하기 마련, 하지만 일본은 경찰이 출동했고 자위대는 경찰에 막혀 현장에 가지도 못했다. 사실상 세계 최강 수준의 군대지만 법과 제도 때문에 군대의 힘을 발휘하지 못하는 상황이 주변국들에게 억지력이 되는게 아니라 주변국의 억지력이 되는 상황이다.


이런 상황은 일본의 콤플렉스를 자극한다. 가장 강력한 억지력이 날개가 잘린 채 있기 때문에, 국제 사회에서 일본의 목소리, 입지가 약해지는 것이다. 1991년 걸프전이 터지면서 600억이 들어가게 되자 부담이 된 미국은 돈을 대신 지불할 국가를 찾았다. 이때 430억 달러를 사우디아라비아가 지불하고 일본이 130억 달러를 지불한다. 무려 1조 5500억엔의 거금인 것이다. 보통 국가가 이쯤 투자하면 승전의 주역이 되어 국제사회에서 입지가 커지는 것이 정상이다.


하지만 일본은 비난의 대상이 된다. 다국적군에 다들 파견하는 군대를 혼자 파견하지 않았다는 것 때문이다. 실제로 쿠웨이트는 해방 이후, 워싱턴 포스트에 쿠웨이트 해방을 위해 힘써준 국가에 감사광고를 내보냈는데 여기서 일본은 빠졌다. 돈은 돈 대로 쓰고 영향력은 고사하고 비난만 얻은 셈이다.


6003_4166_5645.jpg 별로 일본 정부 안 좋아하지만 이건 조금 불쌍하긴 하다.


자위대에서 일본군으로

우선 이해해 둬야 할 것은 정권을 잡을 때 아베 신조는 자민당의 주류가 아니라는 것이다. 하지만 주류든 비주류든 전쟁과 군대형태에 관한 입장이 다를 뿐 자위대를 군대로 만드는 것, 국가의 힘을 원래 상태로 만드는 것에는 동의한다. 미국도 이에는 동의한 상황이니 자위대가 군대가 되는 일은 착착 진행된다고 보는 게 좋다.


이는 주변국에겐 큰 위협이 될 수밖에 없다. 특히 최대 피해자인 한국에겐.

원래 국방력을 되찾기 위한 시도는 1948년부터 이뤄졌다. 그리고 미국의 매카시즘, 동남아 영향력 확보에 맞춰 차근차근히 진행되었다. 하지만 그 속도가 더디었던 것은 일본국민 대다수가 무능한 군부가 부채질한 광기로 가득찼던 전쟁의 기억에 진저리를 치고 있었기 때문이다.


이에 박차를 가한 것은 2012년에 집권한 자민당이었다. 정확히 말하면 일본회의라 봐도 좋다. 아베 신조는 자민당이 재집권하면 보통의 군에 가깝도록 법제를 고치고 명칭도 '국방군'으로 바꾸겠다는 공약을 내세웠었다. 그리고 권력을 잡자 마자 자위대의 군대화를 추진하고 있다. 바로 2013년, 선제 공격용 무기 보유를 추진했고 2015년에는 대륙간 탄도미사일 개발에 착수, 2022년에 배치완료를 목표로 달리고 있다.


하지만 결코 쉬운 길은 아니다. 우선 가장 강력한 걸림돌인 헌법 9조 개정 자체가 힘들다. 참의원 선거에서 후쿠시마 사태를 계기로 민주당을 밀어내고 자민당이 압승했음에도 개헌이 가능한 2/3선을 확보하는 것은 어려웠다. 2019년 7월 참의원 선거에선 오히려 의석이 떨어지기까지 했다. 2020년 중의원 선거도 비슷할 테니 이래서야 헌법개정안을 국민투표에 부치는 것 자체가 어렵다.


게다가 국민투표에서 지지를 얻는 것 자체도 힘들다. 자민당의 지지가 하늘을 찌르던 2013년에도 여론이 압도적으로 반대하는 바람에 자위대 국방군 전환은 물 건너가고 오히려 주일미군 유치문제로 화제가 바뀌어 버렸다. 이런 기조는 지금까지 이어져 2019년 10월 13일 도쿄신문에는 56.3%의 국민이 헌법9조를 개정할 필요가 없다 = 국방군 전환은 필요 없다고 답했다. 신문의 성향이 좌파에 가까우니 우파신문에서는 다른 결론이 나올 수도 있겠지만 현재 이 책 작업을 하는 도중에는 헌법 개정안이 통과되어 국민투표가 이뤄질 가능성도, 국민과반수가 헌법개정에 찬성할 가능성도 없다.


사진 8-2.jpg 해상자위대의 영문표기는 Japan Maritime Self-Defense Force(JMSDF), 하지만 그들은 초계기 도발사건때 본인을 일본해군(JAPAN NAVY)이라 칭한다.


<다음편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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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서: <조선 리더십 경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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