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아컴퍼니 시즌 3를 앞둔 회고
한 회의실에 7명의 사람이 모여 종이 넘기는 소리와 도장 찍는 소리로 분주한 시간을 지나 M&A 인수합병을 마쳤다. 2017년부터 20대를 함께한 우리 회사가 새로 시작하는 순간이다. 이제 새로운 환경에서 다시 한번 열정을 불태우기에 앞서 어딘가 헛헛한 마음을 달래고자 오랜만에 브런치를 써본다.
눈이 많이 오면 학교를 못 갔던 시골에서 자랐다. 디지털미디어디자인을 전공했고, 2018년 모아컴퍼니(주)를 공동 창업했다. 사업 초기에는 여러 업무를 배워서 해치우기 바빴으나, 지금은 국내외 생산과 영업, 해외 수출을 맡고 있다. 손에 만져지는 물성과 오리지널이 있는 제품을 참 좋아한다. 책을 좋아하고, 명예욕이 있어 언젠가 우리나라에 상징이 될 수 있는 디자인 체험형 도서관을 짓는 것이 꿈이다.
모아컴퍼니는 한국에서 드물게 디자인 전공자로만 시작한 소형 가전을 제조 및 판매하는 회사다. 모바일아일랜드 브랜드를 운영하며, 라이트하우스 무선 조명을 주된 상품으로 판매하고 있다. 디자인, 국내외 생산, 수출입, 마케팅 등 직접 운영하며, 그 과정을 맨땅에 제조 시리즈로 풀어낸 바 있다.
M&A 인수합병 후 브랜드를 새롭게 운영하는 것이 더 큰 물에서 놀아보겠단 포부와 도전으로서 시즌 3이라면, 사는 대로 생각하기 바빴던 시즌 1을 지나 생각대로 살기 시작한 시즌 2가 있었다.
시즌 1. 배움과 생존
2017년 소영 대표의 졸업 작품이 삼성전자 한 프로그램을 통해 개발 단계에 올랐고, 그즈음 일산 한 카페에서 만나 이야기를 나누고 합류하게 되었다. 2018년 공동 창업자로 법인을 설립했고, 회사 자본금을 1,500만 원으로 기분껏 표기했던 터라 카카오 비상금 대출까지 받아 내 지분만큼 자본금을 지불해야 했다. 의도치 않게 결의를 다졌다.
사업 시작부터 좋은 기회로 투자를 받아 제품 개발과 생산에만 모든 에너지와 자금을 쏟아부었다. 좋은 스승님들이 계셨던 터라 제품 기획, 개발 자금을 운용하는 것 그리고 수출을 깊게 배웠지만, 여전히 디자인 말고 모르는 것이 너무 많았다. 첫 제품인 그라운드 무선 충전기가 크라우드 펀딩에서 좋은 성과를 달성했고, 발주, 조립/포장, 검수, 배송, 고객센터 운영 등 디자인 이후의 현실적인 과정을 속성으로 배워서 해결했다.
계속 배우고 적용하고 우리 스타일로 소화하는 경험, 일단 해보는 도전적 경험주의 성향 그리고 결국 완벽은 없고, 문제가 생기는 것은 당연하다는 평정심이 이때부터 우리의 DNA였나 보다.
이후 라이트하우스 무선 조명을 출시하고, 그라운드 무선 충전기 2세대 모델을 개발하고, 국내외 전시에 참가하고, 서울역 위워크(WeWork)로 이사를 했고, 맨땅에 제조 1편을 출간했다. 모든 게 잘 돼 가고 있는 것처럼 보였으나 2020년 마포 IBK 기업은행의 창공 프로그램에서 수석 회계사 님과 관련 담당자분들께 돈에 대해 배우기 시작하며, 이제야 뭔가 단단히 잘못되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돈이 없었다.
사업은 이윤을 추구하는 행위인데, 돈을 벌 것 같은 느낌적 행위만 있었고, 정작 돈을 마주 보고 있는 시간은 없었다. 어른이 되면, 삼겹살 정도는 언제든 사 먹을 수 있겠다는 생각과 달리 소주도 삼겹살도 사 먹기 힘든 게 현실이구나 하는 생각에 밥 먹다 펑펑 울기도 했다. 그즈음 공동 창업자 한 명이 지분을 정리해 나갔고, 함께 일하던 동료도 떠나갔다.
그 해 겨울, 대표이자 지금의 아내인 소영과 제주로 떠났다. '사업을 계속할 것인가?' 우리한테 남은 질문은 너무나 명확했지만, 선뜻 서로에게 묻지 못하고, 괜찮은 척 시간을 보냈다. 그렇게 눈 내리는 새해를 맞이하며, 사업을 끝까지 하기로 결정했다. 소영은 미대 입시를 하던 시절에도 종이가 닳도록 그림을 끝까지 그려내는 사람이었고, 아직 우리가 만들 수 있는 회사의 끝을 보지 못했다며 가보자 했다. 나는 소영을 믿었고, 결국 그는 다시 한번 끝까지 그려낸 사람이 되었다.
그렇게 제주에서 나는 서른이 되었고, 죽으라는 법은 없었는지 여태 회사를 운영하며 가장 큰 프로젝트를 따내며 1년 정도 회사가 생존할 수 있는 큰돈을 벌었고, 일본계 마케팅 회사를 막 퇴사한 오랜 친구 무진을 브랜드 디자이너로 영입하며 우리는 시즌 2를 맞이했다.
시즌 2. 성장과 도전
이 시기는 잘 정돈된 선형적 이야기로 기억에 남아있지 않다. 꽤 안정적이었나 싶다가도 여전히 큰 문제들이 생겼고, 좀 되는데 싶었으나 막 잘되지도 않았던 답답한 순간들이 있었다. 그럼에도 기억에 남은 선명한 어떤 이야기들은 고인 물에 돌을 던져 흐르게 만들었던, 자기 성장의 순간들이었다.
돈이 부족한 상황은 여전했지만, 우리는 사업을 끝까지 해보자 했고, 새로운 친구는 그럼에도 함께 하겠다고 했다. 돈, 명예 그리고 건강의 삼각형은 이때 가장 많은 이야기를 나눈 가치관 기준으로써 돈은 현실감이자 연료이고, 명예는 그것을 태워 얻게 될 상징이자 개인의 성취 그리고 건강은 워라밸이었다. 돈과 명예 중 개인에게 중요한 것이 무엇인가? 일과 삶의 밸런스를 어떻게 다루는가? 삼각형의 어디에 각자의 가치관이 있는가? 우리는 비슷한 가치관을 가졌고, 여전히 프로젝트를 돈과 명예 가치로 점검한다. 돈을 벌든 멋있든 확실히 해야지, 돈을 벌 것 같은 느낌적 행위는 이제 없어야 했다.
조금 조용하다 싶을 무렵, 그 해 크리스마스, 라이트하우스 대량 불량 사고가 났다. 이제 우리가 완전히 독립해야 할 때가 되었음을 깨달았다. 그동안 한 선배님의 도움으로 중국에서 생산했으나 과정을 점검하는 것에 안일했던 것이 문제였다. 몇 개월의 시간과 돈을 버렸고, 내 손으로 직접 해결할 수 없는 문제들에 너무 답답했다. 이후 그간의 배움으로 기획, 디자인 그리고 생산을 온전히 스스로 할 수 있도록 독립해 USB 허브 제품을 출시했다. 출시 전 기업 납품 계약으로 좋은 시작을 했지만, 여전히 파는 방법을 몰라 지금까지 재고가 있는 아픈 손가락이 되었다.
제품을 스스로 팔 수 있는 방법이 필요했다. 뭘 모르고 배워야 하는지 조차 알 수 없이 어떤 공부가 필요하다는 생각만 들었다.
오프라인 쇼룸을 열어야 하나? 외부에 맡긴 물류 보관, 배송 시스템을 오프라인 공간과 통합 운영하면, 적은 돈으로 직접 판매 채널을 확보할 수 있겠구나 싶었고, 때마침 상암에서 사무실을 얻은 선배가 우리를 초대해 준 자리에 조언을 구하러 가서 조금 혼났다. 지금 거기에 돈을 쓸 때가 아니라며, 마케팅 선생님을 소개해줬고, 같이 공부하기 시작했다. 사업 5년 차가 되어서야 비용을 집행하는 마케팅을 배웠다. 여태 필요했던 것이 바로 이거였다. 우리는 모두 달려들어 주변 사람들 대부분이 우리 광고를 볼 때까지 매일 매출을 들여다보며 광고를 기획하고, 집행하고, 수정하기를 반복했다.
측정하면 개선할 수 있다고 했던가. 그동안 우리는 마케팅을 감에 의존했지만, 이제는 데이터를 보기 시작했다. 어떤 이미지가 클릭률이 높은지, 어떤 제품 설명이 구매 전환으로 이어지는지, 어떤 시간대에 광고 효율이 좋은지 분석했다. 이 모든 데이터를 엑셀에 기록하고 분석하며 우리의 마케팅은 점점 정교해졌다. 드디어 돈을 벌기 시작했다. 7억, 10억 꾸준히 연 매출이 성장했다. 하지만, 욕심만큼 성장하지 못하는 현실이 조금 답답해졌다. 그 무렵, 한 대표님께 제품 협업 제안을 받았다. 그리고 이 자리가 발전하여 인수합병으로 이어지게 되었다. 시즌 2가 마무리된 것이다.
(1) 인수합병 결정, 시간 가치관 정렬
우리는 이미 돈과 명예에 대한 가치관 정렬이 되어있었고, 우리가 100억까지 갈 수 있는 팀이라 믿고 있었다. 그럼에도 인수합병을 결정하기까지 몇 달 동안, 하루에도 몇 번의 찬반 롤러코스터를 탄 것은 시간에 대한 관점(가치관)의 차이였다. 100억을 언제 이룰 수 있을 것인가? 지금이 아니면 더 큰 조직에서 배울 기회가 언제 또 올까? 한국 디자인씬에 기여하고 싶다는 순수성을 언제 이룰 수 있을까? 많이 고민했고, 우리는 더 젊을 때, 더 큰 물에서 놀아보기로 결정했다. 아, 참고로 부자가 된 것은 아니다.
(2) 맨땅에 제조, 갑분책?
내 최애다. 책을 쓰면서 생각한 것은 딱 2가지다. 츠타야에서 제품과 콘텐츠(도서)가 함께 판매되어 세일즈 시너지를 이루는 모습을 보며, 우리도 제품에 이야기가 있길 바랐고, 우리가 만나기 어려운 사람들을 책을 통해 만날 수 있기를 바랐다. 인수합병의 발단인 만남도 책을 통한 것이었으니 의도한 바가 통한 셈이다. 우리는 SNS 콘텐츠에 능하지 못했다만, 우리가 잘할 수 있는 콘텐츠인 책을 선택하고, 이를 통해 돈도 사람도 얻었던 경험은 꽤 뿌듯한 기억으로 오래갈 것 같다. 누군가 꼭 책을 쓰길 바라는 마음보다는 SNS 말고 스스로 잘할 수 있는 콘텐츠 마케팅을 고려해 보면 좋겠다는 생각이다.
(3) 선명한 조언
구린 40대가 되지 않으려면 지금 더 해야 한다. 꾸준히 제조업 기반에 투자하며 회사를 키워온 한 40대 선배님의 조언이다. 위 인수합병 결정에서 시간에 대한 가치관 정렬을 하는데 기준이 되어준 조언으로, 이번 인수합병을 진행하고 몇 년을 더 일해도 아직 30대니까 도전해 보자, 더 열심히 해보자는 결심을 하게 되었다.
우리는 앞으로 (주)파인우드리빙에 합류하여 한국을 대표하는 조명 브랜드로서 다음 스텝으로 나아가고, 7년간의 여정에서 배운 디자인 감각, 제품 개발 노하우, 그리고 실패를 통해 얻은 지혜를 더 큰 무대에서 펼쳐보려 한다. 처음 창업했을 때의 그 순수한 열정과 도전정신을 잃지 않으면서도, 이제는 더 체계적이고 성숙한 시각으로 비즈니스를 바라볼 수 있게 되길, 앞으로의 다음 시즌이 어딘가의 디자이너, 창업가에게 레퍼런스이자 영감이 되길 바라본다.
이 길을 함께 해준 가장 오래된 파트너인 대표 소영, 가장 어려운 시기에 합류해 함께 빛을 보게 된 무진, 우리 제품을 우리보다 더 많이 가지고 있는 든든한 VIP 다은과 모모 그리고 인수합병 선배로서 경험과 조언을 아낌없이 베풀어준 수지에게 감사를 전합니다. 또한, 마지막 결정의 순간까지도 애정 어린 조언을 해주신 많은 선배님들과 사업의 과정을 오랫동안 지켜봐 주신 여러 선배님들께도 글로 담기 어려운 감사의 마음을, 인사를 전합니다.
끝으로 하고 싶은 대로 살아라, 30대까지는 책임감에서 자유롭게 살아보라고 응원해 주신, 부족함 없이 저를 큰 사람으로 만들어주신 아버지, 어머니 그리고 7년의 시간 속에서 미숙했을 어떤 순간들에 제게 배움을 주셨던 모든 분들께 진심으로 감사 인사를 전합니다. 정말 감사했습니다. 그리고 보내주신 마음을 잊지 않고, 또 나누겠습니다. 총총.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