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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소우주 Mar 03. 2019

1981년 짧은 그해 여름, 빅토르 최

<Leto>를 본 후 알게 된 것들

2018년 빅토르 최를 연기한 유태오

“시인은 스물하나에 죽고, 혁명가와 로큰롤 가수는 스물넷에 죽는다.”

하루키의 말은 열아홉의 나를 들뜨게 만들었고 다시 스물아홉의 나를 좌절하게 만들었다. 그저 살아남기 위해 하루를 살고 있구나. 손가락으로 태어난 해부터 지금까지 살아온 나이를 헤아리며 나보다 훨씬 어린 나이에 많은 것을 이루고 세상을 떠난 빛나는 사람들을 기억한다.


1962년 고려인 2세 아버지와 우크라이나 출신 러시아인 어머니 사이에서 빅토르 최(Viktor Tsoi)가 태어났다. ‘최(Tsoi / Choi)’라는 우리에게 익숙한 성씨는 나름의 사정으로 고국을 떠나 커다랗고 추운 땅에서 뿌리 없는 이민자의 후손으로 살았던 그의 혼란한 정체성을 조금이나마 짐작하게 한다.

동독과 서독의 장막이 무너지던 해 태어난 밀레니얼은 짐작하기조차 어려운 소비에트 유니온 시절의 러시아는 클래식 발레와 락 공연을 동일한 포즈로, 가만히 앉아서 고개만 조금씩 끄덕이며 음악을 들어야 하는 곳이었다. ‘자본주의의 단물’인 록 음악은 새로운 음악적 다양성을 보장해주기 위해서 들여오지만 그 음악으로 인해 관람객이 평정심을 잃고 지나치게 열광하거나 (찬양 고무) 공연장의 열기에 흥분하는 것 (사회적 일탈)은 사회주의 국가의 안정적인 체제와 엄격한 규범을 위협하는 반동분자적 위험 행동으로 간주되었다.


청년 빅토르 최는 원래 목수가 되려고 했다. 손을 써서 무언가 아름다운 것을 만드는 사람이었던 그는 틈틈이 작곡을 했고, 결국 나무 대신 눈에 보이지 않는 아름다운 것을 만들기로 했다. 자신이 놓인 나라의 답답한 상황과 희망 없는 젊은 세대의 좌절한 처지를 담백하게 은유하는 시적인 가사가 돋보이는 노래를. 그가 친구들과 함께 연주하고 부르던 음악은 당대 소련의 록 음악 씬을 이끌던 뮤지션 주파크(Zoo park)와 아쿠아리움(Aquarium)의 눈에 곧 띄었고, 빅토르 최의 밴드는 공식적으로 데뷔하게 된다. 영화 <레토>는 빅토르 최가 주파크의 리더 마이크를 찾고 그들이 특별한 우정을 쌓아가는 1981년도의 이야기를 다룬다. 실화를 바탕으로 한 영화이기 때문에 등장인물 중 누군가의 또 다른 자아거나 해설자 역할을 한 ‘펑크’ 외에는 실제 빅토르 최와 함께 시간을 보냈던 사람들이다.


가난하고 혼란스럽고 시끄러우면서 또 숨죽이고 살아야 했던 1980년대 레닌그라드의 젊은 락 뮤지션들. 소비에트 유니온 시절 락스타의 월급과 목수의 월급은 크게 다르지 않았다. 유라시아 대륙을 뒤흔드는 록스타로 성공한 이후에도 음반에 대한 저작권을 보장받을 수 없었다. 그는 계속해서 경제적인 어려움을 겪었다. ‘소련의 아이돌’이었던 그가 세상을 떠난 방식은 더욱 충격적이다. 1990년 28세의 나이로 라트비아에서 차를 타고 낚시 여행을 가다가 버스와 충돌해 즉사했다. 교통사고 때문이었다. 하지만 그의 죽음을 둘러싸고 수많은 ‘설’이 제기되었고 충격을 받은 팬들 5명이 그를 따라 자살을 선택하면서 사회적 물의를 불러일으키기도 했다. 갑작스럽고 명확하게 설명되지 않는 의심스러운 죽음은 그를 오늘날까지 많은 사람들의 사랑과 존경을 이끄는 시대적인 아이콘으로 만들었다. 아직도 많은 러시아 사람들은 빅토르 초이를 좋아하고 그리워한다. 모스크바에 설치된 ‘빅토르 최의 벽’을 지날 때는 꺼지지 않은 담배를 내려놓는 것이 전통이다.

1980년대를 살았던 실제 빅토르 최

주연 배우를 맡았던 ‘유태오’ 역시 개봉 이후 큰 주목을 모았다. 독일 이민자 부모 아래에서 태어나서 운동을 했다가 배우로 전향 후 한국으로 귀화한 특이한 이력의 소유자로 사실 그동안 무명에 가까운 배우였다. 러시아를 한 마디도 못하는 채로 여전히 온 국민의 관심 대상인 빅토르 최를 연기하게 되면서 부담과 우려를 동시에 짊어질 수밖에 없었지만 정말 안정적이고 사랑스러운 주인공 역할을 보여주었다. 중요한 등장인물로 나오는 마이크의 아내 나타샤는 여전히 생존해 있는 몇 안 되는 인물 중 하나인데, 그녀가 직접 촬영 현장을 찾아 빅토르 최를 연기한 배우 유태오에게 “빅토르의 소울을 가졌다”고 말했다. 실제 37세라는 적지 않은 나이를 가지고 있지만 화면 속에 그는 불안과 반짝반짝 빛나는 재능을 동시에 갖춘 스무 살 라이징 스타 그 자체였다.


칸 영화제에 초정된 이 영화는 제작 도중 정부의 미움을 받고 있는 감독이 자택 구금을 당하면서 촬영이 중단되었으나 동료 연출가 및 스태프들의 노력으로 남은 영화를 겨우 완성시킬 수 있었다고 한다. 빅토르가 세상을 떠난 지 20여 년이 흘렀지만 그가 염원했던 자유와 사랑이 가득한 세계는 아직 요원한 듯하다.

포스터 넘 이쁘다...

p.s.

*영화보고 한참 반복해서 보았던 mv

KINO - LETO

https://youtu.be/Xk7v8Kp_6n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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