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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을은 고양이로 이어진다.

by WonderPaul


여름 끝 무렵, 동생이 혼자 저녁 산책을 갔다가 귀여운 소식을 물고 왔다. 산책로에 중간쯤, 나이 지긋한 아저씨가 가만히 서서 주위를 두리번거리고 있더란다. 의자도 없는 길 중간에 멀뚱히 서 있는 모양새가 의아했는데 아저씨와 거리가 가까워질 때쯤, 멀리에서 헐레벌떡 고양이 한 마리가 뛰어오더란다. 그러자 아저씨가 안도하듯 혼내듯 말한다.


"왜 이제 와, 한참 기다렸잖아."


그리고 주머니에서 사료와 츄르를 꺼낸다.


동생이 물고 온 귀여운 이야기를 이후로 종종 떠올린다. '고양이와 암묵적인 약속을 지키는 사람이 우리 동네에 살고 있구나.' 하는 생각할 수 있을 하는 건 기분 좋은 일이다.


나도 산책을 나서기 전엔 츄르 2개를 가방에 챙긴다. 산책길엔 구역마다 고양이들이 자리 잡고 있고, 그 앞엔 쪼그리고 앉은 사람들이 있다. 익숙하게 사람들의 재롱을 구경하는 고양이와 웅크려 앉아 먹이를 주거나 풀을 잡고 놀아주느라 신이 난 사람들. 마을 풍경이 귀엽다.


엄마가 산책하는 공원에도 사랑받는 고양이가 있는데 그중 한 마리가 엄마를 제대로 찍었다. 그 깜냥이 덕분에 엄마는 하루도 거르지 않고 저녁 산책을 하게 되었다. 우리 집에선 츄르를 대량으로 주문했다. 깜냥이를 만나러 오는 또 다른 할머니가 있다. 할머니는 사료를, 엄마는 츄르를 챙긴다. 모두가 고양이를 예뻐하진 않는다. 공원에는 고양이 밥그릇을 걷어차는 못된 남자도 있다. 엄마는 집에 와서 그 남자가 고양이를 해코지할까봐 걱정된다는 말을 자주 했다.


엄마가 고양이 덕분에 매일 산책을 하면서 건강을 챙기게 되었으니 내심 고양이에게 고마운 마음이었다. 늦여름엔 깜냥이가 새끼를 세 마리 낳았다. 공원 옆 주유소 창고에 가서 새끼를 낳았는데 다행히 마음 좋은 주유소 사장님이 고양이 가족 누울 자리도 마련해주고 사료도 넣어주었는데, 엄마가 된 깜냥이는 경계가 워낙 심해서 아저씨 팔을 여러 번 긁은 모양이다. 주유소 사장님이 저녁마다 어미 고양이가 밖으로 나가는 걸 이상히 여기고 따라 나와 누굴 만나는지 보다가 엄마와 할머니를 목격한 것이다.


그리고는 같이 창고에 가서 깜냥이가 사료를 먹도록 도와주겠냐고 부탁했다. 아저씨가 고양이를 잘 돌보는 마음은 알겠지만, 엄마 역시 경계하는 마음이 있어서 망설이는데 할머니가 선뜻 앞장서셨다고 했다. 창고에 가보니 엄마랑 할머니와 함께라 안심했는지 고양이는 아저씨가 담아둔 사료를 다 비웠다.


그리고 아기 고양이들이 태어난 지 한 달이 채 되기 전에 아저씨가 아무리 말려도 고집을 부리더니 새끼 고양이들을 모두 물어다 공원에 데려다 놓았다. 덕분에 엄마는 귀여운 고양이들이 자라는 모습을 맘 놓고 보게 되었다. 매일 같은 시간에 엄마와 할머니는 새로운 고양이 식구들과 만났다.


그러다 얼마 전, 엄마가 할머니가 며칠째 안 나온다고 걱정하기 시작했다. 나이가 있으니 어느날 큰 병이라도 얻은 건 아닌지 걱정된다고 했다. 할머니를 못 만난 지 일주일쯤 되자 아무래도 큰 일이 났나보다 하던 차에 마침내 할머니가 다시 나오셨다. 산책에서 돌아오면서 엄마는 현관문을 열고 신발을 다 벗기도 전에 할머니 만났어! 라고 말했다. 할머니는 그간 바둑을 새로 배우시는 재미에 빠져 산책을 게을리한 것이었다. 엄마는 다행이란 말을 여러 번 했다. 마을에서 서로의 안위를 걱정하는 느슨한 연결이 생긴다는 건 조금 안심되는 일이었다.


그리고 그사이 깜냥이에게 사건이 생겼다. 아기 고양이 세 마리가 모두 사라진 것이다. 엄마는 아무래도 사람이 데려간 것이 아닌가 했다. 혹시 밥그릇 걷어차던 아저씨 짓은 아닌지 의심도 했다. 깜냥이는 매일 공원에서 엄마를 만난 후에도 아기 고양이를 찾으러 다닌다고 했다. 한동안 엄마는 ‘한 마리는 남겨두지.’하고 말했지만 이제엄마도 할머니도, 그 이야기를 듣는 나도 아기 고양이를 다시 찾을 수 없다고 생각했한다. 하지만 깜냥이는 한 달이 다 되도록 포기하지 않고 있다.


깜냥이가 새끼들을 찾아다니는 동안 엄마는 산책 친구를 한 명 더 사귀었다. 얼마 전 비가 많이 오던 날엔 산책 친구들과 카페에서 한 시간 넘게 수다를 떨고 돌아왔다. 80대 할머니, 60대 우리 엄마, 30대 아가씨. 산책 친구들의 연결은 낯설고 신기하고 귀엽다. 나는 닮지 않은 엄마의 친화력은 항상 놀랍다. 60이 넘어서도 여전히 새로운 사람들을 사귀는 마음이 엄마를 조금 천천히 늙게 하는 것 같기도 하다.


결국 이 모든 연결은 고양이로부터 시작되었다. 사람들은 고양이를 보살피고 고양이는 선물로 사람 사이를 연결해 주었다. 부디 아기 고양이가 어디에서든 누구의 보살핌을 받으며 자라고 있기를 바란다. 거기에서 서로 연결되고 연결해 주고 있기를 바란다. 고양이 밥그릇을 걷어차는 아저씨는 산책하지 않았으면 좋겠다. 아무데나, 아니지 약한 존재에게 숨 쉬듯 화를 뱉는 사람들은 고양이와 사람들 사이에서 어떤 자리도 차지하지 않았으면 좋겠다.


오늘도 고양이와 약속한 시간에 그 자리를 지키고 있을 아저씨, 사료를 챙기는 할머니, 츄르를 챙기는 엄마, 물을 챙기는 아가씨. 고양이 가족의 출산을 도운 주유소 아저씨. 상처받고 괴로울 일 많은 하루를 마친 사람들의 평화로운 밤 산책이 오래 계속되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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