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한 혐오의 말들

이태원 참사를 추모하며.

by 게으르니스트


이태원 참사가 발생한지 일주일이 지났다.


언뜻 잠에서 깨어 어렴풋한 정신으로 습관처럼 포털 앱을 켰던 그 날 새벽 세 시. 뉴스 속보는 서울의 어느 좁은 길가에서 일어난 소식을 전하고 있었다. 압사 사고였다. 사상자의 숫자는 믿을 수 없이 컸고, 해가 뜨기 전의 그 짧은 시간 동안 쉼 없이 늘어만 갔다. 그 숫자의 크기와 늘어남의 속도에는 현실감이 결여되어 있었다. 다른 나라의 이야기가 아닐까 하는 생각마저 들었다. 뉴스에서 읽은 사실과 머릿속에 떠오르는 생각 사이의 넓은 간극이 당황스러웠다. 한참 동안 뉴스 사이를 헤메고 또 헤메이다 결국 그날 새벽 다시 잠들지 못했다.


그곳은 세계에서도 손꼽히는 거대하고 화려한 대도시 서울의 한복판이었다. 사람들은 곳곳에 뻗친 도시의 네트워크와 공공 서비스에 '거의 완벽히 연결'되어 별 탈 없이 살아가는 것을 의심하지 않았으리라. 하지만 그날 밤 서울의 어느 모퉁이에 모였던 어떤 이들은 단절 속에 목숨을 잃었다. 앞에 선 사람과 뒤에 선 사람이 단절되어 있었고, 위험을 감지한 이들이 낸 다급한 우려가 공공 서비스와 또 다시 단절되어 있었다.


사고의 형태에 첨단성이나 발전의 척도를 붙이는 것은 어불성설임을 안다. 하지만 기자들이 사용한 '압사'라는 단어는 문명적이지 않았다. 21세기의 서울과는 어울릴 리가 없는 단어라고 생각했다. '첨단의 초대형 메트로폴리스'에서는 '일어날 리 없을' 사건이 그 많은 사람의 생명을 그렇게 일순에 앗아갈 수는 없는 것이었다. 지금까지의 이 사회의 묵시적인 믿음 속에서는.


하지만 그날 밤 끊어진 연결과 깨어진 믿음 속에는 그토록 현실적이지 않은 죽음이 실존하고 있었다. 가슴 어느 구석이 끝없이 메였다. 하지만 그것은 슬픔이라는 감정까지 가 닿기 전, '압사'라는 단어의 야만성에 먼저 좌절한 탓이다. 감히 유족의 마음까지는 헤아릴 자신은 없었다. 그저 사건의 비현실성에 그렇게 짓눌려 있을 따름이었다. 온 사위가 갑갑한 밤이었다.




그 후로 사고와 관련한 뉴스가 쉴 새 없이 쏟아져 나왔다. 몇 일 동안 한참 뉴스를 훑다가 어느 하나에 눈이 멈췄다. 과거 수차례의 실언 탓에 얼마 전 정부의 모 직책에 임명된 지 3일만에 사임한 인물 (A씨라고 칭하자) 이 이번 참사와 관련하여 SNS에 글을 올린 것을 두고 논란이 일고 있다는 뉴스였다.


글을 읽었다. 글의 요지는 희생자가 이태원에 간 것을 희생자의 부모들도 막지 못해놓고 왜 애먼 나라탓을 하냐는 것이었다. (일단은 글의 형식이므로 글이라 칭한다. 글이 갖춰야 할 자격을 논하기엔 이것을 글이라 하기 어렵다.) 국가가 책임져야 할 게 있다면 그 반대로 개인도 스스로의 선택에 대해 책임을 져야 하니, 참사의 희생은 결국 개인의 책임이라는 글이었다.


끝까지 채 읽지 못하였는데도 눈을 의심할 수 밖에 없었다. 어떤 사고의 흐름을 거쳐야 그런 이야기를 쏟아낼 수 있는 것일까. 그의 인식 속 21세기 서울은 '압사 사고'라는 야만적 참사가 빈번히 발생하는 수라도의 세계였을까. 그래서 모든 서울 시민은 도로에 한 발자국을 나서기 전 얼마만큼의 죽음의 리스크를 감내해야 하는지 계산해야 한다는 것일까. 이 사고의 어떤 희생자도, 그리고 이 나라의 다른 모든 이들도, 세계적으로 앞선 이 번화한 도시의 길가에서 그런 식의 비극적 참사를 맞이할 것이라고는 예상하지 않았을 터다. 그런데도 어째서 이 사고의 희생자가 스스로의 죽음에 책임을 져야 한다는 것일까. 그의 논리는 천박했다. 합리성의 망토를 두르려 했지만 결국 아집의 가시만 돋아 있었다.


천만보를 양보하여 A씨의 현실인식을 그대로 인정한다고 하여도 그의 글은 인간성을 상실하고 있었다. 그의 글은 결국 유족들 앞에서 으스대는 얼굴로 '그이가 죽은 것은 그이 탓이오'라며 희생자를 빈정거린 것에 다름아닌가. 총칼을 겨누는 전장에서조차 목숨을 잃은 적군의 모습을 똑바로 마주할 수 없는 것이 이른바 인간성일진대, 하물며 참사 현장의 희생자에 대해서는 말해서 무엇하랴. 그러나 A씨에게는 그런 작은 조각만큼의 인간성조차 결여되어 있었다. '자칭 논리적'인 그에겐 상갓집에서 갖춰야 할 예절조차 허례허식의 범주에 들어가는 것이었을까. 그에게 만약 실오라기만큼의 인간성이라도 있었다면, 그런 글은 일기장에나 적어 서랍 속에 넣어두는 것으로 족했으리라.


그의 글에 세월호 참사의 희생자와 그 유족들을 폄훼하였던 이들이 오버랩되었다. 그 당시 승객들을 방기한 세월호 승조원과 구조에 소홀했던 해경 정장 한 명 외에는 현재 아무도 처벌받지 않았다. 그리고 그 이후 해상 안전 시스템에 어떤 개선이 이루어 졌는지도 명확치 않다. 결국 그 거대한 비극 이후에도 우리는 동일한 위험에 여전히 노출되어 있는 셈이다. 그럼에도 어떤 이들은 세월호 희생자와 유족들에게 차마 글에 담기 어려운 모욕적인 말들을 서슴치 않았다. 합리성을 가장한 그들의 말은 마치 자신과 희생자 사이에 보이지 않는 벽이라도 세우려 하는 듯 보인다. 그 문제들이 깨끗이 해결되지 않는 한, 그것은 언제든 자신에게 무너져 내릴 수 있는 예리코의 벽임에도 불구하고.




이태원 참사의 진상을 다투는 뉴스가 연일 이어지고 있다. 어떤 뉴스는 안이한 경찰의 대응을 탓했고, 어떤 뉴스는 불법 증축으로 골목을 좁아지게 만든 이태원의 한 호텔을 탓했다. 한 뉴스는 인파 속에서 일부러 사람들을 밀어댄 사람들 몇 명을 범인으로 지목하기도 했다. 모든 이유는 사건의 단초를 각기 품고 있어 보였다. 어느 하나의 원인이 독단적으로 이 커다란 참사를 만들어 내지는 않았을 터였다. 그러기엔 그 비극의 크기가 너무나 컸다.


하지만 그 모든 이유들을 압도하는 단 하나의 뿌리가 있음을 이제 알게 되었다. 대부분의 뉴스에는 A씨의 글과 비슷한 논지의 댓글들이 달려 있었다. 그 인파를 무릅쓰고 그곳에 놀러 간 사람들이 잘못이라며 희생자들을 비하하고, 우리 사회의 허술한 안전망에 분노하는 유족들에게 당신들이 아이들 간수 잘못한 거라며 무너진 가슴에 다시 대못을 박고 있었다.


그들이야말로 세월호 참사라는 지울 수 없는 비극을 겪은 이 나라를 8년 전의 시간에 그렇게 그대로 묶어놓고 있었던 장본인이었던 것이다. 한 개인이 어찌할 수 없었던 참사를 개인의 책임과 운명의 문제로 축소하려는 이들, 평범하지도 평범할 수도 없는 비극을 기어코 평범한 것으로 만들고자 하는 이들이 뉴스의 댓글창 너머에 도사리고 있었다. 사회는 모든 개인의 안락한 보금자리가 되어야 함에도, 그들은 각자도생만이 유일한 생존법칙인 세계를 꿈꾸는 듯 했다.


착잡함이 밀려들던 와중, 다행히 그 댓글들에는 온갖 비난이 줄을 잇고 있었다. 원색적인 비난은 물론, 논리적인 설파로 그들을 무너뜨리려는 사람까지 다양했다. 그 비난의 말들은, 비록 혐오스럽고 억센 욕설의 형태였지만 한편으로는 선하게 읽혔다. 그것은 인간성을 잃은 자들에 대한 이 사회의 호통 같았다. 이 사회에의 신뢰가 무너진 것에 대한 시민들의 분노 같았다. 혹은, 이태원 참사 이전의 세상으로, 그리고 2014년의 그 비극 이전의 세상으로 돌아가서는 안된다는 사람들의 호소 같았다.


그것은 선한 혐오의 말들이었다. 타인을 고통스럽게 하는 혐오가 아닌, 혐오해야 할 것을 마땅히 혐오하려는 인간성의 모듬. 한참을 망설이다가 차마 욕설은 따라 쓸 수 없어 정신 차리라는 점잖은 댓글 몇 줄을 더하고 앞선 선한 혐오의 말들에 조용히 추천을 눌러주었다. 그리고 휴머니즘과 과학이 유래없이 고도화된 이 시대에 걸맞는 상식적인 생각의 흐름이 그 무뢰배들을 압도하기를 잠깐 바래 보았다. 이 나라 어디선가 모여든 그 선한 혐오의 말들의 힘을 입고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