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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암킴 Jul 14. 2021

나도 내가 퍼포먼스 마케터가 될 줄은 몰랐지.

주니어마케터의 성장일지

출처. Olive 라끼남


# 퍼포먼스마케터가 뭔데?

퍼포먼스(Performance)는 강호동의 포포몬쓰처럼 무언가를 보여주는 행위라고 생각했다. 찾아보니 네이버 백과사전에 실적, 또는 성과라는 의미도 있었다는 거!


출처. 한국 온라인 광고 협회

온라인 광고 시장이 점점 커지면서 수~~~~많은 광고들이 생겨나고, 단순했던 이전에 비해 점점 복잡해지고 있다. 갈수록 불어나는 광고매체에 따라 광고비용은 분산되어가고 매출이 어디서 발생하는지 알기 어려워지고 있다.


온라인 광고들에서 얻어지는 많은 데이터를 분석하여 전체적인 광고 방향을 결정하고 구체적인 비용부터 광고 소재까지 개선한다. 여기서 퍼포먼스마케터는 비용을 아끼고 매출을 극대화하는, 성과를 직접적으로 만들어내는 마케터라고 볼 수 있다.


3년 전의 나는 마케터를 할 생각이 전혀 없었다. 더구나 퍼포먼스마케터를 할 줄은 전혀 몰랐던 터라 돌이켜보면 되게 신기하다.
물론, 퍼포먼스마케터가 되기까지의 과정이 순탄하지만은 않았지만.



01. 첫 커리어의 시작, 스타트업 마케터


# 정보통신공학도의 마케팅 입문기

정보통신공학과 재학중이던 나는 수업에 집중하지 않는 편이었다 (주로 뒷자리서 서식했던 동물..) 전공을 따라 직업을 선택하기보다는 여러 분야를 경험하고 정하고 싶었다. 마침 온라인 마케팅 스터디가 있단 걸 알게 되었고 참여비가 비쌌지만 알바비로 참여해버렸다.

마케팅 이론을 한창 배우는데, 자신의 노력으로 성과를 직접 만들어내는 마케팅이 무척 흥미로웠다. 마케팅과의 첫 만남이 그렇게 마무리되어 가던 중 그로스마케팅이란 걸 알게 되었고 성과를 넘어 성장을 만들어낸다는 것에 깊게 매료 되어갔다.


# 글쓰기모임에서 만난 스타트업 대표

불안감에 떠밀려가는 종이배처럼 전공을 살려 공기업을 준비했다. 기껏 마케팅을 공부해놓고는! 하루종일 자격증 시험만 공부하기에 소소한 집중력은 너무 귀여웠다. 한 달이 지나자 공부도 거의 하지 않으면서 의자에만 앉아 있는 인형이 되어버렸다 (그 인형 마스크만 괜찮았어도 모델하는 거였는데!라는 생각이..) 그러다 두 번째 치르게된 입사 시험 때 합창단을 같이 했던 후배와 마주치게 되었다.


"어! 형도 여기 시험보러 왔어요?"

"니가 왜 여기서 나와? 너 코레일 들어갔잖아?"

"시골 변두리에서 일, 집, 일, 집 반복만 하는데 갈수록 피폐해지더라구요. 이미 제 입사동기들도 여기 이직한 상태여서 저도 이직하려구요."


공기업에 취준생과 퇴사생들이 점점 몰리면서 답이 없다는 결론을 내렸다. 또 다른 진로를 탐닉해야 했다. 데이터에도 관심있었던 터라 국비지원을 받고 프로그래밍 학원을 다니기 시작했다. 프로그래밍 역시, 나의 소소하지만 귀여운 집중력이 버티지 못했다. 머리도 식힐 겸, 학원 수업이 끝난 후엔 여러 모임에 참여했다. 제일 먼저 시작한 모임에는 글쓰기 모임이 있었다.


주말 아침마다 각자 써온 글의 서평을 나누고 글쓰기와 관련된 게임을 했다. 글쓰기 멤버 중에 스타트업 대표가 있는 걸 알게 되었고 뒷풀이 식사자리에서는 그의 비전을 전해 듣고 설레여버렸다.


"저는 청년들에게 꿈을 찾아 주고 싶어요."


그에게 돈을 적게 받아도 괜찮으니, 아니 안 받아도 괜찮으니 마케터로 함께하고 싶다고 적극적으로 들이대었다.


# 스타트업 근무기

초기 스타트업은 갓 태어난 신생아와 같다. 팀원의 수는 손가락으로 꼽을 수 있을 정도이며 갖춰진 게 거의 없어 모든 것을 직접 만들어가야 했다. 그런 스타트업에서 첫 커리어를 시작하게 될줄은 꿈에도 몰랐다. 사무실은 있었지만 미팅할 수 있는 시간만 지켜 출퇴근했고 여러 카페를 전전하며 일하는 자유로운 근무환경에 만족스러웠다. 그러나 곧 문제가 발생했다.


사수가 없었다. 이론만 알고 있던 나에게 점점 부담이 쌓여만 갔다. 제대로된 웹사이트가 없어 솔루션을 공부해 급하게 사이트부터 만들기 시작했다. 웹사이트에 넣을 내용, 브랜딩 콘텐츠가 필요했다. 대표님과 밤새 대화하기 시작했고 의견 차이도 빈번하게 생겨났다. 번듯한 웹사이트가 생기자 페이스북과 인스타그램을 독학해 광고를 시작했다. 작고 귀여운 광고비를 지키기 위해 무료로 알릴 수 있는 곳에도 가리지 않고 홍보도 했다.



02. 기회는 내가 잡는 것, 사이드프로젝트 시작!


# 퇴근 후 사이드 프로젝트

광고비를 더 늘린 만큼의 매출이 나오지 않자, 새로운 시도를 해보게 되었다. 우리 서비스의 팬과 얼굴을 마주보며 인터뷰를 하고 팬이 가진 문제점을 해결하는 새로운 서비스를 기획해내었다. 시작한 김에 상세페이지를 노션으로 만들어 홍보까지 해버렸다.


많아야 10명 넘게 신청하겠지 싶었는데 홍보한지 1~2개월이 되자 무려 119명이 신청했다. 넘쳐나는 CS업무에 정신이 없어졌다. 팀원들에게 도움을 요청했지만 바쁘다고 거절당하고 어쩔 수 없이 틈틈이 업무를 처리했다. 

결국, 혼자 서비스를 운영하기에는 큰 무리라는 걸 몸소 체험하고 그만두었다. 정말 아쉬웠지만 지금보면 너무 대책없이 시작했나 싶다. 사람들의 필요를 알아낼 수만 있으면 사람은 저절로 모인다는 걸 이때 깨달았다.


# 퇴근 후 공부

지금 직장은 영원할까? 언제까지 다닐 수 있을까? 마케터로써 난 쓸모 있는 사람일까? 고민이 계속 찾아와 내 잠을 훼방 놓았다. 불안감을 떨치기 위해 주말엔 서울에 올라가 4시간씩 강의를 들었고, 평일엔 몇 십, 몇 백줄의 코드를 직접 타이핑하는 데이터 분석 과제를 새벽 3시가 되어서야 끝내고 잠들기 일쑤 였다. 이런 강행군이 한 달 동안 이어지자 체력에 무리가 오기 시작했고, 일하며 알게된 선생님에게 심리상담을 받기 시작했다.


# 인연 = 기회

심리상담을 해주시는 선생님은 일했던 스타트업 플랫폼에서 생산자의 역할을 맡은 중요한 고객이었다. 당시 선생님은 사람들을 치유하는 힐링센터를 운영하고 계셨는데 상담이 없던 어느 날, 대뜸 커피 마시자고 연락이 왔다. 별 생각없이 약속자리에 나가 놀라운 제안을 받게 되었다.

"암킴, 마케팅 도와줄래요?"

30년 동안 들은 말 중에 가장 위로가 되는 말이었다. 누군가에게 필요가 되는 사람이 되고 싶었던 나에게는.



03. 면접스토리 in 코로나


# 숨 막히는 면접기

일하던 스타트업과의 관계가 마무리되고 본격적으로 이직 준비를 시작했다. 여러 사이드 프로젝트 덕분인지 1차 서류는 무난히 통과 했지만 2, 3차 면접이 상당히 어려웠다. 서울에 올라가 본 한 면접에서는 신입 뽑는 자리에 무려 5년차 경력자가 등장했다. 돈 많이 못받아도 괜찮으니 하고 싶은 일 하면서 워라밸을 찾고 싶다나.

코로나까지 겹치자 서울에 면접보러 올라가기에도 위험 부담이 커졌다. 이때, 연고지인 부산에서 면접 연락이 두 군데서 왔고 같은 날, 면접일을 잡게 되었다.


# 해야 하는 일과 하고 싶은 일

"본인이 최근에 무언가 한 행동 중 하나를 골라 ROI가 얼만큼 나오는지 설명해주세요."

마케팅본부장님과의 2차 면접에서 받은 질문이었다. 그동안 얼마나 추상적으로 마케팅을 해왔는지 알 수 있는 질문이었고 망했다는 생각에 편하게 답변하고 나왔다. 마지막 질문이 매우 인상적이었다.

"행복이 뭐라고 생각하세요?"

긴장했던 탓에 뭐라고 답했는지 정확히 기억은 안나지만 이렇게 답했던 것 같다.

"하루하루, 지금 이 순간을 최선을 다해 사는 것이요. 과거를 생각하면 후회하고 미래를 생각하면 불안하니까요. 지금을 사는 게 가장 행복하다고 생각합니다."


이어서 다음 회사로 가 면접을 보았다.

"자네는 내 옆에 있으면 아주 크게 될거야."

이곳은 대표님과 사모님이 함께 경영하는 곳이었다. 50분 일하고 10분 쉬는데 학교처럼 종이 울린다고 한다. 근무 환경과 연봉이 소소했던 이 곳의 대표님은 당장 같이 일하자고 러브콜을 보내왔다. 면접을 마치고 나올 때 그곳에서 일하던 사람들의 표정은 지금도 잊히지 않는다.

앞서 면접을 보았던 곳은 마케터로써 경력과 전문성을 쌓을 수 있는 곳이었고 두 번째로 면접을 보았던 곳은 교육분야 MD로 학교를 만들고 싶다는 내 꿈에 도움되는 직업이었다. 긴 고민 끝에 경력이 적은 지금은, 전문성을 좀 더 쌓을 수 있고 규모 있는 곳에서 일하는 경험이 더 도움이 될거라는 판단이 섰다.


# 내가 찍어온 점들이 선으로 이어질 때

"어떤 걸 보고 저를 뽑으셨어요?"

입사 초기에 가장 많이 했던 질문인 것 같다. 여러 번 매달려서야 겨우 답을 들을 수 있었다.

"프로그래밍 지식도 있고 노션과 같은 업무 툴도 사용하고 배우면서 할 수 있는 열정도 충분히 가지고 있을 것으로 보았어."

살짝 부끄러웠다. 입사하고 1개월 안에 업무를 다 익히겠다고 허세를 부렸었는데 1인분 하는 데에는 2달 반정도 걸렸다. 그런데도 아직 배울게 많이 남았다.


직접 사람들을 모으고 무언갈 팔아보는 사이드 프로젝트들은 나를 어필하는 데에 큰 도움이 되었다. 데이터분석 공부, 프로그래밍 공부, 마케팅 공부, 노션 공부, 워드프레스 공부, 사이드 프로젝트, 글쓰기 모임, 독립출판 모임 등등 1년 간 공부 해왔던 것들이 부질없지 않았다. 이것저것 끌리는대로 공부하면서 이게 내 미래에 도움이 될까? 싶었던 적도 상당히 많았지만, 결국엔 모두 연결되어 지금을 만들었다. 



월 30만원 쓰다가 월 3천만원을 쓰게 되었다.

"스펙이 뛰어난 것도, 가진 것도 없던 제가 시작하기 위해 할 수 있는 게 없었어요."

돈을 받지 않은 시작은 커리어라고 볼 수 있을까?

돈을 받지 않았지만 몇 개월이 지나자 귀여운 월급을 받을 수 있었다. 그 월급이 남들과 비슷한 몸집을 가지는 데는 1년이 걸렸다. 광고비 월 30만원에서, 이직하고는 월 3천만원을 태웠다. 

한 가지 분명한 건, 그렇게라도 시작하지 않았다면 지금의 나는 없었을 것이다.


아직도 많이 모자라다는 걸 느낀다. 행동력이 너무 모자르고 눈에 띄는 성과도 만들지 못했다.

이런 불안감에 휘둘릴때면 종교는 없지만 이런 기도를 한다.




"제가 할 수 있는 것과 할 수 없는 것을 구분할 수 있는 눈을 주세요."




퍼포먼스마케터가 되기까지 한 것들.

1. 웹솔루션을 이용한 웹사이트, 상세페이지 제작

2. 광고비용을 태워 직접 광고 집행

3. 고객 인터뷰를 통한 니즈 겨냥한 서비스기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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