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든 도전은 의미가 있다는 것
경력이 쌓이고 나이가 들수록, 면접이라는 단어는 더 이상 도전의 무대가 아니라 평가자의 자리로 다가왔다.
이제는 시니어로서 누군가를 평가하는 입장이 되었고, ‘지원자’라는 타이틀은 점점 멀어지는 것만 같았다. 솔직히 말해, 내가 무언가에 ‘지원’을 하기엔 에너지가 예전만 못하다는 생각이 들곤 했다.
그래도 가끔, 매너리즘이 슬그머니 찾아올 때쯤이면, 면접관으로서 마주하는 지원자들의 반짝이는 눈빛과 솔직한 동기들을 들으며 나도 모르게 내 안의 열정을 다시 떠올리곤 했다. 그들의 이야기에 덩달아 마음이 움직이고, 잊고 지냈던 나의 처음을 다시 꺼내보게 되는 순간들. 그렇게 면접은 나에게도 동기부여의 시간이 되었다.
하지만 최근 들어서는 자신감이 크게 꺾여 있었다. 세일즈라는 일이 그렇듯, 실적에 대한 압박은 피할 수 없는 일인데, 그 무게가 생각보다 더 깊게 나를 짓누르고 있었나보다. 늘 괜찮은 척, 잘 해내는 척 했지만, 사실은 많이 지쳐 있었던 거다.
그러던 어느 날, 우연히 뜻밖의 포지션을 보게 되었다. 원래라면 귀찮다는 이유로 넘겼을 테지만, 이상하게 이번에는 한번 이야기라도 나눠보고 싶단 생각이 들었다. 그렇게 마치 무언가에 이끌리듯 나도 모르게 지원을 하고 있었다. 별다른 기대 없이, 그냥 해보자는 마음으로 시작한 일이었다.
그리고 면접이 차례대로 통과되던 어느 날, 마지막 관문이 경쟁 PT라는 소식을 들었다. 순간 ‘이 나이에 또 시험을 준비해야 한다니...’라는 생각에 귀차니즘이 밀려왔다. 잦은 출장에 지친 상태였고, 억지로 ‘내가 아닌 나’를 만들어내야 하는 경쟁이란 것에 또 힘을 써야 한다는 게 버거웠다. 그냥 여기까지만 하고, 마지막은 생략하자는 생각까지 들었다.
면접을 포기하려던 그날 밤, 이상하게 잠이 오지 않았다. 문득, 지금 시장에서 나의 가치는 어느 정도일까 궁금해졌다. 열심히 해도 실적에 눌리고, 늘 밑빠진 독에 물 붓는 듯한 무력감 속에 있었기에 더 그랬던 것 같다. 결국, 아무 준비 없이 임박한 전날 새벽 2시까지 발표 자료를 만들었다. 그냥 평소처럼 해보자는 마음으로, 그저 담담하게, 내가 할 수 있는 방식으로 준비해보기로 했다. 이번 기회를 통해 회사의 제품을 공부하면서 나 자신에게도 좋은 배움이 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큰 기대 없이 시작했던 그 회사는, 면접을 거듭할수록 인상이 점점 좋아졌다. 내가 오랫동안 관심있었던 금융과 블록체인의 교차점에서 사업을 하고 있었고, 면접 과정 내내 지원자를 존중하는 진심이 느껴졌다. 마지막 발표를 마치고 받은 에코백과 작은 기념품까지, 인사팀의 세심한 배려에 마음이 따뜻해졌다.
그리고 그렇게 포기 직전까지 갔던 마지막 PT에서, 생각지도 못한 많은 칭찬을 받았다. 내가 발표한 내용이 인상 깊었다는 말, 지금까지 본 지원자 중 가장 기억에 남는 프레젠테이션이었다는 말까지 들으니, 실적에 눌려 작아졌던 내 마음이 힐링되는 듯한 느낌이었다.
아직 결론이 나오기 전이고, 솔직히 이 회사에 가게 될지는 아직은 모르겠다. 충동적인 결정을 하지않으려고 하는 나의 신중한 성격으로 인해 결정은 최대한 미룰 것 같단 생각이 든다. 하지만 오랜만에 받은 진심 어린 칭찬은 내 마음에 큰 위로가 되었고, 잊고 있던 자신감을 다시 깨워주는 소중한 경험이 되었다. 내가 그동안 괜히 주눅 들어 있었구나, 괜히 나를 작게 만들고 있었구나 싶었다. 사실 나는 꽤 괜찮은 세일즈였고, 충분히 좋은 실력을 가진 사람이었다. 그렇게 도전을 통해 다시금 배우는 것이 많았다. 조금은 힘들고 번거롭더라도, 앞으로도 도전의 기회를 마다하지 말아야겠다고 다짐했다.
왜냐면 그 속에서 나는 매번, 나도 몰랐던 나를 만나고 있으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