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멈춤과 시작 사이에서

책 원고마감으로 분주한 나날들

by 커리어 아티스트

새로운 회사를 앞두고 나에게 남은 시간은 단 하루뿐이다.


뜨거웠던 여름이 조용히 저물고, 선선한 바람이 다가오는 가을 문턱에서 나는 새로운 출발선에 서 있다. 한참 멀게만 느껴지던 입사일이 이제는 달력 위에서 성큼 다가왔다.


새 회사에서 보내온 이메일을 열어보며, 체계적으로 준비된 안내에 괜스레 마음이 놓였다. 입사 전부터 세심하게 챙겨주는 인사팀의 배려는 예전처럼 스스로 알아서 헤쳐 나가야 했던 어수선한 분위기와는 달랐다. 스타트업 특유의 즉흥성과 불안정함이 아닌, 오래된 회사에서만 느낄 수 있는 안정감과 가지런함이 전해졌다. 그 안에서 안도감과 동시에, 곧 다가올 새로운 일들로 벌써 마음이 분주해지는 나를 발견했다. 휴식 같았던 지난 시간이 사실은 나를 위한 작은 충전이었다는 생각이 들면서, 다시 일할 수 있다는 사실이 오히려 더 설레게 다가왔다. 일은 언제나 쉽지 않지만, 다시 시작할 수 있다는 건 늘 가슴 뛰는 일이다.


짧았지만 길게 느껴진 휴식의 시간은 사실 온전한 ‘휴식’ 같지는 않았다. 백수인 듯, 백수 같지 않은 나날이었다. 일부러라도 마음을 내려놓고자 명상을 해보고, 여유를 만들려 애썼지만 가만히 있는 일은 내겐 역시 어려운 일이었다. 요가를 할 때도 그 조용히 앉아있는 시간 몇 분을 견디기 어려워한다. 친구들은 그런 나를 보고 “넌 역시 가만히 못 있는 사람이야”라며 웃었고, 나 역시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 조금은 쉬어도 괜찮다고 스스로를 달래면서 드라마를 몰아보거나 아무 일도 하지 않는 시간을 가져봤지만, 곧 허무감이 찾아왔다. 그리고 다시 ‘무언가를 시작하고 싶다’는 마음이 고개를 들었다. 이제는 안다. 그것은 잘못된 게 아니라, 오히려 나다운 것을 깨닫게 하는 것이라는 걸.


그 시기에 가장 먼저 나를 기다리고 있었던 것은 책 원고 마감이었다. 공저로 참여하는 첫 책이었기에 더욱 큰 책임감이 따랐다. 혹시라도 내가 늦어 다른 사람의 일정을 방해하면 안 된다는 마음으로, 마감을 지키기 위해 애썼다. 휴식 같지 않은 휴식 속에서 글쓰기에 몰입하는 나날들이 이어졌다. 글은 쉽지 않았지만, 동시에 나를 가장 자유롭게 하는 일이기도 했다.


이번 책은 첫 책과는 달리 경제 교양서이다. 현업에서의 경험을 담아내려 애썼지만, 팩트 중심의 글쓰기라는 한계 속에서 내 목소리를 마음껏 풀어내기에는 제약이 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스테이블코인에 관심 있는 독자들에게 도움이 되기를 바라는 마음을 담았다. 출판사에서 보내온 표지 디자인을 바라보며, 곧 세상에 나올 책의 모습을 상상하는 것만으로도 가슴이 두근거렸다. 책 한 권이 세상에 태어나는 과정은 언제나 설레는 긴장감을 안겨준다.


책 표지 후보 3가지


돌아보면 나는 늘 무언가를 ‘사부작사부작’ 만들어내는 사람이었다. 가만히 있는 것이 진짜 쉼은 아니었다. 휴식 기간동안 사람들을 만날때면 무엇을 하면서 쉬는지 항상 물어봤다. 저마다 답변이 달랐다. 하루종일 낮잠자기, 밀린 드라마 보기, 카페가서 멍때리기 등등, 쉬는 모습은 다양했다. 나에게 있어서 "쉼"이란 무엇일까에 대해서도 생각해보았다. 나는 가만히 정체되어 있기보단 오히려 새로운 자극을 만나고, 편안한 사람들과 웃고 이야기하며, 또 새로운 것을 배우고 자극을 받을 때, 그때야 비로소 마음이 온전히 쉬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하고 싶은 게 많은 나라는 사실을 그냥 인정하고 받아들이기로 했다. 결국 나답게 살아간다는 것은, 잠시 멈추어 쉬는 시간을 갖더라도 다시 곧 새로운 시작을 향해 나아가는 힘을 찾는 일이다.


그리고 이건 아마 나만의 이야기가 아닐 것이다. 누구나 살아가다 보면 잠시 멈추고 싶을 때가 있고, 또다시 시작하고 싶은 마음이 불쑥 올라올 때가 있다. 멈춤과 시작은 서로 모순되지 않는다. 오히려 계절이 바뀌듯, 삶을 앞으로 이끄는 두 개의 축과도 같다. 마치 뜨거운 여름이 지나고 선선한 가을의 계절 변화처럼 말이다. 정체되어 있기 보다는 호기심이 많아서 뭐든 시도하고 싶은 게 많은 나. 이제는 그 사실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기로 했다. ‘그런 나’여서 좋고, ‘그런 나’여야만 살아있음을 느낄 수 있으니까.


내일의 첫 출근을 앞둔 지금, 인생은 늘 변화의 길 위에 서 있음을 새삼 느낀다. 때로는 발걸음을 멈추어 숨을 고르고, 또다시 새로운 길을 향해 내딛기도 한다. 중요한 건 그 순간을 두려움으로 맞이하기보다 새벽처럼 맑은 설렘으로 받아들이는 일이다. 다행히 이번 짧은 휴식은 나에게 작은 충전의 시간이 되어주었다. 비록 완전한 쉼은 아니었지만, 멈춤과 여유가 반드시 필요하다는 사실을 다시금 깨닫게 된 것 자체만으로도 소중한 경험이었다.


그러니 괜찮다. 잠시 쉬어가도, 돌아가도, 조금 늦어져도 괜찮다. 인생은 언제나 우리에게 또 다른 출발선을 내어주기 때문이다. 중요한 건 언제든 다시 시작할 수 있다는 것, 그리고 그 시작이 결국 우리를 더 단단하게, 더 빛나게, 무엇보다 더 살아있게 만든다는 사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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