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음은 그 말을 다 하라고 기다려주지 않았습니다.
죽음에 때가 어딨겠냐만은, 죽기엔 너무 이른 초등학교 4학년의 어느 날 돌발적으로 죽음이 도래한 적이 있습니다. 학교에서 2박 3일 캠프를 갔고, 거기 강에서 놀다가 물에 빠져버린 일입니다. 물에서는 숨을 쉴 수 없다는 것을 아는 나이였으니 어떻게든 물 밖으로 이동하려고 허우적 거렸습니다. 하지만 이미 당황하여 숨을 내뿜어버렸고 그 와중에 수영도 못하였기에 결국 수중호흡을 하게 했습니다. 그렇게 물에 빠졌다는 것을 깨닫고 정신을 잃는 데까지 수분이 채 걸리지 않았을 것입니다. 어찌나 찰나 같던지. 그 찰나에도 짧은 후회를 마쳤고, 주마등도 마주했습니다.
후회는 삶에 대한 열망이었습니다. 어쩌다가 이꼴이 되었는지 잘잘못을 따졌고, 잘못을 깨달았고 '도대체 왜그랬을까' 자책을 했습니다. 도저히 살 도리가 없으니까 '잘못했는거 알겠으니 이번 한번 봐달라'는 식으로 갖은 신에게 빌고 빌었습니다. 하지만 아무리 후회를 해도 남은 기회가 없으니 소용이 없더군요. 생에 대한 희망을 놓기까지 금방이었습니다. 그러고는 주마등을 마주했습니다. 제게 주마등은 후회가 아니라 미련이었습니다. 미련의 과거가 지나가면, 저는 그 모든 미련에 작별인사를 고하고 있었습니다.
작별인사를 미처 다하지 못 했는데, 생이 먼저 저에게 작별을 고했는지, 생은 주마등보다 빠르게 끝나갔습니다. 죽음은 그 말을 다 하라고 기다려주지 않았습니다.
우여곡절 끝내 살아났습니다. 덤으로 생긴 삶입니다. 덤의 시작에 한 생각은 무엇이었을까요. 덤에 대한 안도와 감사는 아주 잠깐이었습니다. 제가 깨어난 것을 본 어느 학생이 선생님을 부르러 갔고, 그 순간부터 혼나지는 않을지 걱정하기 시작했습니다. 그리고 집으로 돌아가는 길에도 부모님에게 혼날까봐 걱정했습니다. 끝끝내 집에 도착해버렸고, 부모님께 죽을 뻔한 사실을 알려야 하는 순간이 왔습니다. 혼날까봐 무서워 도저히 입이 떨어지지 않는 순간이었습니다.
죽을 뻔한 사실을 알리는 것조차 무서웠는데, 언젠가는 알려야만 하는 부고라니요. 참으로 어려운 일입니다. 저의 부고를 제가 알린다면 그게 지금이라면, 지금의 저는 무서워하지 않을 수 있을까요? 받은게 많은 생이라서, 많이 주지 못한 생이라서, 쌓인 미련만큼 무섭습니다. 자주 부치는 유서로 저의 미련을 할부하겠습니다. 예고 없이 다가온 죽음 앞에서, 지나가는 모든 순간에게 이별을 고하는 나였기에 오늘도 유서를 씁니다. 할부의 끝에는 주마등이 없길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