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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와 자전거

by 김물개



내가 자전거를 처음 배운 건 초등학교 3학년 무렵이었다. 보조바퀴를 떼고 이제 진짜 두발자전거의 세계로 진입하는 딸에게 부모님은 여의도 공원에서 특훈을 강행했다. 운동신경이 좋아 처음부터 쌩쌩 나아가는 오빠와 달리 이리저리 휘청이는 나를 위해 아빠는 몇 번이고 달려와 넘어질 것 같은 나를 잡아주었고, 엄마는 그 옆에서 “핸들을 똑바로 잡아라”, “허리를 펴라” 같은 잔소리를 이어갔다. 공원의 푸르렀던 잔디와, 온몸에 가득했던 긴장감, 내가 크게 넘어졌을 때 나를 가리키며 웃던 이름 모를 아주머니, 거기서 느꼈던 수치심, 그리고 그때는 몰랐던 부모님의 사랑까지 - 유난히 그날의 장면은 내게 여전히 선명하다.



열과 성을 다했던 부모의 노력이 무색하게 나는 여전히 자전거를 완벽히 마스터하지 못했다. 달리기를 시작한 뒤로 샌프란시스코의 상징인 금문교를 두 다리로 여러 번 건넜지만, ‘자전거로 금문교 건너기’는 아직도 내 위시리스트에 남아 있다. 미친 척해볼까 하다가도 막상 무섭다는 이유로 미루기를 몇 년째다. 한국에서 샌프란시스코로 사는 곳을 바꾸는 결정은 그렇게 쉬웠는데, 자전거에 오르는 일은 왜인지 여전히 어렵다.



쫄보인 나와는 달리, 엄마는 자전거를 무척 즐기는 사람이다. 중·고등학생 때 방과 후 집에 오는 길에 종종 자전거로 어디론가 다녀온 엄마와 마주치곤 했다. 엄마는 낡은 자전거로 장을 보러 가기도 하고, 운동삼아 양화대교를 건너오기도 하고, 염창동에서 저 멀리 잠실까지 콧바람을 쐬고 오기도 했다. 나처럼 장롱면허인 엄마에게 자전거는 아마 누구의 도움도 없이 세상 어디로든 데려다줄 수 있는, 유일한 드라이브 수단이었을 것이다.



그러다 중학교 2학년 때였나, 한 번은 엄마가 자전거를 타다 심하게 다친 적이 있었다. 엄마 말로는 공중에 몸이 붕 떠서 한 바퀴 돈 채로 철퍼덕 떨어졌다고 했다. 그 와중에도 사람들의 ‘괜찮으세요?’ 소리가 너무나 부끄러웠다며 말하던 엄마의 다리에 덕지덕지 반창고들이 붙어있었다. 그 정도로 심하게 다쳤다면, 아마 나는 ‘이제 자전거는 끝이다’라며 두 번 다시 타지 않았을 것이다. 하지만 엄마는 달랐다. 내가 기억도 하지 못하는 언젠가부터 다시 조금씩 그 낡은 자전거를 끌고 다니기 시작했다. 그러면서 내게 종종 내게 말하곤 했다.



“자전거 탈 때 솔솔 부는 바람이 얼굴을 가르는 느낌이 얼마나 좋은 줄 알아? 너도 운전은 못해도 자전거는 꼭 탈 줄 알아야 돼.”



그 말을 귓등으로도 안 듣던 내가, 무슨 바람이 불었는지 지난해 한국에 머무는 동안 갑자기 자전거를 타고 싶어졌다. 다니던 필라테스 센터가 교통이 불편한 곳에 있어 늘 30분을 걸어야 했는데, 자전거를 타면 10분이면 갈 수 있을 것 같았다. 그 단순한 이유로, 지난 십몇 년간 멈춰있던 자전거를 다시 도전하기로 했다. 집 근처에 줄지어 서 있던 공유자전거 하나를 결제하고, 집 앞 공터에서 천천히 페달에 발을 올렸다. 쌩—, 전기자전거는 조금만 밟아도 훅 나갔다. 그 속도가 무서워 몇 번이나 멈췄다. 그래도 그날, 처음으로 엄마가 말했던 ‘바람이 얼굴을 가르는 기분’을 조금은 느낄 수 있었다. 조금은 무섭고 조금은 시원한 그 순간.



하루는 필라테스를 마치고 오는 길에 엄마와 만났다. 20년도 더 된 낡은 자전거로 장을 보고 온 엄마는 나와 나란히 걷다가 갑자기 같이 자전거를 타고 집으로 가자고 했다. 그렇게 갑작스럽게 예정에 없던 엄마와의 자전거 특훈이 시작되었다. 엄마는 근처 공원에서 의기양양에게 자전거에 타는 법부터 핸들을 돌릴 때 넘어지지 않는 법, 길을 건널 때 속도를 줄이는 법 등 하나씩 내게 시범을 보였다. 마치 처음 자전거를 배우는 아이에게 가르치는 것처럼.



몇 번 짧은 연습을 하고 엄마를 따라 주행을 시작했다. 이미 앞에서 저만치 달려가는 엄마를 놓치지 않으려 두 손에 잔뜩 힘을 주고 페달을 세게 밟았다. 그렇게 거리가 가까워졌다 멀어졌다를 반복하다 보니, 어느새 긴장이 풀리고 얼굴에 스치는 바람이 느껴졌다. 엄마는 몇 번이나 고개를 돌려 내가 제대로 오고 있나 확인했다.



“허리를 좀 더 펴”


“이제 잘하네, 재밌지?”



물어보는 그 모습이 꼭 여의도 공원에서 처음 두발자전거를 배우던 날 같아서 혼자 키득키득 웃었다.



‘내가 나이가 몇인데 아직도 엄마에게 자전거를 배우고 있네’



그러다 문득 엄마의 작아진 몸집과 낡아빠진 자전거가 눈에 들어왔다. 20년이 지난 지금도 신나게 자전거를 타는 엄마. 40대의 그녀가, 이제 60대가 되어 여전히 내 앞에서 길을 터준다.



나는 잠시 속도를 줄였다. 훌쩍 멀어져 가는 엄마를 눈에 담고 싶어서.


내가 따라오지 않자, 엄마가 뒤를 돌아 매섭게 말했다.


“빨리 와!”

“응”



햇살은 기울고, 바람이 얼굴을 스치고, 눈앞에선 자전거를 탄 엄마가 아른아른 흔들렸다. 자전거는 여전히 무섭지만 지금 이 시간이 조금 더 길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하며, 나는 다시 페달을 밟았다.


가능한 더 오래, 엄마와 자전거 특훈을 하고 싶다.



열심히 자전거 연습하던 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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