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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들이 '오픈런' 을 하는 6가지 이유

사람들은 남들이 사면 사고싶어한다

by 고석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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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귀멸의 칼날' 극장판이 큰 인기를 끌게 되면서, 메가박스에서는 귀멸의 칼날 키링을 만들어 판매하게 되었다. 이 키링을 사기 위해 전국에서 수많은 사람들이 메가박스 안에서 줄을 서며 오픈런을 기다렸던 적이 있다.


오픈런은 매장 문이 열리자마자 사람들이 일제히 달려가 원하는 상품을 확보하려는 현상을 뜻합니다. 흔히 한정판 운동화, 명품 가방, 인기 뮤지컬 티켓 같은 곳에서 많이 볼 수 있습니다. 단순히 “살 수 있다”라는 의미를 넘어, 다른 사람보다 먼저 갖고자 하는 경쟁의식과 한정된 기회를 놓치지 않으려는 심리가 담겨 있습니다. 예전에는 백화점 세일 현장에서 줄을 서는 정도였지만, 이제는 온라인·오프라인을 막론하고 오픈런 현상이 문화처럼 자리 잡고 있습니다. 즉, 오픈런은 경제적, 심리적, 사회적 요인이 복합적으로 작용한 결과라고 볼 수 있습니다. 오늘은 왜 오픈런을 해서라도 물건을 사고자 하는지 알아보도록 하겠습니다.


수요와 공급의 본질

경제학의 가장 기본 원리는 수요와 공급입니다. 특정 상품의 공급량이 극도로 제한된 상황에서 수요가 폭발적으로 몰리면, 균형가격은 급격히 올라갑니다. 그러나 기업이 가격을 인위적으로 올리지 않고 정가에만 판매할 경우, 시장 메커니즘은 줄서기(비가격적 배분 방식)로 나타납니다. 즉, 오픈런은 수요가 공급을 초과했을 때 가격 대신 ‘시간과 노력’이라는 자원으로 경쟁하는 현상입니다.


왜 오픈런을 해서 제품을 소비하려고 할까?

시간 비용과 기회비용

오픈런에 참여하는 사람들은 사실상 돈이 아니라 시간을 지불하고 있는 셈입니다. 예를 들어, 한정판 가방을 사기 위해 5시간 줄을 섰다면, 그 사람은 ‘시급 × 5시간’의 기회비용을 지불한 것입니다. 경제학적으로는 가격이 고정되어 있을 때, 줄서기 자체가 가격의 대체재 역할을 합니다. 그래서 소득 수준이 낮거나 시간 가치가 낮다고 여기는 사람일수록 오픈런에 더 적극적으로 참여할 가능성이 큽니다.


희소성과 소유 욕구, 그리고 리셀

사람들이 오픈런에 몰리는 가장 큰 이유 중 하나는 ‘희소성’입니다. 공급이 제한된 상품은 그 자체로 특별한 가치를 가집니다. 심리학적으로도 희소한 것은 더 매력적으로 보이며, “지금 사지 않으면 영영 가질 수 없다”는 생각이 강한 구매 동기를 자극합니다. 실제로 같은 제품이라도 “한정 수량”이라는 문구가 붙으면 소비자들은 더 큰 가치를 느끼고 지갑을 열게 됩니다. 이 과정에서 단순히 물건을 얻는 행위를 넘어, 남들이 쉽게 가질 수 없는 것을 소유했다는 만족감이 강화됩니다. 그래서 오픈런은 단순 구매가 아니라 ‘특별함’을 확보하는 과정으로 이해할 수 있습니다.


많은 오픈런 참여자들은 단순히 자신이 사용할 목적만이 아니라, 재판매(리셀) 가치까지 고려합니다. 희소한 제품은 시간이 지남에 따라 중고 시장에서 가격이 오를 가능성이 크기 때문에, 소비자 입장에서는 하나의 투자 행위로 볼 수 있습니다. 즉, 현재의 고생은 미래의 높은 기대효용으로 환산되며, 이는 오픈런 참여를 합리적으로 정당화시킵니다.


손실 회피와 매몰비용 심리

행동경제학적으로 볼 때, 오픈런은 ‘손실 회피’ 심리가 강하게 작동하는 현상입니다. 사람들은 같은 크기의 이익보다 손실을 피하는 것을 두 배 이상 중요하게 여깁니다. 한정판을 놓친다는 건 단순한 미구매가 아니라 ‘손실’로 느껴지는 것이죠. 또한, 오픈런을 위해 새벽부터 줄을 서거나 시간을 투자했다면 매몰비용 오류가 개입합니다. 이미 들인 노력과 시간이 아까워서라도 끝까지 기다려야 한다는 생각이 강화되며, 이는 소비자들을 더욱 행동으로 이끌게 됩니다. 결국, 오픈런은 단순히 이익을 얻기보다 손실을 피하려는 인간 심리가 강하게 반영된 결과입니다.


사회적 비교와 과시 욕구, 네트워크 효과

또 다른 이유는 사회적 비교와 과시 욕구입니다. 한정판 제품이나 희귀한 아이템을 가진 사람은 주변에서 주목을 받습니다. 이는 곧 사회적 지위를 높이는 신호가 되며, 경제학적으로는 ‘베블런 효과(과시적 소비)’라고 설명할 수 있습니다. 같은 제품이라도 희소한 로고나 한정판 태그가 붙으면 사람들은 훨씬 더 높은 가치를 부여합니다. 오픈런에 성공했다는 사실 자체가 하나의 스토리가 되고, SNS에 인증하며 ‘나는 이 정도는 할 수 있는 사람’이라는 신호를 보내는 것이죠. 이런 사회적 비교 욕구가 오픈런 현상을 더욱 부추깁니다.


어떤 상품을 ‘내가 갖고 있다’는 사실은 단순한 소비가 아니라 신호(signaling)가 됩니다. 명품 가방이나 한정판 운동화를 소유한 것은 개인의 소득 수준이나 안목을 사회적으로 보여주는 신호로 작동하죠. 경제학적으로 이는 ‘네트워크 효과’와 결합해 더 큰 가치를 만듭니다. 나만이 아니라, 사람들이 서로 인증하고 공유함으로써 오픈런 상품의 가치는 더욱 증폭됩니다.


경험자아와 기억자아의 착각

사람들은 실제 경험보다 ‘기억’에 더 큰 가치를 두기도 합니다. 오픈런을 통해 얻은 경험은 힘들고 고된 것이지만, 이후 “내가 그때 줄 서서 얻었다”라는 기억은 성취감과 자부심으로 포장됩니다. 즉, 경험자아는 피곤했지만, 기억자아는 그것을 긍정적인 스토리로 남기는 것입니다. 그래서 다시 비슷한 상황이 오면 사람들은 과거의 힘듦을 잊고 또다시 도전합니다. 이는 인간이 합리적이라기보다 감정과 기억에 기반한 결정을 내린다는 행동경제학적 특징을 잘 보여줍니다.

누가 줄을 설까?

오픈런은 게임이론으로도 해석할 수 있습니다. 게임이론이란 경제학적인 의사결정을 게임으로 환산한 이론인데요. 참가자 N명이 가치 (혹은 “정가 대비 남는 순이익 + 리셀 프리미엄”)를 갖는 동일 상품 K개를 노립니다. 가격은 정가로 고정되어 있고, 기업은 수량을 제한하는 상황입니다. 이 때 사람들은 승자만 실물을 받고, 모든 참가자가 ‘대가’(대기시간, 밤샘, 교통·체력·스트레스)를 지불한다는 점에서, 이는 전형적인 모두-지불 경매(all-pay auction)와 같습니다. 여기서 “입찰가”는 시간·노력(대기비용)이고, 상위 K명의 ‘입찰’이 큰 사람이 승자가 됩니다.


이 때 참가자들의 편익은 승자들이 얻는 잉여(가치−정가) 규모만큼 전체 사회가 시간·노력으로 소각하는 경향이 큽니다. 즉 개인 i는 “기대당첨확률 × (가치−정가) − (시간비용)”을 극대화하도록 얼마나 일찍, 얼마나 길게 대기할지 정합니다.


그래서 시간 기회비용이 낮은 사람(학생, 프리랜서, 혹은 그날 시간이 비는 사람), 리셀 프리미엄을 크게 보는 사람이 상대적으로 더 줄을 서게 됩니다.



기업과 시장의 마케팅 전략

흥미로운 점은 기업들이 이 같은 소비자 심리를 잘 알고 의도적으로 활용한다는 사실입니다. 한정 수량, 선착순 판매, 온라인 드로우 이벤트는 모두 희소성과 손실 회피 심리를 자극하는 마케팅 기법입니다. 실제로 기업은 공급을 의도적으로 제한해 오픈런을 유도하고, 이를 통해 브랜드 희소성과 충성도를 높입니다. 소비자 입장에서는 “내가 노력해서 얻은 특별한 가치”라고 느끼지만, 기업 입장에서는 판매 촉진과 브랜드 파워 강화의 전략이 되는 것이죠. 즉, 오픈런은 소비자와 기업의 이해관계가 맞아떨어지는 특수한 시장 현상이라 할 수 있습니다.


결론

오픈런은 단순한 쇼핑 현상을 넘어, 경제학·심리학·사회학이 교차하는 복합적 현상입니다. 소비자는 줄을 서며 시간과 노력을 비용으로 치르지만, 그 대가로는 희소한 소유, 리셀 기회, 사회적 신호, 성취의 기억을 얻습니다. 기업은 이를 마케팅 전략으로 활용해 브랜드의 가치를 높이고, 시장은 줄서기라는 비가격적 배분 방식으로 균형을 찾아갑니다.


결국 오픈런은 “누가 더 먼저, 더 오래 기다릴 것인가”라는 경쟁이자, 손실을 피하려는 인간의 본능과 특별함을 추구하는 사회적 욕망이 만들어낸 풍경입니다. 줄 앞에 서 있는 사람은 단순한 소비자가 아니라, 경제 주체이자 사회적 신호를 주고받는 플레이어인 셈이지요.


앞으로도 한정판 상품과 오픈런은 계속 나타날 것입니다. 그러나 그 줄에 설 것인지, 아니면 다른 선택을 할 것인지는 각자의 시간 가치와 기회비용에 달려 있습니다. 어쩌면 오픈런은 우리 각자에게 던지는 질문일지도 모릅니다.
� “당신은 무엇을 위해, 얼마만큼의 시간을 지불할 준비가 되어 있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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