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래의 또다른 부사수를 위한 말들
난 한국의 세대가 10년보다는 5년 주기라는 지인의 말에 동의하는 편이다. 직장에서의 행태도 80-85와 85-90이 다르고 90-94와 95부터가 또 다르다. 아무튼 최근 느끼는 95부터의 분들 - 소위 말하는 '초년생들'에 대해서 좀 얘기를 해볼까 한다. 사실 2번째 이직을 하게 된 이유 중 하나도 내가 97년생 부사수 관리에 사실상 실패했다(그로 인해 나름대로 책임을 질 필요가 생겼다)는 것이 있었고, 본문에서 언급하게 될 '시스템적인 폭력'을 내 의지와 상관없이 수행해야 하는 입장에 서서 직접 수행해 내 2번째 부사수 커리어를 사실상 반쯤 박살내면서 퇴사를 한 것이므로 언젠가 이 주제로 글을 써야겠다고 생각했었다.
우선 내 또래들 - 그러니까 대충 회사에서 빠른 사람은 과장초년(7~8년차), 느린 사람은 대리 초년(3년차) 수준인 사람들이 최근 겪고 있는 가장 큰 이슈 중 하나가 자기들의 부사수들을 키우는 문제다. 자신들의 시절보다 너무 매니징 이슈가 커졌기 때문이다. 사실 우리 또래의 사수는 대부분 80년대생 초반 사람들이고, 지금 그분들이 높은 사람들은 C-Level이나 부장급, 낮은 사람도 차장급이 되어 있다. 그 사람들한테 너는 바보냐느니, 대체 생각을 하고 회사를 다니는 거냐느니, 이럴 거면 너를 대체 왜 쓰냐 알바 쓰지 하는 소리 들어가면서 일 배운 사람들이 우리 또래들이다. 우리들의 부사수들이 보통 좀 연차가 있으면 이제 3년차로 1인분 하고, 늦으면 이제 진짜 신입이나 1년차 이런다.
잠깐 우리 또래의 학교 생활을 생각해 보면, 체벌은 일상이었지만 퇴학을 비롯한 제도적인 방식은 매우 드문 일이었다. 오히려 대부분의 문제는 '줘패는' 방식으로 해결이 났었다. 끌려가서 욕먹고 뚜드려 맞고, 그것으로 대부분의 문제가 끝났다. 그렇게 학창 시절 보내고 회사 오면, 회사에서 윗사람들에게 모멸감 드는 욕을 먹거나 (약간의) 구타를 당하는 일이 실제로 있었다. 그리고 대부분 이걸 특별하게 여기지 않았다. 학교 때도 그랬고 (남자의 경우) 군대에서도 그랬으니까. 못 하면 이렇게 되는 거고 이런 걸 '줄일 수 있는' 일 잘하는 방법이나 선임들한테 예쁨받는 방법 같은 것들을 찾으면 찾았지 이런 문화를 때려엎을 방법을 찾는 경우는 정말 드물었다.
이런 문화가 가능했던 근본적인 이유는 이 방향이 맞냐 아니냐를 떠나서 결과적으로 사람을 쉽게 '제도적인 방법을 사용해' 정리하지 않는 분위기 속에서 이런 일들이 이뤄졌기 때문이었다. 우리 때, 즉 2010년대 중반에 커리어를 시작하던 시절의 대부분의 회사에서 수습이라는 것은 일상적인 제도가 아니었고, 쓰더라도 수습 자체가 아니라 수습 때 가능한 급여의 일부 삭감을 노린 노동착취를 위해 쓰는 거지 수습 자체를 필터링으로 생각하는 경우는 드물었다. 실제 신입에 대한 최종적인 평가를 3개월 안에 한다는 것이 불가능하다는 인식이 강했기 때문이다.
오히려 수습이 사용되는 건 노동착취보다는 어정쩡한 경력직 영입이었다. 이 사람이 정말 제대로 핏이 맞을지 모르겠어서 수습을 쓴 것에 가깝고 이건 오히려 경력이라서(=여기가 아니더라도 갈 곳이 있어서) 가능한 방식이기도 했던 것이다.
우리 때에 한 사람을 1인분 시키려면 시간적으로 얼마나 필요하냐는 것에 대한 기준이 대략 이랬다.
1년 안에 1인분 한다 : S급.
2년 안에 1인분 한다 : A~S급.
3년 안에 1인분 한다 : 평범.
즉 전체적으로 지금보다 사람이나 사람의 (회사 내에서의) 가능성에 대해서 긴 호흡으로 보는 분위기였고, '자르는' 것보다는 '어떻게든 써보는' 식의 접근이 많았다. 이런 판이니 순간의 실패나 미스를 갖고서 그 사람을 판단하는 것 자체가 굉장히 이상한 일이었다. 그런 게 좋냐 나쁘냐를 떠나서, 이 과정 상에서 발생하는 여러 문제들을 관리하거나 해결하고 성장을 촉진하기 위한 도구들이 폭언과 하소연과 술자리 같은 것들이었던 거다.
더군다나 당연히 회사 업무라는 게 아무리 메뉴얼화한들 메뉴얼대로 되는 게 아니다. 오히려 메뉴얼을 만드는 것이 업무면 업무지 메뉴얼대로 하는 건 업무라기보다는 작업이고, 진짜 중요한 '성과'는 메뉴얼에서 나오는 것이 아니므로 메뉴얼을 만드는 것보다는 맨마킹을 제대로 하면서 도제식으로 가르치고, 뻔히 바로는 해결 못할 문제를 내주고 어떻게 하는지 보면서(태도든 스킬이든) '될 때까지 조지는' 식으로 일을 가르치는 분위기가 강했다. 맞다 틀리다를 떠나 우리 때는 그랬다는 말일 뿐이다. 그런 식으로 가르쳤고 그런 식으로 배웠다.
그러나 90년대생(특히 90년대 중반부터의 태생)들은 우리 때보다 훨씬 더 짧고 즉각적인 호흡을 갖고 있는 것 같다. 하고 싶은 일은 처음부터 해야 하고(회사에서 필요로 하는 일을 내가 하겠다는 것이 아니라 내가 하고 싶은 일을 시켜주는 회사와 조직과 R&R을 보다 원하고), 본인의 성장이 순간마다 체감되어야 하고, 회사가 내게 정형화된 교육을 제공하여 빠르게 학습하는 걸 보다 선호하는 듯한 느낌을 받는다. 물론 이것 자체는 좋고 나쁜 문제가 아니라 세대 차이다. 진짜 문제는 이 과정에서 사수나 매니저 개인의 세대를 떠나 '회사'라는 조직이 근본적으로 갖고 있는 특성과 이런 젊은 친구들이 가진 특징이 크게 충돌하면서 매니징 이슈가 급격하게 확대되었다는 점이다. 특히 90년대생들이 '법률적으로' 회사에 타격을 가하는 방법들을 가끔 쓰면서 더욱 그렇게 되었다.
회사는 학교가 아니고 군대도 아닌 철저한 성과지향적인 조직이다. 그래서 얼마든지 개인에게 잔혹한 결정을 '시스템적으로' 구현할 수 있다. 이걸 막는 것이 우스꽝스럽지만 윗 세대들이 갖고 있는 상대적으로 긴 호흡과 시스템 외적인 관행들이었다. 이를테면 일 못한다고 뭐라고 해도 악의적인 사고를 치지 않는 이상 그냥 시간이 해결해 주겠지 하고 어수룩한 채로 수습은 통과시켜 주고, 연차 대비 일 못하더라도 너무 시간이 지난다 싶으면 진급은 시켜주고, 원하는 성과 안 나와도 물가인상율 만큼의 연봉인상은 해주는 식의 것들이 그렇다. 사실 이런 건 선의라기보다는 대충 우리 또래들까지 갖고 있는 어떤 관행적인 문화다. 정말 어지간하면 보통 이런 건 챙겨주는 게 국룰인 거다.
그런데 최근 사회에 나온 분들은 성과 지향적인 회사라는 조직에 대해서 훨씬 더 즉각적인 보상체계를 요구하기 시작했고(그게 돈이든 커리어든), 실제로 법률이나 시스템을 따지고 들면 회사가 이런 부분을 안 받기도 어렵기 때문에 좀 일방적으로 당해준 부분이 없잖아 있었다.이게 꼭 무슨 성희롱 성추행 직장 내 괴롭힘 이런 문제만도 아니다. 그러나 어쨌건 최근부터 회사들도 적응하기 시작했고, 내가 아는 꽤 많은 회사의 의사결정자들이 공통적으로 내린 결론은 관행이 아닌 시스템 베이스의 컨트롤이다. 학교에서는 체벌을 안한다고 퇴학을 시키기 어렵지만 회사에선 욕을 안하는 대신 '자를' 수 있기 때문이다.
꽤 많은 회사들이 이제 90년대 중반 태생들의 신입사원들에 대한 업무평가를 보다 '시스템적으로', '제도적으로', '빠른 시점에', '엄격하게' 수행하기 시작했다. 수습 제도를 옛날처럼 월급이나 좀 깎을려고 쓰는 게 아니라 진짜 키울 것인지 말 것인지를 엄격하게 판단하려고 운용하기 시작했고, 심지어 애매하다 싶으면 예전처럼 시간이 해결해 줄 것이라는 태도가 아니라 신입 직원의 동의까지 받아가면서 수습 연장과 같은 사문화되어있던 것을 써서 끌고 가는 리스크를 줄이려고 하는 중이다. 월급 받기 시작했으면 (실제로 가능한지 아닌지와 별개로) 바로 밥값 하든가, 빠른 시점 내에 그렇게 할 것이라는 명확한 확신을 신입을 상대로 요구하기 시작한 것이다.
그에 비해 경력이직은 아직도 수습이 사실상 거의 사문화되어 있고, 경력직 상대로 수습 적용하는 회사 욕하는 얘기도 심심찮게 올라온다. 어차피 맞는지 아닌지는 서로 보면 아는데 무슨 수습같은 식으로 꼬투리부터 잡고 들어오려고 하냐는 거다. 많은 회사에서 수습은 신입채용에서만 엄격하다. 이게 뭐가 잘못됐거나 그렇지 않다는 식으로 쉽게 얘기할 수 있는 주제가 아니다. 다만 중요한 점은 회사들의 현재 신입 세대를 바라보는 시각이 예전과 달리 훨씬 시스템과 제도를 기반으로 '체계적으로 조지고' '선을 넘으면 바로 커트하는' 개념으로 무섭게 바뀌고 있다는 부분이다.
야근은 무조건 안 한다?
좋아. 대신 업무 시간에 한번 자리 비워 봐라.
단체 회식 안한다? 팀장이랑 밥 먹기 싫다?
좋아. 그런데 그럼 팀장한테 바로 인사권 넘길거고 팀장 판단 하에 본인 날릴 수 있게 해놓을 거니까 알아서 해라.
교육이 체계적이지 않다?
좋아. 그래서 On-Boarding도 운영하고 멘토도 운영하고 뭐 이거저거 많이 할거야. 대신 초장 3개월에 성과 없으면 수습 종료하거나 수습 더 연장하거나 하지 그냥 정규 스태프로 전환 안 시킬거야.
아, 이거 했으니까 돈 더 달라고?
좋아. 대신 만족하는 만큼 성과 안 나오면 연봉 삭감도 할 거야. 직급 강등도 있을 수 있지. 너보다 어린 애가 너보다 잘하면 걔가 너 매니징 하는 거야.
연차를 허락없이 통보로 바로 쓸 수 있게 해달라고?
좋아. 그럼 대신 일정 무조건 니가 알아서 관리해. 너 연차 쓰는 것 때문에 업무에 약간이라도 차질 생기거나 네 업무 일정 관리 못하면 너 근무평정 바로 깎을 거야.
대략 이런 식의 제도와 시스템을 현재의 신입 중심으로 테스트베드에 올려서 운영에 들어간 회사가 많고, 우리 또래들도 그런 식의 매니징이 필요하다는 의사결정자들의 피드백을 계속 듣고 있다. 이건 개인(또는 사수-부사수) 차원에서의 매니징이 아니라 시스템으로 제도화된 매니징이고 이것들은 고등학교로 치면 퇴학이나 정학 처분이며 생활기록부를 직접적으로 건드리는 무엇이라고 할 수 있다.
그리고 이런 시스템적인 폭력은 본인 이력서와 커리어에 바로 타격을 주고(보통 아무리 중고신입을 선호한다고 해도 예전 회사에서 수습을 통과하지 못한 중고신입은 분명히 문제가 있다고 생각하므로 중고신입으로 쳐주지 않는다. 정말 어지간하면 면접까지도 안 올린다) 앞으로 수십년 해야 할 사회생활에 적지 않게 데미지가 온다. 거기다 이런 시스템적인 처분은 '공식적' 절차이므로, 사수가 막지도 못하고 오히려 사수 손으로 실행시켜야 하는 것이다. 사수가 직접 손으로 왜 이 사람이 정규직이 될 자격이 없는가를 쓰게 되는 것이 사수한테도 쉬운 일이 아니다. 이렇게 되면 손을 쓸 수가 없다.
그러니까 이왕 회사 들어갔으면 문화든 커리어든 아니꼬워도 조금 참고 자신이 어떻게 하면 더 좋겠는지 잘 물어보면서 초반 3개월을 버텨주는 것이 정말 나중에 위험한 상황을 막을 수 있는 제일 좋은 방법이다. 딱 1년만 참아주면 훨씬 더 좋겠다. '일에 대해서 접근해서 쳐내는 방법'을 스스로 1번만 제대로 터득하면 신입을 벗어나서 주니어의 영역으로 오게 된다. 여기서부터는 일을 해본 경험, 즉 '경력'이 있다고 인정되므로 본인이 선택할 수 있는 폭이 훨씬 늘어난다. 뭐든간에 1년이라도 버티란 말이 그래서 나온 것이다. 그러니까 인내심을 약간만이라도 발휘해 주기를 진심으로 바란다. 실제 본인의 가능성은 1년동안은 잘 모르고, 1년 이후부터 본격적으로 드러날 거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