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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유령 Dec 28. 2021

다사다난했던 2021년 커리어 회고

From The Front Line, To The Ground Zero

BGM - Connexion


나를 일하다 알게 된 사람들은 나를 좋은 의미에서 자주 착각하곤 한다. 이를테면 글을 쓰는 걸 굉장히 좋아한다든지, 아니면 명예욕이 있다든지, 아니면 서비스를 만들고 싶어한다든지, 개발을 잘 안다든지 뭐 이런 식인 거다.


결론부터 말하면 이렇다. 글을 쓰는 걸 싫어하진 않지만(그러니까 쓰고 있겠지) 먹고 살기 위해서 글을 쓰는, 즉 직업적인 의미로 글을 쓰는 건 정말 싫어한다. 명예욕이 없진 않지만, 명예욕보다는 나이와 연차를 감안했을 때 얻어둬야 하는 감투와 처우를 얻어서 내가 수행해야 하는 사회적인 의무들을 수행할 수 있는 능력을 갖춰두고 싶은 것이다. 서비스는 굳이 만들고 싶진 않다. 단지 서비스를 만들고 서비스로 뭔가를 해야 하는 방향으로 살고 있고 딱히 그것보다 나은 뭔가를 발견하지 못했을 뿐이다. 개발? 개발을 잘 안다기보다는 그냥 주워들은 소리 하는 거지 뭐.


유독 2021년은 저런 근본적인 화제들을 두고 질문한 사람들이 많이 있었다. 나라는 사람이 어떤 사람인가를 정의내리고 싶어했던 사람도 많았고 내게 물어본 사람도 많았으니까. 1년 내내 마주한 것들 또한 대체로 그러했다. 가챠가 망해서 다른 게임을 해야 하는 상황이 되었으니까. 그런데 뭘 잘하는 거지? 뭐 하고 싶지? 거의 올해의 3/4동안 내 머릿속을 지배하던 것은 이를테면 모바일 게임의 가챠 뽑기다.


모바일 게임의 가챠는 망했는지 아닌지 바로 결과가 나오고 리세마라 하려면 할 수 있다. 그런데 모바일 게임 가챠와 달리 커리어에서는 리세마라가 없다. 거기에 망했다는 사실을 깨닫는 데 적어도 1년이 걸리고, 망해도 다시 뽑기는 커녕 아예 다른 게임을 하는 것 외에는 다른 방법이 없다. 심지어 속된 말로 똥겜을 하다 온 사람이 잡는 게임은 똥겜일 확률이 더 높아지기까지 한다. 그런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선택하지 않을 수가 없게 된다. 가만히 있으면 망한 가챠로 망한 게임을 계속 해야만 하니까.


결국 난 두번째 이직을 했다. '언제든 망할 수 있는 회사' - 즉 최전선을 떠나서 온 곳은 폭심지다. 죽기 살기로 일하지 않아도 총에 맞아 죽진 않는다. 당연히 최전선에 있든 폭심지에 있든 가만 있으면 죽긴 하지만, 어떤 의미로든 시간을 번 셈이다.




Back To The 2020


두번째 회사에서 3년을 넘게 일했다. 두번째 회사는 굉장히 모순적인 회사였다. 외부적으로 서비스가 있다고 주장하고 내부적으로 서비스를 만들고 싶어하지만 실제로 서비스를 위해서 투자하는 것은 거의 없었다. 고유한 데이터가 있지만 빼돌린 데이터나 다름없었고, 하고자 하는 목표에 대비해서는 질과 양 모두 부족한 데이터였다. 사람은 나름대로 있었지만 방향은 없었고 돈은 더 없었다. 결국 아무것도 할 수가 없는 회사였다. 


그걸 명확하게 깨닫기 시작한 것이 2020년 말이었다. 지금 생각해 보면 19년 이래 아무것도 변한 것이 없었고 2020년부터 이미 한계에 부딪힌 상황이었던 것 같다. 19년에는 경영진만 문제인 줄 알았다. 20년에는 이게 점점 그런 문제가 아니라는 걸 알게 되었고, 2021년에는 그냥 대안이 없는 상황이라는 걸 깨달았다.


사실 개인적으로야 19년 상반기까지는 대형 SI 하느라 나름 레퍼런스도 쌓이고 모르던 것도 많이 알게 되어서 괜찮았는데, 문제는 20년이었다. 우린 정말 이 때 아무것도 해내지 못했다. 우리가 말하는 서비스를 만들 수 있냐 없냐 같은 고민을 하기 이전에 서비스에 집중할 수 있는 상황 자체가 전혀 만들어지지 않았다. 더 정확히 말하면 서비스를 만들자고 하는데 무슨 서비스인지도 알 수 없었고, 그 상황에서 어떻게 하면 그 뭔가를 만들 수 있는지를 고민할 여건도 아니었다.


서비스를 만들기 위해 다른 일을 안 하자니 너무 인원이 많았고 심지어 계속 늘어났다. 생각해 보면 이런 것이다. 인원이 50이다. 50명짜리 회사의 '인건비'만 산술적으로 따져봐도 최소 20억이다. 20억원을 어디선가 벌어야 인건비가 메꿔지고, 사실은 20억을 어디선가 또 벌어야 최소한도의 회사 운영이 가능하다(이것도 적게 잡은 것이다). 이 규모에서 자체 서비스가 없고 SI 전문 기업이나 에이전시가 될 각오도 없는 어정쩡한 회사의 선택지는 딱 둘 뿐이다. 어느 시점 지나면 회사 문 닫을 것 각오하고 서비스에 올인해서 뭔가를 만들어내고 투자금을 넉넉하게 확보하든지, 아니면 정부과제를 크게 벌려서 인건비를 확 빼고 프로젝트를 돌려 시간을 벌면서 서비스를 만들어 보겠다고 별동대를 꾸리거나 추가로 업무를 얹든가 해서 뭔가를 깔짝대든지. 


우리가 서비스 비슷한 것(비즈니스적으로는 서비스가 맞는데 IT적으로는 서비스라고 볼 수 없는 어떤 것이 있었다)으로 고정적으로 벌 수 있는 금액은 끽해야 1년에 15억원 정도였고, 나머지는 모두 정부과제와 프로젝트로 메꿔야 하는 상황이었다. 사실 내 생각엔 인원을 '쳐야' 했다. 이런 구조에서는 밥값을 못하는 인원을 절대 만들면 안 되었다. 그런데 회사 다녀본 분들은 알겠지만 사람은 애초에 보수적으로 뽑아야지 뽑아놓고 치기가 쉽지 않다.


물론 이 사이에서 운용을 아주 잘하면 누구는 서비스 만들고 누구는 프로젝트 해서 절묘한 크로스를 만들어낼 수도 있다 - 그런데 그럴려면 서비스를 만들어내는 것이 서비스를 '정의'하는 문제가 아니라 그저 만드는 문제여야 할 뿐이다. 어느 시점까지 정확히 무엇을 만들어내겠다고 정할 수 있고 납득도 가면 된다.


현실은 전혀 아니었다. 경영구조는 삼국지나 다름없었고 심지어 삼국지 중후반 - 즉 유비, 조조, 손권이 다 세력을 가진 상황이었으며 내 임원은 삼국지와 다르게 엄청나게 건강하고 정력적인 조조 밑에 있어서 개기지도 못하는 사마의에 가까운 위치였다. 문제는 회사 안은 삼국지인데 시장에서 회사는 대충 남만 칠종칠금 편에 나오는 맹획 동료 이민족 수준의 위치였다는 것이다. 그리고 사실 이 회사의 유비도 조조도 손권도 사마의도 서비스 얘기가 나올 때마다 그럴듯한 얘기만 했을 뿐 HOW같은 건 없었다.


결국 허울좋은 '기획팀'에서 하는 일은 서비스 기획이 아니라 프로젝트 중 2/3의 제안서와 사업관리와 수행지원과 임원 비서실 노릇이었다. 더더욱 우스운 것은 내 입장이었다. 임원은 어떤 '일이 되는 시스템'을 만들어내고 싶어했다. 그리고 시스템의 시작점은 내가 아니었고 내가 될 수도 없었다. 내 위치는 대충 클래식한 의미의 '기획팀'과 '시스템 기획자'와 '제안PL' 사이의 어딘가였고, 그것 자체는 OK였다. 난 아이디어 뱅크가 아니고 결국 어떤 아이디어가 있어야 서비스를 기획하든 개발하든 하는 것이 아니겠는가.


어쨌건 일단 20년을 시작했고 20년 내내 과제 제안서 쓰고 짬짬이 개인적 R&D 해보고 과제 뒤처리 했다. 결론은 아무것도 남는 것이 없었다. 앞단이 풀리지 않는데 내가 뭘 어떻게 할 수 있는가. 경력기술서는 텅텅 비어갔고, 억지로 채워봐야 IT계의 천민이나 다름없는 공공사업 쪽이었다.


그냥 트렌드나 볼 겸 올려놓는 채용 사이트 이력서에 대한 반응도 점점 꼬여갔다. 기획자로 지원하자니 자체 서비스를 만든 것도 아니고 중대형 프로젝트의 클래식한 기획자로 참여한 적도 없어서 얘기가 될 리 없다(아니 난 어도비XD도 스케치도 피그마도 안 써봤다고). 예전에 하던 거? 한국에서 그쪽은 에이전시 외에는 거의 답이 없다. 하다하다 B2G로 돌아가는 회사에서의 프리 세일즈 컨설턴트 제안까지 들어오자 드디어 뭔가가 잘못되었다는 것을 명확하게 이해할 수 있었다. 내가 나를 어떻게 생각하든 주변 상황은 그딴 걸 고려하지 않는다. 21년은 그렇게 시작되었다.




서비스기획자는 불가능하다


이 모든 것들을 자각하기 시작하자 정말 회사가 다니기 싫어졌다. 그런 태도가 누적되기 시작하자 팀장이 경고했다. 하기 싫냐고. 하기 싫은 건 아니지만 회의적이라고 얘기했다. 팀장은 내가 계속 태도를 그런 식으로 가져가면 곤란하다며 "이런 일은 물론 없어야 하겠지만"으로 시작하는 말을 꺼냈다. 대충 짧게 요약하면 쳐낼 수도 있단 소리였다. 나름대로의 자극이었다 - 두 가지 생각을 했다. 첫번째는 내 실력을 문제삼을 수는 있어도 내 태도를 문제삼게 만들지 않겠다는 나름대로의 건설적인 생각이었다. 두번째는 이 자리에서 할 말은 아닌 것 같다.


어쨌든 다시 오랜만에 프로젝트에 투입되어 PL이라는 것을 맡았다. 결론부터 말하면 현시창이었다. 일단 난 애초부터 UI나 UX에는 젬병이었고 너무 많은 시간을 그런 것과 멀리 살았기 때문에 기한 내에 그걸 주도적으로 해낸다는 것 자체가 거의 무리였다. 클래식한 의미에서의 '기획자'로서는 내가 적절하지 않았다. 이 부분에 대해서 내 결론은 간단했다 - 계속 다니든 때려치고 딴 데를 가든 내가 UI/UX를 직접 설계하는 포지션은 내게 맞지 않다는 것이었다. 기능적으로 맞고 틀린 건 알겠고 UI/UX에서 무슨 기능이 달성되어야 한다는 것까지는 당연히 제시할 수 있는데, 막상 그런 화면을 내 능력으로는 설계할 수가 없다는 것이다.


그래서 향후의 커리어 역시 명확해졌다 - 난 이미 서비스기획자가 아니었고 이제는 그렇게 될 수도 없었다.


어쨌든 PL질을 하면서 동시에 바우처 사업계획서와 과제 사업계획서가 터져나왔다. 당연히 내가 PL이건 말건 집중할 여건이 아니었다. 그리고 다시 이해관계가 일치했다 - 다시 익숙한 문서들을 잡았고 팀장은 UI/UX를 잡았다. 어쨌건 사투 끝에 프로젝트는 끝났고, 고유한 데이터를 사용했지만 데이터는 부족했으며 이런 개념 자체가 보편적이지도 않았으므로 '뭐에다 쓰는 건지 모르겠다'였다. 서비스 아이디어는 여전히 공회전이었고 근 2~3주를 아무것도 하는 것 없이 노는 판이었다. 그래서 21년 초부터 나름대로의 생존전략으로 깔짝거리던 SQL을 좀 더 공부해서 SQLD를 따버렸다. 그 와중에 대형 공공기관과 MOU를 맺기 위해 급조된 과제 하나에 다시 매달려야 했다(그나마 이건 주도하는 입장은 아니었기에 어떻게 넘어는 갔다 - 이것도 썰을 풀면 정말 웃기지만 글로 남기기는 좀 그렇다). 그렇게 2/4분기까지 지나갔고 여름이 되었다.

 



엔진이 없는데 자동차를 어떻게 만들어요?


갑자기 날 임원이 불렀다. A서비스의 기획을 하라는 것이었다. 더 정확히 말하면 이미 존재하는 A라는 분석 서비스에 우리의 고유한 데이터를 분석한 어떤 아이디어를 일부 적용해서 개선된 A서비스를 만드는 기획을 하란 것이었다. 환경도 특수해서 UI/UX 얘기를 할 게 없었고 이건 사실상의 데이터 제공 서비스였다. 데이터가 현실의 어떤 현상을 예측하는 것에 도움이 되고 그것도 매우 전형적이며 직관적인 방식으로 작용하는 것이라, 만들기만 하면 문제가 될 것이 없었다. 심지어 이번 판에는 친해진 동료 웹기획자와 같이 코웍을 하면 되는 경우였다.


그런데 이것 역시 현시창이었다. A에는 아무런 '분석'이 없었다. 오토바이를 자동차로 업그레이드하라고 오더를 받고 들어왔는데 오토바이는 커녕 자전거였다. 이건 임원조차 예상하지 못한 것이었다. 설상가상으로 우리에겐 내연기관도 모터도 만들 수 있는 기술이 사실은 없었다. 우리가 가진 것은 기술이 아니라 대충 연구 경험같은 것이었다 - 이를테면 우리 데이터 안에는 플레밍의 왼손법칙 이 있다는 걸 발견해 냈다고 할 수 있는 그런 상황이었다. 이걸로 실제 '모터'를 만드는 건 전혀 다른 이야기고 모터가 달린 '자동차'를 만드는 건 또 전혀 다른 이야기였다.


결국 A서비스에서 원래 다루고 있다던 어떤 개념 자체가 A서비스에는 존재하지 않았고, 그것이 데이터적으로 무엇이냐부터 정의해야 한다는 것. 즉 우린 모든 것을 처음부터 해야 한다는 걸 알게 되었다. 이건 말 그대로 처참한 상황이었다. 이게 있다고 전제하고 ERP에 연동 개발을 하기 위한 스페셜리스트까지 영입된 상황이었는데! 심지어 이 과정에 관여해 줄 것으로 알려졌던 외부 파트너 데싸 아저씨는 회사로부터 아무런 수익화 시의 대가에 대한 보장을 받지 못한 상황이었으니 어떤 것에도 적극적이지 않았다 - 결국 여기서도 점점 망해가고 있었다.




'부사수'와 인생의 쓴맛


교수들이 정말 한국 산업에 기여하는 파트는 제조업 외에 없을 거라고 생각한다. 사실 제조업도 잘 모르겠다. 인문계는 일단 산업으로 바로 연결되기 힘들고, 경영이나 마케팅 얘기는 하지 말자. 그럼 남는 게 제조업 뿐이라서 제조업을 든 것 뿐이다. 그런데 두번째 회사는 좋든 싫든 B2G적인 성격이 있는 회사였고(모든 사업이 그렇지는 않았다), B2G의 재미있는 점 중 하나는 교수와의 친분관계가 필수적이라는 점이다. 정부를 중심으로 한 섹터는 자문위원이나 위원회라는 형태를 가진 '중립적'인 어떤 사람들의 평가로 뭔가를 하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어쨌든 이 모 교수님께서는 모든 '학과장'들이 그렇듯 나름대로의 취업률 압박을 받으셨고, 졸업하고 노는 백수 친구 하나(졸업했으니까 학생이라고 부를 수는 없었다)를 경영진에게 소개시켜 주었다. N개 부서에서 면접을 봤지만 전혀 쓸 데가 없었다. 이유는 모르겠지만 난데없이 나한테 주어졌다. 너도 이제 경력이 N년 꽉 채워 가는데 사람 좀 키우라는 것이었다. 뭐 사실상의 짬처리였다. 어느 회사나 그렇듯 아무런 기술이나 재주가 없는 애를 기획에 짬처리를 시켜놓는 것이다.


대충 두달 쯤 지나고 사실상 징계를 먹었다. 여러 히스토리가 있지만 원인은 내가 이 난해한 상황 속에서 이 친구에게 (실제로는 회사 자체에 대한) 내 분노와 짜증을 투사했기 때문이었다고 생각한다. 연초 팀장의 발언이 다시금 내게 반복되었다. 언제까지 그 직급에서 머무를 거냐, 이제 좀 장도 달고 해야 하는데 이게 뭐냐는 것이었다. 책임질 것이 있다면 책임지고 사직하겠다고 말했다. 뭔 헛소리냐는 말과 함께(내 생각과 별개로 회사 입장에서는 너무 수지타산이 맞지 않았나 보다) 갑작스럽게 이상한 제안서 하나를 쓰라는 얘기가 떨어졌다.


아무것도 신경쓰기 싫어서 죽자고 제안서를 썼다. 이 모든 것이 너무 싫었으니까. 생각해 보면 웃기는 제안서였다(왜 웃기는 제안서였는지 이 자리에서 쓸 수는 없겠다). '하드카피'를 준비하라고 해서 오밤중에 셋이 고장난 제본기를 고치고, 제안서 마감이 너무 늦게 되어서 오밤중에 A4 두 박스를 낑낑대며 들고와 1천장이 넘는 출력질을 해댔다. 어찌어찌 제출은 했다. 그런데 그동안 또 내가 전혀 모르는 뭔가가 생겨나고 있었다.




결정의 시기


생각해 보면 두번쨰 회사의 특기 중 하나는 공매도적인 운영이었다. 검증을 했어도 실전에서는 무리가 있는 컨셉을 검증도 안하고 들고 가서 뭔가를 따온 다음 필사적으로 메꾸는 이상한 운영. 내가 위의 웃기는 SI 제안서를 쓰는 동안 한국인 중 상당수가 이름만 들으면 아는 어떤 곳에 그런 의문의 제안이 성공했고 의문의 상품설명서가 나갔다. 1년 반째 공회전하던 그 의문의 서비스에 대한 것이었다.


문서에 따르면 우리는 수십 종의 데이터 상품을 '이미 갖고 있었다'. 그런데 적어도 내가 아는 범주에선 이 상품 중 존재하는 것은 아무것도 없었다. 존재 이전에 설계가 없었고 그냥 이름만 있었다. 여기에 대한 '견적서'가 나갔단 얘기를 듣고 대체 이게 무슨 미친 소리인지 이해가 안 갔다. POC로 참여한 곳도 자그마치 업계인이면 다 이름은 들어봤을 모 대형 컨설팅펌이었다.


즉 '존재하지 않는 서비스'의 '존재하지 않는 데이터 상품'을 가지고 'POC'를 해서 그걸 '성공시켜야' 하는 것이다. 안되면 안하면 된다는 말을 믿는 회사원이 있나? 거기다 이건 상황이 전혀 달랐다. 이들은 진짜 존재하는 데이터, 존재하는 분석 기법이 있어야 풀 수 있는 얘기를 하고 있었다(사실 너무 당연하다). 더군다나 이들은 한국 용역 판의 거의 최상층에 해당하는 조직들이었고 이들에게서 넥스트를 만들어내지 못한다는 것은 보통 문제가 아니었다. 거기다 더 큰 문제는 내가 여기에 휘말릴 가능성이 99%였다는 점이다 - 실제로 그것이 나올 수 있는 원천 데이터에 대해서 뭐라도 알고 있는 비개발 인력은 나밖에 없었다.


어떤 식으로든 이제 정말 모 아니면 도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이 정신나간 도박에 올인을 할거냐, 아니면 물리적으로 그만둘거냐. 내 기준에서 이건 도박도 아닌 미친 짓이었다. 이건 뒤가 없다. 임원이 쓸 수 있는 카드는 나밖에 없었다. 뒷일이 어찌 됐든 이제는 나도 결정을 해야 하는 상황이었다. 이미 정신적으로 한계였고 처음으로 '갈 곳이 없더라도' 퇴사를 하는 것이 방법일 수 있겠다는 생각을 하기 시작했다.


이미 회사 전체의 HR 사이클은 내려가고 있다. 데이터 엔지니어와 개발진은 회사가 끊임없이 해온 - 서비스 만들 거고 SI(특히 파견 SI)안할 거라는 기만에 이미 질렸고, 데이터 분석 인력들은 '실패'할 수 있는 분석 프로젝트를 뛰어다니면서 최초로 진짜 '실패'할 수 있는 상황을 마주했다. 기획팀은 2년 가까이 서비스에 대해서 아무것도 해내지 못했다. 영업팀은 팔 상품이 없다는 이유로 조달청 공고 같은 거나 보고 있었다.


결국 우리는 2년 전에 비해 인원과 표면적인 매출만 좀 늘어났을 뿐 1인당 매출은 오히려 줄어든 셈이었고(1인당 1억원이 안되기는 매한가지다), 그에 비해 중요한 인력들은 이미 회사에 질린 상태였으므로 이미 위기상황이었다. 나갈 능력이 되는 사람들은 언제든 나갈 수 있었다.


문제는 나였다 - 내가 나갈 능력이 되는가? 결론부터 말하면 정공법으로는 어려운 상태였다. 원하든 원하지 않든 '보여줄 수 있는' 커리어를 거의 쌓지 못했다. 이력서 상의 나는 차라리 공공SI기업 PMO 인원에 가까웠다. 거의 매일 줄담배를 피우면서 대안이 없다는 것을 다시 느꼈다. 퇴사야 할 수 있지. 그런데 퇴사를 하면.. 뒤가 없다. 이제 와서 다시 에이전시를 갈거냐? 그렇다고 내가 갈 수 있는 데가 있나? 전혀 보이지 않았다. 그 와중에 점점 시한폭탄이 다가오고 있었다.  그 때 갑자기 예상치 못한 일이 벌어졌다.




형 이거 Regular 에요?


어느 날 갑자기 전화가 왔다. 첫번째 회사에서 처음 일을 가르쳐 주신 사수 형님이었다. 같이 일좀 해볼 생각 없냐는 것이었다. 19년에도 한번 말씀해 주셨는데 그 때는 내가 뭔가 할 수 있겠다 싶었기도 했고, 개인적으로 아는 분하고 다시 일하는 걸 좋아하지 않는 편이라(새로운 걸 배우고 새로운 사람을 알아야 나도 내가 좋아하는 분들한테 다른 도움을 드릴 게 아닌가? 거기다 사실 내가 실망을 시키면 그것만큼 민망한 게 없다) 거절했었다. 몇 초 생각해 봤다 - 서비스 있고, 투자 받았고, 기술력도 있다고 들었고.. 아니 이거보다 나쁘겠어? 이제는 정말 죽기 아니면 까무러치기였다. 그래서 전화로 설명을 들은 내가 처음으로 한 말은 이거였다.


"형, 이거 Regular(정규직)이에요?"
"야 그게 뭔 소리냐? 당연하지!"


그 때 이미 모든 게 결정났고 "긍정적으로 검토해 줬으면 좋겠다"는 말에 내 답변은 "형 제가 떨어지지 않는 이상 갈게요" 였다. 만나서 얘기했고 당연히 여러 이슈가 있었다. 이를테면 이 회사는 한번 폭탄이 터진 폭심지 같은 상태였다. 그래도 크게 상관 없었다. 이 회사에서 뭘 할 수 있냐, 이 회사가 좋냐 나쁘냐 이전에 나한테 필요한 건 시간과 재정비였다. 어떤 식으로든 민간을 상대로 서비스를 제공하는 회사로 직을 옮겨야만 했고, 그 상태에서 서비스에 관여하는 내 포지션을 다시 세팅해야만 했다.


물론 쉽지 않을 것이라는 걸 머리로 잘 알고 있었다. 핵심 개발진 중 일부가 이탈한 상태인데 쉽겠나. 그런데 그때도 생각했고 지금도 생각하고 있는 것은 이거다. 난 있지도 않은 서비스를 있다고 우기는 짓을 1년도 넘게 했다. 서비스가 있고 근간 기술이 있는데 더 나아지면 나아졌지 나쁠 건 또 뭔가. 적어도 지랄같은 R&D 과제를 주도적으로 설거지하진 않아도 되는 상황인데. 거기다 이제 가면 난 더이상 기획자가 아니었다. 화면기획은 명확히 이제 내 롤이 아니게 되었다. 더는 고민할 게 없고 떨어지지 않을 걱정이나 하면 되었다.


이틀만에 면접과 연봉협상을 끝내고 회사 생활을 정리하기 시작했다. 퇴사를 알리자 팀장은 "내가 최대한 말렸다고 임원에게 전해달라, 그런데 도저히 말리질 못하겠다, 나도 요새 현타가 너무 와서" 했다. 내가 이 상황에 퇴사를 밝히자 임원은 몇주동안 내 인사를 받지 않았고 내게 말도 걸지 않았지만, 어쨌건 막판에 화해를 했다.  


그동안 경영진과 3번 미팅을 했다. 삼국지의 조조는 나한테 '우리 회사의 목표는 상장이 아니라 유니콘'이라는 말을 해주셨다(내 심정이 어떤 것이었는지는 상상에 맡긴다). 삼국지의 유비는 '우리 회사가 시장에서 왜 존재하는지를 설명하기가 너무 어렵다'는 내 말을 듣고 임원 술자리에서 내가 '우리 회사가 왜 있는지 모르겠다고 말했다'고 해서 소소하게 이슈가 되었다.


내년에 장 달려서 굴리려고 했다는 팀장 형의 농담섞인 말에 난 "애초부터 이 회사에서 X장 달 생각 없었어요 뭐 좋은 회사라고" 하고 둘이 웃었다. 어쨌건 그렇게 3년 반이 조금 안 된 두번째 회사 생활이 끝났다.


최전선에서 나온 나는 2주 정도를 푹 쉬고 Ground Zero, 폭심지로 향했다. 초겨울이 끝나가는 때였다.




폭심지에서의 구상


글쎄, 그동안 무슨 일이 있었을까? 분명한 건 1달 반이 휙 지나가 버렸다는 점이다. 폭심지에서 뭘 느끼고 있냐에 대해서는 여기서 길게 할 말은 아닌 것 같다. 지금도 내가 정확하게 알게 된 건지, 정확하게 느끼고 있는 것인지 잘 모르겠기도 하고.


그동안 짬을 대충 처먹은 건 아닌 건지 대부분의 문제를 푸는 방법을 알긴 알겠다. 어떻게 보면 일 자체의 난이도는 저번보다 낮아졌다. 어쨌건 만들고 싶은 게 뭔지도 알겠고 어떻게 만들면 될지도 알겠고 뭘 준비하면 되는지도 알겠으니까. 단지 사람이 일시적으로 빈 것 뿐이다. 사람은 돈이 있으면 세팅할 수 있고 이미 그렇게 하고 있다.  


다만 너무 많은 것들이 '눈에 들어오지 않아서' 피곤하긴 하다. 원래 그냥 있어야 하는 건데 없고 -> 이걸 말하면 누군가가 내가 알고 있다(본인이 알고 있는 게 중요한 게 아니잖는가?)는 얘기를 듣든지, 아니면 슬랙이나 위키 어딘가에 있는 식이다. 정리된 문서를 받으면 정리가 안 된 것이 확 들어오고, 회의를 하고 있으면 (나쁜 의미로) 놀라운 상황을 자주 맞이하게 되고, 어디에나 있는 일 안하는 사람은 여기에도 당연히 있다.


어쨌건 정리를 해야 하니 매일매일 차근차근 진도를 빼는 중이고, 내년에 뭘 하게 될지는 솔직히 잘 모르겠다. 나름 해본 게 이것저것 되어서 어지간한 일은 다 나름대로 해낼 수 있다고 생각한다. 아쉽지 않다면 거짓말이지만, 내가 그걸 지적하는 것과는 별개로(이건 큰 일을 하려면 당연히 기반을 정리해야 하니까 어쩔 수 없다) 그 사실 자체가 엄청나게 문제라서 노답이라고 생각하거나 이러는 건 아니다.


상당수의 문제는 이걸 '정리하는' 방법이나 경험 자체를 쌓지 못한 그동안의 히스토리에 있는 것이지 누군가에게 함부로 무능이나 태만이라고 얘기할 수가 없는 것들이다. 어떤 식으로든 지금부터 하면 되고, 오히려 진짜 중요한 건 그게 문제가 되고 있고 앞으로 더 문제가 될 것이라는 사실을 받아들이는(받아들이도록 하는) 것이겠다. 하나 더 보탠다면 시니어 초입에 들어선 입장으로서 주니어들에게 내 시행착오와 그걸 통해 나름대로 깨달은 스킬, 노하우, 커리어에 대한 생각들을 조금씩 전해줘서 성장에 도움이 되도록 해주는 정도 아닐까?


하여튼, 이렇게 험난한 2021년도 커리어에 대한 회고를 마쳐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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