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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YO LA TENGO Dec 28. 2023

어쩌다 투병기

갑상선 전절제 후기(1)


2021년 1월인가, 2월인 가, 명절을 앞두고 응급실에 갔다가 알게 된 항진증.

약 3년 동안, 나는 약 먹으면 낫겠지 하면서 시간을 보냈다. 엄마도 고등학교 때 앓았으나, 극복했다고 하니,

나도 약 먹으면 낫겠지,…첫 번째 진료받던 병원도 국내에서 Top5안에 드는 상급 종합병원이었으니..

그런데 당시 담당 의사는 정말 항진증 따위는 하찮은 병으로 봤는지, 약 처방 하면 낫는 병으로 생각했는지, 처방도 대충대충, 내 복약 순응도 확인도 대충대충…

그 과정이 너무 기분 나빠서 중간에 의사도 한번 바꾸고, 그렇게 병과 병원 서비스와 싸우는 사이, 어느 날 보니 내 목은 너무 불룩해져 있었다.

(22년 겨울, 연말 휴가 기간에 프로필 사진에서 너무 눈에 띄게 보여서 깜놀..ㅠㅠ)


아무튼, 갑상선은 세브란스…라는 생각으로 모든 진료 기록을 싸들고 세브란스로 옮겼고,

옮긴 순간부터 투병 기간과 갑상선 사이즈로 수술을 권유받았고, 점점 눈에도 안병증 증세가 심해져서 (세브란스 안과에서 안병증이 있다는 진단도 받았으나, 심하지 않다며 수술은 권유받지 않았다.)

더 이상 미루기 힘들다는 생각에 전절제를 결정하고, 드디어, 12/26일 신세에서 수술을 받았다.


수술 후기로 넘어가기 전에, 이 과정에서 얻은 교훈은, 작은 병이던 큰 병이던,

“그 질환에서 top tier인 병원을 가는 게, 병을 크게 키우지 않는다는 것, 그리고 적극적인 처방을 하는 병원이 오히려 나에게 더 맞는다.”는 것..


아무튼, 오늘은 수술 3일 차이자, 입원 4일 차이다.

아름다운 크리스마스 당일 입원할 땐 병원이 매우 조용했는데, 어제부터는 병동이 북적북적하다.


세브란스의 모든 프로세스와 환경은 매우 환자 중심적이다. 이런 부분은, 정말 우리나라 1위인 것 같다.

입원 과정부터 모든 프로세스가 명확하고 깔끔하고, 병동 생활 안내, 수술 교육, 환자식 신청, 보호자 식 신청 등등 모든 유인물과 프로그램이 매우 전문적이고 세련됐다.


12/26 아침

전날 밤은 조용했지만, 건조한 공기와 불편한 마음에 잠을 잘 못 잤다.

나는 전 날 오후 교육에서 수술 동의서를 쓰면서, 2번째 순서라는 걸 들었고, 첫 번째 수술도 매우 간단한 거라, 나는 2번째지만 9시 반이면 수술실로 갈 거라는 얘길 들었다.

9시 반, 수술실로 이동해주시는 분이 이동식 침대를 갖고 오셨고, 보호자와는 12층 수술실용 엘베 앞에서 헤어졌다.

덜덜덜 6층 수술실로 가는 길 동안, 그리고 수술방 앞에서 누워서 대기하면서 천장을 보니, 기도문이 있었고, 너와 함께 있으니 두려워하지 말라…였나..

아무튼, 41년간 나의 일부였던 장기를 모두 한 점도 남기지 않고 내어버릴 생각을 하니, 괜히 갑상선에게 잘 지켜주지 못한 미안함에 눈물이 좀 났다.

내가 나를 더 아끼고 가벼이 여기지 않았더라면 이 정도까진 아니었을 텐데.. 하는 마음이랄까…

내 디스토피아적 상상력이 가해져, 우리나라가 전쟁이 나서 약을 구하기 힘들어지면 나는 이제 어떻게 되는 건가 하는 슬픈 상상까지… 그냥 슬펐다.

그러고 있는 찰나, 마취과 한 명이 오더니, 다시 한번 나의 치아를 구석구석 체크하고, 나는 수술 침대 위에 결박되었다.

차갑고 차가운 공기,

그리고 모니터링을 한다며 머리에 지압도 아닌 mts도 아닌 바늘 같은 걸 구석구석 꽂고,

수면 마취 심호흡을 폐까지 잘하라고 약간 핀잔을 먹으며, 레드 썬


12/26 오후 

9시 반 끌려갔던 내 몸은, 약 2시간의 수술과 1시간의 회복을 거쳐, 12시 20분 즘 내 자리로 돌아왔다.

나는 원래 마취약과 잘 안 맞는 몸뚱이라, 회복실에서 회복이 남들보다 더 길었는데, 어지럽고 구토할 것 같은 기분인데,

수술부위가 터지거나 하면 안 되니, 구토도 하면 안 되는 상황이라, 수술실 간호사가 내 목을 심하게 눌러주고 토를 시도했으나, 헛구역질만 나왔다.

그 과정을 거치곤, 그 간호사는 12시라며 점심을 쿨하게 먹으러 가셨는데, 그녀의 그 뒷모습이 너무 부러웠다.

나도 그냥 일상이고 싶어….

어지러운 머리, 뭔가 타들어가는 목구멍, 뜯긴듯한 내 살점… 그냥 너무 힘들었다.


기도 삽관 때문인지, 마취약 때문인지, 수술 때문인지 첫날은 너무너무 목이 불편하고 고통스러웠다.

다른 후기들을 참고해서 우선, 계속 얼음팩을 겉에 올려놓고, 붓기를 막으려고 노력했다.

약 1시간 동안은 물을 먹으면 안 되는데 그 과정이 너무너무 힘들었다. 타들어가는 것 같은 내 목… 그래도 영양제가 들어가고 있어서인지, 막 물을 먹고 싶진 않았는데,

수술 부위가 터질 것을 고려해, 기침도 안 돼, 가래를 위로 올리는 것도 안 돼, 다 안 돼… 그게 젤 힘들었다.

그리고 그 이후 4시간은 절대로 잠들어도 안되고, 고개를 숙여도 안되고, 가스를 빼려면 계속 코로 들이쉬고 입으로 내쉬는 걸 계속해야 하는데, (전신마취는 정말 위험한가 보다)

내내 그 마취향이 역했고, 어지러웠다.


나중에, 교수님이 와선,

갑상선이 보통이 20g 정도 되는데, 나의 것은 110g이나 됐다며, 거의 6배인데, 얼마나 홀가분하냐며.. 그 무거운 걸 들고 다니느라 고생했겠다 하는데,

먼가 얼얼한 목상태에 느낌이 안 왔다.

갑상선 자체가 크고 혈관이 발달되어 있어서, 수술이 꽤 까다롭고, 혈관을 연결한 게 터지면 안 되니, 절대로 안정하라고 하셨다. 수술 부위나 혈관 연결한 게 터지면, 안되니….

나: 교수님 너무 무서운 거 아니에요?

교수님: 나도 너무 무서워, 다시 열고 다시 수술하는 건!


물을 먹게 됐을 땐, 어지러움에 물도 잘 안 넘어가고 목도 불편해서, 물이 잘 넘어가지도 않아서,

부기도 빼고 정신도 차릴 겸, 비몽사몽간에 남편이 사 온 설레임을 먹었는데, 그 덕분인지 조금 기운은 났다.


아무튼 전신마취를 깨는 4시간 중, 30분은 잠깐 자도 된다고 누군가(간호사인가, 펠로우인가)가 얘기해서 중간중간 소년시대를 보면서 졸다 깨다를 반복했다.


근데 수술직후부터 바로 좋다고 느낀 건, 전날까지 가렵고 불편하던 눈이,

순식간에, 너무 편해졌다.

이 부분은 너무 신기한데….. 아무튼, 그렇게 힘든 수술 첫날은 지나가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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