잠시 읽던 책을 덮고 깊은 생각에 잠겼습니다. 나의 어린 시절을 되돌아보며 '내가 날고 싶어 했던 적이 있었나?'라는 질문을 스스로에게 던져보았습니다. 6살 때, 교회에서 처음 기도를 배웠습니다. 할머니를 그리워하며 우는 아빠를 보고, 다음 날이면 할머니가 살아 돌아오게 해달라고 눈물로 기도했습니다. 첫날은 할머니만 돌아오게 해달라고 기도했지만, 다음 날은 할아버지도 생각났습니다. 그다음 날은 할머니가 자신의 엄마를 보고 싶어 할 것 같아 할머니의 엄마도 돌아오게 해달라고 기도했습니다. 며칠이 지나'할머니의 할머니의 할머니..'라는 무한의 개념을 자연스럽게 깨우치며, 나는 그 막막함에 오열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 소원은 '당연히' 이루어지지 않았습니다. 어린 소녀의 첫 환상은 그렇게 '당연히' 그리고 황급히 막을 내렸습니다. '환상'에 대한 막연한 반감과 무관심은 아마 그때부터였던 것 같습니다.
해리 포터는 물론이고 반지의 제왕, 마블 시리즈 등 나의 현실과 맞닿아 있지 않은 그 어떤 것도 나에게는 관심 밖이었습니다. 내가 닿을 수 있는 거리, 예측하고 준비할 수 있는 미래, 심지어 감정들조차도 내가 공감할 수 있는 현실 속에 존재할 범위까지. 나의 현실 속에서 나는 그렇게 살아 왔습니다.
하지만, 나이가 들면서 내가 몰두했던 '현실' 역시 결국 '환상'이었다는 생각이 듭니다. 드라마 '카이스트'를 보며 과학고 진학을 꿈꾸던 풋내기 중학생은 결국 과학고는커녕 외고 입시에도 실패했습니다. 지인이 선물로 준 도쿄대 샤프에 마음이 쏠려 '도쿄대 국비장학생 입학'을 꿈꾸던 고3 학생은 물리에 소질이 없어 시험도 치르지 못하고 마음을 접어야 했습니다. 좋은 성적, 좋은 대학, 좋은 직장을 가지면 잘 살 거라는 어른들의 말조차 현실은 아닌 것 같습니다. 물론, '잘 산다'라는 것이 돈을 많이 벌어 여유롭게 사는 물질적인 목표에 한해서지만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여전히 이뤄낼 수 있을 법한 환상을 꿈꾸며 그것을 '희망'이라 부르고 있습니다.
피터 팬을 읽으며 날아가는 것을 꿈꿨던 친구들은 자신이 날지 못한다는 것을 언제 깨달았을까요? 기분 좋은 상상이 이뤄질 수 없는 비현실적인 환상이 되는 순간을 딱 찍어낼 수 있는 친구는 많지 않을 겁니다. 그러나 결국 꿈을 꾸던 친구든, 꿈꾸지 않았던 친구든, 마법학교를 가길 원했던 친구든 과학고를 꿈꿨던 친구든, 우리는 모두 낮고 높은 '환상'을 먹으며 현실이라는 삶을 견디고 있는 것 같습니다.
도쿄대 입학을 포기당한 후 나 자신에게 분노하며 쓴 메모입니다. 환상은 멀지 않아요. 현실에 환상은 늘 함께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