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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현무 Sep 25. 2024

명절단상

해마다 명절이 돌아오면 불거지는 고부갈등.

지금은 그래도 많이 덜해졌겠거니 했는데, 인터넷에 끊임없이 관련된 드라마 영상들이 올라오는 걸 보면 여전한 것 같다.


시부모들은 여전히 며느리가 명절 때가 되면 알아서 와서 음식준비를 할 거라고 기대를 하지만, 요즘 며느리들이 그런 부당한 요구에 네네 하면서 굽신거릴 리도 없고, 아들들은 스스로 깨어있다고는 생각하지만 일 년에 몇 번 되지 않는 명절 때마다 조목조목 부당함을 주장하는 아내가 마음에 들지는 않지만 딱히 반박할 말은 떠오르지 않는데, 그렇다고 대한민국 기혼남들의 특기인 효자 코스프레를 안 할 수도 없으니 갈등이 끊이지 않는다.


인터넷에는 일 년에 한 번뿐인데 그렇게 빡빡하게 굴 필요 있냐는 글들도 여전하지만, 추석은 한 번이지만, 설날도 있고, 심지어 제사까지 지내는 뿌리 깊은 양반님 댁들도 많으니 일 년에 한 번 뿐이라는 말은 공허하다.

결혼할 때 시부모의 경제적인 지원을 받았으니 받은 게 있으면 할 도리를 하라는 글들은 요새 들어 부쩍 늘었다. 아마도 경제가 좋지 않으니 결국 금전으로 입막음을 하려는 시도가 늘은 듯한데, 그러게 따지면 혹시 결혼할 때 혼수를 처가에서 받았다거나, 평소에 육아나 음식 같은, 처가의 도움은 전혀 없었던 걸까?

아니, 혹, 그런 게 전혀 없었다면, 그런 논리대로라면 결국 결혼 때 있었던 경제적 지원은 향후 명절 시 가사제공계약의 대금이라고 보면 될 듯싶은데 그러면, 그거만 하면 나머지 며느리로서의 의무 같은 건 안 해도 되는 건가?


아마 시대가 변한 만큼 6~70년대처럼 대놓고 며느리에게 구박을 하는 시부모들은 없겠지만, 그 사람들의 "그래도 이 정도는 해야 되지 않나?"라는 압박도 불쾌한 일이다.

남의 집안일에 '이 정도'는 없다. 애당초 남자 집안의 일이고, 혹 며느리가 와서 전 한 조각이라도 부쳐준다면 '남의 일'을 도와주는 것이니 감사해야 할 일이지, 마땅히 해야 할 일은 아니다.

차례 끝나고 처가에도 가면 될 것 아니냐라는 말도 공평하지 않다. 그렇게 공평함을 얘기하고 싶다면, 번갈아가면서 한 해는 남자집먼저, 다음 해는 여자집 먼  가야 하는데, 문제는 이렇게 간다고 하더라도 우리나라에서는 공평하지 않다는 것이다. 결혼을 한 사람이라면 알겠지만, 시댁에서 며느리가 받는 대우와 처가에서 사위가 받는 대우는 전혀 다르다.

며느리가 시댁에서 부엌데기에 준한다면, 처가에서 사위는 손님이다. 며느리는 주방에서 음식장만과 설거지를 맡아 하지만, 사위는 방에서 장인어른과 술잔을 기울이며 대화를 나눈다.


혹, '나는 처가에 가면 설거지도 하고 청소도 한다.'라면서 부정하지는 말자. 하다못해 드라마나 영화만 봐도 어느 쪽이 일반적인 모습인지 알 수 있으니까.


끝으로 나는 이 글에서 남자의 집은 '시댁'이라고 높임말을 썼고, 여자의 집은 '처가'라는 단어를 썼다. 이 표현의 부당함이 느껴졌다면 다행이다.

처가댁은 역전 같은 이중표현이니 마땅치 않긴 하지만, 처가를 처가나 처갓집이라고 부르고 싶으면, 앞으로 시댁도 시가라고 부르자. 


이미 그렇게 부르고 있으면 다행이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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