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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재원 Feb 17. 2020

고양이를 걱정하는 모순된 삶

하나만 하고 살고 싶습니다

새로 옮겨온 이 동네에는 길을 떠돌아다니는 고양이가 꽤 많다. 이 동네로 온 지 겨우 두 달 지났을 뿐인데, 벌써 눈에 익은 고양이들이 생겼다. 밥을 먹으러 나가다가, 그리고 돌아오는 길에 마주치면 반가운 얼굴들이다. 이 녀석들은 길거리 생활을 하고 있음에도 잘 먹고 다니는지, 한결같이 몸통이 투실투실하다. 아마도, 어딘가에서 밥을 잘 먹고 다니는 모양이다.



무단 주택침입을 하는 고양이들

이 녀석들은 길에서 마주치는 것뿐만 아니라, 무단 가택침입을 해서 어색한 모양새로 만나곤 한다. 허락해준적도 없는데 마치 자기 자리인듯, 마당에 주저앉아 졸다 가는 일은 예삿일이다. 한 번은 옆집 지붕을 훌쩍 타고 2층 베란다로 넘어오다가 의자에 앉아서 여유를 부리는 나와 눈이 딱 마주친 적이 있다. 사람과 눈이 마주친 게 놀라서 훌쩍 도망칠 법도 한데, 까맣고 하얀 고양이는 그대로 주저앉아 내 눈을 똑바로 바라보다가 그루밍하는 여유를 보여주기까지도 했다. 길거리 삶의 애환이 느껴지지 않는 이 도도함은 어디서 나오는 것인지.



"고양이한테 밥 주다가 걸리는 사람 있으면 사형입니다!"


이 동네로 이사온지 얼마 안 돼서, 길고양이들이 많다는 것을 알게 되었을 때 나는 동료들에게 고양이에게 밥을 주지 말 것을 강조했다. 우리는 사무실에서 고양이를 기를 생각이 없으니, 책임지고 데려다가 직접 기를 것이 아니면 밥을 주지 말라는 것이었다.


창가에 고양이가 앉아있다고 하면, 신이 나서 뛰어와서 구경하고 사진을 찍고서야 만족한 표정을 짓는 내 동료들에게는 퍽 가혹한 이야기였을지도 모른다. 몇몇은 꽤나 시무룩했고, 몇몇은 제법 날 이해해주었다. 아마 몇몇은 내가 잔인한 사람이라고 속으로 흉을 봤을지도 모른다. 나는 고양이를 좋아하지만, 고양이를 좋아하는 사람들도 좋아하지만, 우리의 행동으로 인해 주변에 피해를 끼치기는 싫다.


까맣고 하얀 아이는 항상 눈이 마주친다
고양이들의 핫플레이스가 되었습니다. 숙박료를 받아야할 것 같은 그런 느낌.

이런 내 마음을 아는지 모르는지, 우리 사무실은 고양이들의 핫플레이스가 되고 있다. 밥 한 번 준 적 없는 매정한 사람이 일하고 거주하는 공간에 무슨 미련이 그리도 많은지. 하루에도 몇 번씩 그네들의 토실토실한 엉덩이를 보여주곤 한다. 볕이 드는 오후 두 시 무렵이 되면 한두 마리씩 창가에 찾아와 졸다가 가기도 하고, 어떤 녀석은 대놓고 드러누워 푸지게 자다가 가기도 한다. 그런 자신들이 관찰당하는 것을 아는지 모르는지, 그리고 이렇게 초상권이 팔리는 것을 아는지 모르는지.




아침에 눈을 뜨니, 세상이 하얗다. 하늘에서는 겨우내 내리지 않던 눈이 내리고 있었다.

커피를 한 잔 내려서 눈 구경을 하며, 눈이 오는 사진을 찍어 놓고 보니, 그제야 사진첩에 있는 고양이들이 눈에 밟힌다.

눈이 많이 오던 하루였다

창가에 앉아 날도 춥고, 눈도 푸슬푸슬 내리는데 이 녀석들이 어디서 눈을 맞고 다니지는 않을지 걱정하는 내가 있다.


오후 세 시가 넘었는데도 두 시만 되면 항상 찾아오던 녀석들이 나타나지 않아서, 내심 더 걱정하기 시작할 무렵 저 멀리서 노랗고 하얀 고양이가 타박타박 걸어오는 모습을 보았다. 녀석은 옆집 처마 아래로 거침없이 걸어가더니, 눈을 피해 누워서 한참을 뒹굴었다. 내가 걱정했던 것을 아는지 모르는지, 세상 평온한 표정으로 뒹굴곤 만족한듯 눈을 맞으며 내 시야 밖으로 사라졌다. 아마도 눈을 맞지 않을 수 있는 곳으로, 그리고 아마도 나와는 달리 마음씨 좋은 사람이 밥을 주는 곳을 찾아갔을 거라고 믿는다.




내일은 눈이 오지 않았으면 좋겠다. 오후 두 시가 되면 베란다에 녀석들이 찾아오면 좋을 것 같다.

겨울이 지나고 봄이 와도, 이 녀석들을 볼 수 있으면 좋겠다. 따뜻한 밥을 제공해줄 수는 없지만, 베란다 정도는 기꺼이 제공해줄 수 있는, 어디서 굶고 다닐까 봐 걱정하지는 않지만, 어디서 비를 맞지는 않을까 걱정하는 나는 그런 모순된 사람이다.


실외기 앞에서 졸고 있던 하얗고 노란 녀석. 얘가 제일 푸지게 잘 자는 것 같다. 그리고 살도 쪘어.

새벽에 눈을 떴더니 밤새 눈이 많이도 왔다.

눈을 치우러 밖으로 나가서 보았던 오늘의 귀여움 하나.


과연 고양이들의 핫플레이스였습니다.

들어온 발자국은 없는데, 나간 흔적만 있는 걸 보니, 두 마리가 지붕 밑에서 밤새 눈을 피했었나보다. 어딘가서 눈을 잘 피하고 있겠거니 생각했는데, 어디가지 않고 잘 피하고 있었다네.


남은 추위가 갈 때까지 녀석들이 건강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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