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다에서 보낸 첫날밤
7월 25일, 예정보다 1시간 늦은 오전 7시에 우리는 스페인 히혼 Gijon 방향으로 출항을 시작했다.
출발 당시 바다는 꽤 고요한 편이었다.
10시_
야심 차게 준비한 고등어 낚싯줄을 술술 풀었다. 고등어를 잡기 위해선 속력이 나선 안되는데 바람이 잔잔해서 이 때다 하고 한 1시간여 동안 줄을 풀어놨던 것 같다. 조금만 속력이 나도 줄 끝의 추가 수면 위로 튕튕 튕겨져 나왔다. 그러다 어느 순간 바티가 어 어! 하더니 줄 저 끝에 매달려서 끌려오는 고등어 한 마리를 발견했다. 녀석이 입을 쩍 벌리고 대가리에 칼을 찔러도 꿈쩍도 하지 않는 것으로 보아 이미 물 밑에서 사투를 한참 벌이다 죽어 있었던 걸 우리가 뒤늦게 발견하고 끌어올린 것 같다. 바티는 '고등어야 고마워'라고 했다. 나는 오늘 점심은 고등어다! 하며 항해 첫날부터 좋아라 했다.
12시_
갓 지은 냄비밥에 김도 한 봉 꺼내 올리브유를 좀 두른 프라이팬에 고등어를 반으로 갈라 자반구이를 해 먹었다. 둘이 먹기엔 좀 아쉬운 양이었지만 정말 신선했고 맛있었다. 바티는 지난번 한국에서 갔던 집 근처 생선구이집이 생각난다고 했다.
오후 3시_
내가 1시간 반 동안 아무 꿈도 꾸지 않고 잘 자고 기분 좋게 일어나서 선실을 나오니 바티는 '여기가 바로 물의 사막이야. ocean이라 불리는' 이라며 나를 물의 사막으로 안내했다. 내 눈 앞에 펼쳐진 것은 거대한 세트장 같은 바다와 파도와 구름이었다. 그것들이 너무 일률적이고 완벽해서 나는 누군가 조성해 놓은 장면 scene 안에 들어와 있는 듯한 인상을 받았다.
우리는 이보다 더 좋을 수 없는 조건에 항해를 하고 있었다. 바람도 적당히 불고 파도도 그리 높지 않고 해도 드문드문 고개를 내밀었다.
5시 10분_
교대로 바티가 낮잠을 1시간을 자고 일어나자마자 배 오른편으로 돌고래 한 마리가 지나갔고 뒤이어 4마리가 여기저기서 나타났다. 저 멀리 나무판자가 파도에 넘실거리며 떠 다니는 게 보였고 더 자세히 보니 그 위에 작은 바다새 두 마리가 판자 위에 내려앉아 쉬고 있었다.
바티는 바람의 방향에 따라 알아서 키를 조정해주는 régulateur d'allure를 제작했는데 갑자기 '죠지'라고 부르자고 했다. 나는 '죠지'는 이미 우리 선인장 이름이니 항해 내내 즐겨들었던 비틀즈의 Michelle을 떠올리며 '미셸'이 낫겠다고 했다. 바람이 세지니 미셸이 더욱 자기 역할을 잘 수행했다.
바라미는 우리를 올바른 곳으로 데려다주고 미셸은 알아서 키를 조정하고 심심찮게 돌고래며 새며 고등어까지 잡혀주니 모두가 이 씬 scene 안에서 각자 맡은 역할을 열심히 해주고 있었다.
우리가 이 작은 배로 바다를 건너는 게 단지 젊음의 객기나 무모함이라기보다는 우리 사정에 꼭 맞는 여행을 하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배가 작은만큼 바다와 더 가깝고 돌고래들도 바로 옆에서 볼 수 있고 파도의 일렁임도 바람도 정직하게 다 느낄 수 있었다. 나이가 더 들고 경제적 여유가 생길수록 큰 배의 안락함을 찾는다고 한다. 배가 더 커지고 편안해질수록 바다와는 멀어진다. 그때에는 그에 맞는 여유를 가지고 바다를 보게 되겠지.
바다에서 보는 석양.
어둠은 순식간에 찾아왔다. 9시가 넘어가고 10시가 넘자 완벽한 암흑이었다. 뻗은 내 손도 보이지 않을 만큼 깜깜했다. 3시간씩 번갈아 가며 교대하기로 해서 내가 먼저 새벽 1시까지 안 자고 항해를 했다. 둘 중 한 명은 깨 있어야 하는 이유가 유조선과 부딪치지 않기 위해서다. 어마어마한 유조선의 불빛을 보지 못하고 부딪치기라도 한다면 정말 바위에 계란 치기 격인 우리는 그대로 사라져 버릴 거다.
11시쯤 되자 지상의 모든 별이 반짝거리기 시작했다. 어릴 적에 종이 위에 색색깔의 크레파스를 칠하고 검은색 크레파스로 다 덮은 뒤 이쑤시개로 별 모양을 그리면 무지개색의 별들이 하나씩 까만 종이 위에 나타나는 것과 똑같이 어둠이 내려앉을수록 그만큼 더 많은 별들이 반짝였다. 지구본 안 쪽에 들어가 동그란 하늘에 떠 있는 별들을 보는 느낌이었다. 가장 낮은 별의 위치로 수평선을 가늠할 수 있었다. 신기하게도 배경이 되는 하늘에 일차적으로 무수히 떠 있는 별들이 있었고 그 위로 두 번째 장막처럼 더 밝고 더 선명하게 빛나는 별들이 점점이 박혔다.
졸리기는커녕 정신이 더 번쩍 들었다.
그렇게 잔잔한 파도를 가르며 쉬익 쉬익- 나아가는데 어떤 생명체가 배에 불시착했다. 키를 잡고 선미 조타석에 앉아있던 나를 살짝 스치고 뭔가가 배 안으로 떨어졌고 나는 너무 놀라 소리를 지르기 시작했고 선실에서 자고 있던 바티가 자다가 버선발로 뛰쳐나와 그 비몽사몽한 정신에 같이 소리를 지르며 '무슨 일이야!'라고 했다. 순간 바티는 유조선이 우리 코 앞에라도 있는 줄 알고 정말 죽을만한 상황에 처한 줄 알았다고 한다. 나는 소리만 지르다가 뭐가 배 안에 떨어졌다고 가까스로 말했고 바티가 손전등을 비춰보니 그 범인은 손바닥만 한 작은 새로 밝혀졌다. 한참을 날다가 너무 지친 나머지 우리 배에 바로 탑승하기에 이른 모양이었다. 그 새는 바티의 신발 사이에 자리를 잡고 그 후로 내가 자러 들어가서 깰 때쯤에 다시 푸드덕거리며 날아갔다고 한다. 신발 사이에 똥까지 찍 싸고 갔다.
지금도 이때를 생각하면 낄낄 웃음이 나온다. 나도 너무 놀랐지만 바티도 너무 놀라 잠도 덜 깬 상태에서 무슨 일이냐고 뛰쳐나와 혼을 쏙 뺀 걸 생각하면.. 불시착한 작은 새 덕분에 에피소드가 하나 늘었다.
다음날 아침 해가 밝아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