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정적인 항해가 이어졌다. 다만 첫 날밤을 교대로 샌 까닭에 아침과 낮을 가리지 않고 쪽잠을 잤다.
돌고래들이 연이어 오전 10시에서 12시에 나타났다. 이 때도 혁오 밴드 노래를 듣고 있을 때라 우연인지 아닌지, 혁오 밴드가 돌고래의 취향까지 저격한 건가 하는 말도 안 되는 생각을 하고 혼자 큭큭댔다.
불쑥 한 마리가 어디선가 예고도 없이 나타난다. 조금 지나면 여러 마리가 배의 양 쪽에서 우후죽순으로 튀어 오른다. 이런 야생동물 무리를 본 적이 없는 나로서는 돌고래 떼만 나타나면 좋다고 꺅꺅 소리를 질렀다. 그래서 내가 찍은 동영상에는 배경음으로 내 꺅꺅거리는 소리가 같이 녹음되어 있다.
이건 필름 카메라로 돌고래를 찍은 사진들이다. 옛날 자동 필카라 셔터를 누르면 지잉- 하고 1초 정도 뒤에 '찰칵'하고 찍히는 형식이라 내가 셔터를 누른 순간 수면 위로 나온 돌고래는 정작 사진이 찍히는 1초 뒤에는 이미 해수면 아래로 들어가고 돌고래가 수면에 만들어 놓은 뿔만이 카메라에 잡혔다.
나만 보이는 돌고래 사진인 셈이다. 하하
전혀 예상치 못한 순간에, 방심하고 있을 때에 불쑥 나타나는 이 녀석들이 망망대해에서 너무나 반가웠고 의지가 돼 주었다. 역동적으로 살아 움직이는 이 무리들을 볼 때면 나도 덩달아 에너지가 솟았다. 10번을 더 만나도 그때에도 꺅꺅거리며 반길 거다.
항해 중에는 어차피 한두 시간씩 쪽잠을 자는 거라 또, 맨 안 쪽보다는 이렇게 배의 옆구리 부분이 흔들림을 덜 느끼기에 우리는 이 곳에 베개와 이불을 가져와 번갈아 가면서 잠을 청했다. 새벽 교대시간에 상대를 깨우고 바통 터치를 하고 물을 끓여 차와 함께 비스킷이나 건과일 등을 준비하고 옷을 단단히 껴 입고 나는 허리춤에 혹시 모를 사고를 대비해 밧줄을 연결한 안전장비를 끼고 선실을 나간다. 그러면 나머지 한 사람은 잠에 든다.
낮엔 직사광선으로 내리쬐는 햇빛에 긴팔 긴치마를 입었더랬다. 안 그러면 살이 다 익을 것만 같았다. 거기다 바다 수면에 반사되는 눈부신 햇빛에 선글라스와 모자가 머리의 일부인양 세트로 항상 착용했었다. 맘 놓고 씻을 수가 없어 선크림을 대충 바른 탓에, 바다를 건너오는 동안 선글라스를 낀 부분은 타지 않았고 그 밑으로는 군밤처럼 타서 여자 엄홍길 대장이 된걸, 스페인 히혼에 도착해서 지나가던 유리창에 비친 내 모습을 보고서야 알았다.
사방을 둘러봐도 물이었는데 저 멀리 육지가 보였다. 그 옛날 탐험가들이 외친 것과 똑같이 바티와 나는 기쁨에 가득 차 '저기 땅이 보인다아!!' 하고 외쳤다. 그렇게 57시간의 항해 끝에 우리는 스페인 히혼 Gijon 땅을 밟았다.
처음 바다를 건넌 기념사진, 한국에서 주문한 셀카봉으로 찰칵!
와인 한 잔을 홀짝이며 기분 좋은 음주 항해. 베테랑 항해사 인척!
우리가 물 밑에 들어갔다 나온 뒤 한동안 말이 없었던 이유는 수면 아래가 정말로 처음 보는 세계였기 때문이다. 신세계를 체험하면 새로운 감각들에 뇌가 놀라게 되고, 익숙한 구세계를 달리 보게 되고, 신세계의 영토만큼 넓어진 머릿속 세계지도에서 자신의 위치를 다시 찾게 된다. <5년 만에 신혼여행> 장강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