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 여정이 담긴 순수한 항해일지로서의 항해 유람기를 책 출간 형태로 약간의 수정을 거쳐 몇몇 출판사에 보낼 기회가 있었다. 브런치에 항해 유람기를 연재할 때부터 출판할 생각이 있었기에 긍정적인 답변에 대한 기대도 했던 것 같다. 그런데 웬걸. 어느 출판사에선 오히려 항해 유람이라는 소재의 특이성과 희귀성 때문에 대중서로 내긴 힘들 것 같다는 답변을 들었고 또 다른 출판사에선 오매불망 6개월이 넘게 답변을 기다리고 있는 상황이다. 사실 두 출판사 모두 내로라하는 작가들의 책만 출간하기에 나는 피드백 정도라도 받았음 했는데 더 이상 기다릴 수만은 없게 되었다.
시를 가르쳐주신 선생님과 고양시립 도서관 사서 선생님과 언제 김치찌개에 맥주를 점심으로 하며 물었었다.
독립출판까지 포함해 이렇게나 많은 책이 쏟아져 나오는데 이런 시대에 책을 낸다는 건 어떤 의미인가요? 숨겨진 질문은 이런 시대에 나까지 꼭 책을 내야 하나 하는 스스로에게 던진 해결되지 않은 의구심이었다. 그렇다면 누가 나의 책을, 어떤 이유로 사서 읽을 것인가. 물론 가상 독자의 개인적이고 의외일 수도 있는 동기에 대해서까지 예상을 해서 그 입맛에 맞출 필요는 없겠지만 적어도 인터넷 상에 연재하던 글을 돈과 시간을 들여 종이책으로 낸다면 나 자신을 납득시킬만한 그럴만한 동기가 내겐 필요했다. 항해 유람기를 통해 어떤 이야기를 하고 싶은 건지 정도는. 내가 기억하는 시인 선생님의 답변은 이러했다.
누구나 글을 쓰고 책을 내기 때문에 소재의 다양성은 생겨났지만 그만큼 좋은 글에 대한 대중의 갈망도 늘었고 좋은 글은 그만한 가치와 의미를 더하게 된다.
그리고 선생님이 물으셨다. 어떤 여행기예요? 어디에 좀 더 포커스를 둘 거예요?
나는 주저 않고대답했다. 모험이요. 무모하고 두려움과 호기심을 가지고 내가 잘 알지 못하는 미지의 것에 대해 일단 발을 떼 봐야만 그 실체를 알 수 있고, 알아가는 여정이요.
내가 아는 세계를 넘어선 곳에 다른 무언가가 있을 거라는 무모하고 막연한 기대감, 설렘, 두려움, 호기심이 한데 섞였다. 마냥 유쾌하지만은 않은 경험들도 있을 거라는 경험자 b의 충고도 있었지만 나로서는 그 발자국을 떼지 않을 이유가 없었다.
내가 이제껏 발 딛고 살아온 땅을 떠나 망원경을 끼고 사방을 둘러봐도 물뿐인 망망대해에서 다시금 내가 떠나온 땅과 같은 육지로 가기 위해 세상에 둘만 남겨진 것처럼 배를 타고 나아가는 장면은 지금 생각해도 꿈만 같다. 앞으로 살아가면서 언제 또 이런 비현실적인 장면에 놓일 수 있을까. 내가 가장 경이롭고 두려웠던 순간은 배의 크기에 맞먹는 야생동물을 먼저 배 안에서 울리는 소리로 짐작한 후 얼마 지나지 않아 배 가까이에서 몸통의 윗부분을 드러내 마주했을 때이다. 세상에 이렇게 큰 생명체도 존재하는구나, 수면 아래에 잠긴 몸이 6미터에 달하는 우리 배만 하겠구나를 가히 짐작하면서 그 거대한 존재가 어떤 행동을 취할지 두려워 몸이 떨렸었다.
다행히 나는 혼자가 아니었기에 그 모든 경이로움과 환희와 두려움의 순간들을 나눌 누군가가 있었고 그와 함께였기에 외롭지 않은 동시에 엉엉 소리를 내며 울 정도로 외로웠고, 머리를 숙이고 들어가야 할 만큼 작은, 항해 내내 파도에 이리저리 흔들리는 작은 성냥갑 같은 공간 안에서 여러 날을 함께 지내야 했기에 참거나 끝내 참지 못해 나 자신을, 그를, 우리를, 배를 달랬던 수많은 순간들이 있었다.
표면적으로는 '중고 요트를 사서 프랑스에서 스페인까지 바다를 건너 항구도시들에 정박하고 다시 돌아오는 여행기'인데 이만큼 시간이 흐르고 나니 이 여행에 대해 전혀 다른 얘기를 하게 될 수도 있을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인지 첫 문장도 선뜻 뗄 수 없어 한참을 돌아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