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로나19로 인해 발이 묶인 요즘, 답답하고 아쉬운 마음을 달래는 데 가장 필요한 것은 '감각의 전환'이다. 그중에서도 '후각의 전환'이 필요한데, 후각은 뇌와 연결되어 있어 가장 직관적으로 마음에 와 닿기 때문이다. 또한 향수 중에는 여행지나 장소에 영감을 받은 제품도 많다. 이를 위해, 한 순간에 훌쩍 나를 여행지로 보내주는 몇 가지 향수를 소개해 보려 한다. 광고는 절대 아니니 오해하지 마시길.
루이비통 애프터눈 스윔 (Afternoon Swim) 100ml, 38만 원
'오후의 수영' 이라는 직관적인 이름답게, 어느 호텔의 고급 수영장에서 칵테일을 마시며 수영하는 듯한 향이다. 여행지의 오렌지색 노을은 시칠리안 오렌지 향으로 담겼고, 여름 햇살에 찰랑찰랑 부서지는 수영장의 물빛은 눈부시도록 차가운 파란색 병에 담겼다. 딱 3가지 노트로만 구성되었음에도 향의 깊이가 남다른 것은, 조향사인 자크 카발리에 벨투뤼의 힘이다. 그는 그가 가장 사랑하는 시트러스 향조에 오마주를 바치기 위해 이 향수를 조향했고, 그 결과 상큼하면서 청량한, 아로마틱 시트러스 향수의 정수에 가까운 ‘애프터눈 스윔’이 탄생했다. 만다린 오렌지와 시칠리안 오렌지의 달콤하고 청량한 과육의 향은 수영장에서 먹는 칵테일의 향을 입안에 감돌게 한다. 루이비통이 구사한 이토록 아름다운 여름 오후의 수영, 끝나지 않을 영원한 여름을 만끽하기에 제격이다.
언제 뿌리면 좋을까? : 상큼함을 느끼고 싶을 때, 호텔 수영장에 놀러갈 때
바이 킬리안 문라이트 인 헤븐 (Moonlight in Heaven) 50ml 29만 원
뛰어난 예술가들은 필연적으로 달빛에 이끌렸다. 피아노 선율에 달빛을 담아낸 드뷔시가 그러했고, 달의 애달픔을 유화로 그려낸 에드바르 뭉크가 그랬다. 어딘가 미친 사람을 ‘루나틱’이라 부르는 것도, 태양 아래서는 차마 제정신일 수 없었던 예술가들의 마음과 맞닿아 있는 표현일지 모른다. ‘바이 킬리안’의 창시자 킬리안 헤네시 역시 집안 대대로 코냑을 만들어 왔던 '헤네시(Hennessy)' 집안의 상속자이자 향수를 만드는 예술가다. 그는 자신의 향수가 예술작품의 하나가 되길 원했고, 그 일환으로 ‘달빛 예찬’ 향수를 제작했다. ‘문라이트 인 헤븐’이라는 이름의 이 향수는 킬리안이 신혼여행지에서 영감을 받아 만들어낸 향수다.
신혼여행 차 떠났던 태국의 한 열대지방에서 그는 벨벳처럼 부드럽고 촉촉한 망고 라이스 푸딩을 처음 맛보았고, 사랑하는 사람과 함께 달빛을 맞으며 먹는 달콤한 디저트의 향을 이 향수에 담았다. 밤바다를 연상시키는 파란색 병, 레몬과 생 자몽이 어우러진 시트러스 노트와 이국적인 망고, 촉촉한 코코넛 밀크 향이 부드럽게 조화돼 은은하면서도 강렬하다. 사랑하는 연인과 달콤한 망고, 그리고 열대지방의 밤바다, 달빛까지! 가히 ‘천국의 달빛’ 이라 불러도 손색 없는 향이다.
언제 뿌리면 좋을까? : 사랑하는 사람과 휴가를 떠날 때, 밤 바다를 바라볼 때
산타 마리아 노벨라 카라 로사 (Cala Rossa) 50ml 29만 원
이탈리아 카프라이아 섬에서 바라본 수평선과 반짝이는 태양 빛에서 영감을 받은 향수다. 카프라이아 섬은 지중해에 있는 이탈리아령 섬으로, 토스카나주 서쪽의 리구리아해와 티레니아해 사이 토스카 군도에 속하는 작은 화산섬이다. 이 화산섬의 모습을 담은 ‘카라 로사’는 민트와 유칼립투스, 우디의 싱그러운 향에 시트러스의 상쾌함이 어우러져 마치 나를 지중해의 외딴 섬에 데려다주는 듯하다. 수풀 속 숨겨진 길을 따라 걷다 마침내 마주한 바닷가, 바람을 타고 콧속으로 잔뜩 밀려들어 오는 짠 기운과 지중해 라벤더의 향기. 따사로운 햇살과 바닷바람에 실려 오는 시원한 그린 발사믹의 향긋함이 미처 떠나지 못한 여름 휴가의 아쉬움을 달래주듯 반짝인다.
언제 뿌리면 좋을까? : 지중해의 바닷바람을 느끼고 싶을 때, 일요일 오전 나른함을 느끼고 싶을 때
메종 마르지엘라 뮤직 페스티벌 (Music Festival) 100ml 12만 5000원
코로나19로 인해 사라진 것 중 가장 아쉬운 것 하나, 페스티벌이다. 여름날의 열기와 청춘, 음악이 한데 모여 바글바글 끓다 못해 폭발하는 젊음의 장소. 올해는 대부분의 페스티벌이 취소됐지만, 그 아쉬움을 달래줄 향수가 있다. 바로 ‘메종 마르지엘라 레플리카’의 ‘페스티벌’이다. 우디 앰버리한 향으로 시작해 활기와 열정을 보여주는 레드 애플 어코드, 음악을 즐기는 젊음과 땀 흘리는 신나는 마음까지 가득 담겼다. 파츌리와 가죽 향은 한여름 더위에도 오직 ‘멋’만을 위해 가죽 재킷을 입고 춤추는 젊은이를 연상시킨다.
또한, 이 향수에서만 볼 수 있는 독특한 점 하나가 있는데, 바로 ‘대마 향’을 사용했다는 것이다. 알싸한 풀 냄새와 탄 듯이 매캐한 대마초의 향이 달콤한 사탕 향과 어우러져 마냥 건전하지만은 않은 뉘앙스를 잔뜩 풍기는데, 대마 냄새를 맡아본 혹자는 ‘너무 대마초 향과 똑같아서 놀랐다’라는 평가를 남기기도. 비록 페스티벌이 그리운 진짜 이유(?)와는 거리가 있지만, 이렇게라도 뮤직 페스티벌과 젊음의 열기를 느껴볼 수 있다는 것은 분명히 이 향수를 특별하게 만들어 주는 점 중 하나다.
언제 뿌리면 좋을까? : 축제에 갈 때, 금연 중 담배 비슷한 것의 냄새를 맡고 싶을 때
조 말론 런던 워터릴리 코롱 (Water lily Colonge) 50ml 9만 7000원
서울은 활기찬 도심의 면모를 지녔으면서, 궁궐들과 그 속의 정원에서 느낄 수 있는 전통적 고요함이 공존하는 반전의 도시다. 서울이 지닌 이 매혹적인 모순을 조 말론 여사도 느꼈나 보다. 한국에서도 인기가 많은 향수 브랜드 ‘조 말론’에서, 최초로 서울에 영감을 받은 향수를 내놓았다. 바로 ‘유자 코롱’과 ‘워터릴리 코롱’이 그것. 조 말론은 창덕궁 후원의 연못 위에 잔뜩 핀 수련에서 한국의 아름다움을 발견했고, 이를 향으로 풀어냈다. 빛을 오롯이 머금은 연못과 그 위에 보석처럼 피어 있는 워터릴리(수련)를 담은 ‘워터릴리 코롱’은 이미지만큼이나 맑고 고요한 플로랄 향이다. 탑 노트에서는 상쾌하고 깔끔한 그린 플로럴이, 미들 노트로 갈수록 이슬 맺힌 꽃잎의 은은한 향과 싱싱한 초록빛 잎의 수련 향이 맴돈다. 잔향은 깔끔한 머스크로 남아 마치 아침과 점심, 저녁의 창덕궁처럼 우아하고 평화로운 향기를 느낄 수 있다.
언제 뿌리면 좋을까? : 궁궐 나들이 갈 때, 격식 있는 자리에 갈 때, 고즈넉한 기분을 느끼고 싶을 때
더샘 블룸 인 소피아 불가리아 (Bloom in Sofia Bulgaria) 30ml 1만 6000원
불가리안 로즈는 세계에서 가장 비싸고 아름다운 꽃으로 알려져 있다. 이처럼 세계 최고의 장미인 ‘불가리안 로즈’의 원산지가 바로 요거트 이름으로만 알았던 '불가리아'다. 로사 다마스세나. 로즈 밸리로 알려진 불가리아의 소피아는, 온화한 기후와 햇볕이 잘 드는 산들 사이에 자리 잡고 있어 장미 재배에 완벽한 조건을 갖춘 몇 안 되는 장소 중 하나다. 불가리아는 16세기 초부터 불가리안 로즈를 활용해 장미 오일을 만들었으며, 19세기에는 세계 선두가 됐다. 불가리아에서는 매년 5~6월의 장미 수확 기간 동안 오랜 전통인 ‘장미 카니발’을 여는데, 이때 온 거리에서는 불가리안 로즈 향이 진동하고 마치 ‘장미 천국’에 온 듯 사방에 장미 그림과 꽃잎을 볼 수 있다. 더샘의 ‘블룸 인 소피아 불가리아’는 이처럼 발길 닿는 곳마다 장미로 가득한 불가리아의 수도 소피아를 표현한 향수다. 투명한 햇살 아래 활짝 핀 붉은 로즈, 이슬을 가득 머금은 풋풋한 풀 내음, 깨끗한 머스크가 조화돼 여름에 쓰기에도 텁텁하지 않고 깔끔한 느낌을 준다.
언제 뿌리면 좋을까? : 우아한 장미 향이 맡고 싶을 때, 산책 나갈 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