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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태웅 Jan 05. 2023

민주당이 해야할 일 - 2

진정한 수권정당이 되려면 

구조의 무능, 무능의 구조 


“그럴 것 같지 않다.”

 홍남기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장관은 못을 박듯 말했다. 정일영 의원이 “국회에서 (전국민 재난지원금 지급을) 논의하면 따를 것인가?”라고 물은 데 대한 답이었다. 전날 김부겸 국무총리는 “국회에서 합의한 뒤 요청하면 재검토할 수 밖에 없다”라고 했다. 그의 답은 김 총리의 발언도 뒤집은 것이었다. 2021년 7월16일의 일이다. 

그는 ‘신용카드 캐시백’도 고수했다. 3분기 신용카드 사용액이 2분기보다 많을 경우 늘어난 금액의 10%를 카드 포인트로 돌려주자는 것. 내수진작에 도움이 된다는 것이다. ‘꼭 필요한 사람에게 드리는게 효율적’이라며 재난지원금 선별지급을 고집하면서, 동시에 아무나 혜택을 받는 신용카드 캐시백을 하자는 건 모순처럼 들린다. 신용카드 캐시백의 맞은 편에는 지역화폐도 있다. 사용기한이 지나면 소멸하게 정해두고, 해당지역의 소상공인 점포에서 쓰게 하는 지역화폐의 소비 유발 효과는 여러차례 확인된 바 있다. 지역화폐와 달리 신용카드 캐시백에는 카드사에게 별도로 줘야하는 현금 지원과 카드 수수료 비용도 있다. 재정정책의 효과로 보더라도 지역화폐가 여러 모로 낫다. 하나, 결과는 홍 부총리와 기재부의 주장대로였다. 집권당도, 총리도 기재부의 뜻을 거스르지 못했다.  


 2021년 국세수입은 약 344조1,000억 원. 기재부 전망보다 61조4,000억 원이 더 걷혔다. 오차율은 21.7%, 1990년(22.5%) 이후 최대 수준이다. 기재부는 이런 틀린 숫자를 근거로 ‘나라 곳간이 비어가고 있다’며 끊임없이 민주당의 부양책에 딴지를 걸었다. 그 결과 시장에서 돌고 있었어야 할 돈 61조가 기재부의 곳간에 추가로 들어갔다. 경기과열때나 쓸 대책을 경기가 나쁠 때 쓴 꼴이다.  

2022년 2월, 1차 추경 논의 때도 마찬가지였다. 기재부는 14조원의 추경을 하려면 11조3000억원의 국채를 발행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리고 5월 10일, 윤석열 정부가 출범했다. 이틀뒤 새 정부가 59조4천억 원의 추경안을 의결하자 기획재정부의 입장이 돌연 뒤집혔다. ‘국채를 전혀 발행하지 않아도 된다’는 것이다.  

“올해 세금이 당초 전망보다 53조3천억 원 더 걷힐 것으로 보인다”라는 설명이 덧붙었다. 3개월 사이에 대체 무슨 일이 생겼길래?  

2008년 1월 28일 노무현 당시 대통령은 이명박 인수위의 정부조직 개편안에 대해 거부권을 행사할 것을 시사하며 이렇게 말했다

기획예산처 독립하고 나서 문화,환경.인권.복지예산 늘어나서 경제분야 예산보다 늘어났다. 예산구조 어떻게 변화할까. 우리 경험상 경제부처는 경제계를 대변하고, 사회부처는 시민적권리를 대변해 왔다. 이제까지 경제부처 목소리가 사회부처보다 컸다. 좌파정부라는 소리를 듣는 참여정부에서도 마찬가지였다. 언론계.정계보다도 경제계의 목소리가 컸다. 그럼에도 사회부처 예산이 증액돼 온 것은 예산 기능이 독립돼 있었기 때문이다. 경제부처로 통합되면 다시 변화할 것이다. 사회적 약자 예산 앞으로 어떻게 될까.”

http://www.jejusori.net/news/articleView.html?idxno=42549 

 그는 당시 여당이던 민주당에게 이렇게 말했다. “재의요구를 검토하더라도, 미리 하지 말고 국회의 과정을 지켜보고 말하자는 의견도 있었다. 국회 맡겨둘 일이라고 핀잔하기도 한다. 저도 정치권이 어떻게 하나 지켜봤다. 사람들에게도 물어봤다. 그런데 (여당을 겨냥해) 통일부와 여성부는 존치시키는 것은 얘기하고 있지만, 부처 줄이는 숫자에 대해서는 수용하고, 부분적 기능조정을 모색하는 것 같다. 가족의 가치 중요성 살리고자 여성부를 확대 재편했다. 국가과학기술을 정비하고자 전략적으로 과기부를 확대 재편한 사실이나 국가균형발전의 핵심가치 구현하기 위해 특별법 만들었다는 것을 기억이나 하는지 의심스럽다. 예산처를 독립부처로 만든 것이 진보가치에서 중요한 일인지 알고나 있는 것인지 정말 물어보고 싶다. 

작은 정부론에 주눅이 들었는지, 여론눈치를 살피는지 알 수 없지만 무작정 믿고 기다릴 수 없었다. 참여정부 가치를 무조건 부정하는 것에 대해 국회에서 통과하고, 그때 재의요구를 하면 새정부에서 낭패를 보게 된다. 국회 통과 믿고 뒤통수 맞았다고 발목잡기한다고 온갖 비난 퍼부을 것 미리 예고하는 것이다.” 


2017년, 촛불혁명의 덕으로 다시 정권을 잡은 민주당은 박근혜 정부의 골격을 그다지 건드리지 않은 채 새 정부를 출범했다. ‘조기 국정안정’이 명목이었다. 예산 편성은 여전히 기획재정부의 몫으로 남았다. 그 결과는 우리가 본 대로다.

 민주당은 국힘당(자유한국당)이 만들어준 ‘구조의 무능’을 그대로 가져와서는 이윽고 ‘무능의 구조’를 만들어 냈다. 2008년, 노무현은 민주당에게 이렇게 말했다. “예산처를 독립부처로 만든 것이 진보가치에서 중요한 일인지 알고나 있는 것인지 정말 물어보고 싶다.


미 IRA법의 정체, 중산층 회복  


 지난 8월 12일 미 바이든 행정부와 민주당은 인플레이션 감축법(IRA, Inflation Reduction Act: 이하 IRA법)을 통과시켰다. 우리에게는 한국산 전기차들이 일거에 대당 약 천만 원대의 보조금을 받지 못하게 만든 법으로 잘 알려져 있다. 실은 그런 법으로만 알려져 있다. 

 IRA법의 모태가 된 것은 2019년 2월 미국 민주당 주도로 채택된 하원 결의안 109 ‘그린 뉴딜’ 결의안이다. 이를 실행하기 위해 ‘Build Back Better Act’법안을 추진했으나, 여의치 않자 예산을 축소해 만든 것이 IRA다. 그린 뉴딜의 목표는 다음과 같다. 


1) 모든 사회계층과 노동자에 대한 공정하고 정의로운 전환을 통해 온실가스 배출제로를 달성한다.

2) 적정임금의 좋은 일자리를 많이 만들어내고 전 미국민에게 번영과 경제적 안전을 보장한다. 

3) 21세기 도전에 지속가능한 방식으로 대응하기 위해 미국의 사회간접자본과 산업에 투자한다. 

4) 현 미국민과 후세대를 위해 깨끗한 공기와 물, 기후 및 공동체 회복탄력성, 건강한 음식, 자연에 대한 접근 및 지속가능한 환경을 보장한다. 

5) 최전선 취약계층에 대한 역사적 압제를 중지하고 예방하며 그 피해를 복구함으로써 정의와 공정성을 증진한다. 


즉, 최전선 취약계층에 대한 역사적 압제를 중지하고!, 노동자에 대한 공정하고 정의로운 전환을 하며, 적정임금의 좋은 일자리를 많이 만들어내 전 미국민에게 번영과 경제적 안전을 보장한다는 것이다.  

 하나씩 보자. 


1) 적정임금의 좋은 일자리 창출

 그린뉴딜은 에너지 및 산업의 전환 과정에서 좋은 일자리를 많이 창출하고, 에너지전환에 공감하는 기업가에게도 사업기회를 제공하여 미국의 새로운 번영을 이끄는 데에 실질적 목적이 있다고 할 수 있다. 주안점은 단순히 많은 일자리가 아니라 적정임금을 받는 좋은 일자리를 많이 만든다는 것이고, 일자리 창출 과정에서 미숙련공이 숙련공이 되어 안정된 생활기반을 마련하게 해준다는 것이다

<표1> 좋은 일자리를 위한 우대환급 내역


 <표1>에서와 같이 좋은 일자리의 창출을 위해 기본환급액의 5배에 이르는 대폭적인 우대환급을 지급한다. 해당 분야의 사업가가 노동자를 고용할 때, 해당 지역의 유사업종의 임금보다 높은 우대임금을 제공하고, 등록견습제도(Registered Apprenticeship)에 따라 일정비율로 견습공을 고용하여 이들에게 숙련공이 되는 훈련을 제공할 경우 이런 우대환급을 지급한다. 이에 따라 해당업종의 노동자는 적정임금을 받을 것이고, 해당지역의 미숙련공 혹은 직업전환이 요구되는 노동자는 안정된 기반에서 새로운 직업에서 숙련노동자로 성장해 적정임금을 받는 직업을 가질 수 있게 될 것이다.


2) 취약계층 우대를 통한 정의로운 전환  

 그린뉴딜에서 정의로운 전환을 위해 배려되어야 할 최전선 취약계층(frontline vulnerable communities)은 유색인, 원주민, 이민자, 탈산업 지역민, 농업지역 주민, 빈자, 저소득 노동자, 여성, 노인, 무주택자, 장애인, 청년 등으로 정의되어 있다. 취약층에 대한 배려는 여러 항목에서 우대환급에 더해 투자액의 10~20%씩 보너스환급 형태로 제공되고 있다. 

<표2> 취약계층을 위한 우대정책


3) 제조업 부흥을 통한 중산층 재생 

 좋은 일자리를 미국으로 가져오겠다는 의도도 분명하다. 이 법은 전기차 제조업, 태양광패널과 풍력발전기 제조업, 배터리 제조업, 핵심광물 채굴 및 정제업, 기타 일체의 탈탄소화 첨단산업에 대해 미국내 생산에 확실한 혜택을 제공한다. ‘미국내 생산’에 대한 확실한 혜택은 곧 역외 제품에 대한 그만큼의 진입장벽이 된다. 한국산 전기차가 대당 천만 원 가량의 보조금을 빼앗긴 것도 그때문이다.  

<표3> 에너지 안보와 관련된 지원정책


  바이든 행정부와 민주당의 목적은 분명하다. ‘좋은 일자리를 창출하여 무너진 중산층을 일으키고, 제조업 기반으로 새로운 경제성장을 하자’는 것이다. 미국 사회의 빈부 격차의 확대, 양극화가 트럼프 집권의 자양분이 되어주었다면, 이번에는 좋은 일자리로 중산층을 일으켜 자신들의 지지기반을 확충하겠다, 트럼프의 지지기반인 쇠락한 ‘러스트 벨트’를 탈탄소화 첨단산업으로 탈바꿈함으로써 자신들의 지지기반으로 돌리겠다는 것이다.

 법안이 통과한 후 바이든과 민주당의 지지율은 치솟았다. 바이든은 루즈벨트, 클린턴, 부시에 이어 미국 역사상 네번째로 ‘중간선거에서 이긴’ 대통령이 되었다. 삼성전자, 현대자동차 등이 잇따라 미국 현지공장 건설을 발표했고, 대한민국은 최소한 수만 명, 협력업체를 합하면 수십만 명의 아주 괜찮은 일자리를 미국에 빼앗기고 있는 중이다.  


무능한 의회와 적대적 공생   

 

  민주당은 수권정당이다. 정권을 창출하는 것이 목적인 집단이라는 뜻이다. 묻고 싶은 것은 그럴 준비가 돼있는가?라는 것이다. 민주당에서 기재부에 해당하는 조직은 어디인가? 민주당에서 어떤 사람들이 기재부에 대해 대안을 가지고 있는가? 보건복지부는 어디인가? 선진국인 대한민국의 복지정책의 비전은 무엇인가? 5년후, 10년후 우리는 어떤 복지정책을 갖게 되는가? 예산의 몇 %쯤을 우리는 복지예산에 쓰게 되는가? 그때 노인 자살률은 얼마나 줄어들게 되는가?

  

 대통령 선거를 어떻게 치르는가를 보면 정당의 준비상태를 알 수 있다. 대통령 후보의 공약은 언제나 ‘부랴부랴’ 준비된다. 지난 5년간 정당이 준비해온 것은 보이지 않고, 있다 해도 반영이 되지 않는다. 공약팀은 늘 급조되고, 여러 곳에서 꾸려진다. 후보조차도 정확히 몇개의 공약팀이 돌아가고 있는지 알지 못한다. 그중에서 당선후의 영광에 한 몫 하려는 ‘선수’들과 진짜 전문가들을 가려내기란 불가능하다. 후보도, 공약팀들도 이것이 ‘캠페인을 위한 훌륭한 말들’일 뿐이라는 것을 안다. ‘공약을 보고 후보를 선택하라’는 말은 그래서 맥이 빠지는 옳은 말이 된다.  

국회의원들이 왜 제대로 일을 하지 못하는가? 멀쩡하던 사람이 왜 국회에만 들어가면 무능해 보이게 되는가?에 대해서는 지난 글에서 다루었다. 일부를 소개하면 다음과 같다.  

https://brunch.co.kr/@brunchgpjz/36

“현재의 정당은 가령 172 석을 가지고 있다고 하더라도 그 실상을 보면 172 명의 자영업자들이 모인 것과 같다. 개개의 국회의원이 몇명의 보좌관들을 데리고 의정활동을 하지만 이들 보좌관들은 지역구 관리와 홍보, 각종 행사까지를 커버해야 한다.

 실제로 전문성을 가지고 국회의원들을 지원해줄만한 전문가그룹은 원내 정책전문위원이지만 이들의 수가 턱없이 부족하다. 예를 들어 민주당에 할당된 숫자는 44명이다. 부처별로 대략 2.5명의 전문위원이다. 보건복지위에는 2명이 할당돼 있다. 보건 영역과 복지 영역은 매우 다른 분야다. 결국 한 명이 한 분야를 맡는 셈이다. 이 숫자로는 입법부가 행정부를 상시적으로 모니터링하고 정책대안을 만들어내는 것은 불가능하다. 2022년 정부 한해 예산이 6백조가 넘는다. 이것을 감시해야할 국회의원이 활용할 수 있는 전문가가 부처별로 달랑 두 명이라는 얘기다. 의정활동의 아마추어화가 구조화 돼있는 셈이다. 의석수당 2명씩의 원내 정책전문위원을 갖도록 확대 개편을 하면 각 부처를 대상으로 10~20명의 전문위원들이 상시적으로 모니터링과 정책연구 활동을 할 수 있다. 정당의 정책 전문성도 양적 질적으로 강화하고, 긴 호흡으로 정책대안도 만들 수 있다.” 

 현재로서는 국회의원은 제각기 따로 움직이는 자영업자에 가깝다. 각기 전문가들을 수소문해 그때 그때 자문을 듣거나, 가끔 연락해 ‘뭐 한 건 할게 없냐?’고 묻는다. 172명의 조직된 힘, 정부의 각 부처에 대응하는 준비된 역량과 장기적인 국가전략은 언감생심이다. 

이런 것들이 모여 ‘무능의 구조’를 고착화한다. 장기적 비전과 수권 역량이 아니라, 단지 ‘적대적 공생’의 결과로 정권이 창출된다. 내가 잘해서가 아니라, 상대가 더 못한 바람에 어쩔 수 없이 내가 정권을 갖게 된다는 것이다. 나를 구하는 것은 언제나 상대의 실수다. 문자 그대로 적대적 ‘공생’. 


플랫폼으로서의 정당


 2020년 1월, 코로나19가 기승을 부릴 무렵 ‘마스크 대란’이 일어났다. 1월 28일에서 2월 21일 사이 KF94 마스크의 값이 300원에서 3천원으로 열 배나 뛰어올랐다. 그 돈을 줘도 마스크 구하기는 하늘의 별따기와 같았다. 정부는 마스크대란을 해결하기 위해 시빅해커들과 손을 잡았다. 시빅해커란 사회문제 혹은 불편함을 함께 해결하려는 시민 개발자들을 말한다. 3월5일 오전 정부와 시빅해커들이 만났다. 3가지 방안이 있었다. 심평원과 보건복지부의 기존 앱을 활용하는 안, 정부가 민간에 앱개발을 위탁하는 안 그리고 정부는 공적 마스크 판매 데이터를 개방하고 민간은 자발적으로 앱을 개발하는 민관협력 안. 시빅해커는 세번째 안을 강력히 요청했다. 사정이 급박하므로, 정부가 공공데이터를 개방하기만 하면 시빅해커들이 밤을 새서라도 즉시 만들 수 있다는 것이었다. 민관협력으로 결정되고, 해커들의 참여를 요청하는 글을 커뮤니티에 배포한지 하룻만에 100 명 이상의 개발자들이 마스크 앱 개발에 합류했다. 이틀이 지나자 2백으로 늘었다. 6일만인 3월 11일 오전 8시 마스크앱이 공개됐다. 공개 첫날 호출은 9천만 회에 달했고, 분당 최대 접속은 7백만 회를 기록했다. 그 며칠 사이에 16개의 모바일 앱, 38개의 온라인 웹서비스가 오픈됐다. 마스크와 관련한 민원은 극적으로 줄어들었다. 마스크대란이 해결된 것이다. 그 상세한 전말은 여기서 볼 수 있다. 시간을 내서 보기를 권한다. https://docs.google.com/document/d/1o-BfBvo8ftwrhxQRaAitYkyGhN4WakLpFJwORCPYIQc/edit#heading=h.u73c578aps6f

 마스크앱의 반대편에 ‘백신접종예약시스템’이 있다. 연령대별로 접종을 예약하는 이 시스템은 열 때마다 ‘먹통’이 됐다. 2021년 7월 26일 기사는 접종예약시스템이 열 때마다 ‘먹통'이 돼 범정부 대책회의가 열렸다는 소식을 전한다.

 마스크앱과 달리 백신접종예약시스템은 정상적인 정부의 조달절차를 거쳤다. 접종 사전예약 시스템 개발은 질병청 소관이다. 조달청의 공고를 거치면 대개 가장 낮은 개발비를 써낸 업체가 개발계약을 하게 된다. 몇가지 문제가 생긴다. 이런 종류의 ‘대용량동시접속’시스템은 개발해본 경험을 가진 개발자가 많지 않다. 실제로 53~54세 예약이 시작된 2021년 7월 19일의 접속요청 건수는 1천만 건에 달했다. 이런 규모는 네이버, 카카오, 엔씨 등 거대 IT회사가 아니면 경험하기가 어렵다. 더구나 질병청의 공무원이 이런 경험을 가졌을 리는 없다. 두번째로 입찰을 거쳐 계약을 하면 대개 개발을 하는 것은 정이 아니면 무가 된다. 갑을병정무기경신… 할 때의 그 정, 무다. 입찰을 따낸 을이 직접 하는 일은 드물다. 그 아래 작은 용역업체가 실제 개발을 맡기 쉽다. 그쪽도 이런 대규모 시스템은 알기가 어렵다. 개발이 완료된 시스템은 열 때마다 ‘먹통’이 됐다. 결국은 시빅해커들이 들어갔고, 사흘뒤 ‘예약 대란’도 막을 내렸다.  


 두 사건의 차이는 명백하다. 마스크앱때 정부는 데이터와 자원을 제공하고, 전문지식을 가진 시빅해커들이 마음껏 제 역량을 발휘할 공간을 제공했다. 이 둘이 합해 6일만에 마스크대란을 잠재웠다. 마스크앱 개발에 참가한 많은 개발자들이 자신의 ‘평생을 털어 가장 감동적인 순간이었다’고 고백했다. 백신예약시스템에서 정부는 모든 것을 혼자 처리하려 했다. 해결해야할 문제는 너무 컸고, 대단히 전문적이었다. 정부는 결국 시민들에게 숱한 불편을 끼친 끝에 시빅해커들의 도움을 받고서야 끝을 볼 수 있었다.  


 마스크앱을 한 것도 민주당 정권이고, 백신예약시스템을 한 것도 민주당 정권이다. 하나는 대성공을 거뒀고, 하나는 무참히 실패했다. 민주당은 마스크앱을 개발한 그 당이 될 수 있다. 수권정당이라면 그에 걸맞은 비전과 계획을 가지고 있어야 한다. 민주당 혼자서는 불가능한 일이다. 기획재정, 보건복지, 문화, 체육, 과학, 정보통신… 각 분야에서 민주당은 시민 전문가들을 아우르는 플랫폼이 될 수 있다. 섀도 캐비넷처럼 각 분야를 맡은 의원들이 시민들과 함께 긴 호흡으로 분야별 핵심과제들을 추려 해마다 백서를 내고, 그것을 해결하기 위한 5개년, 10개년 계획을 함께 마련할 수 있다.

반도체에서부터 인공지능, 배터리, 조선업에 이르기까지 곳곳에 자신의 능력을 동료 시민들을 위해 기꺼이 내어놓을 전문가들이 있다. 무엇보다도 대한민국은 ‘국난 극복’이 취미인 시민들로 가득한 집단지성의 사회가 아닌가. 민주당은 각 분야의 시민 전문가들이 자신의 지혜와 경험을 제공할 수 있도록 네트워크와 자원을 제공하는 플랫폼이 될 수 있다. 마스크앱은 충분히 그렇게 할 수 있다는 살아있는 증거다. 


어떻게 지지를 받는가


12월13일 기획재정부는 한국의 법인세율이 높다며, 인하를 해야 글로벌 경쟁력이 높아질 것이라는 보도자료를 배포했다

. 우리나라의 실효세율이 2019년 기준 21.4%로 미국의 14.8%, 일본의 18.7%보다 훨씬 높다는 것이다. 기재부는 법인세 인하로 투자가 확대되면 소재부품장비 등 중소협력업체에도 온기가 되고, 주주, 종업원, 정부(세수 증가) 모두가 수혜자가 된다고 주장했다. 이른바 ‘낙수효과’다. 

기재부의 주장은 주의깊게 봐야 한다. 세수 추계를 한해에도 61조씩이나 틀리는 곳이다. 이상민 나라살림연구소 수석연구원의 말이다

“한국 법인세 최고세율은 25%가 아니다. 중앙정부에 내는 법인세액의 10%를 추가로 지방소득세로 내야 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중앙정부+지방정부에 내는 법인세율은 27.5%다. 미국도 최고세율이 21%가 아니다. 연방정부 법인세만 21%다. 인텔이 위치한 캘리포니아는 8.8%의 주 법인세를 따로 낸다. 그래서 인텔의 법인세는29.8%다. 한국보다 높다. 마찬가지로 독일 법인세도 15%가 아니다. 지방에 내는 법인세까지 합치면 세율은 29.9%까지 올라간다. 독일 수준에 맞추려면 법인세율을 오히려 인상해야 한다.” 이게 끝이 아니다. “기업의 실제 부담 정도를 파악하고자 한다면 법인세뿐만 아니라 건강보험료 등 각종 사회보험 부담을 통합적으로 볼 필요가 있다. 법인세 재원으로 사회보험 정책을 펼치나, 기업이 직접 사회보험료를 부담하는 것의 경제적 실질은 비슷하다. 그래서 월드뱅크 자료를 통해 기업의 법인세와 부담금을 합친 기업의 총부담 비율을 보면, 한국은 OECD 국가 중 가장 적은 축에 속한다. 즉 미국의 법인세 부담은 한국보다 적지만, 건강보험료 등 각종 부담금 지출이 많아 기업의 총부담 규모는 한국보다 훨씬 높은 36.6%다. 한국은 각종 부담금에 대한 기업 부담을 줄여주는 대신 법인세를 많이 걷는 구조라는 얘기다.”


“낙수효과는 단 한번도 작동한 적이 없다.”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은 2021년 4월28일 취임 뒤 첫 상하원 합동연설에서 이렇게 말했다. 4조달러 규모의 초대형 투자계획을 설명하는 자리였다. 바이든 대통령은 대규모 인프라 투자를 “적자를 늘리지 않고 할 수 있다”며 ‘부자 증세’ 방안을 재원 조달 방안으로 함께 제시했다.  “중산층은 이미 충분히 세금을 내고 있다. 연 40만달러 이하 소득자들에겐 어떤 세금 인상도 부과하지 않을 것이다. 재계와 상위 1% 부자들이 공평한 몫을 내야할 때다. 팬데믹 와중에 미국인 2,000만명이 실직한 반면, 억만장자 650명은 1조달러 이상의 순자산 증가를 봤다. 낙수효과는 결코 작동한 적이 없다. 경제를 바닥에서 위로, 중심에서 바깥쪽으로 성장시킬 때가 됐다.” 

바이든은 ‘낙수’ 대신 ‘분수’를 택했다. 경제를 위에서 아래로가 아니라 바닥에서 위로, 중심에서 바깥으로 성장시킴으로써 자신의 지지층을 확대한다는 것이다. 민주당의 IRA법은 중산층 강화를 위한 정책으로 가득 차 있다. 지지층을 만족시키고, 지지층을 늘린다. 이것으로 미국 민주당은 중간선거를 이겼다.  


 한국의 민주당은 자신의 지지기반을 스스로 깎아 없애려는 것처럼 보일 때가 많다. 지난 정권초에는 주택임대사업자에게 과도한 세제 혜택을 안긴 통에 임대사업자가 폭증해 결과적으로 부동산시장의 불안을 부추겼고, 후반기에는 대선을 앞두고도 전국민재난지원금 지급을 끝끝내 망설였다. 야당이 된 민주당이 12월 24일 합의해준 2023 예산안은 모든 구간에서 법인세를 1% 낮춘다. 이것으로 5년 누적 약 24조4천억 원의 세수가 날아갔다. 덩치가 클수록 세금 절감액도 커져 과세표준이 3천억이 넘는 대기업은 1조2천억 원의 세금을 감면받았다. 2억이하는 모두 합해 1천8백억이 줄어든다. 전형적인 ‘부자 감세’다. 

종합부동산세도 유명무실해졌다. 2주택자 전부와, 3주택 이상 과세표준 12억 원(시가 34억 원) 이하 보유자는 중과세가 폐지됐다. 1.2~6.0%의 세율이 아니라, 1주택자와 똑같이 0.5~2.7%만 내면 된다. 기본공제액도 상향하고, 세율도 낮췄다. 공공임대주택 예산은 결국 5조가 삭감됐다. 이런 조처들이 민주당과 국힘당중 어느 당의 지지기반을 강화할 것인지를 짐작하기란 어렵지 않다. 

 

데일리 멘트’ 당   

 민주당은 종종 수권정당이나 정책정당이 아니라 ‘데일리 멘트’당처럼 보인다. 신문에 기사가 나면 떳다방처럼 우르르 몰려들다가, 대중의 관심이 식으면 사라진다. 비분강개한 어조로 멘트를 쏟아내지만 그때뿐이다. 거듭 시민의 신뢰를 잃는 지점이다. 

  예를 들어 화물차 연대. 더 이상 기사는 나오지 않는다. 그래서 해결된 게 있나? 화물운송은 노동법의 사각지대다. 한국교통연구원의 조사에 따르면 화물운송기사의 연평균 노동시간은 3,684시간.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평균 근로시간(1,766시간)의 2배가 넘는다. 

2016년 기준 고속도로에서 발생한 사업용 차량 사고 중 37.5%가 ‘화물차’에서 발생했다. 사상자도 2,424명으로 승용차를 제외하면 가장 많은 수치다. 가장 큰 원인은 ‘졸음운전’이다. 삼성교통안전문화연구소의 2017년 분석 자료에 따르면 화물운송기사의 22.3%가 수면장애를 겪고 있다. 

미국은 노동시간법규를 통해 장거리 화물/여객 운전자의 안정과 휴식을 보장하고 있다. 미국 화물운송기사의 최대 운행시간은 11시간이며, 이후 최소 10시간 이상 숙면 등 휴식을 취해야 한다. 4시간 연속운전후 반드시 30분 이상 휴식을 취해야 한다. 이를 위반한 운송사업자는 사업 일부 정지와 과징금을 부과한다. 운행기록일지인 로그북과 차량 자동로그장치로 관리한다. 로그북을 조작하면 해고 또는 징역에 처한다.

한국도 디지털운행기록장치를 사용한다. 모든 화물차가 의무부착하고 있다. 이 기록계에 담긴 정보만 살펴보면 운전자가 과속이나 난폭운전을 했는지, 정규 노선대로 운행했는지, 의무휴식시간을 준수했는지 여부 등을 한눈에 알 수 있다. 하지만 사용하지 않는다. 실시간으로 운행기록을 파악하고 있는건 전체의 1.7%, 하루단위로 제출받는 차량도 20%에 그친다. 실시간 제출이 의무가 아니기 때문이다.

 우리도 법은 있다. 화물자동차 운수사업법 시행규칙 제21조 제23항은 화물차 운전자의 최소 휴게 시간을 명시해놓았다. ‘2시간 연속운전 후 15분 이상’이다. 애초 ‘4시간 연속운전 후 30분 이상’이었다가 지난해 3월 규정이 강화되었다. 그러나 아무도 운행기록을 들여다보지 않으면, 이 법은 쓰일 곳이 없다. 유럽연합의 도로운송에서의 운전과 휴식시간에 관한 규정은 “이러한 규정의 준수 여부는 지속적 모니터링과 통제 대상이 되며, 이는 도로변과 사업장에서 운행기록계를 점검함으로써 수행된다”라고 명시하고 있다. 우리도 ‘지속적인 모니터링’을 법제화하는 것으로 시작할 수 있다. 올해 11월에 나온 시사인의 디지털운행기록장치 데이터 탐사보도는 현황뿐 아니라 해법까지를 함께 보여주는 수작이다. 민주당이 깊이 새겨 읽기 바란다.

https://www.sisain.co.kr/news/articleView.html?idxno=48964


 또 하나의 사례는 대우조선해양이다. 노조는 굴복했고, 기사는 사라졌다. 관심이 줄어든 새 회사는 하청노동자들에게 470억의 손배소를 청구했다. 그래서 문제도 사라졌나? 

 12월22일 이런 기사가 났다. “용접공없어 1년째 공장 가동 못해”… 외국인 용접공 입국도 ‘찔끔’

왜 이렇게 됐을까? 조선소에서 용접공을 했던 작가 천현우 씨는 용접공이 사라졌다! ‘때려잡기 원툴 정부’가 일을 망치는 법이라는 글에서 이렇게 말한다. 

https://alook.so/posts/jdt3WvE?fbclid=IwAR1KenMt6a4twFrgG9HJ_Kh7ZohGI_bcueyJ6jTniixRuGQBPMhBl7k3nGc


 “2022년 10월 14일, 유최안 금속노조 거제통영고성 조선하청지회 부지회장을 만났다. 대우조선해양 1도크에서 자기 몸을 가두는 감옥을 자기 손으로 용접하고 31일 간 싸웠던 그 사람이다. 그가 조선소 현장의 용접 사진을 보여주었다. 보면서 기겁했다. 용접 상태가 엉망이었다. 온통 삐뚤삐뚤한데다 중간에 끊은 흔적으로 가득했다. 예전 같았으면 품질 검사조차 통과 못했을 수준이다.

조선소 현장의 용접은 어설픔을 허용하지 않는다. 1밀리미터 오차도 없이 같은 간격으로 자로 댄 듯 용접해야 한다. 중간에 용접을 끊으면 품질도 떨어지고 보기도 나쁘다. 어깨며 허리가 빠질 각오로 끝까지 용접을 이어 나가는 건 ‘A급 용접사’들의 긍지였다. 한국 조선업의 경쟁력은 이러한 ‘A급 용접사’들의 장인정신으로 빚어낸 배의 만듦새에서 나왔다. 이 경쟁력의 근간이 흔들리고 있다.

용접은 쓸 곳이 많고 부르는 곳도 많고 임금도 많이 받는 편이다. 조선소 용접공의 임금은 처참한 수준이다. 금속노조 거제통영고성 조선하청지회가 공개한 자료를 보면, 경력 15년 용접 취부사의 임금은 2014년 4,974만원에서 2021년 3,429만원까지 줄었다. 유최안 조선하청지회 부지회장 역시 경력 22년차의‘A급 용접사’였지만 시급은 고작 1만350원이었다.


일부 기업주들은 용접공이 조선소 현장을 떠나는 이유를 52시간제때문이라고 한다. 조선소는 철야 노동을 ‘돌관’이라고 부른다. ‘돌파하여 관철하다’의 준말이다. 그런데 52시간제 탓에 ‘돌관’을 못 하니, 용접사들은 추가 수당을 못 버니까 떠난다는 말이다. 하지만 조선소 임금은 시간 외 수당으로 메꿀 수 있는 수준이 아니다. 임금 문제의 심각성은 건설업 평균 노임단가와 비교하면 더욱 명백해진다. 2022년 하반기 건설 현장의 용접공 일당은 평균 238,739원. 평균값으로 쳐도 30~40% 차이가 난다. 이 때문에 조선소를 떠난 용접사들은 주로 평택 공사 현장으로 향한다.”


 이대로라면 한국 조선산업의 미래는 없다. 정부는 용접공들을 때려잡았고, A급 용접사들은 조선소를 떠났다. 이 빈 자리를 채울 방법이 없다. 젊은이는 커녕 외국인 노동자조차 조선소를 기피한다. ‘말뫼의 눈물’을 재현하고 싶지 않다면, 대우조선해양의 문제는 지금부터가 시작이 돼야 한다.


우리에게는 매일 비장한 목소리로 멘트를 날리는 당이 아니라, 시민과 함께 공론화로 진짜 문제를 풀어줄 사람들이 필요하다. 혼자서 다 하려 하지 않아도 된다. 실은 다 할 수도 없는 일이다. 민주당이 플랫폼이 되어준다면 함께 할 시민들은 언제나 있다.


 당신들의 말이 아니라 당신들의 돈, 당신들의 행동이 어디로 가는가가 진실을 보여준다. 매번 상대 당 지지층을 확대하는 일을 하면서 다음번 선거에서 이기길 바래선 안된다. “같은 일을 하면서 다른 결과를 바라는건 미친 사람”이라고 아인슈타인은 말했다. 


2023년 1월5일 <민들레>에 실은 글이다. 

http://www.mindlenews.com/news/articleView.html?idxno=1095&fbclid=IwAR28jfGeeDWNfxCDcuAzoXF6vuQti5bFxNzgkCNVFSCw_WpdQy1ZBodaUk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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