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Jane Gray Aug 04. 2016

안나푸르나에서 보낸 편지 4

오전에는 날씨가 맑다가 점심때쯤 소나기가 옴


드디어 3000m 근처까지 올라왔다.
이제는 비에도, 거머리에도 담담하지만 두 다리가 후들후들 떨리기 시작했다. 몸에 피로가 누적되고 있음이 느껴졌다. 그러나 나보다 먼저 에베레스트 트래킹을 했던 지인의 조언이 떠올랐다. 몸이 피곤한 것은 집에 돌아가서 침대에 눕는 순간 싹 사라진다고, 그러니 잠깐 힘든 것 때문에 보고 느껴야 할 것들을 놓치지 말라고. 집까지 갈 필요도 없을 것 같다. 포카라 호텔방에서 따뜻한 물로 샤워하고 눕기만 해도 내 피로는 금세 사라질 것이다. 

올라오는 내내 나에게 말했다. 잘하고 있다고, 이렇게만 하면 된다고.
내가 이제껏 살면서 이렇게까지 힘들여가며 열과 성을 다해 무엇인가를 해본 적이 있던가. 
스스로에게 부끄러워졌다.
내딛는 한걸음 한걸음이 이렇게 무거워 본 적도, 숨을 허덕이면서 땀을 쏟아내 본 적도, 스스로가 지치지 않게 계속 응원하면서 무언가를 해본 적도 없다. 평생을 타협하면서 별 탈 없이 그냥 그 정도로 만족하며 지내왔다. 나의 온 정신을 집중해 본 적이 없다. 그러나 이 산행을 통해 내가 지금 이 순간처럼 내 길에 집중하지 않는다면 나는 결국 아무것도 할 수 없을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나의 길에 집중하고 나를 믿는 것이야말로 이 산행의 끝에 도달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다. 

그 누구도 나를 대신해서 산을 올라가거나 내려갈 순 없다. 해발 3000m인 이곳에서 나를 구할 수 있는 유일한 존재는 나 자신뿐이다. 여기까지 와서 내려갈 수는 없다. 내려간다 해도 그것 역시 나만이 할 수 있는 일이다. 누군가가 나를 대신해 내려갈 수는 없다. 그런 문제라면 차라리 내 자신을 믿고 끝까지 올라가겠다. 안나푸르나, 이 산 한가운데서는 오직 나만이 나를 정상에 세울 수도 있고, 나만이 나를 밑으로 끌고 내려갈 수도 있다. 그러니 철저히 내 자신을 믿어야 한다. 아무것도 의지할 곳도, 도망칠 탈출구도 없는 이곳에서 내 몸뚱아리, 그리고 내 의지 이것만을 믿으며 올라가야 한다. 

스스로를 믿고, 다독이며, 한걸음씩 나아가는 게 얼마나 의미 있는 일인지 새삼 놀랐다.
 

매거진의 이전글 안나푸르나에서 보낸 편지 3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