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자인 성과를 숫자로 표현할 수 있을까?
어쩌다 보니 최근에 다른 디자이너 분들과 커피챗을 자주 하고 있는데, 이 커피챗을 진행하기 위한 질문에서 항상 나오는 이야기가 있다.
"프로젝트 결과를 데이터로 보여주고 싶은데, 데이터를 어떻게 수집하나요?"
"디자이너한테 정량적, 정성적 성과를 요구하는데 이 데이터는 어느 기준으로 잡아야 할까요?"
나 역시 포트폴리오 멘토링을 진행하면서, 디자인 프로젝트에서 데이터 결괏값을 받은 게 있다면 꼭 넣어주라고 얘기하고 있다. 근데 이렇게 말하는 나도 속으로는 생각이 많은 상황이다. 나 역시 내가 만든 디자인의 성과를 제대로 얘기하기 어려워하기 때문이다.
디자이너 역시 직장인이기 때문에, 내 디자인이 만든 성과를 얘기하는 것이 정말 중요하다. 이전 글에서 크리에이티브와 데이터 사이에서 고민한 글(크리에이티브와 데이터 사이)을 쓴 적 있는데, 이 글을 쓴 시점보다 현재 성과의 중요도를 크게 체감하고 있다. 그럼 나의 디자인에 대한 성과를 어떻게 얘기해야 할까?
회사라는 조직의 특성상, 모든 업무의 결과는 가장 명확한 [데이터 수치], 즉 [숫자]로 얘기하는 것이 일반적이다. 디자인뿐만 아니라 개발, 기획, 영업, 마케팅 등의 업무에는 숫자로 결과를 얘기한다. 우리가 흔히 아는 정량적 성과(Quantitative Performance)다.
"이번 분기 매출은 00% 상승했습니다"
"이번 이벤트를 통해서 00 카테고리 상품 구매 실적이 00만큼 올랐어요."
"앱 화면이 이렇게 바뀌면서 부정적인 CS가 00% 하락했어요."
이렇게 성과를 얘기하면 [우리가 진행한 업무가 확실히 이런 성과를 불렀구나!]를 명확하게 이해할 수 있다. 숫자만큼 분명한 값은 없으니까. 그러나 이 정량적 성과가 [디자인] 덕에 잘 나왔다고 할 수 있을까? 안타깝게도 디자인 덕분에 잘 나왔다고 얘기하기 어렵다. 특히나 마케팅 디자인, 브랜드 디자인에서는 숫자로 성과를 이야기하기 정말 애매하다.
마케팅 디자인을 예로 들어보면, 배너나 이벤트 페이지는 모든 사용자를 대상으로 라이브(live)될 수도 있지만 특정 사용자를 대상으로 다른 디자인의 배너가 라이브 될 경우, 데이터 측정 설계에 신경을 많이 써야 한다. 특정 사용자, 특정 지역 대상, 특정 연령대 대상 등등. 타겟층을 더 뾰족하게 조준하고 펼쳐야 하는 마케팅 활동 특성상 자주 보이는 상황이다. 이 경우에 마케팅 활동 목표치에 영향을 미치는 부분은 너무 많다.
- 타사보다 더 많은 혜택(쿠폰, 포인트 지급 등)을 제공한다.
- 최저가로 특정 상품을 제공한다.(타임딜 등)
- 시간 또는 특정 고객 대상으로 지원하는 한정 혜택이 있다. 그래서 고객별로 라이브 되는 페이지 디자인이 다르다.
이 외에도 더 많은 변수들이 있지만, 요즘처럼 내 월급 빼고 물가가 오른다든지... 경제가 너무 혼란스러운 이 시점에는 가격이 가장 큰 변수다. 특히 커머스에서 할인 행사를 할 경우, 디자인보다는 [할인 가격]이 데이터에 큰 영향을 미친다. 할인 행사를 한다고 하면, 디자인에서 이 상품을 이만큼 할인한다!라는 것을 잘 보여주는 것과 그렇지 않은 것의 유입률은 엄청난 차이를 보인다.
그렇기 때문에 마케팅 디자인을 통해 데이터를 얻고자 한다면 설계를 잘해야 한다. 10대 사용자에게 확실히 그들이 좋아하는 트렌드에 맞는 디자인을 하는 것이 좋을까? 쿠폰 리스트에서 특정 쿠폰을 잘 보이게 한다면 어떻게 눈에 띄어야 할까? 등등. 만약 이 글을 보는 당신이 마케터라고 한다면 같은 내용의 배너인데 같은 상황에서 라이브 되었을 때 디자인이 달라지는 것에 따라 클릭수(또는 클릭률)가 어떻게 달라지는지 비교할 줄 알아야 한다. 그냥 막연하게 “이 디자인이 더 클릭률이 잘 나왔어요”라고 했는데, 다른 사람이 “그 디자인 배너는 할인가가 더 높았잖아요”라고 하면 할 말을 잃을지도 모른다.
프로덕트 디자인, 마케팅 디자인에서는 “어떻게 디자인해야 사용자 경험을 개선시킬까?" ”어떻게 만들어야 이 상품 구매 횟수가 올라갈까?”를 고민해야 하는데, 이를 확실히 인지하기 위해서는 실제 데이터 차이를 보는 것이 많은 도움이 된다. 마케터나 기획자가 데이터를 가지고 디자인을 바꾸려 한다면, 디자이너는 이 데이터로 내 디자인을 설득할 줄 알아야 한다. “이렇게 디자인하니까 사람들이 확실히 많이 유입되는구나!” 등은 내 디자인에 대한 결괏값을 리뷰하면서 익힐 수 있다. (물론 결과 데이터를 들을 수 있는 기회가 마케팅 디자이너에게 자주 주어지진 않지만...)
그리고 모든 디자이너들의 큰 딜레마. 예쁘고 아름다운 디자인이 좋은 성과를 부를까? 솔직히 디자인을 오래 했음에도 불구하고 예쁜 디자인이 좋은 성과를 부른 케이스는 50:50으로 보였다. 그리고 솔직히 프로덕트 디자인이나 마케팅 디자인에서 이 [심미성]이 큰 영향을 미치는지 확신을 가지지 않는다.
“어떻게 해야 사용자가 우리 앱을 편하게 사용하고 자주 찾을까?”의 목적에 집중한다면 “아이콘이 왜 이렇게 생겼지?” “배너가 왜 이렇게 못생겼지?”는 그만큼 우선순위에 밀린다. 그리고 아마도 사용자 중에서 배너나 페이지, 아이콘 생김새를 가지고 클레임을 거는 사람은 거의 없을 것이다. “배너가 왜 이렇게 생겼어요?” “아이콘이 너무 못생겼어요”라는 제보보다는 “주문할 때 결제 창이 어딨는지 모르겠어요” “장바구니에서 다시 홈으로 넘어가는 게 너무 불편해요” 등의 경험 플로우 문의가 더 많을 것이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디자인이 예뻐서 데이터가 상승했다는 지표를 얻기는 굉장히 어렵다. [너무 예뻐서 클릭했어요] [앱이 예뻐서 자꾸 사용하게 돼요]라는 의견을 사용자 조사에서 들은 적은 없었다. [눈에 잘 띄어서 / 잘 안 띄어서] 거나, [이게 00을 의미하는 것을 바로 이해할 수 있어서]라는 의견이 주를 이룬다. 나 역시 예쁜 디자인을 선호하지만, 디자인의 심미성이 크게 작용하려면 장기적인 관점의 성과를 바라봐야 한다.
개인적으로는 [브랜딩]의 관점에서 이 심미성이 다른 분야에 비해 영향을 크게 미치는 것 같다. 브랜드가 추구하고자 하는 방향성, 무드, 감각 등을 사람들에게 오래 각인시키고 그들의 마음속에 들어가려면 이 디자인이 어떤지도 중요하다. 그래서 브랜드 캠페인 관련 작업에서는 데이터는 둘째치고 디자인을 정말 중요하게 보라고 얘기할 수 있다.
직장인으로 일하는 디자이너라면 평가 시즌을 피할 수 없는데, 이때 나를 평가하는 기준은 정량적 또는 정성적 성과다. 위에서 얘기했듯이 디자인이 정량적 성과에 영향을 미쳤다고 말하는 것은 어려운 일이다. 그래서 이때 우리의 성과를 얘기할 수 있는 수단은 바로 정성적 성과(qualitative performance)다. 숫자 외의 것으로 얘기할 수 있는 성과. 아마 대다수의 디자이너들은 자신의 성과를 숫자보다는 사용자들의 반응 또는 의견을 가지고 자신의 성과를 얘기할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내가 작업한 디자인에 대해 제3자의 의견을 듣는 경험은 정말 중요하다. 이전부터 계속 사용자 조사(UT)의 중요성을 얘기했는데, 내 디자인을 더 나은 방향으로 개선하기 위해 정보를 얻는 것도 있지만 내 디자인을 사용자가 긍정적으로 생각하는지 성과를 파악하기 위함도 있다. 디자이너끼리, 마케터끼리 의견을 주고받는 것도 좋지만 만드는 사람, 즉 공급자의 입장은 사용자를 대변하지 못한다. 내가 만든 작업의 히스토리를 전혀 모르는, 철저히 내 디자인을 [사용할 사람] 입장의 이야기를 들어봐야 한다.
숫자만큼 명확한 것은 없다. 하지만 디자인은 명확하게 수치가 나오지 않는 분야이기 때문에 숫자로 결괏값을 얘기하기 정말 어렵다.(만약 숫자만 가지고 디자인을 평가한다면 이 세상의 모든 디자인은 죄다 눈에 띄려고 화려하거나, 디자인의 영향이 없다 생각해서 완전히 엉망진창일 것이다) 그래서 내 디자인에 대한 사용자의 의견을 들을 수 있다면 최대한 들어보고, 그렇지 못한다 해도 내 디자인이 사용자에게 어떤 영향을 미쳤는지 설명할 줄 알아야 한다.
[내 디자인이 사용자 또는 사업 측면에서 이런 영향을 미쳤다]라고 말하는 것, 그것이 바로 디자인의 성과다. 그것이 비록 구체적인 수치값이 아니더라도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