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컬 크리에이터가 재해석하는 단오 문화, <단오 놀자> 프로젝트 후기
더웨이브컴퍼니는 2019년 강릉단오제에 좋은 기회로 다양한 프로젝트에 참여하게 되었습니다. 그중 강원창조경제혁신센터, 강릉단오제위원회와 함께한 <단오 놀자: 로컬 크리에이터가 재해석하는 단오> 프로젝트를 리뷰하고자 합니다.
단오 놀자 프로젝트의 시작은 큰 맥락에서 강릉단오제가 추구하는 변화의 물결 중 하나입니다. 사실 이 글을 쓰는 저는 강릉에서 나고 자랐기에 아주 어렸을 때부터 '강릉단오제'는 매년 음력 5월 5일이면 가족과 함께 남대천 주변을 구경하는 반복되는 경험이기도 한데요. 성인이 되어서는 언제부턴가 단오제를 잘 찾지 않게 되었습니다. 그 이유를 곰곰이 생각해보면, 방문객의 입장에서는 매년 크게 다르지 않은 구성 그리고 참여자의 관점에서는 제가 무언가를 할 만한 유인이 없었기 때문이었습니다.
그러다 2018년 고향인 강릉에 내려와서 지역의 아이덴티티와 콘텐츠를 크리에이티브하게 풀어내는 고민들을 하면서 올해는 처음으로 강릉단오제에 참여할 수 있는 기회가 되었는데요. 강릉이라는 지역과 천 년의 역사를 자랑하는 강릉단오제에 대해서 제가 짐작했던 느낌은 '보수적이다'라는 느낌이었어요. 부정적인 뉘앙스라기보다는 지금까지 강릉단오제의 제례와 굿 등 전통적인 유산들을 지켜낼 수 있었던 결정적인 이유라고 생각을 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2019년에는 전통을 보존하며 새로운 실험과 변화를 시도한 강릉단오제위원회의 결정과 함께 하게 되었습니다.
<단오 놀자>는 이러한 큰 변화의 실험 안에서 이루어진 강릉단오제 남대천 단오장 내 '청년 공간'입니다. 단오 놀자를 기획하고 실행하게 된 동기는 첫째로 지역 청년들이 액티브하게 지역의 축제에 참여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들고 둘째로 밀레니얼이 만들고, 그들을 타깃으로 한 새로운 콘텐츠들이 강릉단오제를 더욱 다양성이 존중받는 축제로 만들 수 있다고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지나온 천 년이 전통을 오롯이 보존하며 지켜온 문화였다면, 단오제의 내일은 그런 전통을 보존하면서도 강릉의 로컬뿐 아니라 다양한 방문객들이 즐길 수 있는 축제가 되어야 한다는 생각이 단오 놀자의 시작이었습니다.
단오 놀자의 슬로건은 '로컬 크리에이터가 재해석하는 단오 문화'입니다. 이 슬로건 하에 '강릉단오제' 하면 떠오르는 세 가지 주제인 난장, 먹거리 문화, 세시풍속 체험을 재해석하고자 했습니다.
약간의 설명을 덧붙이자면 강릉단오제는 그 명맥이 끊어질 뻔한 상황에 지금의 단오장인 강릉 남대천 둔치에서 상인들이 단옷날 난장을 펴던 문화가 지금까지 지속적으로 이어져오고 있습니다. 처음에는 '왜 단오장에는 별의별 것들을 다 파는 분들이 모여있을까?'라는 생각을 했었지만, 지금은 난장이 단오제에서 가지는 의미에 대해 알게 되어 기쁘게 생각합니다.
두 번째, 먹거리 문화는 축제에서 빠질 수 없는 부분인데요. 강릉에서는 단오제 기간 동안 만들어진 신주와 단오주 그리고 감자전을 먹는 전통 아닌 전통(?)이 있습니다. 저도 단오제의 프로그램은 보지 않더라도 친구들과 삼삼오오 모여 단오장 한편에 자리를 잡고 막걸리를 한잔 하곤 했었는데요. 명문화되어있는 전통은 아니지만 모두가 단오를 떠올릴 때 아마 막걸리와 감자전은 기억하지 않을까 싶습니다.
마지막으로 세시풍속은 단옷날 더위와 액운을 물리치고 몸을 깨끗이 하는 풍속들이 여럿 있었습니다. 대표적으로는 창포물에 머리감기, 단오 부채 만들기, 단오 탈 그리기 등을 체험할 수 있는데요. 재미있는 체험이지만, 무언가 새로움을 더해보고 싶었습니다.
우리는 난장, 먹거리, 세시풍속을 각각의 섹션에 맞추어 재해석한 콘텐츠를 기획하게 되었습니다.
별의별 것들을 다 파는 단오 난장에서 이름을 따 만든 '별별 단오'는 지역 기반의 디자인 기념품샵을 운영하고 있는 바이라다와 이제 막 제품 라인업들을 선보이고 있는 윈드소울의 크리에이터 분들이 참여해서 부스를 이끌어주셨습니다. 단오제에는 지역민들이 많이 참여하기도 하지만 강릉을 방문하는 관광객의 입장에서 강릉과 관련한 예쁘고 재미있는 제품들을 볼 수 있는 기회를 만들어주셨습니다.
맛나 단오는 단오의 지역 식재료와 단오의 색이라고 할 수 있는 오방색을 재해석한 메뉴를 꾸렸습니다. 연담 주조 팀에서는 오방색과 단오와 관련한 재료들로 만든 다섯 가지 음료를 기획하고 판매하였고, 희나리 팀에서는 항정살과 강원도 감자를 활용한 덮밥, 플레이트 메뉴를 기획하게 되었습니다. 퀄리티 있는 먹거리를 만들어주신 분들이 있어 단오 놀자가 더욱 풍성해진 것 같습니다.
재미있는 세시풍속 체험은 강릉을 쓰는 캘리그라퍼, 김소영 작가와 글씨 강릉 프로젝트로 뭉친 네 분의 캘리그라퍼 분들이 함께 운영했습니다. 액막이 글씨 쓰기, 캘리그래피를 통한 세시풍속 체험 등 다양한 세시풍속을 캘리그래피로 재해석한 프로그램을 운영했습니다.
지역 축제의 작은 섹션에도 브랜딩이 필요하다고 절실히 느꼈습니다. 단오 놀자 프로젝트는 2019년 처음으로 진행되는 프로그램이었기에 대중들에게 노출되는 강릉단오제 리플릿이나 커뮤니케이션 채널에는 '청년 공간'으로 명명하기로 하고, 이후 '단오 놀자'라는 이름을 정하게 되었는데요. 네이밍을 하는 과정에서는 팀의 김하은 디자이너가 청년들이 만드는 즐겁고 재미있는 공간이라는 무드를 떠올리며 '단오 놀자'가 만들어지게 되었습니다.
이후, OO단오라는 카테고리가 입에 잘 붙고 재미있을 것 같다는 의견도 수용하여 별별 단오, 맛나 단오, 신난 단오의 세 가지 섹션을 구성하게 되었습니다.
단오 놀자의 전체 디자인 디렉팅을 맡은 김하은 디자이너는 축제 브랜딩과 공간 연출에 필요한 다양한 작업물들을 디자인하기 전, 베이스가 될 그래픽 소스 작업들을 충분히 하는 데에 중점을 두었습니다. 그러한 과정에서 모티브가 되는 것은 색상, 어떤 원형적인 형태 혹은 그리그 시스템에 따른 전체적인 레이아웃 이 세 가지라고 이야기를 나누었는데요. 단오 놀자 작업에서는 색상을 가장 우선시했습니다. 오방색을 별다른 톤다운 작업 없이 맵시 있게 사용하고 싶다는 욕심이 들어 색상을 다양하게 활용해보는 시도를 하던 중, 오방색의 실타래 형태를 키 그래픽 요소로 선택하게 되었습니다. 기존의 모든 전통을 배격한 채 젊은 감성을 덧바르는 것은 단오를 재해석한다는 취지에 맞지 않는다는 생각이 오방색을 두드러지게 사용한 가장 큰 이유였고요. 이후 추가된 꽃 잎 모양 빨, 파, 노 삼색의 그래픽은 늦봄에서 초여름 흐드러지게 피는 꽃의 모습을 있는 그대로 표현하여 즐거운 축제의 느낌을 더하기 위해 사용했습니다. 복잡하고 화려한 그래픽을 사용했지만, 포스터, 배너, 현수막 등으로 이어지는 일련의 결과물들이 축제를 즐기는 사람들에게 제각기 세세한 모양새보다는 하나의 풍경으로 보이기를 바라며 작업을 진행한 결과입니다.
단오놀자의 경우, 처음 해보는 작업들이 참 많았는데요. 공간을 연출하는 것 역시 마찬가지였습니다. 하지만 페스티벌에 열심히 놀러 다닌 경험치와 주변 지인 분들의 자문(최게바라기획사 도희 님 다시 한 번 감사드려요!)을 통해 재미있는 공간을 만들어보고자 했습니다.
공간 연출 역시, 단오제에 없거나 필요한 경험을 위주로 생각을 시작했는데요. 그래서 '머물 수 있는 공간'을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강릉의 남대천 양쪽으로 일렬로 늘어서 있는 몽골텐트들이 재미가 없다고 느껴져 건축적인 느낌으로 말하자면 '중정'의 느낌을 낼 수 있는 구성을 생각했습니다. 일렬로 부스를 설치하지 않고, 교차하며 설치해 단오 놀자 공간을 전체가 하나의 통일성 있는 공간으로 느끼도록 만들고, 중앙에는 누구나 쉬어갈 수 있는 파라솔과 테이블들을 설치했습니다.
디테일하게 고민한 부분이 있다면, 배정받은 공간이 5m의 옹벽과 아스팔트 바닥으로 이루어져 있어 벽에는 대형 현수막을 걸어 단오 놀자를 알리는 용도와 옹벽을 가리는 용도로 활용했고, 바닥은 인조잔디를 활용해서 '머무르고 싶은' 분위기를 조성했습니다.
전체 공간의 폭이 11m 밖에 되지 않았기 때문에 처음에 배정받은 5m*5m 몽골텐트를 과감히 포기하고, 3m*3m의 작은 텐트로 부스를 구성했습니다. 그리고 기획과 브랜딩 과정에서 정하게 된 단오의 오방색과 섹션별 컬러를 활용해서 텐트에 천으로 연출하는 작업(이라 쓰고 개고생...이라 읽는다 ㅠ_ㅠ)도 진행했습니다.
마지막으로는 항상 축제에서 부스의 타이틀이 현수막으로 위쪽에 걸려있는 것이 너무 단순하고 시선을 방해한다는 생각을 가지고 있어서 X배너나 거치형 POP 그리고 깃발처럼 달 수 있는 배너를 통해 풀어내기도 했습니다. 고생을 많이 했지만, 결과적으로는 사용자들의 시선이 부스 자체에 집중될 수 있어서 좋았다는 이야기를 들을 수 있었습니다.
우리가 단오 놀자 프로그램을 기획하고 운영하는 이유는 첫째로 더웨이브컴퍼니가 추구하는 방향과 잘 맞아떨어졌기 때문입니다. '로컬'을 키워드로 한 조직이 강릉에서 가장 큰 지역축제에 참여하고 다양한 실험과 개선점을 보여준다면 더 다양한 실험들이 이루어지고, 축제에 다양성을 불어넣을 수 있을 것이라고 느꼈습니다. 그리고 가장 중요하게 강릉과 강원의 로컬 크리에이터들이 다양한 형태로 지역의 전통과 결합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고자 했습니다. 올해 단오 놀자를 통해 어떤 성과를 보여줄 수 있다면 우리뿐 아니라 지역에 자리 잡은 여러 로컬 크리에이터들이 만드는 새로운 프로그램을 만날 수 있지 않을까 생각했습니다. 비단 강릉단오제뿐 아니라 로컬과 크리에이터들이 만드는 다양한 프로그램과 상상들을 해볼 수 있지 않을까요?
마지막으로 프로젝트를 리뷰해보고 개선할 점에 대해서도 중요하게 다루고 싶었습니다.
첫째로 실제로 방문한 강릉시민들과 방문객들의 피드백이 가장 중요하다고 생각을 했는데요. 작년까지만 해도 단오 놀자의 공간은 단오장 내 이불장이 있던 자리라, 단오제 기간 초기에는 '이불장이 어디 갔냐'라고 묻는 분들이 많았습니다. 이러한 부분은 새로운 변화를 시도할 때 어쩔 수 없이 맞닥뜨리는 부분이라고 생각을 합니다. 단오 놀자 브랜딩과 디자인, 공간 연출에 대해서는 긍정적인 평가가 많았습니다. '예쁘다'라는 느낌, '여기 이런 게 생겼네'하는 이야기부터, 포스터나 디자인 작업물에 대해서 사진을 찍거나 여쭙는 분들도 많이 있었습니다.
콘텐츠 적인 측면에서는 참여 크리에이터 모두가 약간씩은 부족한 점이 있었을 것이라 생각을 합니다. 그 이유는 첫째로 '축제 참여의 동기'를 바라보는 시선에서 비롯됩니다. 대부분의 축제 참여자분들은 각자가 운영하는 공간이나 서비스가 있습니다. 아직은 각자의 무언가를 일정부분 포기하면서 축제에 참여하기 위한 동기가 아직은 충분치 않다고 느낍니다. 매출이나 홍보의 측면에서는 '숫자'가 기회비용을 말해주는데, 많은 크리에이터분들이 준비 시간과 운영 시간을 포함해 약 열흘 이상 해당 축제에 참여하는 것이 큰 딜레마가 아닐 수 없다는 생각을 합니다. 이러한 콘텐츠에 대한 개선점은 사실 기획자의 입장에서 더 많은 고민과 노력으로 풀어주어야 하는 부분인 것 같습니다. 다음에도 비슷한 프로젝트를 진행하게 된다면, 전체 참여자들이 시간과 노력 그리고 기회비용 대비 만족할만한 '숫자'를 얻을 수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축제 운영의 경험치도 빼놓을 수 없습니다. 공간은 기획대로 연출되고 실행할 수 있었지만 '미스커뮤니케이션' 그리고 '날씨'라는 변수가 있었습니다. 커뮤니케이션에 대해서는 원래 배정받은 자리보다 약 20m 정도 옮긴 위치에서 공간을 연출하게 되어 기존에 생각지 못했던 가로등이나 연석, 계단 등이 공간 연출에 방해가 되었던 점들이 있겠네요. 기획과 실행의 과정에서 주최 측과의 긴밀한 커뮤니케이션이 중요하다는 것을 다시금 느꼈습니다. 실행을 하는 입장에서는 사실 어떤 부분이 결정된 이후에는 바꿀 수 있는 것이 거의 없기 때문입니다. 그렇게 공간을 연출한 이후에 '머물고 싶은 공간'을 만드는 데에는 어려움이 없었지만, 비가 왔을 때 머무를 수 없는 공간이 된 것이 아쉬웠던 점 중 하나입니다.
결국 이런 경험들이 하나하나 모여 더 짜임새 있는 기획을 만들어낸다는 생각을 합니다. 만약 내년에도 단오 놀자가 계속된다면, 혹은 다른 프로그램에서 비슷한 역할을 하게 된다면 날씨에 구애를 받지 않고 모든 크리에이터들이 시너지를 낼 수 있는 아이디어를 공유하고 싶습니다. 5월부터 고생한 팀원들과 참여해주신 로컬 크리에이터분들 그리고 좋은 기회를 주신 강원창조경제혁신센터와 강릉단오제위원회 분들에게도 감사 인사를 드립니다. 더웨이브컴퍼니가 지향하는 '지역에 새로운 물결을'이라는 슬로건이 만든 하나의 모습을 만들 수 있어 즐거운 경험이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