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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Kim Ji Youn Feb 19. 2020

거실 예찬

‘함께’의 냄새가 나는 공간으로 만들고 싶어서

Living room.

거실을 의미하는 단어가 living room이라니, 정말 안성맞춤의 표현이 아닌가 싶다. 


이사를 하면서도, 그리고 아직 1년이나 남았지만 초등학교 입학을 앞두고 책상을 어떻게 마련해줘야 하나 고민을 하면서도, 가장 먼저 가구 배치를 고려하는 공간은 언제나 거실이다. 아이 책상 구매를 고민한다면 대개는 아이 방의 가구 배치를 먼저 생각할 텐데 말이다. 


거실은 집의 얼굴이다. 


얼굴이라고 해서 겉으로 보이는 것만 의미하는 것은 아니다. 얼굴이 그 사람의 살아온 과정과 희로애락, 마음가짐이 투영되는 거울이듯이, 거실은 개인이 아닌 그 가족들의 삶, 분위기 그리고 우선순위가 반영되는 곳이라는 생각이 들어서다.




물려받은 아이 책상은 높이도 조절이 가능하고 제법 넓어, 아이의 또 하나의 방처럼 여겨지는 유용한 아이템이었다. 그에 맞는 의자도 마련해주자, 아이는 그곳에서 책도 읽고 그림도 그리며 많은 시간을 보냈다. 아이를 방이라는 칸막이 안에 넣어두는 대신 관찰하고 같이 얘기하고 듣고 싶은 마음에, 기존에도 아이의 책상은 거실에 자리하고 있기는 했다. 그런데 문제는 거실의 ‘어디에’ 위치하고 있느냐였다.


몇 개월 동안은 거실의 메인 가구인 기다란 소파와 확장한 베란다 사이에 아이 책상을 두었다. 베란다 창문 근처에 있었기에, 햇빛을 받는 책상은 늘 밝았다. 엄마의 입장에서 최고의 위치를 아이에게 내주었다고 자부했다. 이렇게 멋진 채광의 책상을 어디에서 볼 수 있을까 하며 말이다. 


아이의 책상이 가장자리로 내몰린 거실은 여느 집에서나 볼 수 있듯, 소파와 TV가 중심이었다. 가끔 저녁 뉴스를 보는 엄마 아빠 옆에서 그림을 그리겠다며 책상에 앉을 때면, TV 속의 영상이 자꾸 아이를 유혹하기 일쑤였다. 거실에서 공부를 하라며 자리를 내어주고는, 엄마 아빠는 어리기만 한 미취학 아동에서 그림을 그릴 거라면 TV 보지 말고 그림에 집중하라며 핀잔을 주었다. 


겨울이 다가오자 베란다 앞의 책상이 미안해지기 시작했다. 찬바람을 완벽하게 막을 수는 없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책상의 위치를 바꾸었다. 소파의 반대편 끝으로 말이다. 여전히 거실에서 아이와 함께한다. 그런데 아무래도 부엌과 가까운 안 쪽에 위치하다 보니, 베란다 앞만큼 쨍하게 밝지는 않다. 여전히 책상에 앉은 아이를 두고 엄마 아빠는 TV를 본다. 




며칠 전이다. 문득 아이를 유치원에 보내고 잠시 거실을 둘러보다가, 우리 집의 얼굴인 거실이 우리 가족의 얼굴이 아니라 엄마 아빠의 얼굴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엄마 아빠’만’ 중심인 거실이었다. 아이는 TV의 유혹을 뿌리치기 힘들었을 것 같았다. 자신에게 주어지는 하루 40분의 시청 시간 외에는, 눈 건강에 해롭다는 이유로 TV를 ‘쳐다보지’ 못하게 했다. 그러고는 엄마 아빠는 TV를 틀었다. 아이의 책상을 비롯한 아이의 물건들이 거실에 많다며, 어른스러운 심플하면서도 미니멀리스트 감성이 묻어나는 분위기를 연출하지 못한다고 내심 속상하기까지 했다. 


그런데 막상 속상해할 사람은 누구였을까. 우리 집의 얼굴이 무심하면서도 고약하고 동시에 슬프게 느껴졌다. 




아이의 책상을 소파의 가장자리가 아닌, 소파의 앞으로 끌어왔다. 책상의 높이가 소파 의자에서 앉기에도 딱 좋았다. 아이가 쓰던 의자는 반대편에 놓았다. 아이 방에 있던 작은 의자를 하나 더 갖고 나와 책상 앞에 함께 두었다. 


베란다의 햇빛이 아쉽지도 않았고, 추위에서 벗어난 따뜻함도 아쉽지 않았다. 


그간 엄마의 선택이 너무나도 미안하게 느껴질 만큼, 아이는 이 책상의 위치를 너무 좋아했다. 엄마 아빠의 일상 한가운데에 아이가 제대로 들어온 느낌이었다. 그리고 소파 앞을 차지한 이 책상에서 우리는 간식도 같이 먹고, 책도 같이 보고, 보드 게임도 같이 한다. TV를 트는 시간은 자연스럽게 줄어들었다. ‘같이’ 하는 행동이 늘었기 때문이다.


봄을 맞아 가구 배치를 새롭게 하고 싶은 마음에 이곳저곳 인테리어 사진들을 보고 있지만, 언제나 중심은 거실이다. 간혹 방 하나를 확장하여 거실을 넓게 쓰는 집의 사진을 보곤 하는데, 처음에는 오버스럽다는 느낌이 들었지만 지금은 부럽다. 엄마 아빠 책상도 같이 거실에 있었으면 좋겠고, 피아노도, 식탁도, 책장도 모두 거실에 자연스럽게 자리 잡고 있었으면 좋겠다. ‘함께’의 냄새를 가능한 많이 느끼고 싶다. 거실이 좁다고 느껴지고, 방은 어떤 용도로 써야 하나 새로운 갈등이 시작되었지만 말이다. 


우리가 함께 living 할 수 있는 공간에서 최대한 많은 추억을 쌓았으면 좋겠다. 아이가 방 문을 쾅 닫고 들어가게 되는, 그 날이 오기 전까지는 말이다.










Photo by Paige Cody on Unsplas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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