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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Kim Ji Youn Jan 23. 2018

틀을 잡아주세요

볼펜. 메트로놈. 딱딱딱.

무엇이든, 한 단계를 넘으면 언제나 그다음 단계가 나를 기다리고 있기 마련이다. 마지막 단계라는 것이 과연 존재하기는 하는 것인지 의문이 들 정도다.


더듬더듬 악보를 볼 줄 알게 되었고, 피아노 건반 위에 손가락을 올려놓을 수 있게 되자, 이번에는 ‘박자’라는 커다란 산이 다가왔다. 음표의 모양에 따라 하나, 둘, 셋, 넷 혹은 더 많이 박자가 길어진다는 것은 머리로 충분히 이해하고 있었다. 하지만, 나도 모르는 ‘흥’이라는 것이 내 몸속에 있어서인지 아니면 천성이 급해서인지, 나의 연주는 끝날 때쯤이면 언제나 시작할 때 보다 속도가 빨라져 있었다. 문제는 그 사실을 나는 제대로 인식하지 못했다는 것이다.


하루는 레슨이 끝나고 가방을 챙길 때였다. 잠깐 방을 나갔다 돌아오신 선생님이, 레슨 시간 동안 선생님 친구가 밖에서 내 연주를 듣고 있었다며 친구분 말씀이 내가 너무 내 마음대로 연주한다는 의견을 주셨다고 했다. 지금도 그때의 기분이 생생하다. 너무나도 얼굴이 화끈거렸고 창피했다. 한창 예민한 사춘기 시절이라 더 그랬을지도 모르겠다. 모르는 사람으로부터 칭찬을 받았다면 굉장히 우쭐했을 테지만, 그 반대의 평가를 받았기에 우울하다 못해 기분이 나빴다. 


‘연주자의 감정과 느낌에 따라 어느 정도 달라질 수 있는 건 아닌가’ 하는 합리화에 최적화된 핑곗거리도 떠올랐고, 제대로 연습하지 못해 이러한 평가를 듣게 한 나 자신에게도 화가 났다. 


그래서 다시 꺼냈던 것 같다. 메트로놈 말이다.


우리 집 메트로놈은 정말 고전적이다. 이 메트로놈에 100% 의지해서도 안 된다. 태엽을 감은 정도에 따라 이 수동형 박자기도 얼마 못 가 점점 느려지기 때문이다. 


조금씩 힘이 빠지는 메트로놈과 피아노를 두드리는 선생님의 볼펜 소리는, 레슨 시간 중 항상 백그라운드처럼 깔려있는 정겨운 소리였다. 사실, 선생님이 계속 볼펜을 두드린다는 것은 그만큼 내가 박자를 잘 맞추지 못한다는 뜻이기도 했다. 선생님이 볼펜 소리를 잠깐 쉴 때면, 너무나도 이 소리에 의지하고 익숙해진 탓인지 불안해지기도 했다. ‘저 소리 없이도 내가 제대로 칠 수 있을까?’ 하는 생각 말이다. 


그렇게 메트로놈과 볼펜의 딱딱딱 소리에 기대던 시기가 지나자, 어느 순간 박자 소리가 선생님의 잔소리와 별 차이가 없게 느껴지기 시작했다. 집에서는 어차피 볼펜 소리를 내 줄 사람도 없었고, 메트로놈은 만지지도 않았다. 이제 난 ‘자잘한’ ‘도움’이 필요 없는, 한 단계 넘어선 실력자가 된 기분이었다. 이렇게 해도 난 할 수 있다는 자신감이 생긴 것 같았다.


그랬던 내가, 타인에게 좋지 않은 평가를 받자 가장 먼저 찾은 것이 메트로놈이었다.

메트로놈은 그런 존재였다. 틀을 잡아주고, 중심을 찾아주는 역할 말이다. 


틀 밖에서 실력을 즐길 수 있으려면, 틀 안에서 자유로워야 한다. 틀 안에서 자유로우려면, 틀 안에서 능수능란하게 잘할 수 있어야 한다. 그 단계를 뛰어넘지 못하고서는, 언젠가는 다시 틀 안으로 들어올 수밖에 없다. 


피아노 옆에 앉아 볼펜을 두드려주는 선생님은 이제 없다.

‘앤틱’이라는 수식어가 붙어 마땅한 우리 집 메트로놈은, 진동추가 어디론가 사라져 박자를 세팅할 수 조차 없다.


‘딱딱딱’ 소리가 가끔은 그립다.


메트로놈을 대신해서 틀을 잡아주고, 중심을 찾아주는 역할을 무엇에 부탁할 수 있을까.

다시 들어갈 수 있는, 내 인생의 박자를 찾아야 하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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