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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fragancia Sep 22. 2020

옆집이 드디어 이사를 갔다.

층간 소음의 끝판왕이었던 가족.

내가 이 집에 이사를 온지도 올해 3년 차가 되고 있다. 도심에서 약간 떨어진 이곳은 학군이 좋고 유흥업소가 없어서 학생이 있는 가족들이 많이 찾는 아파트 단지이다. 나 역시 이 곳에서 아이가 졸업할 때까지 살 계획으로 집을 계약할 때 신중할 수밖에 없었다.


비교적 낮은 가격에 올 리모델링을 하여 들어온 집은 생활하기 편했다. 혹시라도 층간 소음이 있지는 않을까 걱정했지만 노부부가 사는 윗집엔 손자들이 왔을 때만 쿵쿵거릴 뿐 조용한 편이었다. 아랫집 역시 어머니와 아들 둘만 지내는 집인데 평소 집에 계시지 않아서 인사를 나누기 힘들었다.


'이제 바로 옆집만 좋으면 딱이다'라는 맘으로 떡을 들고 인사를 갔던 날이 떠오른다.

"띵동~"

"띵동~"

인기척이 없어 집으로 들어가려는 찰나 노랗게 염색한 여학생(20대 초반)이 '퍽'하고 문을 열었다.

"누구세요?"

"아 옆집이에요. 이사 와서 인사드리려고요. 이사떡이에요."

"엄마 안 계시는데... 알겠습니다."


차가워보이는 인상의 여학생은 귀찮은듯 눈을 흘겼다. 다만 잠깐 문틈으로 보이는 집안 풍경은 여느 집과 마찬가지로 보였다. '아이들이 모두 성장한 가족인가 보다. 별일 없겠지' 했다.

나의 바람과 예상이 뒤집어 지기까지는 그리 오랜 시간이 필요치 않았다.


밤 10시. 쿵타쿵타~~ '이게 머지? 분명 윗집이나 아랫집은 아닌 것 같은데...' 귀를 기울이니 옆집에서 나는 소리였다. 록음악을 크게 틀어놓아서 나를 포함한 윗집 아랫집 모두가 문을 열고 소리의 근원지가 어디인지 찾고 있었다. 급기야 옆집의 아랫집 문이 열리고 계단을 올라오는 소리가 크게 들려왔다. 올라온 아저씨는 벨을 사정없이 누르고 현관문을 쿵쿵 쳤지만 사람의 응답은 없었다. 결국 경비실 아저씨가 오시더니 얼마 지나지 않아 경찰까지 부른 게 아니겠는가?


"아니 내가 내 집에서 음악을 듣겠다는데 이게 왜 죄가 되죠? 이해가 안 되네."

"이 시간에 소음을 내시니 문제죠. 일단 꺼주시고요..."

스트레스를 음악으로 풀어야 한다며 오히려 경찰에게 화를 내는 딸과 그 딸을 두둔하는 엄마의 목소리가 아파트 계단을 가득 채웠다. 잠잠해 졌을 때에야 나는 쉼을 얻을 수 있었다.


그 후로 몇 번이나 이런 일이 반복되다 보니 옆집을 만나면 내 인상이 자연스럽게 굳어졌다. 내 마음을 아는지 모르는지 나를 보면 그분들은 함박웃음을 보이며 인사를 건내왔다. 이상한 일이었다.


"어머 애가 많이 컸네요. 귀엽다."

"아... 네...^^;;" (나는 연기에 서툴다. ㅠㅠ 아마 그분 눈에는 내 웃음이 어색해 보였을 것이다.)

"이 라인 사람들은 예의가 없는 것 같아요. 집에서 뭘 못하겠다니까요. 그 집 아랫집은 할머니랑 아들만 있어서 괜찮죠?"

"아... 네..." 


나는 마음을 고쳐먹었다. 그래도 날 보면 밝게 인사를 해주시니까... 이웃으로 있는 동안만이라도 잘 지내보자 라는 생각에 시댁을 다녀오면 고구마, 옥수수, 귤, 감자, 양파, 비 오는 날은 부침개까지 가져다 날랐다. 별로 좋아하는 것 같지 않았지만 조금만 조용해 주기를 간절히 바라는 뇌물과도 같은 것이었다.

절이 싫으면 중이 떠난다고 했던가? 3년 동안 옆집의 아랫집은 4번이나 이사를 갔다. 그리고 5번째 이웃이 오던 날 일은 터졌다. 옆집 아랫집은 신생아를 키우는 3대 초반 부부. 아이가 잠을 자야 하는데 낮이고 밤이고 쿵쿵거리는 소음 때문에 부부는 극도로 스트레스를 받았나 보다.


"밖에 나가지 마요. 나 계단으로 내려오는데 아랫집 이사 온 남자가 식칼 들고 나와서 얼마나 놀랐는지 몰라. 나한테 윗집이냐고 물어보더라고... 하아~ 일단 나오지 말고 집에 있어. 무슨 일 있으면 꼭 신고해요."


다급한 남편의 전화 목소리를 듣고 현관에 가서 확인해보니 아니나 다를까 옆집 문을 쿵쿵 발로 차며 한 손에는 식칼을 들고 부들부들 떠는 남자가 보였다. 이성을 잃고 무슨 일이라도 생길 것만 같아 재빨리 관리사무소에 연락했다. 그리고 그날도 경찰이 와서야 모든 상황이 정리되었다. 결국 그 부부도 버티지 못하고 이사를 갔다. 


반 포기 상태로 지내던 우리 가족과 인근 아파트로 이사를 고려하기 시작했다. 코로나가 좀 잠잠해지면 옮기자는 말을 했지만 이사비용이 만만치 않다 보니 신경이 날카로워졌다. 

그런데 바로 이틀 전 아침, 퇴근 한 남편은 함박웃음을 지으며 현관으로 들어섰다.


"옆집 이사 가네. 우리 이사 안 가도 되겠는걸~"

"정말?" 문을 열어보니 플라스틱 상자가 가득 보였다. 이삿짐을 옮기던 아주머니는 나를 보더니 웃으며 다가왔다.


"이 집에 오래 살려고 했는데... 그래도 우리 꽤 잘 지냈잖아요? 서운해말아요."

"^^;;; 아 네..."


나는 결국 옆집 가족에게 "아~ 네"라는 이야기만 하고 그들을 떠나보냈다. 그분들이 어디로 이사를 가는지 알 수 없지만 그곳에서 또 층간 소음을 낸다면 뉴스에 나오지 않을까 살짝 걱정이 된다. 이 가족 덕분에 심장이 쪼그라드는 느낌을 나는 몇 번이나 경험했다. 무시무시한 밤 등골이 오싹했다. 그분들이 가는 뒷모습을 보며 인터넷에서 돌아다니는 이 문장이 떠올랐다. 부디 가시는 곳에서는 이웃을 배려해 주시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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