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비라는 이름의 흑마법

⌜애매한 영화 애호가의 왜 좋냐면⌟ 알랭 기로디의 미세리코르디아

by Aha

어떤 영화는 머리가 아니라 몸으로 먼저 온다. 알랭 기로디의 미세리코르디아가 그런 영화였다. 영화가 끝나기도 전에 마음속으로 토하듯 지르는 적막한 비명은 감상이 아닌 생존 본능에 가까웠다. "나가서 숨 한 번만 쉬고 들어올게요." 법정 스릴러의 지적 충격과는 다른, 폐부를 찌르는 쿰쿰한 현기증. 이것은 정교하게 짜인 서사 이전에, 마구니 낀 흑마법 같은 솜씨로 빚어낸 치밀한 지옥도다. 누가 영화가 어떠냐고 묻는다면 망설임 없이 공포영화라고 답할 테다. 너무, 무서워요.


이 세계는 자비(Misericordia)가 아니라, 밤새 축축하게 욕망과 의심이 자라나는 버섯 군락지다. 누구의 자비를 빌어먹어 균사들은 어느 밤 사이 지겹도록 또 번식하는가. 그 버섯들은 선악의 구분도, 행동의 이유도 묻지 않고 피어날 뿐. 도덕과 상식이 증발하고 오직 원초적인 욕망의 인력만이 지배하는 곳. 이곳에는 우리가 아는 '비명'조차 없다. 고통의 절규 대신, 이유 없이 피어나는 버섯 같은 욕망만이 인물들을 움직인다. 주인공 제레미는 숲에 갇힌다. 그의 모든 행동에 유효한 알리바이는 오직 '욕망'뿐이다. 그는 이미 지옥에 갔다. 욕망의 버섯들 사이에서 길을 잃고, 늪처럼 삼켜져, 영원히 축축한 숲을 헤매게 될 것이다.


그런데 이 모든 지옥도에 '자비'라는 이름을 붙이는 지독한 사람은 누구인가! 아니요, 감독님 뿐이잖아요. 이것이 기로디의 가장 지독한 농담이자 냉소적인 조롱이다. 영화 시작 10분 만에 '아, 프랑스가 프랑스 하네' 싶은 헛웃음이 나오지만, 곧 약간의 추위를 느낀다. 담담하게 이 정도의 지옥을 얽어낼 자신이 없다면 만들 수 없는 영화. 그쯤 되어서야 왜 이걸 블랙코미디라는, 말 같지도 않은 이름으로 부르는지 알 것 같다. (아직 너무 무섭지만, 한 번도 웃지 못했지만) 너무나 끔찍해서 웃음밖에 나오지 않는 상황. 어디서 이런 마교(魔敎) 같은 영화가 나타났는가.


기로디는 우리를 공범으로 만들지 않는다. 그는 인물들의 내면을 설명하지 않음으로써 공감을 거부하고, 우리를 차갑고 무력한 목격자로 세운다. 마치 곤충학자가 개미집을 들여다보듯, 그는 이해할 수 없는 욕망의 군무를 냉담하게 전시한다.


"나였으면 그냥 감옥 간다"


나의 중얼거림은 무의미하다. 제레미에게 감옥은 선택지가 될 수 없다. 그는 이미 자기 욕망이라는 더 근원적인 감옥에 갇혀 있으므로.


이것은 구원에 대한 이야기가 아니다. 자비 없는 세계에 붙여진 '자비'라는 이름의 잔인함, 그리고 그 안에서 영원히 길을 잃은 한 영혼에 대한, 음침하고 서늘한 관찰 기록이다. 한 달 동안 버섯은 금지다. 그 음흉한 버섯들은 절대 먹지 않을 것이다.




ps. 나는 한동안 제레미를 불란서판 중년 남자 은교라고 불러서 친구에게 크나큰 질타와 혐오를 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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