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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조여름 Aug 12. 2018

퇴사를 했다. 요즘 유행이길래

그리고 생각보다는 후회하지 않았다.  



퇴사를 하고 두 달이 지났다. 

오랜기간 고민해왔던 일임에도 불구하고 퇴사결정을 하기까지가 쉽지 않았다. 너무 큰 것을 놓치는 건 아닌지 고민이 되다가도, 더 버티기 힘드니까 과감히 사표를 내야겠다는 생각이 번갈아 가며 들었다. 그것만 6개월. 언젠가는 사표를 내겠지 싶어 결국 퇴사를 했다. 


3년 8개월을 다닌 회사였고, 좋아하는 일이었다. 돈을 많지 주진 않지만 일에는 아무 불만이 없었다. 단지 인간관계와 조직문화 때문이었다. 그리고 생각보다 많은 사람들이 그 문제로 퇴사를 했다.


조직생활보다는 자유로운 생활이 어울린다고, 형제들은 누누히 내게 말했기에 말리지 않고 오히려 반겼지만 부모님은 달랐다. 벌써 서른 중반인 딸이 번듯한 직장을 때려친다니 걱정하고 말리셨다. 결국 퇴사했을 때는 빨리 결혼을 하라고 했지만 안타깝게도 만나던 사람과도 잘 되지 않았다. 



서른 셋. 나는 아무것도 없이 발가벗은 신세가 되었다. 



타지에서의 생활을 정리하고 언니가 있는 고향으로 내려왔다. 시내에서 10분정도 차를 타야 들어갈 수 있는 시골이다. 형부와 주말 부부를 하며 혼자서 아이셋을 키우는 언니는, 내가 비비기 좋은 언덕이었다. 너무 크게 누가 된다면 물론 오지 않았겠지만, 언니 입장에서는 혼자 있는것보다는 나라도 있는게 나을 것 같다는 생각에 신세를 지자고 마음 먹었던 것이다. 


짐을 싸들고 집으로 돌아올때 가장 좋았던건 시내에서 집까지 오는 길에 펼쳐진 나무들이었다. 어디를 둘러봐도 울창한 나무가, 나뭇잎을 반짝이며 서 있었다. 한 두 그루도 아니고 많았다. 셀 수 없을 정도였다. 나무들은 바람에 파도를 타듯 넘실거리며 생명력을 자랑했는데 나는 그것이 그렇게도 보기가 좋았다. 


오랜만에 길에서 마주치는 동네 어르신들은 어색했고, 조카들은 귀엽긴 하지만 어려운 점도 많았다. 조용한 나만의 시간이란건 존재할 수 없고 시내에 나가려면 길게는 두 시간을 기다려 버스를 타야했다. 하지만 어릴때부터 익숙했던 일이라 힘들지는 않았다. 


직장을 잃고 나서 그 상실감과 막막함을 어떻게 채워야 할지 걱정했었다. 한 동안은 취업공고를 보며 고민했다. 부질없는 계획세우기에 열중하거나 얼마를 벌어야 안정된 삶이 될지를 노트에 그려보기도 했다. 그런데 두 달이 지난 지금은 그런것을 하지 않고 있다. 


수입이 없다는 것을 제외하면, 지금의 생활이 내가 생각했던것보다 훨씬 괜찮기 때문이다. 



가장 먼저 열무를 삶아 시래기를 만들어 보았다.  사진에 시래기로 끓인 된장국이 있다. 




퇴사하기 직전까지, 강박이 점점 심해졌었다. 뚜렷한 이유도 없는 강박이었다. 불안하다는 표현이 더 어울렸을까, 어떤 이유인지는 모르지만 심장이 쪼그라드는 기분이었다. 매일매일 조금씩 더 쪼그라들어 어느순간부터는 아주 작은 일에도 힘들어하는 자신을 발견했다. 


열정이 고갈되었다는 생각도 했다. 사람에 실망하기도 했고, 조직이라는 것 자체에 질리기도 했다. 아니, 애시당초 내 스스로가 조직과는 어울리지 않는다는 생각도 많이 했던것 같다. 내가 몸 담았던 조직에서는 유난히 신입사원 퇴사율이 높았는데, 나와 같은 증세를 보인 동료나 후배들이 많았을지도 모르겠다. 


나는 퇴사하고도 아주 오랜시간의 휴식이 필요할거라고 예상했었다. 하지만 시원시원한 숲 때문일까, 아니면 직장을 나가지 않아서일까.  두 달이 채 되지 않아 화상을 입은 상처에 새살이 돋아나듯 깨끗하고 건강한 마인드가 퐁퐁 솟아올랐다. 


 

원래가 좋은 사람은 아니라 건강한 마음을 회복했다고 말하기는 어렵지만, 적어도 지친다는 느낌은 완전히 없어졌다. 두 달만 쉬어도 이렇게 좋아지는데, 왜 회사는 한 달도 쉬지 못하고 그 오랜시간을 계속 다녀야 하는건지 모르겠다.  


최근에 읽은 '조그맣게 살거야'라는 책은 정말이지 마음에 쏙 들었는데, 숲속의 작은 집이라던가 타샤튜더, 월든 같은 이미지를 좋아하는 걸로 봐서 사실은 내가 이런 삶을 너무너무 살고 싶었던건 아닐까 하는 생각도 든다.


의문을 가져야 한다. 무엇때문에 이렇게 열심히 사는 건지? 자아발전이 행복을 준다면, 적당한 선에서 멈춰도 죄책감 따위는 없어야 한다. 반드시 꼭 해야만 하는 일은 없다. 특별히 무언가를 열심히 하지 않는 삶도 그런대로 괜찮은 삶이다.  

-조그맣게 살거야(진민영) 중에서 



아침에 일어나면 개밥과 물을 챙겨주고, 조카들 아침밥을 치우고 설거지를 한다. 9시가 되면 빈둥거리면서 이것저것 하고, 점심이 되면 또 조카들 밥을 차려주고 설거지를 한다. 언니가 시키는 일이 있으면 하고, 밥을 준비할때는 텃밭에서 파나 고추, 깻잎 따위를 뜯어온다. 방울토마토도 있다. 


오후에는 해야 할 일을 하는데, 글을 쓰는데 3시간 정도 걸린다. 그래봤자 초보고 습작정도지만 누군가 읽어주었다는 표시로 조회수가 늘어날때마다 신이 난다. 거절했지만 출판사에서 출간제의도 오니 내가 쓰는 글이 영 읽지 못할만한 글은 아니라는데 안도한다. 아무것도 고민하지 않고 집중해서 글을 쓰는 것은 어릴때부터 꿈꿔온 일 중 하나였다. 


차로 10분거리인 시내에 위치한 도서관에서는 한번에 5권의 책을 빌릴 수 있어, 잔뜩 빌려두고 시간 날때마다 펼쳐 본다. 그러다 또 다시 조카들 저녁을 준비하고 설거지를 하고 기도도 하고는 6시가 되면 언니와 함께 1시간동안 걷는다. 


집에 와 샤워를 하고 야구를 보며 매일 채팅을 하는 무리와 이야기를 나눈다. 그러다 책을 읽거나 글을 쓰다가는 잠든다. 


나는 어릴때부터 이 집에 살았지만, 그때에 이 집은 '언젠가는 떠나야 할' 곳이었다. 멀리 보이는 산너머, 그 뒤에 있는 산을 또 넘어 어딘가에 있는 서울에서 성공하는 것이 내 인생의 목표였다. 


하지만 막상 서울의 이름있는 대학에서 1년을 보내고 나서 금세 지쳐버렸다. 라캉이 말한것처럼 그 욕망은 내 욕망이 아니라 부모의 욕망이었던 모양이다. 하지만 그래도 가진 욕망이 많았던지, 쉽게 놓지못하고 쥔것들은 나를 더욱더 지치게 했다. 사람들은 대체 왜 그렇게 역경을 이겨내고 열심히 사는건지, 나는 왜 그렇게 못하는지 채찍질하는 일이 습관이 되었으니까. 


하지만 열심히 사는것과 욕망을 놓지 못하는건 전혀 다른 문제다. 

욕망을 많이 가지고 있다고 성실하리라는 보장은 없다. 전혀 다른 영역인 것이다. 


오히려 너무 많은 생각과 욕심은 손해보는 짓은 하지 않으려고 머리를 쓰다보니, 제 꾀에 제가 속아 넘어가는 경우가 더 많았다. 


그냥, 하고 안되면 다시 하거나 포기하면 된다. 


이 단순한 논리가, 마음의 여유가 생기니 가슴속으로 훅 들어왔고 무언가를 해야 한다는 강박도 없애주었다. 

그리고 생각이 단순해지니 삶의 만족도가 크게 높아졌다. 


앞으로는 지금까지와는 다른 방식으로 살아가겠지. 다른건 몰라도 그 하나만은 확실하다. 다시 취업을 하든 농사를 짓든 아니면 글을 쓰든 지금처럼은 더 이상 살 수 없다. 매미 유충이 탈피를 못하면 그대로 죽어버리듯, 생각이든 생활방식이든 달라지지 않으면 더 이상 생동감 있게 살 수 없을것 같기 때문이다. 


나이가 한살 한살 늘어날수록 앞은 더 보이지 않는다. 차라리 어린시절에는 고등학교를 가고, 대학을 가고, 취업을 하는 보통의 코스가 있었는데 서른 중반이 되니 이제는 보통의 코스가 존재하지 않거나 혹은 그 코스를 따르기에는 힘에 부치고 많이 약아져 버렸다. 


당장 내년도 알 수 없으니, 일단 올해를 집중하기로 한다. 올 연말 2018년을 떠나보내면서 조금은 나아졌기를 바라면서. 일단은 열심히 글을 써보고, 텃밭을 가꾸고, 건강해지기로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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