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두 번의 미역국을 먹고 브런치 작가가 된 것은 2020년 6월 5일이었다.
지금 생각해보니 이 날은 내가 난임 병원에 처음 간 날이다.
오전에 병원에 다녀와서 메일을 확인하니 브런치에서 작가 승인 메일이 와있었다. 그렇게 나는 그동안 서랍에 써 두었던 글을 발행할 수 있었고 직장 이야기, 며느리 이야기, 남미 여행 이야기 등 이런저런 글들을 발행하는 데 재미를 붙이고 있었다.
브런치는 신규 작가의 글이 괜찮으면 초반에 다음 메인에 한번 노출을 시켜준다. 이 맛을 한 번 보면 마약처럼 조회수에 집착을 하고 글을 자꾸자꾸 뽑아내고 싶은 욕망에 사로잡히게 된다. 일종의 브런치 식 글쓰기 동기부여라고나 할까.
나는 딸 같은 며느리로 그 마약을 한 번 맛봤다.
하루에 몇십 명 정도가 찾던 내 브런치는 이날 다음 메인노출과 함께 매 시간마다 1000 뷰씩 오르더니 1만 뷰를 달성했다.
다음 메인노출의 위력은 어마어마했다. 내 글을 만 명이 넘는 사람들이 읽고 라이킷을 누르고 댓글을 남겨주고 하는 것들이 너무너무 짜릿하고 재밌었다. 그리고 신기했다.
덩달아 한자릿수에 불과하던 구독자 수도 빠르게 증가했다. 구독자가 늘어나니 글을 더 잘 쓰고 싶었다.
이후 며느리의 전화 공포증 글이 다음 메인에 한번 더 노출이 되었고 또 만 뷰 달성을 했다. 또 신기하고 재밌었다.
그렇게 며칠 뒤 내 브런치는 다시 잠잠해졌고 응모한 공모전마다 죄다 낙방했다. 그냥 일종의 취미인 줄 알았던 글쓰기가 보상이 없으니 슬슬 재미가 없어졌다. 글도 잘 안 써지는 것 같아서 한동안은 브런치를 등한시하고 있었다.
브런치에 난임 일기를 쓰기 시작한 것은 배아를 이식하고 나서 기다리는 시간이 너무 지루해서였다.
난임 시술과정은 마음이 참 많이 힘들었다. 친구들에게 말할 수도 없고 남편도 혼자 동동거렸지만 그닥 큰 위로는 되지 않았다. 가족들도 아무런 도움이 되지 않았다. 혼자서 너무 힘들고 외로웠다.
시술을 시작하면서 블로그에 난임 일기를 먼저 쓰고 있었는데 거기에는 내 이야기를 쓰기보다는 남에게 보여주는 글을 쓰고 있었다. 거기엔 주사 명칭과 용량까지 하나하나 명시되어 있다. 그 플랫폼은 어차피 검색해서 들어와서 보는 글이니까. 난 이런 기록 말고 내 진짜 생각을 남겨두고 싶었다. 그렇게 브런치로 와서 오로지 내 생각을 담은 난임 일기를 쓰기 시작했고 쓰고 싶은 글을 쓰니 글이 술술 써졌다.
그렇게 신나게 시험관 시술의 과정과 내 기분을 기록해 나가던 중 다음은 내 글을 또 메인에 노출시켜줬다.
과배란 이야기도 메인에 노출이 되었고, 내 인생 최초의 두줄 이야기도 메인에 노출이 되었다. 노출시간은 길지 않았고 글 당 5천 뷰 정도의 기록을 만들었다. 오, 다음이 내가 난임 일기 올릴 때마다 메인에 올려주네...? 이쯤 되면 다음 AI는 내 글을 좀 좋아하는 것 같기도 하다는 생각이 설핏 들었다. (그럴 리 없겠지만)
이렇게 난임 일기를 써나가던 중 나는 시험관 시술 과정의 최대 위기를 맞았다. 임테기 두줄을 보고 임신인 줄 알았는데 아기집이 보이지 않았던 것.
우울한 마음을 떨쳐내고자 아기집을 보지 못한 날의 일기를 썼다. 두 줄이라고 축하해주시던, 원래 내 글을 읽어주시던 분들이 힘내라는 응원의 댓글을 남겨주셔서 마음의 위로를 받으며 멘탈 관리를 하고 있었다.
그리고 이틀 뒤 초음파 재검사날.
알림에 떠 있는 글의 조회수는 3천이 아니라 3만이었다.
3천이라고 해도 놀랄 일인데 0이 하나 더 있는 것이었다.
이것은 필시 무슨 일이 벌어진 것이다. 다음 메인 제일 앞자리에 떠있는 것이 아니면 이럴 수가 없을 거다. 하며 어플을 켰더니 세상에나. 다음 어플 상단 메인에, 게다가 카카오톡 뉴스 메인에 아기집이 안 보이네요 글이 걸려있었다. 이 글은 아마 어제 종일 메인에 노출되고 있었던 것 같다.
남편에게 내 글의 3만 뷰 소식을 전했다. 남편은 황당해하면서 3천이 아니냐고 되물었다. 정확히 3만이라고 캡처 화면을 보여주니 아기집이 안 보이는 것이 이렇게나 큰일이냐고 했다. 그러게. 이제 어쩌니.
남편은 분명 다음 카테고리 담당자가 난임 시술중일 것이라고 했다. 기계가 무작위로 선정하는 것 아니었어??
오늘 병원 가서 아기집을 못 보면 난 대역죄인이 될 것 같았다. 댓글에는 나와 같은 일을 겪은 사람들, 나를 응원하는 사람들이 계속 응원을 보내고 있었고 일일이 답변을 달고 있는 중에도 댓글이 쏟아졌다. 난 조용히 살던 사람인데 이런 엄청난 관심을 처음 받아봐서 기분이 얼떨떨했다.
병원에서 아기집을 보고 나니 열렬히 내 일처럼 마음 졸여가면서 응원해주신 분들한테 감사하다고 배꼽인사라도 해야 될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이렇게 랜선으로 받는 응원도 처음이지만 그 응원들이 이렇게 큰 힘이 되어보긴 정말 처음이었다.
그러는 와중에도 구독자와 라이킷이 정말 말 그대로 폭발하듯이 늘어났다. 와. 3만 뷰면 엄청난 일이 벌어지는구나도 잠시.
5만,
7만,
집에 돌아왔더니 내 글은 10만 조회수를 찍었다.
몇 명 되지 않던 내 브런치의 구독자수는 3백 명을 넘어섰다. 난임 일기 매거진의 구독자는 150 명에 가까워 가고 있었다. 공들여 쓰던 며느리병 탈출기도 20명을 넘기기 힘들었는데 순식간에 난임 일기의 구독자는 폭증한 것이다. 게다가 덩달아 기존의 다른 글들까지 조회수가 같이 올라가고 있었다.
그리고 오늘 아침 확인한 알람에는 자정에 내 글의 조회수가 15만을 넘겼다는 내용이 떠있었다.
15만이라니.
15만 명이라는 사람의 수가 도무지 가늠이 되지 않았다. 끄적끄적 내 마음 달래려고 썼던 난임 일기를 15만 명이라는 엄청난 수의 사람들이 읽은 것이다. 이 많은 사람들이 튼튼이의 존재를 알고 있다. 이제 튼튼이는 이 사람들 때문에라도 엄청 잘 커야 될 판이었다.
서둘러서 아기집을 봤다는 글을 써야 했다. 난 아기집이 안 보여서 15만 명의 사람들에게 속상함을 전달했기에. 이전 글이 임테기 두 줄로 임신을 확인했다는 글이어서 축하를 실컷 받아놓고 갑자기 아기집이 안보인다고 폭탄을 던진 꼴이 되었기 때문이다. (튼튼이는 여러 사람을 놀래켰구나)
눈 뜨자마자 세수도 안 하고 맥북을 켜서 어제 병원에 다녀온 이야기를 부랴부랴 작성했다.
어쩌다보니 나는 브런치에다가 내 난임 시술 상황을 생중계하고 있는 모양새가 되었다. 아니 이게 일이 왜 이렇게 커졌지?? 튼튼이는 이제 아프고 싶어도 아프지도 못할 거다. 널 지켜본 사람들이 최소 15만이다. 이 글을 쓰고 있는 현재 글 조회수가 19만 5천을 넘어서고 있다.
내 난임 일기를 보면서 나처럼 난임시술의 터널을 지나고 있는 분들은 그 힘듦에 공감을, 이미 터널을 빠져나와 아이를 키우는 분들은 다시 그때의 기억을 새록 떠올리는 기회를, 시험관은 아니어도 아이를 키우면서 힘들어 지쳤던 분들은 아이를 기다리던 초심을 떠올리게 되었다는 댓글을 남겨주셨다. 시험관 시술에 대해서 잘 모르는 분들도 내 글 덕분에 이 과정에 대해서 많이 알았다며 힘내라는 응원을 많이 보내주셨다. 게다가 나에게 응원 댓글을 달기 위해 브런치에 가입했거나 비번을 잊어버렸었는데 찾아서 로그인하셨다는 분들도 계셨다. 몸둘바를 모르겠다...
많은 분들의 응원에 어떻게 감사를 표해야 할지.
나는 아직 난임 병원 졸업까지는 넘어야 할 관문이 많이 남아있다. 무사히 그 과정을 거쳐야 분만 병원으로 전원을 할 수 있는데 그 기간이 아직 한 달은 더 남은 것 같다.
남편과 둘이서만 손잡고 난임 병원에 들어선 지 벌써 3개월이 넘어서고 있었다. 오롯이 부부끼리만 이 과정을 견디는 것이 많이 힘들었는데 이렇게 많은 사람들에게 응원을 받고 나니 엄청나고 대단한 기를 받은 기분이 들었다. 내가 이 아이를 만기 출산하게 되면 다 응원해주신 분들 덕분이다.
앞으로 이어질 내 난임일기는 튼튼이가 잘 자라는 이야기와 함께 난임병원을 잘 졸업했다는 글로 마무리하고 싶다.
그리고 나면 임신,출산 일기를 쓰게되지 않을까.
*** 다들 정말 고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