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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우성 Aug 03. 2018

이효리가 하는 그거, 너도 할 줄 알아?

지금보다 조금 더 강해질 거야. 천천히, 다만 똑바로 걸어갈 거야.

요가원으로 향할 때의 나는 거의 맨몸이었다. 아무것도 필요 없으니까, 사무실을 나설 때마다 그렇게 가뿐했다. 불필요한 건 탈의실 사물함 안에 모조리 풀어놨다. 시계나 휴대전화, 누군가에게 써야 하는 이메일이나 얼른 마무리해야 하는 원고, 내일 해야 하는 일에 대한 걱정과 바로 직전의 스트레스까지 다 넣어두고 봉인하듯 잠가버렸다.


요가는 그렇게 조용하고 단호한 차단이었다. 한 시간 남짓의 완벽한 평화를 위해 하루를 버티는 것 같았다. 몸은 아주 서서히 변하고 있었다. 낯선 감각을 체험하는 순간이 쌓이고 또 쌓였다. 허벅지와 등 뒤를 거쳐 맞잡을 수 있게 된 두 손, 다리를 벌리고 앉아서 상체를 내렸는데 가슴에 바닥에 닿았던 저녁의 기억이 몸에 새겨지기 시작했다. 내 몸은 딱 수련만큼만 강해졌다. 그럴 때마다 정수리 위로 하얗게 빛나는 별 하나가 떠오르는 것 같았다. 나만 아는 기쁨, 은밀한 성취감. 나는 점점 더 깊이 즐겼다.


이해할 수 없는 날도 있었다. 어제 됐던 자세가 오늘은 안 됐다. 아무래 뻗어도 닿질 않았다. 어제 서로 고백했던 애인과 오늘 헤어지는 기분, 물살과 반대 방향으로 수영하는 느낌, 전진과 후진을 반복해 결국 제자리인 것 같은 날. 내 몸이 거짓말을 하는 것 같았다. 선생님은 이런 말씀을 자주 하셨다.


“오늘은 오늘의 몸이 허락하는 곳에서 머물러주세요. 어제와 오늘은 다를 수 있어요. 매일 하던 자세가 갑자기 안 될 수도 있고, 어제까지 안 되던 자세가 갑자기 될 수도 있습니다.”


모르는 사람이 들으면 “봄이 지나면 여름이 오고 여름이 지나면 가을이 옵니다” 같은 느낌일 수도 있는 말, 너무 당연해서 아무도 안 했던 말인지도 몰랐다. 하지만 정답이었다. 몸은 매일 달랐다. 내 몸이 계절 같았다. 컨디션은 날씨 같았다. 머리로 아는 것과 몸으로 경험하는 건 완전히 다른 차원이었다. 그러니 아침처럼, 나는 받아들이기만 할 일이었다.


하지만 도리없이 무력해지는 날도 있었다. 어떤 아사나는 벽처럼 굳건했다. 뚫을 수도 넘을 수도 없을 것 같았다. 자신감도 패기도 소용없었다. 강해졌다고? 나는 이내 부끄러워졌다. 근육? 원래 거기 있었던 걸 이제 발견했을 뿐이었다. 힘은 팔에도 없고 배에도 없는 것 같았다. 그저 약했다.



그날도 나는 아무것도 할 수 없어서 그냥 앉아있었다. 뚝뚝 떨어지는 땀을 닦고 한 숨 돌리면서 입을 살짝 벌린 채, 허탈하고 놀라운 마음으로 주위를 둘러봤다. 놀라운 광경이었다. 거의 모든 수련생들이 거꾸로 서서 나무처럼 자라고 있었다. 머리를 뿌리 삼고 팔꿈치를 흙 삼아 하늘로 일어서고 있었다. 수련을 시작하기 전엔 모두 가늘고 여려 보였던 사람들, 모두 나보다 훨씬 강한 몸이었다. 넋을 놓고 그들을 보고 있을 때, 선생님은 웃으면서 말씀하셨다.


“다들 굉장하죠?”
“네, 어떻게…?”


나는 이 아사나의 이름을 기억하려고 애썼다. 몇 분 전, 선생님의 시범을 마음속으로 몇 번이나 복기했다.


“오늘은 우리 시르사사나(sirsasana), 머리 서기 할 거예요. 헤드 스탠드(Head Stand)라고도 해요. 일단 한번 보고 같이 연습하는 시간 갖고. 이렇게 손을 매트 위에서 깍지 껴서 손과 양 팔꿈치와 삼각형을 만들 수 있도록 이렇게… 그다음에 정수리를 이렇게 대고…”


바닥에 닿은 부분은 팔꿈치 아랫부분의 팔과 정수리 뿐이었다. 그렇게 무릎을 펴고 한 걸음 한 걸음씩 걸어와 발과 얼굴이 가까워졌다. 상체가 곧게 펴지면서 골반 전체가 천장과 가까워졌다. 그러다 바닥에서 발이 톡 떨어졌다. 소리 없이, 그대로 ‘스스슥’ 하고 상체와 하체가 직선이 되기 시작했다.


저 힘은 어디서 나오는 거지? 누가 하늘에서 끌어올려주는 것 같았다. 몇 년 전, 한강에서 장사익 선생의 노래를 들을 때도 비슷한 감정이었다. 그 어마어마한 소리가 선생의 작은 몸 어디에서 나오는지를 가늠할 수가 없었다. 목? 머리? 배? 오래 보고 있으면 그저 전신으로부터 였다. 어떤 부분의 힘이 아니었다. 기교도 아니었다. 총체적인 에너지였다.


시르사사나를 처음 보고 배웠던 날의 충격은 꽤 강했다. 도전과 자괴감, ‘하고 싶어!’와 ‘왜 안 되지!’가 반반이었다. 그날, 몇 번인가 시도하다 도저히 못 하겠어서 둘러보면 다들 의젓하고 독립적인 나무 같았다. 거꾸로 서서 바람이나 비도 이겨낼 준비가 된 것 같았다. 일어선 후에는 그대로 버티고 있었다. 흔들렸지만 쓰러지지 않았다. 유지하고 있었다.

올라가는 것보다 유지하는 게 훨씬 어렵다는 건 나중에 알았다. 엄청난 집중력, 단호한 표정과 결의. 땀은 거꾸로 흘러내려 요가 매트 위로 떨어졌다. 그렇게 고요한 와중에 유일하게 격렬했던 건 오로지 호흡이었다. 입은 꾹 다물고 코로 쉬는 숨이었다. 모든 에너지가 그 안에 있는 것 같았다. 멈추지 않는 호흡 소리 안에서 스튜디오는 점점 더 경건해지고 있었다.


“우성 씨도 할 수 있어요, 수련하면.”


선생님의 여전한 미소, 나는 궁금한 것 투성이었다. ‘코어의 힘’이라는 게 어떻게 저렇게 부드럽게 하체를 들어 올릴 수 있는지. 어깨를 넓게 쓰고 팔로 바닥을 밀어내는 힘을 계속해서 써야 한다는 게 대체 어떤 감각인지 알 길이 없었다. ‘그 코어라는 게 나한텐 없나 봐…’ 시무룩할 즈음의 어떤 날에는 벽에 의지하는 방법을 배웠다. 수련의 단계, 힘을 키우는 방법이었다. 일단 벽에 기대고 점점 벽에서 멀어지는 식이었다. 나는 그제야 거꾸로 설 수 있었다.


세상을 거꾸로 본다는 게 어떤 느낌인지 그제야 조금 알게 됐다고 말할 수 있을까? 낯섦과 개운함이 반반이었다. 그렇게 거꾸로 서서 나는 숨 쉬는 것도 잊고 신기해서 웃고 있었던 것 같다. 눈에 들어오는 게 다 새로워서, 나는 심지어 어려진 것 같았다. 강아지들은 이래서 발랄한 거겠지? 내려오고 싶지 않았다. 내 몸이 한없이 가벼워진 것 같았다. 조금 다른 차원의 수련이 시작된 셈이었다. 


하지만 영원히 벽에 의지할 순 없었다. 나는 혼자 설 줄 알아야 했다. 벌판에 머리로 선 채로도 가벼워지고 싶었다. 그게 진짜 자유 같았다. 이후에는 셀 수 없이 등으로 떨어졌다. ‘철퍼덕’ 하고, 강한 힘으로 침묵하는 스튜디오에서 거의 유일하게 절박했던 소리를 냈다.


“괜찮아요, 또 올라가면 돼요.”


포기하지 않는 것만이 나의 재능 같았다. 시간이 허락할 때까지 올라갔다. 그렇게 등으로 떨어지다 나중엔 앞으로 구르는 방법을 터득했다. 균형이 흐트러지는 순간 몸을 둥글리는 타이밍을 찾아냈다. 그럼 조금 덜 민망하게 실패할 수 있었다. 더 연습했더니 앞으로 구르는 대신 발로 사뿐하게 떨어지는 감각도 알게 됐다. 넘어지는 법을 알게 된 후엔 두려움이 조금씩 사라지기 시작했다. 실패해 봐야 앞구르기밖에 더 하겠어? 떨어져야 등 아니겠어?

그렇게 얼마나 더 수련했지? 요가원이나 집에서도, 출장 중인 호텔의 밤, 마감을 마치고 돌아간 내 방에서도 연습했다. 벽에서 점점 멀어졌다. 거꾸로 떨어지는 빈도도 줄었다. 그때 그 놀라웠던 첫 수업 시간에 그랬던 것처럼 나도 거꾸로 유지할 수 있게 됐다. 입을 꾹 다물고 호흡의 개수를 헤아릴 때 격렬하게 오르내리는 배, 발 끝까지 들어가는 힘, 한 곳을 보면서 집중하는 감각도 찾아냈다. 그 모든 힘의 중심에 있던 코어 근육이 있었다. 나한테만 없었던 게 아니었다. 쓸 일이 없으니까 인식도 못했던 거였다. 그렇게 약해지던 근육들이 배와 등, 엉덩이와 골반에서 애를 쓰고 있었다. 거기가 내 몸의 중심이었다.


“요가 좋아요? 어때요? 힘들진 않죠? 좀 이렇게 캄(calm)하게 스트레칭하는 느낌일 것 같아 좋을 것 같아요.”


관심이 생겼는데 경험은 없는 누군가에겐 이런 질문을 자주 들었다. 아주 틀린 얘기는 아니었다. 고요하게 몸의 구석구석을 펴주는 느낌으로 듣는 수업도 있고 완벽한 이완을 위한 수업도 있으니까. 그래서 대답했다.


“약간 영화 장르 같은 느낌이라고 생각하시면 돼요. 그런 장르의 요가도 있고, 다른 장르의 요가도 있고. 다양하게 들어보고 좋은 수업 컨디션에 맞게 골라 들으시면 돼요. 근데 기본적으로는 근육을 굉장히 많이 써요. 점점 강해지고, 강해져야 하고, 유연해지고, 땀도 진짜 많이 나고.”
“땀이 나요?”
“그럼요, 요가만큼 드라마틱하게 땀을 많이 흘린 적이 없었던 것 같아요. 검도도 배워보고 유도도 배워봤지만.”
“그럼 그것도 할 줄 알아요? 그 물구나무서기, 이효리 씨가 하던 그런 것.”
“아 머리서기요? 시르사사나?”

나는 웃으면서 대답했다.


“할 줄은 아는데, 계속 연습하고 있어요. 어떤 날은 잘 되고 어떤 날은 넘어지고. 어떤 날은 1분도 버티는데 어떤 날은 호흡 열 번도 못 채우고 그래요.”


이제 세상에 100퍼센트라는 건 없는 것 같다. 늘 흐르고, 변하고, 영원히 제자리인 것도 없으니까. 할 때마다 멀었다고 생각한다. 좋았던 날도 완벽하지는 않았다. 어쩌면 영원히 완벽할 수는 없겠지? 세상 어떤 성취에도 그 이상이 있을 테니까. 하지만 하면 할수록 강해진다는 사실을 의심하지는 않는다. 그것만이 수련이 하는 약속이라고 믿는다.


그렇게 수련하고 요가원을 나설 땐 세상 무서울 게 없었다. 끝이 없으니까 되려 편안해진 마음이었다.  나는 점점 강해질 거니까, 포기하지 않는 것만이 재능이니까. 그렇게 조금씩, 아주 느리더라도 뒷걸음질 치지는 않을 테니까.


글/ 정우성
그림/ 이크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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