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발걸음이 빚은 상해 여행 3일 차

걸음마다 스며든 순간들

by 우리도 처음이라


새로운 햇살이 로비를 가득 메우던 아침, 가만히 침대에서 내려와 파크호텔에서 파는 나비파이를 위해 문이 열리기 30분 전 오픈런을 시도했다. 예상과 달리 이미 길게 늘어선 줄에 30분을 더 보냈고, 욕심껏 몇 개를 집었지만 한 시간을 기다릴 가치가 있었는지는 솔직히 아쉬움으로 남았다.



분주했던 마음을 뒤로하고 늦은 아침의 햇빛을 따라 티엔쯔팡(田子坊, Tiánzǐfāng)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좁은 골목마다 향낭과 가죽 공방, 도자기 공방과 소품 가게가 어깨를 맞대고 서 있었다. 돌마다 스치는 나무 냄새와 꽃내음이 교차하는 사이 진열장 속 반지들이 속삭이듯 반짝였다.



다음 목적지인 신천지로 향하던 길, 점심을 어디서 먹을지 망설이다가 첸리샹 훈둔왕(千里香馄饨王, Qiānlǐxiāng Húndùn Wáng)에 들어섰다. 소박한 식당 풍경 너머로 들려오는 웃음소리가 모험을 부추겼다. 얇은 만두피에 가득 차오른 고기와 채소, 테이블 위 고수를 원하는 만큼 얹어 먹는 방식이 뜻밖의 온기를 전해 주었다.



식사를 마치고 거리로 나오면 강렬한 붉은 건물이 시선을 잡아끌었다.


도착한 신천지는 예쁘긴 했지만 관광지의 번잡스러움이 어딘가 취향이 맞지 않아 Le Labo 신천지점에만 잠시 들려 상하이 시티 익스클루시브인 ‘Myrrhe 55’만 시향 했다.



발걸음을 돌려 지오지아방루(肇嘉浜路, Zhàojiābāng Lù)에 닿으면 카페와 부티크가 나란히 늘어섰다. 그중 ‘TAN 남챠오(南桥, Nánqiáo)’ 카페의 흰 자갈 마당 위로 퍼지는 드립커피 향이 이틀째 이어진 여정에 단단한 쉼표를 찍어 주었다.



골목길을 따라 걷다 마주한 농장 콘셉트 팝업 스토어에서는 종이봉투를 뒤집어쓴 채 사진을 찍으며 엉뚱한 장난기가 미소를 자아냈다.



젠틀몬스터 플래그십 ‘HAUS SHANGHAI’ 앞에서는 2미터 높이 로봇 얼굴 ‘The Giant’가 묘하게 기괴한 설치미술로 시선을 사로잡았다.



이날의 저녁은 마오토우 라오디엔(毛头老爹饭店, Máotóu Lǎodiē Fàndiàn)을 찾았다. 1시간 반 가까운 기다림 끝에 마주한 홍샤오로우(红烧肉, hóngshāoròu)와 셴땅황 파이티아오(咸蛋黄排条, xián dàn huáng pái tiáo)는 달큼한 육즙과 짭조름한 달걀노른자 가루의 바삭함으로 오래도록 여운을 남겼다.



식당 대기 중 있었던 해프닝도 기억에 남았다. 받은 번호표 109번을 한참 기다리던 중 100번을 ‘이링링(yī líng líng)’으로 예상했는데 돌연 ‘야오링링(yāo líng líng)’이 호명됐다. 중국에선 전화번호나 번호표처럼 연속된 숫자를 읽을 때 一(1)를 yī가 아니라 yāo로 발음한다는 걸 이때는 몰라 번호가 지나간 줄 알고 당황했던 것이다.


마지막 디저트는 지우스무 모차(九十暮抹茶, JiǔshímùMǒchá)의 말차 아이스크림 3 스쿱. 서로 다른 진하기의 녹빛이 입안을 감싸며 하루를 차분히 마무리하는 차가운 단맛이 되어 주었다.



상해 여행 3일 차는 좁은 골목마다 스며든 향과 맛, 작은 에피소드들이 길 위의 풍경을 다채롭게 완성한 하루였다.

keyword
매거진의 이전글계획 없이 상해 여행 2일 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