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박 4일 마지막 날 오후 5시 비행기를 기다리며
아침이 밝았다. 공원 너머로 스며드는 햇살이 창가를 부드럽게 감쌌고 체크아웃을 마치고 호텔에 짐을 맡긴 뒤에야 오늘이 마지막 날이라는 사실이 조금씩 실감 났다. 오후 다섯 시 비행기. 아직은 이 도시를 느긋하게 걸을 수 있는 시간이 남아 있었다.
처음 향한 곳은 샤오홍슈에서 동방명주를 배경으로 사진을 찍기 좋은 곳으로 추천하는 상해 우정박물관(上海邮政博物馆, Shànghǎi Yóuzhèng Bówùguǎn)이었다.
하지만 문 앞에는 ‘내부 공사로 임시 휴관’이라는 안내문이 우리를 반겼다. 하필 이틀 임시 휴관인데 딱 그 시기에 온 거라니. 아쉬움은 있었지만 계획하지 않은 여백도 여행의 일부라 생각하며 방향을 바꿨다.
강을 따라 이어진 푸강 빈강대로(浦江滨江大道, Pǔjiāng Bīnjiāng Dàdào) 산책로는 햇살과 바람이 잘 어우러진 길이었다. 호주의 시드니 서큘러 퀘이(Circular Quay)가 떠오를 만큼 넓고 정돈된 강변에는 여유롭게 걷는 사람들이 많았다. 우리도 그 흐름에 섞여 조용히 여유를 즐겼다.
산책로 끝에 이르자 또 하나의 포토스폿, 거대한 거울돔이 모습을 드러냈다. 유리 표면에는 파란 하늘과 흰 구름이 고스란히 담겨 있었고 맑은 날의 풍경을 투명한 구 안에 옮겨놓은 듯 빛나고 있었다. 우리도 줄을 서서 기념사진을 남겼다. 햇살과 하늘, 그리고 마지막 날의 기분이 그 안에 함께 담겼다.
한참을 걷다 보니 햇살에 지친 몸이 슬그머니 쉬고 싶어졌다. 근처에 조용한 카페가 보여 자연스럽게 야외 테이블에 앉았고 동방명주가 바라보이는 풍경 속에서 커피를 천천히 마셨다. 노란 은행잎을 형상화한 조형물 아래로 햇살이 따뜻하게 내려앉았고 우리는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며 마지막 오후를 느긋하게 정리했다.
점심은 여객선 선착장을 개조한 듯한 Paulaner Brauhaus Shanghai에서 해결했다. 시간이 애매했고 더 고민할 여유도 없어 그냥 눈에 보여서 무작정 들어갔다. 관광객을 위한 구성과 제법 높은 가격이 다소 낯설었지만 파스타는 무난했고 창밖으로 보이던 강과 동방명주, 마천루가 어우러진 풍경이 식사를 충분히 만족스럽게 만들어 주었다.
며칠 전 야경을 보며 지나쳤던 난징동루(南京东路, Nánjīng Dōnglù)의 낮은 어떤 모습일지 궁금해졌고 마침 마지막으로 들르고 싶던 장소도 그 근처에 있어 자연스럽게 그 방향으로 걸음을 옮겼다.
낮의 난징동루는 활기찼고 햇살에 반짝이는 간판들과 바쁘게 오가는 사람들, 그 속을 부드럽게 흘러가는 바람. 그 안에서 우리가 찾은 건 식당 외벽에 큼직하게 새겨진 ‘상하이(上海, Shànghǎi)’라는 한자였다.
중국 첫 여행이었던 리장에서는 이런 공간이 있는 줄 몰랐지만 시안부터는 도시마다 이름을 새겨둔 장소들을 찾아 사진을 남기기 시작했다. 오늘은 그 모음에 상해가 더해졌다. 배경이 전해주는 기분은 도시마다 필체와 느낌이 달라 그때그때 새로웠다.
호텔로 돌아오는 길. 난징동루의 아디다스 매장 앞에서 뜻밖의 장면이 우리를 멈춰 세웠다. 작은 푸들 한 마리가 멋진 옷차림으로 그 자리에 서 있었다. 회색 체크 셔츠에 빨간 니트 베스트, 네 발엔 작은 신발, 그리고 동그란 선글라스까지. 거리의 주인처럼 여유롭게 서 있는 모습에 지나가던 사람들도 웃음을 지었다. 우리 역시 자연스럽게 그 앞에 멈췄고 결국 사진 한 장을 남겼다. 이름도 모르는 그 강아지는 여행 마지막 날에 가장 귀여운 추억을 남겨준 존재가 되었다.
짐을 찾으러 숙소로 돌아오는 길. 여행 내내 몇 번이고 지나쳤던 파크 호텔(国际饭店, Guójì Fàndiàn)이 그제야 또렷하게 보였다. 파크 호텔 앞에서의 마지막 풍경은 마치 인사를 건네듯 잔잔했고, 우리는 그렇게 상해에서의 모든 순간을 마음속에 가볍게 담아 돌아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