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벽의 시장부터 젊은 작가들의 공방까지
아침 조식을 먹기 전, 산책 삼아 이른 시간에 귀신시장(鬼市, Guǐ Shì)을 찾아가 보기로 했다. 정식 명칭은 타오야오 구완청(陶窩·古玩城, Táo yáo·Gǒwàn Chéng). ‘도자기 가마와 골동품 도시’라는 이름을 내건 이곳은 새벽 3 ~ 4시 무렵 문을 열고, 해가 뜨기 전인 8시쯤이면 조용히 장이 접힌다. 아직 어둠이 채 걷히기 전, 손전등 불빛에 의지해 물건을 들여다보는 풍경 때문에 이곳에는 오래전부터 ‘귀신시장’이라는 별명이 붙었다. 과거엔 몰래 물건을 팔던 이들과 그것을 찾는 이들이 모여들었다는 기록도 남아 있다.
이른 시각이었지만 시장 입구엔 벌써 사람들로 붐볐다. 타오야오 구완청이라 적힌 붉은 현판 아래, 오래된 상점들과 노점들이 엉키듯 늘어서 있었다. 테이블 위엔 마치 펼쳐놓은 듯 진열된 물건들이 얽혀 있었고, 그 틈엔 도자기와 골동품, 오래된 인형들과 작은 조각상들이 어지럽게 자리 잡고 있었다.
방금 흙에서 파낸 듯한 깨진 도자기 조각, 인형극에 쓰였을 것 같은 인형들, 지나간 시대의 흔적을 간직한 이름 모를 기물들. 낯설지만 어딘가 익숙한 풍경. 오래된 것들의 무심한 아름다움과 어수선한 기운이 뒤섞인 그 분위기에서 문득 서울 동묘가 떠올랐다. 정리되지 않은 듯 보이지만, 누구에겐 귀한 보물일지 모를 물건들이 조심스럽게 손끝에 올려지고 있었다.
천천히 시장을 따라 걸으며 구경은 했지만, 오래 머물고 싶은 취향은 아니었다. 흥미로웠지만 마음이 오래 붙진 않았다. 귀신시장 특유의 분위기를 느끼기엔 충분했기에 한 바퀴 가볍게 돌고 나왔다. 참고로 이곳의 물건들은 진품보다는 정교한 가품이 많다고 한다. 특히 가격이 높은 골동품은 신중히 바라보는 게 좋다.
호텔 조식을 먹고 잠시 쉬었다가 점심 무렵 느긋하게 조각 공원으로 향했다.
이곳은 과거 국영 도자기 조각 공장이었던 공간으로, 지금은 젊은 작가들과 해외 예술가들이 모여 공방과 갤러리를 이루고 있는 예술가 마을이다.
좁은 골목을 따라 들어선 공방과 갤러리마다 저마다의 색깔이 살아 있었고, 골목을 걷는 내내 작가들의 손끝에서 비롯된 이야기들이 조용히 말을 걸어오는 듯했다. 초입의 관광 기념품 가게들은 가볍게 훑어보고 지나쳤다. 전날 봤던 고급 도자기들로 기념품들은 눈에 들어오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안으로 들어설수록 분위기는 점점 다채로워졌다. 낡은 벽돌 외벽과 현대적인 간판이 뒤섞인 거리. 공간 디자인적으로도 감각이 살아 있었고, 도자기라는 공예를 새롭게 해석한 시도들이 곳곳에 스며 있었다. 골목마다 이어지는 개성 있는 공방과 갤러리, 도자기와 조형물, 액세서리가 어우러진 전시들이 보는 즐거움을 안겨주었다.
기억에 남는 공간은 세 곳. 개별 작가의 감각이 살아 있던 도자기 숍, 전통 사자탈을 모티브로 만든 유쾌한 오브제들, 그리고 대나무와 흙의 조화를 테마로 구성한 개완. 그 외에도 아기자기한 캐릭터 도자기부터 미니멀한 생활식기까지, 각기 다른 온도를 가진 작품들이 공간마다 이어져 눈이 즐거웠다.
하얀 토끼 조형물이 인상적인 '위엔라이스 타오지 지허디엔(原来是淘集集合店)' 편집숍은 다양한 작가들의 작품을 모은 복합 매장으로, 내부에는 카페 공간도 마련돼 있다.
선반마다 놓인 찻잔과 오브제들은 어떤 건 동화책 삽화처럼 귀엽고, 또 어떤 건 투박하지만 손맛이 고스란히 전해졌다. 명확하게 취향을 드러낸 물건들이 많았고, 경덕진이 젊은 감각으로 재해석되고 있음을 보여주는 공간이었다.
그 안에서 귀여운 목마를 본뜬 작은 석고상 하나에 눈이 멈췄다. 에센스 오일을 머금은 디퓨저로 쓰이는 작품이었는데, 도자기와는 또 다른 결의 미감이 은은하게 느껴졌다. 형태도 아기자기하고, 공간에 두었을 때의 풍경까지 상상되어 기념 삼아 하나를 골랐다.
같은 도자기 도시, 다른 감각의 세계들이 층층이 펼쳐져 있었다. 골목마다 이어진 개성 넘치는 공방과 갤러리, 작가들의 독창성이 돋보이는 도자기, 조형물, 액세서리 등이 어우러져 연말의 거리는 더욱 생기를 띠었다.
축제장 타오란지(陶然集, Táo rán jí)에 도착한 건 오후 늦은 시간이었고, 거리는 서서히 사람들로 채워지고 있었다. 해가 기운 저녁 무렵, 축제장 내부에 있는 ’니상·펭투 쯔란 찬팅(泥上·风土自然餐厅, Níshàng Fēngtǔ Zìrán Cāntīng)’에 들렀다. 진흙 위 풍토 자연 레스토랑 정도로 직역 가능한 이곳에서 우리는 계화꽃 향이 나는 수제 맥주와 저녁을 천천히 즐겼다.
식사를 마친 뒤엔 다시 축제장 밖으로 나와 거리를 천천히 걸었다. 이날 타오란지에서 마주한 젊은 작가들의 작품들과 행사들, 그리고 다음 날 다시 찾은 새해맞이 풍경은, 글이 길어진 탓에 잠시 미뤄두기로 한다. 경덕진에서 보낸 연말의 하루는, 그렇게 천천히 저물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