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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자기의 도시 경덕진(景德镇)에서 피어오른 새해

새해의 문을 연 건, 불꽃과 낯선 인연이었다

by 우리도 처음이라


타오란지(陶然集, táo rán jí)는 경덕진(景德镇, jǐng dé zhèn)의 타오시촨(陶溪川, tàoxī chuān) 창작 공간에서 분기마다 열리는 도자기 마켓이다. 작가들이 직접 만든 작품을 전시하고 판매하며, 특히 연말에는 다양한 공연과 퍼레이드가 더해져 도시 전체가 축제 분위기로 물든다.

샤오홍슈 공식 계정 이미지

이번 경덕진 여행은 도자기를 보고, 새해맞이 축제까지 함께 즐기기 위한 일정이었기에 30일에는 도자기를 좀 더 여유롭게 둘러보기 위해, 31일에는 축제의 열기를 함께 느끼기 위해 다시 발걸음을 옮겼다.


행사장은 생각보다 훨씬 크고 북적였다. 마치 야외로 옮겨놓은 코엑스 도자기 박람회처럼, 부스마다 작가들의 개성이 담긴 그릇들이 가지런히 놓여 있었다.


전통 기법을 고수하는 이도 있었고, 색감이나 형태에서 실험적인 시도를 하는 작가들도 많았다. 같은 ‘도자기’라는 이름 아래 얼마나 다양한 표현이 가능한지를 보여주는 자리였다. 하지만 아쉽게도 지갑 사정은 내 취향을 다 담아주지 않았다.


행사장 안과 밖의 분위기 차이도 흥미로웠다. 행사장 부스에는 이름이 알려진 작가들의 완성도 높은 작품들이 정갈하게 전시되어 있었고, 밖으로 나서면 신진 작가나 학생들의 개성이 묻어나는 프리마켓이 이어졌다.

어딘가는 실용성을, 또 어딘가는 발상의 자유로움을 담고 있었다.

도자기들을 구경하던 중, 행사장 한쪽이 갑자기 부산스러워졌다. 경극을 연상케 하는 화려한 분장과 손짓으로, 마치 액막이 의식 같은 춤을 추는 무리가 등장한 것이다. 빠르고 힘 있는 음악에 맞춰 이어진 동작은 날카롭고도 정렬됐으며, 전통이 지닌 생동감이 그대로 뿜어져 나왔다.

밤이 되자, 행사장의 분위기는 완전히 달라졌다. 조명이 하나둘 켜지고, 관객도 부쩍 많아졌다. 붉은 벽돌 건물과 굴뚝, 그 사이를 따라 길게 이어진 조명이 물 위에 그대로 비쳐 있었다. 잔잔한 수면에 반사된 불빛 덕분에 거리 전체가 두 겹으로 보였고, 야경이 더 예쁘게 다가왔다.

자정이 다 돼 가자, 등을 든 사람들이 줄지어 나타났다. 일반 관광객들이 신청을 하면 참여할 수 있는 것 같았는데, 하나같이 등을 들고 거리를 행진하며, 다정한 목소리로 지나가는 이들에게 새해 인사를 건넸다. 환한 불빛 속에서 “新年快乐 (xīn nián kuài lè),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라는 외침이 퍼져나갔다.

자정을 얼마 남기지 않았을 때, 완전히 어둠이 깔린 무대 위로 검은 옷을 입고 사자 머리를 쓴 인물이 등장했다. 사자탈을 쓴 그는 털을 털어내듯 온몸을 세차게 흔들었고, 그 순간 붉은 불꽃이 사방으로 흩어졌다. 사자의 털처럼 흩날리는 불꽃은 압도적인 장면이었다.

이윽고 무대 위 숫자가 하나씩 줄어들기 시작했다.

“3, 2, 1…”

건물 위로 2025 새해를 알리는 숫자가 붉게 타오름과 동시에 눈 같은게 뿌려졌고, 주변 모든 사람들이 “신니엔 콰이러”를 외치며 새해는 환호와 열기로 가득 찼다.

나중에 샤오홍슈 공식 계정을 보니 이때 사진을 찍어주는 이벤트도 했던 것 같은데 참여하지 못해 아쉬웠다.


사실 불꽃 사자춤을 제대로 보려면 무대 가까이에 자리를 잡아야 했다. 하지만 행사 시작 전부터 이미 좋은 자리는 모두 만석이었다. 무대 주변은 수로로 둘러싸여 있어 가까이 가기도 쉽지 않았고, 맨 앞줄이 아니라면 서서 보기엔 시야 확보도 어려운 구조였다.


그러던 차 운 좋게도 수로 옆 음식과 술을 파는 부스를 찾았는데, 앉을 수 있냐고 묻자 부스 운영진은 처음엔 만석이라 음식 포장만 가능하다고 했다. 아쉬운 마음으로 근처에 서 있으니, 잠시 뒤 직원이 다시 다가왔다.


“한자리가 나서 음식을 주문하시면 앉을 수 있는데 괜찮으세요?”


우리는 고개를 끄덕였고, 딱 하나 남은 자리에 운 좋게 앉을 수 있었다. 우리가 자리를 잡자 다른 이들도 연달아 자리를 물었지만, 이후엔 더 이상 들어올 수 없었다. 5만 원 정도의 음식값을 지불하긴 했지만, 숯불에 구워 먹는 모둠 꼬치가 푸짐하게 나왔고 한국 물가를 생각하면 나쁘지 않은 가격이었다.


우리가 앉은 테이블은 그 부스를 운영하던 분의 지인들이 모여 있던 자리였고, 무대를 보기엔 정면은 아니지만 꽤 괜찮은 위치였다. 눈치로 봐선 원래 자기들끼리 쓰던 공간을 처음 우리와 대화했던 직원이 쟤네 한국인이라는데? 하고 조금씩 옮겨 우리를 위해 자리를 마련해 준 모양새였다.


그들 대부분은 타오시촨에 작업실을 둔 작가들이었다. 영어로 짧게 스몰토크를 나누었고, 그들은 한국인인 우리가 단순 관광차 경덕진을 찾았다는 것을 신기해하며 자신들이 마시던 와인과 담금주도 한 잔씩 건네주었다.

공연이 모두 끝난 뒤에도 우리는 그 자리에 한동안 머물렀다. 새벽 1시가 넘도록, 모닥불 앞에 둘러앉아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고, 불꽃이 남긴 여운을 천천히 정리했다.


도자기의 도시에서 맞은 새해.

불꽃과 모닥불, 낯선 이들과의 대화.

그날 밤은 지금도 선명하게 떠오르는 기억으로 남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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