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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닝(西宁, Xīníng) – 여정이 시작되는 도시

청해와 감숙으로 향하는 시작점에서

by 우리도 처음이라
청해·감숙으로 향하는 여정, 그 첫날


칭하이 성의 성도 시닝(西宁, Xīníng)은 오래전부터 서북 지역을 잇는 관문이었다. 감숙(甘肃, Gānsù)과 청해(青海, Qīnghǎi)를 연결하고 더 멀리 신장(新疆, Xīnjiāng)과 티베트(西藏, Xīzàng)로 이어지는 길목으로, 수많은 이들이 스쳐 지나며 잠시 머물렀다. 지금의 우리에게도 차카염호(茶卡盐湖, Chákǎ Yánhú)와 둔황(敦煌, Dūnhuáng)으로 향하기 위해 거쳐야 하는 관문 도시였다. 그렇게 우리는 이곳에 잠시 머물러 여행의 첫 장을 열었다.



직항 노선이 없어 산동항공을 타고 인천에서 산둥성 지난(济南, Jǐnán) 야오창 국제공항(TNA)으로 이동한 뒤 국내선으로 갈아타야 했다. 중국 항공사는 비행기 안에서 보조배터리 사용을 전면 금지하고 있으며, 특히 국내선의 경우 중국 품질인증마크인 CCC가 없는 제품은 반입조차 허용되지 않는다.


그래서 이번에는 일부러 배터리를 챙기지 않았다. 현지 샤오미 매장에서 새로 구입하기로 했다. 준비라기보다 여유에 가까운 선택이었다.



지난(济南) 야오창 공항의 입국 심사는 이제껏 다녔던 다른 중국 도시보다 한층 엄격했다. 보통 관광 목적인 경우 특별한 질문 없이 확인으로 끝나지만 이번에는 여행 이유와 숙소 주소까지 꼼꼼히 물었다. 특별히 문제 될 것은 없었기에 차분히 대답했고, 이내 정적이 흐르는 동안 느긋하게 결과를 기다렸다. 잠시 후 도장이 찍히며 입국이 마무리됐다. 예상했던 대로, 아무 일도 없었다..


환승 여유가 2시간 반이고 짐을 찾은 후 다시 수속을 해야 해서 걱정했었으나 국제선과 국내선이 출발 층만 다르고 국내선은 줄이 길지 않았기에 시간에 쫓김 없이 시닝으로 향하는 비행기에 올랐다. 신기하게도 국내선 터미널이 국제선보다 훨씬 컸다.



시닝 공항에서 숙소에 도착했을 때 붉은 노을이 도시를 감싸고 있었다. 해는 이미 산 능선에 걸려 있었고 낮게 깔린 구름이 그 빛을 오래 붙잡고 있었다. 하늘빛이 어둠으로 스며들자 불빛이 하나둘 켜졌고, 낯선 도시의 윤곽이 천천히 드러났다.



도착은 언제나, 출발의 다른 이름


숙소는 야시장과 차카로 가는 기차역에 가까운 호텔을 잡았기에 야시장까지는 도보 10분 정도 거리였다. 야시장으로 향하기 전 샤오미 매장에 들러 보조배터리를 먼저 구입했다. 최근 CCC 인증 제한이 시행된 지 얼마 되지 않아서인지 현지인들도 많이 찾는 탓에 매장 진열대에는 남아 있는 제품이 몇 개 되지 않았다.


중국 여행에서 휴대폰은 길을 찾고 말을 통하게 할 뿐 아니라 결제의 중심이 되기도 한다. QR코드로 모든 거래가 이루어지는 이곳에서는 충전이 곧 이동과 식사, 숙소를 가능하게 하는 일상의 동력이었다.


중국 곳곳에 배치된 배터리 대여는 현지 휴대전화 번호 인증이 필요해, 데이터 eSIM만 준비한 우리는 사용할 수 없었다. 그래서 손에 든 새 배터리는 단순한 소지품이 아니라 이 도시를 자유롭게 움직이게 해주는 열쇠처럼 느껴졌다.



도심의 불빛이 짙어지던 시간, 도착한 야시장 입구는 이미 사람들로 붐비고 있었다. 나무 가지마다 매달린 노란 한자 조명들이 반짝이며 바람에 흔들렸다. 그 불빛 아래에서 사람들의 웃음소리와 상점의 호객음이 뒤섞였다. 그렇게 빛과 소리가 함께 여행의 밤을 열었다.



석류 주스를 한 잔 들고 본격적으로 야시장에 들어서자 낯선 언어와 음악이 섞인 공기가 한결 흥미롭게 느껴졌다. 여러 번 다녀간 중국이지만 이곳은 어쩐지 또 달랐다. 대부분의 여행자들이 다음 여정을 준비하는 도시라 그런지 공기에는 묘한 기대감이 감돌았다.



야시장에서 돌아온 호텔 방은 크고 넓었지만 전형적인 관광호텔의 분위기였다. 공항에서 디디를 타고 올 때 기사님이 번역기로 우리 호텔이 기차역과 야시장은 가까우나 메인 도심에서는 조금 벗어난 위치라고 이야기해 줬는데 그 탓인 것 같기도 하다. 프런트나 건물은

좀 낡은 느낌이었지만 그래도 나쁘진 않았다.


늘 여행지에서는 그 지역 맥주를 도전해 보는 소소한 즐거움이 있다. 맥주를 찾아 들어선 호텔 1층의 작은 슈퍼에는 한국 불닭볶음면이 진열돼 있었고, 그 익숙한 포장 속에서 묘한 반가움을 느꼈다. 병따개가 없어 주인분께 부탁드려 뚜껑을 따서 올라와 맥주를 마시며 내일의 일정을 이야기했다. 그렇게 시닝의 밤은 다음 여정을 여는 조용한 시작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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