타얼사와 남관 청진사
시닝(西宁)은 티베트 고원으로 향하는 길목에서 여러 세계가 스쳐 지나가는 도시다. 그 가운데 타얼사와 남관 청진사는 서로 다른 믿음이 같은 하늘 아래 머무는 두 개의 풍경이었다.
티베트 불교와 수유차
타얼사는 티베트 불교 겔룩파의 본산으로, 종카파(宗喀巴, Zōngkǎbā)의 탄생지에 세워진 사찰이다. 16세기 명나라 때 창건되어 청나라 시기를 거치며 지금의 거대한 사원 군을 이뤘다. 황중현(湟中县) 일대의 완만한 구릉에 자리한 그곳은, 가까이서 보면 거대한 탑과 금빛 법당이 계단식으로 이어져 하나의 마을처럼 보인다.
가이드 없이 택시를 타고 매표소에 도착했다. 입구에서 지도를 받아 사진으로 찍어두고, 그걸 CahtGPT로 검색해 가며 천천히 둘러봤다. 붉은 가사를 입은 티베트 스님들이 경내를 오가고, 그 길가 한편에는 보호대를 착용한 순례자들이 있었다.
손과 이마를 번갈아 바닥에 대며 오체투지를 이어갔고, 천천히 일어나 다시 합장한 뒤 또다시 몸을 숙였다. 경내를 둘러보는 관광객들의 발걸음과 달리, 그들은 오직 자신의 기도에만 집중한 채 묵묵히 길을 이어가고 있었다.
한 전각 안에서는 예배를 준비하는 스님들의 움직임이 보였다. 금빛 관모와 단청이 들어간 법의를 차려입고, 의식용 도구들을 정돈하며 자리를 맞추고 있었다. 그 모습은 한국의 불교 의식과는 전혀 다른 질서와 색이었다. 타얼사 같은 겔룩파 사찰에서는 대재일이나 법회 때 이런 예복을 착용한다고 했다.
또 다른 공간에는 ‘수유화(酥油花)’라 불리는 야크 버터 조각이 전시되어 있었고, 사진 촬영이 제한되어 먼발치에서만 담아야 했다. 가까이서 마주한 조각상들은 버터의 결을 보지 않았다면 목조 불상이라 해도 믿을 것 같은 정교함이 느껴졌다.
사원을 나와 수유차(酥油茶, butter tea)를 한 번 마셔보고 싶어 입구 근처에 있던 식당으로 들어갔다. 간판이 특별하지는 않았지만, 어쩐지 그 순간 끌렸다. 가족이 함께 운영하는 듯한 곳이었고, 주문을 받으러 온 소녀가 수유차를 주문하자 그녀가 “큰 거, 작은 거?” 하고 물었다. 작은 걸 골랐는데, 잠시 뒤 커다란 보온병이 테이블에 놓였다. 작은 것도 이렇게 클 줄은 몰랐는데 옆 테이블에 놓인 큰 보온병을 보고 납득했다.
짭조름하고 기름진 향이 코끝을 감쌌고, 한 모금 넘기자 입안에 낯선 온기가 남았지만 취향에는 맞지 않았다. 함께 맛보고 싶어 티베트식 산유, 걸쭉한 요거트도 시켰다. 위에는 구기자와 건포도가 얹혀 있었고, 노란 크림막이 살짝 덮인 그 요거트는 묘하게도 우유 냄새와 잘 어울렸다.
식당을 나서 디디를 부르려는데, 인사를 하며 아저씨 한 분이 다가왔다. 인사를 나누고 보니 택시 기사님이었고, 택시들이 대기 중인 곳에 손님을 태우려는 호객 중이었다. 처음에는 정중히 거절했지만, 디디가 잘 잡히지 않아 잠시 망설였다. 그는 “시닝 택시는 다 미터 켜요, 걱정 마세요”라며 미소를 지었다. 그렇게 탄 택시는 실제로 미터기를 켜고 출발했고, 요금도 디디와 큰 차이 없이 목적지에 도착했다.
햇살 가득한 이슬람 사원
도착한 곳은 남관 청진사(南关清真寺, Nánguān Qīngzhēnsì)였다. 회색 벽돌과 타일로 마감된 외벽이 오후 햇살을 받아 은은하게 빛났다. 입구 위로는 아치형 창과 아라베스크 문양이 새겨져 있었고, 안쪽으로는 정갈한 마당이 펼쳐져 있었다. 건물의 선(線)에는 중국식 처마와 이슬람식 장식이 함께 녹아 있었다. 신앙의 형태는 달랐지만, 이곳에서도 사람들은 고요히 마음을 모으고 있었다.
낯선 도시에서 만난 친절
시닝의 하루가 저물 무렵, 아내는 식사를 거의 못하고 있었다. 여행지마다 중국을 참 좋아하지만, 음식만큼은 늘 약한 편이었다. 향이 조금만 강하거나 육향이 스치면 손을 대지 못했고, 시닝의 음식은 향이 짙었다. 그래서 근처 컨더지(肯德基, Kěndéjī), KFC를 지도로 확인해 향했다.
컨더지는 KFC의 중국식 표기로, 현지에서는 대부분 이 이름으로 불린다. 어플로 주문하려 했지만 중국 번호 인증이 필요해 결국 카운터로 갔다. 주문 화면을 보여주며 설명하자, 점장으로 보이는 이가 다가와 자신의 휴대폰을 꺼내 들었다. “이렇게 주문하면 훨씬 싸게 먹을 수 있어요.” 그는 웃으며 세트 구성을 보여주었고, 자신의 계정으로 대신 주문까지 해주었다.
잠시 뒤 햄버거 세트 두 개와 디저트, 사이드가 나왔다. 실제보다 반값 정도로 할인된 59위안, 믿기 어려운 가격이었다. 그렇게 낯선 도시에서 받은 작은 친절과 함께 아내는 모처럼 제대로 된 식사를 하며 하루를 마무리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