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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외쿡인노동자 Apr 30. 2020

미국에서 무면허 운전으로 적발되다

미국 법원에 출석을 하라니...

평화로운 캘리포니아의 어느 날, 남쪽 나라에 볼 일이 있어서 샌프란시스코에서 101번 고속도로를 타고 산호세 방향으로 내려가고 있었다. 내 차가 아닌 ZipCar 였고 스마트폰 거치대를 들고 나오지 않아서 오른손으로 스마트폰을 들고 네비의 안내에 맞춰서 운전을 하고 있었다. 퇴근 후 고속도로에서의 적당한 트래픽에 무난하게 가던 중 뒤에 갑자기 고속도로 순찰대가 따라 붙었다.


"흐미 이게 무슨 일이지?"


처음에는 이게 진짜 난가? 싶었는데 내 뒤에 바싹 붙어서 싸이렌을 울리고, 헤드라이트를 빔으로 올리면서 쫓아온다. 놀란 마음을 진정시키고 차분히 운전면허 시험때 배운대로 천천히 속도를 줄이면서 완전히 멈추어도 될 만큼 안전한 도로변으로 나가서 차를 세웠다. 고속도로 순찰대가 내 뒷편에 정차를 하고 영화에서만 보던 패트롤이 내 차를 향해서 걸어온다.


미국은 총기가 자유로운 나라라 이럴 때 지켜야 할 프로토콜이 있고 숙지하고 있지 않으면 매우 위험한 상황이 닥칠 수 있다. 일단 이런 경우 패트롤이 오는 동안 양손으로 모두 핸들위에 뒤고 패트롤이 운전석 옆에 올 때까지 기다린다. (패트롤은 2인 1조로 움직이고 어둡거나 위험한 상황이라고 판단이 되는 경우면 접근하는 패트롤은 손전등을 운전석 사이드 미러에 비춰서 운전자가 패트롤의 접근 상황이 잘 보이지 않도록 하고, 다른 패트롤은 만약에 상황을 대비에 엄호 사격 준비를 하고 있기도 한다.)


(나는 무기를 소지하고 있지 않음을 보이기 위해) 양손을 핸들 위에 올린 상태로 기다리다 패트롤이 운전석 창문을 노크한 뒤 아주 천천히 손을 움직여서 창문을 내렸다. 


J: "무슨 일이시죠?"

P: "운전 중에 핸드폰을 사용하셨습니다. 면허증을 보여주시죠"


핸드폰을 사용했다는 것에 동의를 못 하겠지만 일단은 공권력에 잘 따라줘야한다. 여기서도 운전면허증을 갑자기 손으로 떠내면 안된다. 총기를 꺼낼 수 있기에 미리 물어보고 움직인다. 특히나 조수석 앞의 서랍은 갑자기 손을 대면 절대로 안 되는 곳 중에 하나. 


J: "제 운전면허증이 조수석에 있는 제 가방안에 있습니다. 꺼내도 될까요?"

P: "네, 천천히 꺼내세요."


나무늘보 움직이는 속도로 천천히 가방으로 손을 뻗어서 패트롤의 시야에서 늘 내 두 손이 모두 들어오게 주의하면서 지갑을 꺼낸다. 지갑에서 면허증을 꺼내려는데 ..... 면허증이 안 보인다.


어 왜 면허증이 안 보이지?


J: "면허증이 안 보이네요. 잠시만요."

P: "면허증을 안 가지고 계시다구요? 차에서 내려주세요."


진짜 오만생각이 다 들었다. 차에서 내리라니 안 그래도 쫄아서 떨고 있는데 영화에서만 보던 본네트에 총 겨누고 엎드려서 몸수색 및 수갑차는 장면이 떠올랐다. (물론 그러지는 않았다.) 그 짧은 순간에 다행히 왜 내가 면허증을 안 가지고 있는지 떠올랐다. 내려서 패트롤에게 설명을 했다.


J: "얼마전에 면허를 새로 취득하였고 취득 시에 기존 면허증은 반납을 했고 새로운 면허증 도착을 기다리고 있습니다. 조회해보면 나올텐데 제 면허증 번호는 xxx-xxxxxx-xx 입니다."

P: "일단 면허증을 소지않은 상태에서 운전을 하면 그것 자체로 문제입니다. 일단 잠시만 기다려보세요."


패트롤이 본인의 차량으로 돌아가 이것 저것 조회를 하고 무전을 한다. 그리고 몇 분 뒤, 심각한 표정으로 나한테 돌아옴.


P: "신규로 면허를 발급 받았다는 기록이 안 나옵니다"

J: "네? 뭐라구요? 그럴리가. DMV (미국 운전 면허 관리하는 곳) 에 확인하신건가요?"

P: "네, 그렇습니다. 해당 번호에 대한 면허 발급 기록이 없습니다. xxx-xxxxx-xx."

J: (패닉) 

P: "운전 중 휴대폰 사용과 무면허운전에 대해 티켓을 발부하겠습니다. 즉시 집으로 돌아가세요."

J: (패닉)


그래도 다행히 바로 운전을 못하게 하지는 않아서 그대로 차를 몰고 집으로 돌아왔는데, 운전 중 휴대폰 사용 따위는 안중에 안 들어오고 무면허운전이라는 너무 중대한 티켓이 큰 무게로 다가오기 시작. 일단 벌금만해도 운전중 휴대폰 사용 $230 (약 25만원), 무면허운전 $600 (약 70만원). 


아니 이게 말이 돼? 


라고 생각하며 과거 기록을 뒤졌다. 난 분명히 기존 면허증이 있었고, 면허 시험에 합격했고, 임시 운전 허가증을 발급 받으면서 기존 면허증을 반납했다. 근데 이게 기록이 없다고? 


차근 차근히 현상황을 정리해보니 아래와 같았다. 


1) 2주전에 DMV 에서 실기시험을 통과했고, DMV 가 면허증을 반납하라고 해서 그 자리에서 반납했다.

2) 현재 유효한 임시 운전 허가증이 있음 (그러나 이것이 어딨는지 안 보인다)
3) 신규 면허 발급 진행 중

다음날 아침 DMV 를 방문해서 사정을 설명하고 내가 신규 면허를 취득했고, DMV 가 그 과정에서 기존 면허증을 가져갔다는 사실, 그리고 지금 현재 나에게는 유효한 임시 운전 허가증이 있음을 증명해 달라고 했다. 하지만 DMV 는 그런 증명은 존재하지 않는다고 한다. 매우 일반적인 매우 빡치는 DMV 공무원 업무 스타일. 


DMV 에서 법무팀과 데이터 보관 센터의 전화번호를 받아냈다. 먼저 법무팀과 통화를 했는데 법무팀 역시 DMV 가 해줄 수 있는 것이 자기가 해줄 수 있는 거의 전부라 한다. 데이터 보관 센터에 전화를 했다, 그들도 그런 데이터를 제공해줄 수 없다고 한다. 예???


그러니까 내가 티켓을 발급 받은 시점에 유효한 면허를 가지고 있었다는 사실을 증명 할 방법이 없다는 얘기였다. 미국 살면서 이렇게 멍청하고 한심한 경우를 종종 맞이하게 되는데 미국 정부나 공무원이 끼는 이런 경우가 보통 최악이다. 다들 무조건 할 수 있는게 없다고 한다...


더 캐물어보니 캘리포니아 DMV 의 본사가 있는 샌크라멘토에 과거 기록(!)에 접근 요청을 할 수 있다고 한다. 무려 유료.......... 서류 $5 + 서류 신청 $25 + 우편료 $10 = $40 (약 4.5만원) 한국이라면 전산으로 질의 한번에 바로 나와야 할 자료가 패트롤 조회에서도 안 나오고, 면허를 발급해준 곳에서도 안 나오고, 해당 기관 법무팀과 전산팀에서도 안 나와서 본사에 공식 요청을 하는 상황. 그동안 받은 스트레스와 오며가며 쓴 시간이 이미 상상을 초월 중.


으아아아아아


발급 받았던 티켓이 우편으로 도착했다. 운전중 휴대폰 사용 $230 (약 25만원), 무면허운전 $600 (약 70만원) 에 대한 벌금을 내기 위해 법원으로 오라고 한다. 산타클라라의 법원에 가서 판사 앞에 서야하는 상황. 그냥 우편으로 벌금을 내고 마는게 아니라, 영화에서 보던대로 미국 법원에 줄서서 들어가서 판사님 앞에서 판결을 받고 벌금을 처리하고 와야하는 것. 하필이면 샌프란에서 산호세 가는 길에 산타클라라 지역에서 단속이 된거라 산타클라라 법원으로 오라한다. 왕복 2시간 거리.


그래서 일단 운전중 휴대폰 사용 따위 (...) 는 지금 신경 쓸 여력이 없고, DMV 본사에 보낸 요청에 대한 답변을 기다리면서 그게 법원에 가기 전에 도착하길 빌어야 했다. DMV 본사에 보낸 요청이 언제 돌아올지는 알 수 없다. 하.... 그날 내가 적법하게 운전을 할 수 있는 상태였음을 증명해야 하는데 이게 이렇게 어려울 줄이야. 


이런 부분에서는 한국의 시스템이 얼마나 전산화가 잘 되어 있고 부서간에 연계가 잘 되어 있는지를 느낀다. 이게 말이 되냐고. 미친 3개월전에 발급해준 임시면허를 조회를 못 해준다는게. 3년도 아니고 3개월. 무면허운전이 아님을 증명하기가 미친듯이 힘드네. 아 외국인으로 미국에서 살기 힘든 것 중에 하나!! 아아아악

(당시에 썼던 포스팅에서 발췌. 지금 다시 정리하면서도 화남 ㅋㅋㅋ)


조마조마하게 DMV 본사로부터의 답장을 기다리며 법원에 출석하는 날을 뒤로 미뤄야하나 고민하던 와중에 다행히 임시 발급 받았던 종이를 찍은 사진을 발견했다. 미국에서 워낙 다양한 서류를 필요로 해서 왠만한 서류는 받는 즉시 일단 사진으로 남겨두는 습관이 있었어서 해당 종이도 있었다. 원본이 아니라 심지어 사진으로 찍은 거라 인정이 안 될 것 같지만 일단 A4 용지 하나 가득 잘 보이게 출력을 해뒀다. 


미국 법원에 가다


법원 출석을 미룰까 했지만 DMV 본사에서 답변이 오는게 가늠이라도 있어야 미룰텐데, 언제 답변이 올지 하염없이 세월아 네월아 기다려야해서 일단 사본이라도 제출해보자 하고 지정된 기일에 다시 한번 차를 빌려서 싼타클라라 법원에 갔다. 


진짜 영화 같은 장면 속에 내가 들어갔다. 50여명이 이미 내 앞에 대기 중이었고, 그날 출석이 예정된 사람들을 한명씩 알파벳 순으로 호명했다. 한명씩 판사님 앞으로 나가서 대략 아래의 네 종류 중에 하나의 결과를 받게 된다. 


1) 유죄(!)를 인정하고 벌금을 낸다. (guilty - admit & pay the fine)

2) 이의 제기하지 않고 벌금을 낸다. (no contest - pay the fine)

3) 무죄를 주장하고 추가적인 증거나 증인을 제시한다. (not guilty - schedule a trial so you can defend yourself with further evidence / witness)

4) 과속, 신호 위반 등의 경우 traffic school 로 보내져 소정 시간의 교육을 받는다


엄청 떨면서 법정 경호원의 안내를 받아 판사님 앞에 섰는데 다행히 판사분이 매우 친절하셨다. 법원에 가서 피고인석에 서서 판사님께 얘기하고 Guilty / Not Guilty / No contest / Traffic School 중에 하나 골라야 하는데 그런게 있는 줄도 모르고 (...) 갔었는데 다행히 거의 맨 마지막에 해서 다른 사람들이 어떻게 말하는지, 판사님이 어떻게 반응하는지, 각각의 옵션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충분히 눈치보고 판단 할 시간이 주어져서 다행이었음. 


내가 가져온 임시로 운전 할 수 있다는 종이의 사본을 경호원 분을 통해 판사님께 제출하였고 판사님은 해당 증거물을 프로젝터에 띄우셨다.


J: "티켓을 발부 받은 x월 xx일에 제가 운전을 할 수 있는 적법한 상태였다는 것을 증명하는 서류이며, 이를 통해 unlicensed driver 가 아님을 알립니다."

Judge: "(슥 훑어보시고) 음, 티켓이 x월 xx일에 나왔고 이 서류의 유효성이 y월 yy일부터 n 일간 유효하니 운전을 할 수 있는 상태였네. VC 12500 (a) Unlicensed driver 티켓은 취소하겠다. VC 23123(a) Hand-held wireless telephone 은 어떻게 하겠나?"

J: "no contest 를 선택하겠습니다."

Judge: "그래. 그럼 다음."


이렇게 다행히 짧고 간략하게 재판(?)이 끝났다. 다행히 무면허 운전에 대한 티켓은 void 되었고, 운전중 핸드폰 사용에 대한 티켓에 대한 벌금을 바로 체크로 지불하고 나옴. 


휴 살았다


아니 이게 뭐라고, 조회 한번이 안 되서 몇날 며칠을 마음을 졸이며 살았고, 회사에 휴가를 쓰고 DMV 를 다녀왔으며 전화를 몇통을 했고, 각종 줄에 몇시간을 서있었던건지. 다행히 해피엔딩으로 끝났지만 이런 것들이 미국에서 살아가면서 불편하고 힘든 점 중에 하나다. 아오.


이번 사건을 통해 배운 점들:

1. 핸드폰으로 네비게이션 쓰는 분들, 운전 할 때는 거치대를 사용하세요. 핸드폰 손에 쥐고 네비보다 걸린거고, 실제로 불법입니다 ㅠㅠ

2. 운전 할 때는 항상 면허증 / 자동차 보험서류 / 자동차 등록서류 / valid 한 번호판 여부를 확인하세요. 오늘 온 사람 중 2/3 이 저 넷 중에 하나걸림. 나머지는 speeding ticket.

3) 후면주차금지 팻말이 없더라도 왠만하면 전면주차 할 것. 법원에서 후면주차했다가 $49 (약 6만원) 짜리 티켓 받았다. 젠장 신나게 나왔는데 후면주차했다고 차에 살포시 티켓이 올려져있었음...


후기


1) 과거 기록

DMV 본사에 요청했던 과거 기록 조회에 대한 답변이 한참 뒤에 왔다. 결과는 "그런 기록 없음".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와 진짜 판사님이 안 받아줬으면 빼박 무면허 운전이었음. 그리고 "그런 기록 없음" 이 오기 전에 신규 발급 받은 내 면허증이 집에 도착. 하................ 미국이 이런 나라입니다. 적어도 자료 전산화는 한국 최고.


2) 총 비용

- 운전 중 휴대폰 사용 $230 (잘못한거니 인정.)
- 후면 주차 벌금 $49 -_-
- Santa Clara Court 두번 왕복 Zipcar 비용 $100
- DMV 왕복 $20
- DMV 에서 뗀 서류 ($5) / 서류 신청 ($25) / 우편료 ($10)

= 도합 약 $450 (약 50만원) 


시간은 오래 걸렸지만 무사히 case 종결지어서 다행. 안 하는 것이 제일 좋았겠지만 미국 살면서 한번쯤 하는 것도 그리 나쁘지는 않은 경험..........이라고 믿는걸로. 엉망진창 외국인 미국생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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