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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단비 Jun 16. 2021

온 세상을 만날 수 있는 곳, 도서관

_ <바람숲그림책도서관> 북스테이

                  

“이제 듀이는 단순히 신기한 구경거리가 아니었다. 듀이는 우리 마을의 고정 멤버, 다시 말해 터줏대감으로 자리 잡았고, 사람들은 듀이를 보러 도서관으로 모여들었다. (…) 도서관에 들어서서 환한 얼굴로 듀이를 찾아 곳곳을 뒤지고, 듀이를 찾았을 때는 기뻐 어쩔 줄 몰라하는 아이들을 종종 볼 수 있었다. 그럴 때는 뒤에서 따라다니는 어머니들도 흐뭇하게 웃고 있었다.”(듀이, 88)     


한 존재가 얼마나 큰 힘을 지녔는지 보여 주는 이야기로 고양이 “듀이”의 이야기만큼 적당한 것도 없을 것 같다. 듀이는 1988년 1월 18일, 엄청나게 추운 겨울 아침에 아이오와 스펜서에 있는 <스펜서 공공도서관>의 도서반납함 안에서 발견되었다. 도서관 사람들은 생후 8주 정도 된 이 아기 고양이를 구출했고, 무려 19년 동안 함께 지냈다. 사람들이 고양이를 돌보고 있다고 생각했으나 어느 순간, 고양이가 사람들을 돌보고 있다는 증거가 속출하기 시작했다. 실업으로 괴로워하는 가장에게 다가가 등을 비비고, 위로가 필요한 이의 가슴에 안겨 심장에 머리를 기댄다. 말 건네는 이 없던 노인들에게도 다가갔고, 눈가에 슬픔이 묻어 있던 많은 사람들이 듀이를 보면서 웃게 됐다. 시간을 때우러 도서관에 오던 사람들은 이제 친구를 만나러 옷을 잘 차려입고 도서관에 들렀다. 듀이는 자신을 필요로 하는 노숙자에게도 안겨 그이가 털어놓는 이야기를 20분쯤 들어주었다. 듀이를 무릎에 앉히고 책을 보는 동안 사람들은 고달픈 삶을 잊을 수 있었고 더 많이 웃고, 조금 행복해질 수 있었다. 듀이를 발견해 보호했던 사서는 듀이에게 “자신이 있을 곳을 찾아라. 그리고 가진 것에 만족하고 행복해해라. 모든 사람들을 잘 대우하라. 좋은 삶을 살아라. 인생은 물질에 관한 것이 아니다. 사랑에 관한 것이다. 그리고 사랑이 어디에서 찾아올지는 아무도 모른다.”(듀이, 330)는 것을 배웠다고 했다. 


듀이의 이야기를 읽으며 처음 든 생각은 ‘도서관이 이렇게 따뜻한 느낌일 수도 있는 거야?’ 하는 것이었다. 내가 떠올리는 모든 도서관은 춥다. 한여름에도 어쩐지 춥게 느껴지는 곳이다. 책으로 가득한 공간은 따뜻하다기보다는 서늘한 느낌에 가깝다. 그런데 듀이가 있는 도서관을 떠올리면 한없이 따뜻한다. 한 존재가 도서관 전체를 데우고 있는 것이다. 도심 한가운데 있는 도서관임에도 어쩐지 들판 한가운데, 들꽃이 가득한 곳에 있을 것만 같은 느낌이 드는 것이다. 머릿속에 떠올린 듀이의 도서관에 가장 가까운 모습이 바로 <바람숲도서관>이 아닐까 싶다. 


그림책 작가 최지혜 관장님이 꾸리고 있는 <바람숲도서관>에도 “레오”라는 고양이가 산다. “달콤한 냄새가 나고, 좀 시끄럽고, 나를 몹시 귀찮게 하는 아이들이지만 그래도 뭐, 친구가 되어 주기로 했”다며 “너도 같이 놀래?”(도서관 고양이, 한울림어린이) 청한다. 이런 초대를 거절할 수 있는 사람은 그리 많지 않을 것이다. 

보통의 도서관이 도심에, 딱딱한 네모 모양 건물로 지어진다면 <바람숲도서관>은 모양부터 특별하다. 벽돌과 나무로 지어진 외양도 독특하지만, 계단 여기저기에 앉아 마음껏 책을 볼 수 있는 구조도 특별하다. 책과 함께 놀자고, 책 읽는 게 이렇게 신나는 일이라고, 온몸으로 말하고 있는 도서관이다. 평생을 책을 읽고 또 읽다가 책이 가득한 집을 통째로 마을에 기부한 뒤 행복한 마음으로 그 도서관을 오갔던 엘리자베스 브라운(도서관, 시공주니어)의 마음이 엿보이는 도서관이랄까. 


그림책 『바람숲도서관』에 담긴 그대로 두더지랑 곰이랑 사슴이랑 너구리랑 모두모두 모여 밤새 책을 넘겨봤을 것만 같은 도서관이다. “수많은 꿈, 신기하고 놀라운 이야기, 새로운 친구들, 온 세상을 만날 수 있”는 <바람숲도서관>, 그 옆 작은 책방에서 달콤함 하룻밤을 보냈다.



도서관 옆 나무집은 코로나가 아니었다면 아이들 소리로 가득했을 법했는데, 지금은 어쩔 수 없이 우리 세 식구 차지. 책이 가득하니 아이는 책장에 꽂힌 책을 이것저것 뽑아서 읽기 시작한다. 아, 읽어 달라고 조르기 시작한다. 아직은 한글이 어려운 일곱 살 어린이는 책을 들고 엄마에게, 아빠에게 쪼르르 달려온다. 아늑한 텐트가 펼쳐져 있으니 더 좋다. 2층에서 바라보는 풍경도 좋았지만 우리는 내내 1층에 머물렀다. 캠핑 기분 나는 텐트 덕분이었다. 

아이는 이리 뒹굴 저리 뒹굴하면서 표지 그림이 마음에 드는 책, 제목이 웃겨 보이는 책, 언젠가 읽었는데 내용이 생각 안 나는 책, 이런저런 이유가 다 있는 책들을 뽑아 들었다. 

“너는 네 책 보고, 엄마는 엄마 책 좀 보면 어때? 와, 그거 좋겠다!”

“아니, 싫어. 엄마도 내 책 같이 봐.”

단호한 녀석 같으니라고. 


근처 식당에 저녁 먹으러 갔다가 동네 꼬맹이 한 명을 만났는데, 처음 보는 두 아이는 식당 앞 골목을 이리저리 뛰어다니며 서로를 탐색했다. 우리가 돌아가는데도 못내 아쉬운지 계속 따라온다. 혼자서 무척이나 심심했던 모양인데, 아는 아이라면 데리고 가 둘이 실컷 놀게 하고 싶은 밤이다. 그러면서 한편으론, ‘너는 집 근처에 저런 멋진 그림책 도서관이 있어서 정말 좋겠다.’ 하는 마음이 들어 부러운 것이다. 친구가 고픈 아이에게 할 소리는 아니어서 속으로 삼키고 말았지만. 다 가질 순 없는 것이 세상 이치이니 어쩔 수 없는 일이다.     


개구리 소리에 이끌려 밤 산책에 나섰다. 5월의 밤은 개구리 소리로 가득하다. 논마다 물이 그득하니 개구리도 맹꽁이도 신나게 노래한다. 초승달이 예쁘게 떠 있고, 그 아래 무논에서는 개구리 합창이 한창이다. 그 와중에 우리 발자국 소리를 경계하느라 온 동네 개들이 한꺼번에 짖어대니, 와, 굉장하다. 쉬고 있는 마을 분들에게 민폐인 듯하여 서둘러 돌아왔다. 


‘솥 적다 솥 적다’ 울어대는 소쩍새 소리를 벗 삼아 집으로 올라오는데, 어둔 밤 산그늘 아래 환하게 불 밝힌 도서관 옆 북스테이 모습이 깊은 바다 한 척의 배처럼 오롯하다. 보는 것만으로 다정하고 따뜻하다. 

옷을 갈아입고 다시 텐트 안으로 들어간다. 문명을 끄고 나니 들리는 것은 자연의 소리뿐이네. 참 좋다. 


아이는 계속해서 책을 가져온다. 『앗! 내 모자야』, 『씹지 않고 꿀꺽벌레는 정말 안 씹어』, 『달에서 온 뿡야』, 『거인 아저씨 배꼽은 귤 배꼽이래요』……. 두 시간 가까이 책을 읽어 줘도 “한 권 더!”를 신나게 외친다. 엄마가 목이 아프다 하면 “이번엔 아빠!”를 외친다. 좋겠다, 정말. 세상에서 제일 부러운 우리 아들. 책을 읽다가 텐트 안에서 스르르 잠든 아이를 들여다본다. 꿈속에서도 온갖 그림책 주인공들과 신나게 지내렴. 이곳에서 보내는 하룻밤이 너에게도 깊이 스며들었으면 좋겠구나.      



아침, 뒷산에선 꿩이 꿩꿩 꾸드득꾸드득 울고, 벌들은 꿀 따느라 바쁘다. 하루가 다르게 짙어지는 초록의 향연은 아침부터 눈이 부실 지경이다. 밤 산책에서도 그렇게 짖어대더니, 아침 산책길에도 개소리는 필수 옵션인 모양이다. 이른 아침부터 집앞 화단을 돌보는 초로의 부부 모습이 보기 좋다. 백로는 이른 아침부터 논에서 뭔가를 잡아먹으려 열중하는 중이다. 평화롭다.       

   

도서관 앞 흔들의자에 한참을 앉아 있다가 아침을 먹으러 도서관으로 건너갔다. 향 좋은 커피와 갓 구운 빵, 꿀 뿌린 요거트에 신선한 과일들로 차린 성찬이다. 달걀 토스트는 말할 것도 없고, 사과잼도 그만이다. 환대받는 느낌은 언제라도 좋다. 도서관 예약 손님들이 오는 시간이 10시, 이곳을 온통 누렸던 우리만의 시간이 끝나는 것은 아쉽지만 도서관 내부가 궁금하기도 해서 서둘러 아침을 먹었다. 



코로나 때문에 내내 문을 닫고 있다가 얼마 전부터 겨우 예약제로 바꿔 운영하는 중이라 했다. 아이들이 없는 도서관은 쓸쓸하고 적막하다. 읽어 줄 이 없는 책들은 외롭고 심심하다. 예약제로나마 다시 운영이 된다니 그저 반가울 따름이다. 


리빙스턴 공립 도서관을 집처럼 드나들었던 멜빈의 이야기를 담은 그림책 『도서관이 키운 아이』를 보면 도서관이 한 아이를 얼마나 멋지게 키워 낼 수 있는지 알 수 있다. 수업이 끝나면 도서관으로 가서 사서 선생님들과 이야기를 나누고, 뱀에 대한 책을 읽고, 자기가 잡은 곤충 이름이 뭔지 찾아달라고 부탁하는가 하면, 도서관에서 밤새워 책 읽기 프로그램에 참여도 하고, 철자 맞추기 대회 준비도 하면서 성장해 간다. 물론 “아이들을 도와주지 않고는 못 배”기는 사서 선생님들 도움 덕분이다. 


지금의 도서관은 지난 시절의 도서관과는 좀 달라졌다. 너나없이 책이 부족해 결핍 상태였던 시대가 더 이상은 아니다. 오히려 과잉 공급된다 싶을 만큼 책이 넘쳐나는 세상에서 아이들은 그 책을 어떻게 누려야 할지 방법을 몰라 헤맨다. 상황은 변했다 하더라도 훌륭한 사서 선생님들이 아이들을 도와주려고 언제나 기다리고 있다는 사실만은 변함없다. 


뉴욕공공도서관 정리 카드에 사람들이 써 넣은 질문을 엮어 만든 『뉴욕 도서관으로 온 엉뚱한 질문들』이란 책에는 빈대가 등장하는 책 제목을 알고 싶다, 수박 한 통에 씨가 몇 개나 들어 있나, 집에서 문어를 기를 수 있나, 이브가 먹은 사과는 무슨 종류였나, 벽지는 어떻게 바르나, 뉴욕 어디에 가면 금덩이를 찾을 수 있나, 성경의 저작권은 누구에게 있나 같은 온갖 질문들이 담겨 있다. 인터넷이 등장하기 전인 1940년대부터 1980년대 후반 사이 사람들은 궁금한 것이 생기면 그렇게 도서관에 가서 질문을 남겼다. 핸드폰을 열거나 노트북을 켜는 게 아니라 책을 펼쳤다. 사람들이 도서관에 가는 이유는 분명하다. 100년 전이나 지금이나, 그곳에 가면 답을 찾을 수 있을 거라는 믿음 때문이다. “책 속에 길이 있다”는 말은 지금도 유효하다.      


<바람숲도서관>에 온 아이들에게 도서관은 책을 보는 곳이기도 하고, 초록이 환상적으로 펼쳐지는 창가에 앉아 멍하니 초록에 잠기는 곳이기도 하며, 숨어 있기 좋은 작은 방들에 들어가 마음껏 숨어 있어도 좋은 곳이다. 상자를 재활용해 만든 종이 집을 보고 흥분한 일곱 살 동생에게 이것저것 설명해 주기도 좋은 곳이다.

“여기서는 떠들면 안 돼요!”

“그거 누나들이 만들었어요! 들어가면 무서워!”

야무지게 높임말로 이야기하는 열 살쯤 되는 형, 여덟 살쯤 된 누나의 조심스러움에도 아이는 그저 신났다. “하나도 안 무서운데?” 하고는 종이 집에 들어가 이리저리 창문을 열고 고개 내미느라 바쁘다. 그걸 힘들게 만든 과정을 본 아이들로서는 애가 탈 수밖에 없겠다. 이제 그만 나오자, 고양이도 아니면서 상자를 그렇게 좋아하니, 너는. 

도서관 계단에 앉아서 또 몇 권인가의 책을 읽고, 도서관에 딸린 작은 책방에 가서 몇 권의 책을 사고 도서관에서 보내는 하루를 마감했다. 

집에 오는 길에 대명항에 들러 새우랑 꽃게 사느라 다시 흥분해 버린 아이는 금세 새로운 것에 정신이 팔려 버렸지만 그래도 아이에게 스민 도서관의 시간이 언제가 어느 곳에선가 어떤 꽃으로든 피어날 거라 믿는다.               


* 바람숲그림책도서관

인천 강화군 불은면 덕진로159번길 66-34 

070-4109-628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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