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두가 병든 밤, 누구도 아프지 않기를 3
“몸이 천근만근인데 또 어딜 가노?”
아버지는 한사코 이불 속에서 나오려 하지 않으신다. 의사 선생님이 그러셨다. 항암 주사는 몸에 독약을 넣는 거나 다름없으니, 그걸 씻어내려면 무조건 물을 많이 드셔야 한다고. 아무리 말씀드려도 물을 마시면 배가 아프다시며 아버지는 싫다신다. 운동도 싫다, 물도 싫다, 나가는 것도 싫다 하는 아버지에게 이럴 거면 치료는 뭐하러 받느냐며 못된 소리를 내뱉고 만다. 금방 후회할 거면서 왜 이런 말들은 입속에서 걸러지지 않는 걸까.
억지로 병원을 나와 캠퍼스로 나선다. 청춘, 그 푸르른 날들을 대하면 아버지도 기분이 좀 좋아지시지 않을까. 캠퍼스 가득 얼굴 사진이 들어간 플래카드가 걸려 있다. 자세히 보니, 동아리 혹은 후배들이 추졸 맞은 이들을 축하하느라 걸어둔 거였다. 나라면, 내 이름과 얼굴이 박힌 플래카드가 내걸린 걸 보면 기분이 어땠을까. 요즘은 축하도 이런 식으로 하네. 이채롭다. 학사모를 던지며 사진을 찍는 이들의 위로 햇살이 한가득이다. 저들의 앞날에 오늘 같은 빛만 가득하기를.
손잡고 걸어가는 어여쁜 커플들 보면서 “이십 대란 좋겠다. 실컷 연애도 하고. 부럽네” 하고 보니, 중학교 졸업하고 더 이상 공부하지 못하고 할아버지에게 붙잡혀 농사를 지어야 했던 우리 아버지에게도 꿈이 있었을까 처음 생각해 보게 된다. 아버지에게도 청춘이 있었을 텐데, 열다섯부터 농상를 짓고 이십 대에 이미 이장이 되어 마을 일을 도맡아했던 그 시간들 어디메에 푸른 이파리 같은 설렘이 깃들 수 있었을까. 스물둘에 결혼하고 다섯 남매의 아버지가 되었으니, 알콩달콩 연애나 대학 생활 같은 건 생각도 못 했을 스무 살 아버지의 어느 8월에 문득 마음이 가 닿는다. 내 지금의 삶이 엄마와 아버지의 과거를 베고 누워서야 가능했던 현실이었음을 겨우 생각해 낸다. 이 마음에 이름을 붙인다면 무어라 할 수 있을까. 이런 마음에도 절망이니 희망이니 같은 명징한 단어가 오래전부터 존재했다면, 나라는 딸은 좀 더 일찍 이런 순간을 맞이할 수 있었으려나.
혼자서 자꾸만 성질을 내면서 오가는 이들 모두에게 시비를 거는 아저씨를 구경하다가 점심을 먹으러 갔다. 조금이라도 걸으신 덕인지 돌솥비빔밥 한 그릇을 깨끗이 비우신다. 감사해라.
이틀 전, 4차 주사 첫 날은 “느 외갓집 식구들이 돈 빌리러 마이 왔제. 아방실 누구도 보증 서 달라고 왔고. 나는 안 된다 딱 잘랐다. 내가 참 매몰차기는 했지. 느 엄마는 서운했을 거라. 내가 그거 미안하단 말을 못 했다.” 하시기에 이제라도 하시면 되지 뭔 걱정이냐 했었다. 그런데 오늘은 아버지를 서운하게 했던 사람들 이야기를 잔뜩 내놓으신다. 기대가 크니까 자꾸만 마음 다치게 되는 피붙이들 이야기부터 고등학교 안 보내 준 할배 이야기, 아버지 집으로 사기 치려 했던 사기꾼 이야기까지 거슬러 거슬러 올라간다. 아버지 생에 깃든 사연들 중에 처음 알게 되는 것들이 이리도 많다.
주사를 맞을 침대에 자리가 나길 기다리는 그 짧은 순간 동안 순식간에 둘도 없는 벗이 되어 함께 아멘을 외치는 사람들의 마음도 그와 다르지 않을 것이다. 남겨 놓을 사연 하나 없는 사람이 어디 있겠는가. 어디에나, 누구에게나 기대 털어놓고 싶은 마음들이 병원 복도에 가득하다.
그렇게 겨우겨우 걸음 수를 채워 봐도 하루 2천 보가 될까 말까다. 내일은 좀 더 힘내 보아요, 아버지. 집에 다녀올게요.
아버지를 부축한 큰언니의 깊어진 눈을 뒤에 두고 집으로 향한다. 쏟아붓는 장대비를 뜷고 집에 오니 남편이 대상포진이란다. 정말이지 어디라도 누구에게라도 기대 쏟아붓고 싶은 밤이다.
_2022년 8월 17일의 기록
* 은유 작가의 책 <다가오는 말들>에서 빌려 왔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