뭘 줄 수 있는데요?
남의 나라 마트 구경만큼 재미있는 게 또 없다. 그 나라 사람들의 삶의 한 자락을 속속들이 들여다보는 일인데 어찌 재미없을 수가 있겠는가!
캐나다 마트를 돌아다니다 보면 탄성이 절로 나온다. 언제나 새로운 걸 찾아내는 건 인간의 본성이다. 카트 하나 끌고 마트를 구석구석 돌다 보면 나도 모르게 한국과 다른 새로운 것들에 눈길이 간다.
“어머~ 캐나다 사람들은 메이플 시럽을 정말 좋아하는구나! 종류가 이렇게 많다니!”
“어머나~ 캐나다는 애플망고가 정말 싸구나? 캐나다 애플망고도 수입일 텐데 왜 우리나라에서는 무지 비싸게 팔리는 애플망고가 캐나다에서는 싼 거지?”
“와~ 캐나다 사람들은 진짜 겨울 스포츠에 진심이구나. 마트에서 온갖 사이즈와 브랜드별로 스케이트를 늘어놓고 팔다니, 정말 흥미로운데?!”
“태평양산 연어와 대서양산 연어 중 원하는 걸 고를 수 있다니!! 우리나라에서는 본 적이 없는 광경인데?!”
“동유럽 사람들이 많이 오는 마트에는 동유럽에서 수입된 제품이 많고, 한국 사람들이 많이 오는 마트에는 한국산 제품이 많고, 마트도 다국적이군!”
대중적인 식음료를 판매하는 마트, 인근에서 생산된 지역 농산물을 전문적으로 취급하는 마트, 생활용품을 판매하는 마트 등 다양한 마트를 취미 삼아 돌아다니며 한국의 마트와 비교하는 재미는 상당히 쏠쏠하다.
홀린 듯 카트에 물건을 가득 싣고 계산대 앞에 섰다면 정신을 좀 차려야 한다.
계산대 옆에 놓인 이국적인 사탕과 초콜릿에 정신이 팔려 딴생각을 하다 보면 계산원과의 대화가 엇박이 나기 십상이다.
계산대에 물건을 잔뜩 올려두면 대부분의 점원은 바코드를 찍으며 자연스럽게 묻는다.
“How are you today?”
‘오늘 어떠냐는 거지? 그럼 뭐라고 말하지? 오늘 공원에 다녀온 이야기를 해야 하나? 점심을 뭘 먹었는지 말해야 하나? 기분을 알려줘야 하나?’
오만가지 생각이 머리에 떠오를 수도 있지만, 이중 어떤 것도 정답이 아니다.
‘오늘 내가 어떤 상태인지 알려줄 거야!’라고 다짐하고 내 생각과 상태를 속속들이 이야기했다가는 과도한 TMI를 견디지 못한 직원의 냉담한 눈초리를 받게 될 수도 있다.
친구들끼리 가볍게 안부를 주고받는 “How are you?”와 서로 모르는 사이인 손님과 직원이 주고받는 “How are you?”는 그 의미가 비슷하면서도 다르다.
마트 직원들이 건네는 “How are you today?”라는 말은 “오늘 어떠세요?”라는 안부의 인사라기보다 “안녕하세요~”에 가깝다. 한마디로, “Good morning”, “Good afternoon”, “Good evening” 같이 낯선 타인들끼리 그냥 자연스럽게 주고받는 인사말일 뿐이다.
친구가 묻는 “How are you?”에는 답이 여러 가지 일 수 있다. 기분이 좋아서 “Pretty good”이라고 답할 수도 있고, 기분이 별로라, “Not that great”이라고 답할 수도 있다. 그러나, 마트 점원이 “How are you?”라고 물을 때는 “Great, thanks”, “Good, thanks” 정도로 답하는 게 가장 무난하다. 하루에도 수백 명씩 계산대 앞에 서는 손님들의 기분을 일일이 살필 만큼 정신적 에너지가 넘쳐나는 직원은 어디에도 없다. (물론, 폭설이 쏟아진다거나 근처에서 축제가 열린다거나 하는 식의, 모두가 공감할 만한 특별한 사건이 있는 경우에는 가볍게 한두 문장으로 대화를 주고받기도 한다.)
“How are you?”의 관문을 통과했다고 안심해서는 안 된다.
계산이 모두 끝나고 나면 점원이 또다시 아찔한 한마디를 건넨다.
“Have a good one!”
이 말을 듣고 ‘뭘 가지라는 거야?’ ‘옆에 있는 껌이라도 하나 주는 거야?’라는 의문을 품어서는 안 된다.
“Have a good one”의 “one”은 무엇이든 될 수 있는 다재다능한 단어다. 대화를 나누는 양측 모두 그 대상이 무엇인지 뻔히 아는 무언가를 가리킬 때 쓰는 그 one 말이다.
예를 들어, “I’ll have a coffee. Do you wanna have one?”이라는 대화를 상상해 보자.
이때, 묻는 사람도 듣는 사람도 ‘one’이 커피라는 사실을 잘 알고 있다.
“Have a good one!”이라는 문장 속에서는 ‘one’의 이런 용법이 좀 더 변화무쌍해진다.
‘one’은 무엇이든 될 수 있다. “morning”, “afternoon”, “evening”, “night”, “day”, “weekend” 등 무엇으로도 변신할 수 있다.
아침인지 점심인지 모호할 때, 하루가 거의 끝나갈 때, 주말이 시작될 때. 언제 어떤 상황에서든 헤어질 때 상대가 “Have a good one!”이라는 인사를 건네면 “You, too”라고 대답하면 충분하다. 혹은, “Have a good one!”이라고 똑같이 말하거나 “Have a great day!”라고 조금 변형해서 답해도 좋다.
“How are you?”가 고객을 환영하는 “안녕하세요.”였다면
“Have a good day!”는 쇼핑을 끝내고 가게를 떠나는 고객을 위한 작별의 인사 “안녕히 가세요.”에 가깝다.
한 마디로, 별 뜻 없는 다정한 인사다.
뻔히 아는 초급 단어와 문장이지만, 예상하지 못한 상황에 뜻밖의 방식으로 조합된 문장이 훅하고 떠밀려 오면 괜히 낯설어 쉽게 입이 열리지 않는다. 알고 나면 뻔하지만, 아무것도 모르는 채 맞닥뜨리면 누구나 당황하게 되는 두 문장. “How are you today?” 그리고 “Have a good one!”을 기억해두자.
자매품으로 “For real(정말로, 진짜로)”과 “Sure thing(물론이지)”이 있다.
어려운 단어는 하나도 없지만 역시 조금은 낯설게 느껴지는 조합이다.
예를 들면, 밥에 진심인 친구 A와 날이면 날마다 다이어트를 하겠다고 다짐만 하는 A를 믿지 않는 B는 이런 대화를 할 수 있다.
A: “I skipped dinner last night.” “나 어제 저녁 굶었어.”
B: “For real?” (진짜로?)
A: “Sure thing!” (당연하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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