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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heywinkup Oct 25. 2016

그때의 기분

다육이를 품에 안고 돌아오던 날

식물을 키운다는 말을 할 수 있게 된 지 어느덧 3년 차. 매년 가을을 보낼 즈음이면 베란다를 되짚어 보며 한 번씩 고민에 빠진다. '과연 나는 지금... 잘 하고 있는 걸까?'

두 번의 겨울과 세 번의 여름을 보내고 또다시 시작된 겨울나기를 걱정할 때나, 처음과는 많이 달라지고 커져버린 지금의 베란다 생활이 조금 버거워질 때쯤, 나는 옛 사진을 찾는다.



처음 다육식물을 사기 위해 꽃시장에 갔던 날과, 바스락거리는 비닐봉지에 양 손 가득 화분들을 들고 돌아오던 그 시간의 기억은 3년이 다 되어가는 지금까지도 쉽게 사라지지 않는다. 두려움 반 설렘 반, 알 수 없는 그 기분은 고스란히 비닐 포트에 심긴 채 박스에 줄 맞춰 서 있는 그들의 사진 속에 남아있다.

어쩌면 굉장히 스테레오 타입의 초심자용 다육이들


새 봄이 오고 동네 작은 꽃집에서 이름표 하나 없는 다육이들을 사들고 와서 그 이름을 찾겠다고 책이니 인터넷을 샅샅이 뒤지고 다니던 시간 또한 그렇게 남았다.

봄날이 고스란히 담긴 까라솔의 얼굴
이름 하나 몰라도 예쁘기만 하던 어느 봄날의 다육이들


두근거리는 마음으로 서울 외곽의 어느 농원을 찾아갔다 돌아오는 먼 길에는, 가는 동안 흙 한톨 쏟지 말라고 돌돌 감아준 배려의 신문지가 화분마다 함께 했다. 품에 꼭 끌어안고 돌아오는 지하철 안에서, 품 안의 아이를 보듯 박스 안을 몇 번이나 들여다보고 또 들여다보며 돌아오는 길은 그리 멀지 않은 듯 했다.


하나하나 신문지를 풀어가며 조심스레 화분을 꺼내어 놓고 나면, 비로소 안도감이 밀려온다. 행여 다친 곳은 없나 살펴보고, 집에 있던 제일 예쁜 화분을 골라 조심스레 분갈이를 하고, 햇빛이 가장 잘 들어오는 자리에 줄 맞춰 세워놓고 나면 이보다 더 기쁠 수가 없는 일이다.

손목에 달랑이며 들고 왔던 봉투 속, 팔이 아플 정도로 안고 왔던 박스 속 다육이들의 사진 속에 어느 첫사랑의 기억처럼 설레는 마음이 남았다. 그 첫사랑의 기억으로 다시 한번 겨울을 준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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