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사 한 지 3주가 지났다. 그동안 짐을 제자리에 넣고 눈에 거슬리는 곳들을 보수하느라 틈틈이 바빴다. 큰 식탁도 사고 의자도 사고 러그도 샀다.(고민을 너무 많이 하다가 스트레스 받아서 될 대로 되라는 식으로 사버렸다) 등을 교체하고, 안정기도 교체하고, 샤워기도 교체하고, 찢어진 실리콘도 메꿨다.(전에 살던 사람은 왜 이런 걸 그냥 둔 거야) 최적화 작업을 끝내니 이제 좀 우리 집 같다.
살던 집보다 큰 집으로 오니 짐 정리가 편하다. 가구 배치할 때 전에는 1cm에 사력을 다했는데 지금은 아무 데나 툭툭 던져 놔도 괜찮다. 집에 대한 내 로망은 ‘굳이 이렇게까지 큰집’에서 ‘굳이 이렇게까지 뭐가 없이’ 사는 건데 그 맛을 살짝 봤다. 물론 집이란 게 또 금방 채워지긴 하더라. 그래도 최선을 다해 쓸데없이 빈 공간을 남겨두려고 한다.
워낙 산책하기 좋은 동네긴 했는데 올림픽공원에 가까워지니 더 자주 나가게 된다. 게다가 평소 아끼고 존경했으나 거리가 애매해 못 가던 카페가 때 마침 집 근처로 이사를 왔다. 걸어서 3분 거리다. 어찌나 반갑던지 달려 들어가 사장님들과 한바탕 수다를 떨었다. 여러모로 되게 상징적이고 소름 돋는 사건이다.
그동안 란님과 나는 사는 집의 단점들을 쭉 적어놓고 하나씩 지워가며 이사를 했다. 첫 번째 집에서 두 번째 집으로 이사할 때 주차 문제, 채광 문제를 지우고 세 번째 집으로 이사할 땐 부족한 방, 답답한 뷰 같은 항목을 지우는 식이었다. 예산이 늘 부족해서 한 번에 지울 수는 없었지만 대신 집 보는 눈과 집 고치는 능력을 키울 수 있었다.
지금 집에 와서는 음… 다 지운 것 같다. 뭐 욕심을 내자면 만들 수는 있겠지. 그래도 ‘다음 이사 땐 반드시!’ 하던 필수 제거 항목이 더는 없다. 8년 걸렸네. 거의 '무'에서 시작했기에 단점 투성이었던 신혼집에서부터 여기까지. 차근차근.
아쉬운 건 딱 하나. 내 집이 아니라는 것. 이제 집 살 준비를 하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