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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지원 Dec 29. 2020

복숭아 뼈 옆의 하트 문신

 복숭아뼈 옆에 아주 작은 하트 모양의 문신이 하나 있다. 나는 이 문신을 4년 전 크리스마스에 했다. 첫 문신이었고 문신을 하는 일은 큰 용기가 필요했다. 그해에 나는 지독한 이별 후유증에 시달리고 있었고 이별의 아픔은 떠도는 말들처럼 몇 개월의 시간이 해결해주지 못했다. 아픔의 농도가 옅어지지 않는다는 사실에 나는 조급했고 두려웠다. 나는 그 해에 많은 일을 저질렀고 문신도 그중 하나였다.     


 평생 지워지지 않는 무언가를 몸에 새긴다는 사실 때문에 나는 아주 작고, 무의미하고, 유행과 관계없는 하트 모양을 나의 첫 문신으로 선택했다. 문신을 하는 일은 생각보다 아프지 않았고 그리 대단한 일도 아니었다. 여전히 조금 더 큰 문신을 하지 않은 것을 후회하고 있다.     

 

 4년 전의 크리스마스는 그렇게 고작 작은 문신 하나로 무척 뿌듯한 하루였다. 용기가 없어 망설여온 일을 저지르는 일은 나에게 큰 쾌감을 선사했다. 너무 작아서 아쉬운 마음이 들지만 나는 내 복숭아뼈 옆의 하트 모양 문신을 볼 때마다 기분이 좋아진다. 자주 ‘귀엽다’라고 생각하며 피식 웃는다. 첫 문신을 하고 나서는 팔에 두 번째 문신을 하고 싶어졌는데 무엇을 할지 정하지 못해 여태 미뤄왔다. 얼마 전에 좋은 생각이 떠올라서 곧 두 번째 문신도 할 수 있을 것 같다. 이번에는 더 크고, 의미 있는 모양으로 골랐다. 문신을 할 생각을 하면 벌써 기분이 좋아진다.     

 

 크리스마스 날 문신을 하자는 제안은 지금은 절교한 한 친구가 했다. 그녀와는 미술치료로 유학을 준비하던 시절 포트폴리오를 만들기 위해 다녔던 미술학원에서 만났다. 둘 다 유학은 가지 못했다. 우리는 대화가 잘 통하고 취향이 맞아서 학원을 그만둔 후에도 일주일에 두세 번은 만나 같이 술을 마시며 불평불만을 늘어놓았고 자주 크게 웃음을 터뜨렸다. 주로 연애 얘기를 많이 했다. 몇 번의 연애를 했던 이십 대 중반부터 삼십 대 초반까지를 그녀와 함께했다. 우리는 항상 외로웠고 서로가 있어서 덜 외로울 수 있었다. 그녀가 여전히 조금은 볼품없고 재미있는 연애를 하고 있을지 가끔 궁금하다.     

 

 그녀와 절교한 것은 그녀와 함께 떠났던 발리 여행에서였다. 우리는 술과 여행을 좋아하는 사람들이었지만 한 번도 함께 여행을 떠난 적은 없었다. “이번 여행은 꼭 나랑 가”라는 그녀의 말에 나는 조금 꺼려지는 마음을 내색하지 않은 채 그녀와의 여행을 결정했다. “언니, 우리 이번 크리스마스에 문신하자”라던 말에 삽시간에 문신을 결심했던 때처럼 서둘러 비행기표를 끊었고 맥주를 마시며 급하게 숙소도 예약했다. 여행이 꺼려졌던 이유는 그녀와 여행을 떠나면 분명 우리가 부딪히게 될 것이라는 생각 때문이었다. 우리는 잘 맞았지만, 똑같이 자기주장이 강했고 지기 싫어하는 성격이었다.     

 

 발리는 내가 갔던 여행지 중 가장 별로였다. 나는 태국도 좋았고 라오스도 좋았지만 발리에서는 ‘현지’의 느낌을 전혀 느낄 수가 없었다. 발리는 서양의 사람들이 요가를 하고 마사지를 받으며 ‘가짜’인 아시아의 냄새만 맡기 위해 놀러 오는 놀이동산 같았다. 어디에서나 볼 수 있는 이국적인 야자나무들과 저렴한 가격에 구할 수 있는 풀빌라의 전용 풀장, 맛있는 나시고랭과 미고랭이 한껏 여행지의 분위기를 선사했는데도 그랬다.      

 

 그렇다 한들 발리 여행이 즐겁지 않았던 것은 아니었다. 파도가 높게 치는 해변에서 마음껏 물보다 저렴한 빙땅 맥주를 마시며 책도 읽고 수영도 했다. 저녁에는 늘 근사한 곳에서 예쁘게 차려입고 맛있는 인도네시아 음식과 함께 술을 마셨다. 8월의 발리는 한국보다 훨씬 더 선선했고 숙소에 돌아가면 수영장에서 밤 수영을 할 수 있었다. 우리는 많은 이야기를 하고 한국의 집보다 훨씬 더 휘황찬란한 숙소에서 늦은 아침까지 잠을 잤다. 아침에는 바깥에 앉아 육개장 사발면을 먹었고 부지런히 나가 커피를 마시고 또 바다에 갔다.     

 

 우리는 마사지숍을 찾다가 싸우고 벼룩시장을 구경하다 싸우고 나시고랭과 미고랭을 먹다가도 싸웠다. 그리고 여행을 다 마치고 돌아온 날 인천공항에서도 싸웠다. 그녀와는 그 여행 이후로는 단 한 번도 연락하지 않았다.     

 복숭아뼈 옆의 하트 모양 문신을 보며 가끔 그녀 생각을 한다. 그녀와 절교한 후에 나는 우리 관계는 손쉽게 끝날만큼 얕은 관계였다고 생각했지만, 다시 생각해보면 우리가 절교한 이유가 관계가 얕았기 때문은 아니었던 것 같다. 어떤 관계는 그런 식으로 멀어지기도 한다.      

 

 그녀에게 다시 연락할 생각은 없다. 그래도 내 복숭아 뼈 옆의 하트 모양의 문신을 볼 때마다 그녀와 떠났던 발리 여행을 떠올린다. 웃기지만 그럴 때면 침울해지기보다는 유쾌해진다. 고작 아주 작은 하트 모양의 문신 때문에 가슴이 두근두근했다가 뿌듯했던 시절도 있었고 마음껏 분노해서 싸우다가 누군가와 절교했던 시절도 있었구나 하고. 어쨌든 더 크고 의미 있는 두 번째 문신을 하게 된다면 그것 역시 그녀 덕분일 것이다. 그녀와, 이별의 아픔을 이겨내지 못했던 그 시절의 나 덕분에, 그런 슬픔과 귀여움 덕분에.     

 

 친구는 잘살고 있을 것이다. 나와 달리 그녀는 발리를 아주 좋아했으니까, 발리에 다시 가고 싶다고 생각할 때마다 나와의 여행을 떠올렸으면 좋겠다. 건강했으면 좋겠고, 여전히 하고 싶은 게 많았으면 좋겠고, 외로워할 줄 아는 사람이면 좋겠고, 조급하고 충동적인 사람이었으면 좋겠고, 잔뜩 불평불만을 늘어놓을 수 있는 연애를 하고 있었으면 좋겠다. 내가 여전히 그런 것처럼.     


 그리고 나는 여전히 발리가 싫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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