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에 온지 1년

6년차 PM의 뉴욕 라이프 입문기

by 구자경

2024년 8월 미국으로 건너왔다.


뉴욕에서 시작하고 싶었는데, 감사하게도 가고 싶었던 뉴욕대 석사 Interactive Telecommunications Program (a.k.a. 크리에이티브 테크놀로지)에 합격해 캐리어 두개를 가지고 이곳에 온 지 일 년이 됐다. 새로운 나라에서 삶을 셋팅하는 것, 뉴욕이라는 거대 도시에서 주는 끊임없는 자극, 다시 학생이 되서 완전히 새로운 것을 배우고 프로젝트하는 것, 이 사이에서 하루 하루 저글링하기 바빠 막상 기록을 잘 못했다. 1년 동안 무슨일이 있었지?


NYU ITP 에서 두 학기

이곳은 스타트업 같은 과다. 프로그래밍, 피지컬 컴퓨팅을 기반으로하는 테크니컬한 과인데 사람들의 기존 백그라운드가 테크<>아트 사이에서 굉장히 광범위한. ‘Art school for engineering, engineering school for artist’ 로 불리기도 한다. 보통의 공학과에서 한 기술 주제를 깊게 판다면 이곳은 interdisciplinary 하게 다양한 기술 주제를 넓고 얇게 다루고 일단 각 분야의 동료와 교수진을 모아놨으니 개인이든 팀으로 무엇이든 마음껏 만들어봐라 하는 과이다. 소프트웨어 프로덕트의 Product Manager로 그간 일한 경험을 바탕으로 내가 지금 현재 가장 관심있는 기술 주제와 문제를 탐구하고, ‘빌더’로서의 나를 개발 하기 위해 이곳에 왔다. AI가 코딩, 그래픽, 비디오 등 모든 영역에서 급진하는 이시기에 딱 학교에서 새로운 기술 주제를 다루면서 전통적인 방식, AI로 효율을 극대화하는 방식 양쪽 모두를 경험하고 있는 행운의 시기라고 생각한다. 첫 두학기 동안 나는 기존에 PM으로 다뤘던 B2C consumer app, B2B SaaS product 영역을 완전히 벗어나서 새로운 주제들을 마음껏 탐구했다.

2024 Winter Show 마지막 날

돌아보니 두개의 키워드로 요약된다.


(1) Modular design

첫학기 <Intro to Physical Computing> 수업에서 파이널 프로젝트로 진행한 ‘Light Garden’. 커스터마이징 가능한 조명 제품에 관심이 있어 각기 다른 디자인 오브젝트를 붙인 LED 블록들을 모듈화해서 가든 베이스의 원하는 위치에 똑 하고 놓으면 딱 하고 빛이 들어오는 제품을 두명이서 만들었다. 디지털 제품만 다루다가 피지컬 제품을 만들어본 경험은 새로운 매력이었고, 조명 오브젝트의 디자인을 장인 정신으로 핸드크래프팅 하기도, 3D 프린팅으로 복제가능한 형태로 생산하기도 하면서 앞으로 내가 다룰 수 있는 제품의 범위에 대해 생각 해보게됐다.

Light Garden

이후 두번째 학기에 Soft Robotics 을 들으면서 소프트 매터리얼이 어떻게 피지컬한 제품에서 human-computer interaction을 유연하고 자연스럽게 만들어줄수 있는지에 매력을 느꼈고, 기존에 진행한 Light Garden의 제품 모듈을 유지하되 실리콘 재료를 사용해서 각 조명 블록의 표면 터치로 밝기를 바꾸는 기능을 디자인했다. 학기 중에 진행한 프로젝트를 학기말 전시에 올릴 수 있는데, 이때 방문자들이 사용하는 경험을 보고 듣고 피드백 받고 있던 순간이 학기 중 가장 재밌었던 하이라이트로 기억될 것 같다.

Light Garden ver.2 / 소프트 로보틱스 Kari Love 교수님과

(2) Augmented Reality

또 하나의 주제는 증강 현실(AR) 이었다. 그 중에서도 스마트 글래스 기반의 증강 현실 경험에 관심이 몇년 전부터 컸는데 드디어! 학교 수업 중에는 Unity와 Snap Lens Studio 에서의 모바일/데스크탑 기반의 인터렉션 개발을 주로 배웠고, 스마트글래스 환경에서 실생활 문제를 해결하는 제품 개발 쪽에 더 본격적으로 참여하고 싶어 2025년 상반기에는 빅테크에서 개최하는 AR 해커톤들을 다녔다.


2025 상반기 6개의 해커톤

큰 규모의 해커톤이 여기저기서 많이 열린다는 사실이 놀라웠는데 마침 업계에서 AR 디바이스가 헤드셋에서 글래스로 가는 트렌드에 있어 빅테크들에서도 자사 글래스 SDK를 사용해서 해커톤 참가자들이 제품을 어떻게 쓰는지 보고자하는 니즈와 잘 맞아떨어진 것 같다. 유독 Snap 팀에서 개최한 해커톤들에서 좋은 기회들을 얻게 됐는데, 이것을 계기로 LA에서 열린 Snap 크리에이터/개발자 커뮤니티 디너에도 초대되는 귀중한 경험을 했다. 뉴욕의 AR 커뮤니티인 XR Guild에서 열리는 월간 행사에 스피커로 서기도 했다.

Snap AR hackathon, Creator community dinner in LA, Speaker in NYC XR Guild

올해 참여한 해커톤의 반이 AR 이라면 반은 AI 다. AI 해커톤은 모두 솔로 빌더로 뉴욕에서 참여했고, 바이브코딩 확산에 힘입어 전반적으로 팀이 아닌 개인으로 참여하는 비중이 압도적으로 높아짐을 느낀다. 이렇게 상반기 6개의 해커톤에 중독된듯 참여했는데, 여기서 가장 큰 수확은 해커톤을 통해 단시간에 많은 사람들을 밀도 높게 알게 되었다는 것이다. 해커톤을 개최하는 스폰서사 관계자분들, 해커톤에 함께 참여하는 cross-functional한 동료들과 아주 구체적인 목표를 가지고 정해진 시간에 같이 집중하고, 만들어서, 공유하고 서로 피드백 주는 자리를 함께하다보면 서로를 빠르게 알게되고 마음 맞았던 사람들과 또 다음을 기약하게 된다. 나에게 가장 잘 맞는 네트워킹 방법이다.

6개 해커톤에서 만든 것들


나의 첫 프로덕트

계속해서 만드는 환경에 있다보니 + AI 가 1인의 역량을 계속해서 넓혀주는 시기에 있다보니 자연스럽게 내가 풀고싶은 문제가 뭔지 지금 당장 뭔가를 해결한다면 그게 무엇이어야 할까를 생각하게 된다. 수차례의 해커톤과 학기 중 프로젝트를 거치며 롱텀으로 만들고 싶은 서비스를 고민하던 중, 항상 종이 수첩이나 아이패드로 낙서하면서 모든 작업을 시작하는 내가 헤비 Doodler로서 느끼는 페인포인트가 생각났다. 제품 디자인이든 일러스트레이션이든 광고 기획이든 노트에서 아이디어를 적고/그리고 최종 작업물 까지 가기까지 결과물이 비주얼인데도 텍스트 중심의 AI 플랫폼을 여러가지 왔다갔다하면서 작업하는 것에 대한 비효율성을 해결하고 있는 플랫폼이 아직 뚜렷하게 없기에, 이 문제를 파보고 싶어졌다. 그렇게 Doodlely의 key feature (그리고, 생성하고, 오버레이해서 최적화하기) 디자인을 한 상태로 마침 6월 Lovable 에서 accelerator program 진행하는 것을 발견해서 바로 참여했다. 몇 주간 MVP 버전을 완성했다. 유저 인터뷰, 프로토타이핑, 데이터베이스 설계, 멀티 LLM 레이어 테스팅, 랜딩페이지 셋업, 유저 유입 이 모든 end-to-end를 혼자서 해본건 처음이었다. 여기서 얻은 시행착오와 러닝을 가지고 실유저가 안정적으로 쓸 수 있는 서비스로 올해 한걸음 더 나가고 싶다. (➡️ 베타 버전 대기 신청)


뉴욕 베이스 YC 스타트업 조인

그러던 중 7월 YC 출신 스타트업에서 프로덕트 매니저 인턴 기회가 생겨, 맨하탄 소호에서 나의 미국 첫 오피스 라이프가 시작됐다. Speech AI 기반 앱을 만드는 이 회사의 머신러닝 팀의 PM으로 조인해서 사용자들이 앱을 사용하면서 제공하는 오디오 파일들을 머신러닝 모델 트레이닝에 사용할 수 있는 형태의 데이터로 라벨링하는 Data annotation project를 맡아서 진행하고 있고, 추가적으로 틱톡 크리에이터들과 함께하는 GTM 이니셔티브를 리드한다. 테크 업계에서 제품 만드는 업을 하는 사람으로 내가 만들고 있는 제품의 핵심이 되는 머신 러닝 모델을 트레이닝 하는 경험, 제품을 잘 알리고 판매하는 고투마켓 경험을 더 해봐야겠다고 생각했는데 마침 기회가 잘 맞았다. 무엇보다도 최근 10 million ARR 을 만들어낸 7명의 소규모 팀이 뉴욕 오피스에서 활발하게 대면 협업하는 이 공간에서 CEO, CTO, ML team lead와 각각 붙어서 긴급한 일들을 같이 해결하는 인턴으로 이들이 어떻게 작은 팀으로 빠른 성장을 만들어내고 있는지 가까이서 보는 것을 가장 큰 경험이자 기회라고 느끼고 있다. 여름 동안 풀타임으로 일했고 이제 가을 학기 시작하면서 파트타임으로 학기와 병행한다.


안해본 경험들

뉴욕의 길거리에서 모르는 사람들을 그려서 선물하는게 버킷리스트 중 하나였다. 원래 사람 얼굴 그리는걸 좋아했는데, 여행다닐 때 지나가는 사람들을 캐치해서 순간적으로 크로키하듯 빠르게 담는걸 취미로 한지가 좀 됐었다. 이제는 때가 왔다..! 는 생각으로 날씨 좋은 가을 맨하탄 워싱턴스퀘어 파크에서, 브루클린의 프로스펙트 파크에서, 친구가 호스트한 힙한 파티에서 ‘Trade anything with your portrait’를 진행했는데, 이때 만난 사람들에게 내가 더 에너지를 받는 시간이었다. 받은 트레이드도 너무나 다양하다. 공원에서 처음 그림을 그릴 때 흔쾌히 함께해준 친구들에게 감사하다.

이 드로잉 버스킹을 계기로 한 아트 플랫폼과 컨택이 되어 뉴욕의 다른 동네들을 돌아다니며 그림그리고 인터뷰하는 시리즈 컨텐츠도 같이 제작하게 됐다. 내가 ‘아티스트’로 소개되다니!


뉴욕 밖 경험 - SF, Boston, LA, San Diego, Monterey

한 해 동안 뉴욕 밖 경험도 꽤 했다. 보스턴의 겨울과 봄을 짧게 봤고, 뉴욕이 너무 추웠던 1월에 샌프란시스코에서는 미국 테크씬의 자랑스러운 한국인분들, 전 동료분들 많이 만나며 힘을 얻었고, 자연을 느끼며 하이킹도 했다. 여름의 LA에서는 해커톤 수상하는 기쁨을 느꼈다. 이어서 휴가로 지낸 산디에고, 몬터레이 베이에서는 보고 싶었던 바다와 야자수 실컷 보면서 새로운 한 해를 달릴 충전을 할 수 있었다.


돌아보면 지난 1년 동안 자의반 타의반 메타몽처럼 끊임없이 여러가지 모습으로 변신하면서 나도 몰랐던 새로운 모습을 발견하고, 두려움도 느끼고, 혼란한 미국 상황에 스트레스도 받지만, 눈앞에 펼쳐진 무한한 가능성에 설렘을 느끼고 있다.


단 하나의 러닝을 적는다면: 내가 나를 소개하는대로 세상은 나를 본다.

일년 동안 나를 소개할 일이 참으로 많았다. 많으면 하루에 수십번. 미국을 오기 전에 프로덕트 매니저로 5년간의 커리어를 보내면서는 000 에서 제품 만든다고 심플하게 소개가 끝났다면 미국에 온 후로는 나를 오롯이 어떤 조직을 붙이지 않고 소개하는 거의 처음인 시간이었다. 학교, 네트워킹, 파티, 해커톤, 인터뷰 등 목적도 다양하다. 지금 어떤 자리에서 나를 제너럴하게 소개해야한다면, ‘Product person who loves problem-solving through technology. Expertise at product management and expanding myself as a builder/founder. Passionate at getting my creative assets to be branded lifestyle products as well’ 이겠다.


각자의 개성을 가지고 Multi-business founder를 하고 있는 친구들에게 둘러 쌓여 있음에 감사하다. 자신을 하나로 규정하지 않고 여러가지 롤을 부여하여 따로 또 각자 시너지를 나게 하는 것 그것 자체가 자신의 고유성이 되게 하는 사람들 말이다. 디제잉을 하면서 옷도 만드는 친구. 브랜드 오너이자 디자인에이전시를 창업했고 책도 쓰는 친구. 엔지니어이면서 싱어송라이터인 배경으로 VR 콘서트 플랫폼을 만드는 친구. 대학원이라는 환경 안에서 만난 공통점이 있지만 모두 각자의 다른 분야에서 어디선가 피칭하고, 런칭하고, 전시하고 다니기 바쁘다. 이 사람들에 둘러쌓여있으면서 무엇이든 원하면 하면 돼 라는 에너지를 얻고있다. 또 직접적으로 아는 사람이 아닐지라도 이곳에 식당을 내러, 사업을 시작하러, 확장하러, 오는 많은 사람들의 이야기를 접하면서 ‘그래 지금 내가 무엇이든 되고자 한다면 될 수 있는 최고의 환경에 있구나’ 하는 감사함을 느끼게 한다.


그래서 1년을 막 보낸 이 시점, 나는 더 적극적으로 새로운 도전에 부딪히고 싶고, 못하는 것도 시도하며, 그 과정을 알리길 주저하지 않고자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