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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여림 Feb 15. 2020

캣푸어가 되기까지 두 번째. 고양이.



캣푸어가 되려면 당연히 고양이도 있어야 한다.

우리 하니는 퇴사 후 집에 혼자 있는 내가 걱정된다고 입양이 되었는데, 애초에 시간이 갖고 싶어 푸어가 된 나를 왜 걱정하는지 모르겠지만 일단 절은 하지 않았다.


차를 끌고 가서 데려온 하니는 분양한 집에서 얼마나 잘 먹고 잘 컸는지 털에 윤기가 좌르르 흐르고 통통한 게 공주님 같았다. 하얀 털이 너무 탐스러워서 하니는 하니가 됐다.


정말 짧은 시간 함께했던 길냥이 차차와 같은 개월을 살았는데 몸집도 거의 두배는 차이가 나서 또 괜히 슬펐다.


그렇게 한 마리.


그다음엔 혼자 고양이인 하니가 심심할 것 같다고 남자친구를 만들어주기로 했다. 마침 나는 눈이 파란 고양이가 눈에 들어오는 시점이었고, 그렇게 미르가 우리 집에 왔다. 하니보다 한 살 정도 어린 연하 남친이 생긴 것이다.


미르는 하니와는 정반대였다.

하니를 데려올 때는 아무것도 몰랐지만 분양해주시는 분이 먹던 사료라고 챙겨주신 게 있어서 당연히 그 정도는 챙겨줄 줄 알았는데, 사료가 없다고 고양이만 달랑 넘겨주는 게 아닌가.

비쩍 마르고 뭔가 없어 보이는 미르는 하니랑 비교하자면 거의 거지꼴이었다. 그래도 맑은 하늘색 눈동자가 예뻐서 미르는 미르(용의 순우리말)가 되었다.


그렇게 두 마리.


하니도 미르도 발정기가 왔는데도 임신은 안 되는 것 같아 포기하고 중성화를 할까 고민하던 시기, 하니가 임신을 했다. 결혼도 아이도 없는 내게는 첫 임신, 첫 출산이라 난리가 났다.

성격이 예민한 것 치고는 그래도 나름 무난한 임신기를 지내며 출산 박스니 뭐니 이것저것 준비해 놓았는데 하니는 침대에서 새끼를 낳았다.

자던 중에 뺙뺙 거리는 울음소리에 깬 게 오전 10시쯤. 이미 한 마리는 나와서 울고 있었고 둘째가 하니 엉덩이 아래에 있어서 깜짝 놀랐다.


고양이가 알아서 새끼를 잘 낳는다는 건 다 거짓말이었다.

나는 하니가 낳는 새끼들을 일일이 다 닦아주고, 호흡을 터주고, 체온이 떨어지지 않도록 해 주고, 체력이 떨어져 힘을 주지 못하는 하니에게 간식과 사료도 떠먹이고.

그 와중에 엉덩이에 깔려있던 둘째가 체온이 자꾸 떨어져 일하던 남자친구가 와서 난로를 켜고 그 근처에서 감싸들고 체온을 올리고.


고양이가 알아서 새끼를 잘 키울 거라는 것도 다 거짓말이었다.

나는 일주일을 넘게 잘 먹나 안 먹나 쪽잠을 자면서 젖을 물려줘야 했고, 하니가 새끼를 깔고 있으면 구제해줘야 했고, 작은 아이들은 조금이라도 더 잘 먹게 신경 써줘야 했다.

하지만 나도 하니도 출산은 처음이라 힘들게 낳은 6마리 새끼 중 3마리만 살아남았다. 하니의 실수도 있었고 내 실수도 있었다. 한 마리씩 보낼 때마다 난 울었고, 내 미숙함에 속상했다.


그렇게 세 마리 중 두 마리는 지인에게 입양을 갔고, 하니가 제일 처음 낳았던 찐빵떡이가 세 번째 가족이 되었다.


그런데 이게 웬일.

미르의 중성화 수술을 잡아놓고 기다리던 사이, 하니가 또 임신을 하고 말았다. 두 번째 임신과 출산임에도 난리가 났다.

하니는 두 번째에도 침대에서 출산을 했고, 조금은 덜 미숙해진 나는 미리 준비해놓은 분유와 철저한 몸무게 관리로 다섯 마리 중 네 마리를 살렸다.

태어난 다음 날 젖도 잘 먹고 깔리지도 않았는데 무지개다리를 건넌 특이한 무늬의 아이는 지금도 왜 그렇게 됐는지 알 수가 없어 유전적 원인이 아닐까 생각할 뿐이었다.


새끼 중 유일한 치즈냥인 치초가 그렇게 우리 집 막내가 되었다.

아직 어린 치초를 제외하고는 모두 중성화 수술을 했으니 우리 집 가족계획은 이제 끝이 났고, 나는 완성형의 캣푸어가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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